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이 계시는 곳. '소석원(小石園)'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3.

지난 여름, 봉하마을을 방문한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노무현대통령 묘역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너럭바위 형태의 지석묘만 참배를 하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올 5월에는 서거 1주기를 맞아 묘역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묘역이 그저 그렇겠지 하는 생각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나쳐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전 건축잡지에 소개된 노 전대통령의 묘역의 설계과정에 대해 글을 보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묘역을 건축적으로 풀어가는 과정도 새삼스러웠지만,
건축가가 본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들이 묘역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어졌습니다.
참배시 이러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 노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경건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좌측이 봉하마을 그리고 생가, 현재의 사저, 우측 삼각형부분이 묘역입니다.)


 
<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소석원(小石園) > 
- 건축가 승효상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묘역을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 기득권자가 경계 밖으로 자기를 몰아내어 경계안의 사람들을 질타하는 위치를 향해 스스로를 추방시킨 시대의 지식인의 모습으로 그를 평가하였습니다.
- 스스로를 제도권 밖으로 추방하는 자, 노무현 대통령은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거의 항상 자발적인 추방인이 되어 결국, 그렇게 세계 밖으로 스스로를 영원히 추방하고 말았다고 건축가는 설계에 임하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습니다.
- 건축가는 죽은 자를 기념하는 장소에 대한 해석을 '죽음의 행로를 마주하며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장소인 이곳에 서게 되면, 사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게 한다. 여기서는 삶의 행로가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의 가슴에 그대로 살아 진행되는 것이다.'고 해석을 합니다. 
- 그리고 묘역의 개념을 절제를 통한 진정성 획득을 위하여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묘역 진입로 : 바닥의 거친 박석은 고인의 인생 역정처럼 경건한 추모의 장소로 인도합니다.)


< 묘역의 컨셉은 종묘의 월대 >

- 그 답을 건축가는 종묘에서 찾았습니다.

- 종묘는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신 장소입니다.
- 종묘 정전의 장중한 자태는 위엄에 찬 모습에 침묵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분위기는 마치 산자와 죽은자가 본원의위치를 떠나 서로 만나게 되는 중간영역입니다.
- 경건하고 침묵이 전체를 지배하는 공간을 '소석원' 설계 개념의 근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600년 역사의 종묘의 월대에서 묘역의 모습을 찾았다고 합니다.)


< 묘역의 배치 :  수반 - 헌화대 - 지석 >
- 묘역은 사저에 인접한 삼각형의 부지 약 3,500평방미터에 조성되었읍니다.
- 아마도 산자의 집 양택과 사자의 집 음택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참 드문 경우인 것 같습니다.
- 이등변 삼각형의 끝부분이 진입로에 해당됩니다.
- 진입부의 삼각형 부분은 수반(연못)을 설치하여 일상공간과의 접점으로 연꽃을 띄우고, 노무현 대통령의 별자리를 수면에 조명등으로 심어서 상징화된 공간으로 배치되었습니다.
- 종묘의 월대와 같이 몇개의 계단을 통해 역삼각형태의 광활한 광장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 물길 을 지나 헌화대를 맞이하게 되며, 다음 물길을 지내 지석에 면하게 되어있습니다.
- 지석묘역이 있는 배경에는 내후성강판 (코르텐강:녹슨 상태를 정지시킨 특수 철판)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일반사람들에게 생소한 뻘건 철판을 설치한 이유는 긴장을 불현듯 조성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 이 재료는 햇빛과 그늘에 따라 달리 보이며, 다양한 기후 변화에 따라 짙은 수묵의 이미지를 보이는 특수성 때문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상단부분의 진입로에 수반이 있는 곳을 가로질러 가운데있는 계단을 통해 들어선다. 중앙의 헌화대를 지나서 너럭바위에 도착하게 됩니다. )


< 지상의 비석은 儉而不陋하게 지하의 봉분은 華而不侈하게>  
- 묘의 형식은 유홍준 위원장이 남방식 고인돌의 모습을 연상하였답니다.
- 박석위에 깔린 바닥 위에 놓인 봉분함은 너럭바위가 아주 작은 비석을 대신하고 있읍니다.
- 황지우 선생은 박석의 비문에 대해, 애도하는 국민들이 쓴 구구 절절함보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 일천평 남짓한 삼각형 땅에 21세기의 지식인들의 의식과 비통한, 애절한 마음을 간결하게 표현한 묘역, 아니 고인돌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새로 지은 궁궐을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라는 의미로 쓰인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의미를 비석에 담았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따른 결과입니다.)


< 묘역은 '사람사는 마을'의 평면: 판석 하나는 집한채, 흰돌은 골목, 그리고 수로 >
- 박석디자인은 임옥상 선생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 박석으로 포장되는 표면의 표정을 '사람사는 세상'의 어떤 마을의 거리의 평면을 모티브로 시작하였답니다.
- 검은 돌 하나가 집한채, 하얀돌은 골목길(골목길은 추모글인 적힌 추모석에 의해 이루어졌답니다.
- 전통적인 시골마을 처럼 하천도 있고, 저수지도 있으며, 선현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마을의 축소판으로 보여집니다.

(박석의 바닥배치는 임옥상 선생이 사람사는 세상의 마을 거리 평면도에서 착안하였답니다.마을에는 2개의 하천이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박석디자인 : 전대미문의  설치미술>
- 1만 5천명의 참가예술
- 바닥의 박석은 국민들이 애절히 쓴글을 신청받아서 이루어졌다.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주변의 널부러져 있는 돌들을 모아서, 조각난 그 돌들의 하나하나의 형상에 콜라주 하듯 길바닥 포장을 디자인하였다고 합니다.
- 글씨가 들어가는 박석은 돌의 개수를 세어 만개의 박석을 국민모금을 통해 신청받은 것이, 불과 얼마지 않아  숫자가 넘쳐서, 빗발치는 요구로 5천개를 더하여 만들어진, 그야말로 미술이라면 전대미문의 설치미술로 현장에 남아있답니다.
- 이러한 박석에 새겨진 간절한 글귀는 1만 5천명의 '자발적 추방자'들과 함께 영원히 남아있을 것같습니다.

(길에 해당되는 바닥에는 1만 5천개의 박석(자발적 추종자)을 깔았습니다.)


< 성찰적 풍격을 위한 묘역 >
 건축가가 생각하는 묘역의 장소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장소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던 같은 시대 속에서 나의 존재가 다른 이들의 풍경이 되었음을, 그래서 같은 공동체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모두가 보편적 가치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결국 우리 자신의 성찰을 구하는 장소로, 성찰적 풍경(meta landscape)으로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기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마무리하였습니다.
 - 훌룡한 집을 짓는 건축가는 그 공간(장소)를 통해 연출될 주인공의 정체성 파악이 우선!
 - 가시적인 형태 구축보다 공간(장소성)에 대한 의미부여의 중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검은 박석하나가 집한채이며, 흰색박석은 골목길, 그리고 마을에 2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 스스로 추방된 자의 고귀한 가치를 찾는 풍경이 되기를   >>
- 이 묘역 조성은 유홍준, 승효상, 황지우, 안병욱, 정기용, 임옥상, 안규철로 구성된 '작은비석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 이 외에도 묘비명은 신영복선생과 지관 스님, 최가철물의 최홍규사장, 금강석재의 윤태중사장, 동인 E$C의 김천식사장, 그리고 박석에 새긴 1만 5천명의 추모의 글귀에 의해 완성되었답니다.
- 그리고 정연선 선생은 주변 조경을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소나무를 뒤 배경으로 하여 비파나무를 겻들였다고 합니다.
- 건축가 승효상은 묘역'소석원'에 대한 바램으로
'누구든지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할 때, 그로 인해 고독하고 적막할 때 여기를 찾아 월대 위에 서서 추방된 자의 고귀한 가치를 찾는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나는 세속적인 제도권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였는지?
그렇치 않으면 스스로를 추방시킬 대상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




* 소개된 사진은  'C3' 314호(2010년 10월호)에서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