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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8) - 강점제1시기

<마산포에 뚫린 최초의 신작로>

통감부 시절인 1907년경에 이미 마산포의 도로 폭을 조금 넓히거나 형태를 곧게 하는 가로개수 공사가 마산경찰서 주관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식 도로가 건설된 것은 1912년부터 1915년까지였습니다.

이 때 개설된 도로들을 사정토지대장에서 확인해 보면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시기는 다양합니다. 도로의 개설 시기가 토지대장에 기록된 시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3-4년 사이에 공사가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업으로 자연발생적인 좁은 골목길뿐이었던 마산포에 폭8m, 10m의 쭉 뻗은 새 도로가 신설되었습니다.

다음 도면은 도로가 개설되기 전의 마산포와 개설 후 모습, 그리고 도로개설 후인 1916년 지도에 나타나는 마산포 모습입니다.
두 번째 도면에서 직선으로 뻗은 넓은 길이 신설된 계획도로입니다.

 

박간(迫間, 하사마)에 의한 매립공사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시행된 것을 감안하면 이 도로개설공사는 매립공사와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진행되었을뿐만 아니라 마산포 전체의 도로망 구성을 볼 때 매립지의 도로망과 신설된 도로망은 마산포 전체도로계획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마산의 계획도로 개설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1912년 10월 7일에 조선총독부관보 제56호로 각도 장관에게 보낸 훈령 제9호로부터 시작된 전국적 규모의 「시구개정사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구개정사업」이란 도시의 도로․교량․하천 등을 근대적으로 정비하고, 구획별로 건축물의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도시계획의 성격입니다.

총독부 훈령 내용은「지방에 있어서 추요(樞要)한 시가지의 시구개정 또는 확장을 하려고 할 때에는 그 계획설명서 및 도면을 첨부하여 미리 인가를 받을 것. 다만 일부의 경이(輕易)한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입니다.

이 시구개정사업에 관한 훈령에는 그 구체적인 목적과 비용부담 등에 관한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훈령이 그로부터 20년 이상이나 한국 땅 안의 시가지를 개조하고 규제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마산의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이 도로개설사업에 대하여「마산포의 시구개정문제(馬山浦ノ市區改正問題)」와 「제4회 민회의원선거」라는 항목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마산의 민회의원 16명 중 마산포에 거주한 의원이 7명이었다. 그런데 마산포와 신마산에 거주하는 의원들끼리 서로 마산포에 개설될 도로의 노선(路線)에 관한 이해관계 때문에 다툼이 많아 회의가 계속 공전되면서 결론을 얻지 못했다. 결국 당국에 일임하게 되었지만 시행하지 못하다가 1912년 제4회 민회의원들에 의해 마산포의 도로개설사업이 비로소 최종 확정되었다. 모두 13호선까지 계획했으나 높은 지가(地價) 때문에 1호에서 5호까지만 공사를 하고 6호부터 13호까지는 시행하지 못했다」

계획도로의 노선 때문에 민회가 공전되고, 민회의원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싸웠으며, 높은 지가 때문에 계획한 것만큼 공사를 시행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실은 당시 마산포가 얼마나 상업중심지로서 가치가 높았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기야 당시 나온 자료를 보면 마산포가 신마산에 비해 훨씬 거래량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신마산의 일본인들도 마산포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니 세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마 앞의 두번째 그림에 표기된 신설도로가 위 기록에 나오는 1호에서 5호까지의 도로일 것입니다. 그러나 6호부터 13호는 시행하지 못했다니, 그곳이 어딘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신설된 도로의 위치는 가능한 한 기존의 골목길을 확장하여 도로를 개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① 기존 도로의 체계를 유지하고
②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며
③ 토지 보상비용의 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1912년 토지이용도와 1920년 토지이용도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도로가 기존의 골목길을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항지』에「도시계획에 저촉되는 대지의 보상비가 너무 고가였다」라는 내용을 보아도 기존 골목길을 도로로 활용하여 비용절감효과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때 뜷린 도로는 마산포 최초의 근대식 도로로서 신마산에서 시작된 장군로와 이어졌으며 매립지의 도로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원마산에 최초로 격자형의 근대적 도로망을 갖추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최초로 나타난 정형의 부지와 근대적 도로는 이미 원마산 상권의 중심지였던 이 일대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에 걸쳐 살펴 본 바와 같이 ‘남성동 매립’ ‘마산창 철거’ ‘근대식도로개설’ 등 1910년대에 나타난 마산포의 세 가지 변화는 1760년 조창 설립 이래 지속되어온 원마산 도시공간형태를 대폭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변화가 1910년대 전반기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매립 1911-1914, 마산창 철거 1913, 도로개설 1912-1915) 이미 통감부 시대부터 시작된 식민지배 기반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파악됩니다.

즉 신마산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이 이동에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최고의 시장'이라고 여겼던 마산포를 적극적으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효율적이고 근대적인 도시시설을 준비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식민도시정책의 적극적인 준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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