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1.11.2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마산을 바꾼 '시구개정사업'>

1920년대 마산의 도시 변화는 회사령 폐지로 시작된 산업 변화와 중앙마산의 형성 및 매립, 그리고 시구개정 사업으로 인한 원마산의 도로망 확산과 경남선 철도 개설 등이 큰 흐름입니다.

1923년 9월 1일 동경과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지방에 대규모 지진, 즉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44초에 돌연히 동경과 요코하마 및 관동지방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가옥을 비롯한 지상시설물을 도괴(倒壞)시켰을 뿐 아니라 해일(海溢)과 3일간 계속된 대 화재로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사망91,344명 행방불명13,275명 부상51,074명 가옥전소38,090채 가옥반소517채 전궤(全潰)83,819채 반궤(半潰)91,233채 유실1,390채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동경의 피해가 가장 커서 全시의 44%가 소실되고 249만의 인구 중 158만 이상이 재난을 당했습니다.
특히 이 소란 중에 한국인이 난동을 부린다는 낭설이 돌아 무차별로 학살되는 비극까지 겪었습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은 일본 전역에 도시연구의 관심을 고양시켰습니다. 도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입니다.

예로써, 1924년 동경제국대학에 도시계획 강좌가 개설되고, 같은 해 일본정부 내 도시계획 실무자들로 구성된 도시연구회가 회지『도시공론(都市公論)』을 발간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동경시정조사회가 월간『도시문제』를, 대판시가『大대판』을 발행함으로써 도시계획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열기는 한반도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미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시행되고 있었습니다만 전국 각 도시는 물론 지방도읍들까지 시구개정사업에 대한 열기가 높아졌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런 분위기를 전하는 신문기사 중 마산관련기사를 소개합니다. 모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馬山市區改正 着着進行中(1926년 1월 24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馬山府를 大都市로 建設할 計劃 下에 數年 前부터 市區改定에 着手하야 公設市場 及 道路擴張 等에 注力하야 오는바 대정15년도(1926년)예산으로는 2만3천6백원(6천원은 道補助金) 공사비로 萬町(동성동) 新築 警官派出所前부터 午東洞 明太庫間 前까지 230間 거리의 창원군 내서면 산호리를 직통하는 6間 1등 도로공사를 착수할 터인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야 工事完成期는 대정16-17년(1927-1928년)도까지 연장되리라더라.

馬山市區改正 工事는 來年부터(1926년 6월 23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市區改正에 留意하고 每年 着着進行中인바 新舊馬山을 連結시켜 大都會馬山을 建設할 計劃 下에서 12萬圓의 工事費를 정하여 市區를 改正하기로 결정되었다는바 工事費 12만원 中 국고보조금이 4만5천원 지방비 보조금이 3만7천5백원 府費編入金 3만7천5백원이라는데 國庫補助金은 方在申請中이라하며 工事着手는 대정16년(1927년)도부터 할 豫定이라더라.

工事着着進行 舊馬山市區改正 (1926년 12월 2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朝鮮人多數가 住居하는 舊馬山市區改正이 不完全함을 有感으로 여겨오던 바 最近에 이르러 府 當局으로부터 舊馬山市區改正에 特히 活力하여 온다함은 旣報한바이거니와 馬山府 萬町前으로부터 午東洞 淸水精米所까지 距離6十間 廣 5間半 府外連結道路工事는 近近히 着手하야 15年度(1926년)末內로 竣工하기로하고 土地買收에 府當局에서는 勞力 中이라는바 工費 豫算이 6천원에 不過함으로 土地所有者의 特別한 同情을 希望한다더라.

이들은 모두 이미 1910년대에 시행된 1차 도로개설로 생겨난 원마산의 도로망을 더 확산시키자는 의미의 기사입니다.
신문의 내용을 보면 마산의 도시 규모를 키우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발행된 신문에서는 마산 외에도 경남지방에는 진주․밀양․진영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전국 각지의 소읍들까지 시구개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도시계획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마산도시변화연구과정에서 1920년대 중반기에 마산에서 시행된「구마산시구개정(舊馬山市區改正)」에 관한 자료 일부를 찾았습니다.
시구개정사업으로 시작된 마산의 도시변화는 나중에 별도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당시 마산의 시구개정사업 중 하나인 현 중앙동 일대의 도시계획도면입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Trackback 0 Comment 0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의 추억 2018.07.30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년 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2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2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홍수의 시작은 1988년에 시작한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다. 이 사업은 전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었다. 2백만 호..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1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1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택지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을 낳았다. 이런 현실은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단화와 고층화를 요구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