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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by 허정도 2012. 1. 23.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

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년경에는 단발에 양장(洋裝)차림을 한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서 1920년대 중반에는 전체 한국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상투머리를 한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막일하는 사람과 농민이었으며 그 외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짚신도 이 시기에는 많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무신을 신었는데 마산에는 주로 오사카와 고베의 고무신이 공급되었습니다. 개중에는 구두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무신 사용자가 많아지니 상대적으로 짚신은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고무신 대신 짚신신기 운동'까지 일어난 지역도 있었습니다.
짚신이 당시 농촌의 중요 수입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점기에 이용되던 고무신광고입니다.


이런 정황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은 점점 근대화되어 갔습니다만,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일본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대정 8년(1919년) 중춘(仲春) 각지에 배일선전의 만세소요(3․1독립운동)가 일어나면서부터 배일사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좁은 길에서 일본인을 만나면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심하게는 일본인 교사에 대하여 선생이라 부르던 것이 이때부터 모군(某君)이라고 고쳐 부를 정도로 악화되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때 수많은 한국인이 무고하게 죽었다는 소문이 나자 일본인에 대한 적의는 더욱 커져 마산포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불태워 죽이지나 않을까, 혹은 지금 마시고 있는 샘물에 독약을 넣지 않을까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여 헌병․경찰․소방조까지 임시 야경을 실시하기도 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관동대지진 참상입니다.


교통사정도 약간 바뀌었습니다.
1910년대에 이미 시외버스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시내 전용의 자동차는 없었습니다.
마산에 시내용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1922년부터 시작된 원마산의 도로개설 및 확장공사가 시행된 이후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에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 시내버스회사는 1928년까지 부림동에 있는 오오노(大野)자동차부와 중앙동2가에 있는 마산자동차조합 둘이었습니다.

버스의 운행은 마산 역(현 중부경찰서 앞)에서 구마산 역(현 육호광장)과 북마산 역(현 회산다리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부근)까지를 3개 구간으로 나누어 다녔습니다.

동아일보 1928년 8월 27일자 4면에 보면 마산부에서 이 시기에 부가 직영하는 부영(府營)버스를 운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외로 연결되는 교통은 진주를 시작으로 통영․창녕․함안으로 가지 연결되고 있었으며 1928년에는 택시도 3-4대 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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