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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도시에 대한 생각도 바꿀 때가 됐는데

by 허정도 2012. 6. 20.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은 대학에서의 문(文)·사(史)·철(哲)이 과잉 공급되어 그렇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분이 내뱉은 이 말은 가뜩이나 관심 밖으로 밀려나있던 인문학의 추락에 가속도를 붙인다 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사자인 박 장관은 이런 비난에 대해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것이 문(文)·사(史)·철(哲)에 대한 그의 평소 소신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학문을 취업의 수단으로만 보는 박 장관의 퇴행된 눈과 달리 인문학은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경남대학교 교수들이 나서서 24강좌 2년 계획으로 마산의 합포도서관에서 개최하는 인문학 강좌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달 한 번씩 열리기 때문에 저도 몇 번 참석해보았습니다만 그 때마다 꽉 찬 좌석에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오래 전부터 시행해온 마산박물관의 지역사 강좌와 창원대 박물관이 시민들에게 제공한 박물관대학 등 역사가 꽤 깊은 인문학 강좌도 있습니다. 3년 전에 시작된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역시 이런 범주의 진화된 형태였습니다. 인문학의 저력이 이처럼 지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대학 강의실을 나온 인문학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지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전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인문학이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숙자와 인문학을 결합시킨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산호동 용마산 자락의 마산도서관에서도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타이틀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짧은 강좌가 열리고 있습니다. 내용은 마산지역의 역사, 보다 더 세밀히 말하면 마산 도시변천사입니다.

두 번의 강의와 두 번의 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강의 한 번과 답사 한 번은 이미 끝났고 두 번째 강의가 오늘 저녁에, 마지막 답사는 오는 23일 일요일 오후에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첫 답사 때는 창동을 중심으로 옛 마산포 지역과 노비산 임항선 환주산을 다녔습니다. 답사자들은 마치 숨겨진 비밀을 캐내듯 흥미진진하게 지역보물찾기에 몰두했습니다.

노비산 언덕에 올라서는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와 다시 서니∼∼"로 시작되는 노산의 '옛 동산에 올라'가 바로 이곳이 배경이라면서 직접 노래를 듣기도 했고, 문신 미술관에서는 조각가 문신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그렇게 초여름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답사 내내, 가까운 곳에 이렇게 소중한 것들이 있었나? 어, 이런 줄 몰랐네? 등등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아마 신마산 쪽으로 계획되어 있는 이번 일요일 답사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 도시가 겪었던 지나간 시간을 회억하려할까? 지나간 시간에 있었던 사건과 사람들의 흔적에 왜 관심을 가질까,,,,?

너무 단순하고 어설픈 답이지만, 우리가 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변에 달라져가는 것이 하나 둘 아닙니다. 일상에서의 사람들 관심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많이 달라졌습니다.

똑 같이 생긴 콘크리트 공중에서 사는 아파트보다 자기만의 집에서 마당을 딛고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 갑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개성있는 공간에서 꽃나무라도 한 그루 바라보며 여유롭게 마시고 싶어 합니다. 과도하게 격식을 차린 복장보다는 편안한 옷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형식적인 외피로 치장한 건물보다는 건축재료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는 건물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주택과 자동차의 다운사이징 현상도 눈에 보입니다.

시와 음악이 넘쳐서 문화의 시대가 아니라, 이런 생각의 변화들이 이 시대가 문화의 시대임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요?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주어진 변화가 아닐 겁니다. 경제와 문화의 변화가 주는 현상일 테죠. 소위 선진국으로 가는 변화가 이런 것들이라면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변화입니다.

바로 이런 변화들이 문화소비자를 양산하였고 마산도서관 행사는 그 문화소비자를 수용했던 사업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도시에 대한 생각도 좀 바뀔 때가 됐는데,,, 아직 요원하네요. 뚫고, 짓고, 메워야만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정지된 생각은 언제쯤이나 바뀔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