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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편

몸이 더러운 것과 마음이 더러운 것

by 허정도 2009. 8. 21.


-서양으로 건너간 최초의 조선 여인, 리진


안녕하십니까? 허정도입니다

오늘은 ‘리진’이라는 소설이야깁니다.

요즈음 ‘엄마를 부탁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 신경숙의 작품입니다.

‘리진’은 실존인물로 조선말기 때 궁중에서 춤추던 무희였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중에서는 최초로 서양으로 건너간 조선 여인입니다.

이 소설은 고종 때 우리나라에 부임해온 프랑스 대리공사 콜랭과 사랑에 빠졌던 조선 여인의 기구한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부모를 잃었지만 타고난 예술성과 미모로 궁중무희가 된 리진,

일찍이 동양학을 공부하여 외교관으로 조선에 온 콜랭,

말은 못하지만 리진을 지순히 사랑하는 대금 부는 조선 청년 강연이 등장하는 가슴 아픈 이야깁니다.


콜랭을 따라 프랑스로 건너간 ‘리진’이, 한복 대신 드레스를 입고, 프랑스 말을 하고, 우아하게 와인을 마셔도, 피부와 머리색을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됩니다.

자신이 조선 여인이라는 사실은 극복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소설은 절정을 향합니다.

 가슴 쩌릿했던 한 구절 소개하겠습니다.

리진과 강연이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

유랑걸식으로 행색이 말이 아닌 강연이 프랑스 신부를 따라 집에 왔던 첫날.

어머니처럼 리진을 보살펴주고 있었던 서씨가 더러운 몸의 강연을 씻기기 위해 솥에 물을 데울 때, 리진은 강연을 피해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 리진에게 서씨가 묻습니다.

“싫으냐?”

“…······더러워요.”

“더러운 건 씻으면 되는 것이지.”

“·····…·”

“씻어서 깨끗해지는 건 더러운 게 아니다. 그냥 뭐가 묻은 것이야. 누더기를 입은 사람을 더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러운 게 아니라 가난한 것이지. 가난한 것은 그 사람 허물이 아니다.”

“······…”

“하지만 마음이 더러워지면 씻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것은 죄가 되지.”


 

어떻습니까.

많이 가졌다고 대접받는 세상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많이 가지게 되었는지는 묻지도 않고, 그저 개같이 벌더라도 나중에 정승같이 쓰면 된다는 말로서 모든 걸 묵인하는 세상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은 재산은 끝내 나쁘게 쓸 수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서씨가 리진에게

“몸이 더러운 건 씻으면 되지만 마음이 더러우면 씻을 수 없다, 그것은 죄다.”

라고 한 말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남보다 앞서기만 하면 선이 되는 잘못된 세상을 향한 작가의 한탄이 아니겠습니까.





※ 책읽어주는 남자 허정도 코너에 8월 19일 방송된 내용입니다.



리진 1 - 10점
신경숙 지음/문학동네
리진 2 - 10점
신경숙 지음/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