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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2) - 강점제3시기

by 허정도 2013. 10. 7.

오늘도 그림 석장입니다.

50. 마산해수욕장

당시 마산 최고의 관광지요 피서지였던 월포해수욕장입니다.

아래 사진은 1934년 7월 5일 자 5면에 실린 이 해수욕장 관련 동아일보 사진 기사입니다.

기사는『때 만난 마산월포해수욕장』이라는 제목으로, 내용은 「여름의 바다는 젊은 남녀들의 마음을 떠들썩거리는 판인데 마산 진해 해수욕장에도 벌써부터 남조선 각지에서 욕객이 모여드는 판이다.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남조선 지방에서도 물이 맑고 모래가 희어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이 높아 각 여관업자들은 이 때 한목을 보게 된다고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51. 완월동 부동폭포

장군천 상류에 있는 완월폭포입니다. 

이 폭포에 대해 1941년 발간된 『약진마산의 전모』에서는 "화강암의 바위 사이를 이으면서 흐르는 물은 옥을 부수는 듯, 한 장(丈; 열 자) 여 길이의 폭포를 이루며 4계절 내내 물의 흐름이 끊이질 않는다. 요사이도 지팡이를 끌고 오는 자가 많고(발걸음을 하는 자가 많고),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기에도 매우 좋다. 바위 표면에는 부동명왕의 상이 새겨져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글 마지막 부분의 부동명왕(不動明王)을 두산백과사전에서 찾아 보았더"밀교의 대표적인 명왕으로 부동여래사자(不動如來使者)라고도 함. 원명은 아시알라(Acāla)라 하는데 힌두교 시바신의 이명을 불교가 그대로 채택한 것임"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부동폭포라고 부른 이유는 이 부동명왕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 두장은 경남대 유장근 교수가 근래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달라진 것 하나 엾죠? 마애상 옆에 있는 글들은 마애상 조각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당시 마산에서 말깨나 했던 일본인들입니다.

부동명왕은 불교의 팔대명왕 중 하나로 중앙을 지키며 일체의 악마를 굴복시키는 왕이라고 합니다. 형상은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오라를 잡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왼쪽 어깨 위로 늘어져 있으며 형형하게 빛나는 외눈에 온몸이 분노에 가득찬 성난 얼굴로 불꽃 속에 싸여 돌로 된 대좌 위에 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부동명왕을 조성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실물은 없고, 모두 한일병합 후 일본 불교 진언종을 통해 들어왔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아래 사진의 마애상이 위 설명과 꼭 같지 않습니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마애상 앞자리가 기도빨이 세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촛불 밝히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드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제잔재, 일제잔재, 말들 많이 하지만 이처럼 확실한 일본사람들의 흔적이 또 있을까 싶네요.

52. 관해정

회원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서원곡이라 부르는 무학산 계곡 입구, 교방동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회원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 한강 정구(1543∼1620)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의 제자들이 세웠던 곳입니다.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관해정만 남아 있습니다. 건물 앞에는 44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정구 선생이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합니다. (Daum문화유산에서 인용)

아래 사진은 현재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