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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3) - 강점제3시기

by 허정도 2013. 10. 14.

'관광 마산'에 소개된 사진 중 마지막 석장입니다.

53. 자안지장(子安地藏)

자안지장에 대해서는 처음 접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우선 관련 글 한편 소개합니다. 『약진 마산의 전모』에 실린 글입니다. 

"구강(마산 팔용산 수원지 내지 산호리 일대) 광천 쪽으로 가는 왼쪽으로 상당한 급경사의 산길을 약 1시간 가량 올라가면 자안지장을 안치해놓은 곳에 다다르는데, 거암 아래의 안쪽에 안치된 지장불 근처에는 송송 맑고 정결한 물이 샘솟는다. 전설에는 이 거암을 '상사암'이라 부르는데, 남녀가 서로 연모하였으나 결국은 부부가 되지 못했다면 뱀으로 변하여 연인을 마음대로 희롱하기 때문에 이 바위 위에 앉혀서 주문을 외우게 했고, 그렇게 해보아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두 사람 모두를 공물로 바친다고 전한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은 이 바위를 쳐다보고서 당시의 감회를 노래한다고도 전한다."

이 글과 사진의 암벽 형태를 보면 아마 팔용산 상사바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부산일보(지금의 부산일보와 다른 일본어 신문임) 1934년 9월 28일자「盤龍山 子安地藏の供養」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는 걸로 보아 상당히 유명한 기도처 였던 것 같습니다. 자안지장은 임산부의 순산이나 아이를 축복하는 불교의 보살인데 일본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아래 사진은 팔용산 상사바위와 그곳에서 암벽등반 훈련을 받는 장면입니다.

 

54. 봉암리 온천 봉선각

지금은 잊혀진 일이 되었지만 당시에 마산 봉암동 일대에 광(鑛泉)이 있었고, 몇 채의 여관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봉선각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마산만 전경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합니다. 해방 이후까지 존속했던 여관니다.

이와 관련한 목발(目拔) 김형윤 선생의 『마산야화』기록입니다.

"오래 전 이곳에 사기그릇을 굽는 곳이 있었다 하여 이곳을 사기점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근방에는 옛날부터 약수터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즐겨 마셨는데, 어느 날 등천(藤川)이라는 일본인이 불법 점령한 후 엉터리 분석표를 제시하며 거기다가 불로관(不老館)이라는 여관을 짓고 신령광천(神靈鑛泉)이라는 이름으로 약물 한 잔에 얼마씩 돈을 받기도 했다. 그후 일본식 여관 구주관(九州館)과 요정이자 여관이기도 했던 선각(蓬仙閣)도 들어섰다. 가장 나중에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봉선각이었다."

 

55. 마금산 온천장

지금의 창원 북면 온천장입니다. 이 온천의 경영자는 당시 마산병원 원장이었던 덕영오일(德永吾一)이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이 건물은 2-30년 전까지 존재했었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마금산 온천수는 류마치스, 신경통, 외상, 피부병, 자궁병 등에 효험이 많았다고 합니다. 수온은 약 42도 였으며 전국에서 이용객들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마산야화』에 의하면, "이곳은 부터 약수온천이라하여 이름있는 온천수가 나왔지만 온천수를 찾는 환자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 등이 없어서 민박을 하게되었고 이로 인한 민폐 때문에 부득이 온수구를 매몰하였다. 이 사실을 안 한 엿장수가 다시 조그마한 수원을 찾아내 엿을 사는 환자들에게 목욕과 음복수로 제공하였다. 이 소문을 마산 반월동에서 치과의원과 총포화약상을 하던 일본인 여창(與倉)이 전해 듣고 헐 값으로 권리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수원을 발굴하였으며 그 시설 모두를 마산병원 원장 덕영오일이 인수하였다. 1924년 총독부 기술자를 초빙하여 이곳에만 온천수가 나온다는 독점권을 보장 받아 경영하였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난개발된 북면온천의 지금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