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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7) - 강점기 정리

by 허정도 2014. 1. 20.

<인구변화와 지형변화>

1) 인구변화 추이

개항부터 해방까지의 마산인구 변화를 그래프로 정리한 것이 다음 표입니다.

개항 초기에 1만여 명이었던 마산의 인구는 합방기에 1만 6천여 명이 되었는데 이 중 일본인이 6천여 명이었고 한국인은 1만여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10여 년 동안 마산의 전체 인구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폐항으로 인해 일본인이 2천여 명 정도 줄었으나 한국인은 2천여 명 정도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1920년대가 지나면서 마산의 인구는 약 1만여 명이 늘어나 2만 6천여 명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인의 숫자도 늘어나 다시 5천명을 넘어서게 되었으며 한국인도 2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런 인구 증가 현상은 회사령 폐지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 때문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시가지의 확산과 토지이용구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0년대에는 다른 시기보다 증가량이 상대적으로 높아 1941년 경 마산의 인구는 4만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가 1942년 행정구역 개편되면서 새로운 인구가 편입되어 해방 즈음에는 전체 6만여 명이 되었습니다.

1930년대 이후의 이러한 인구급증현상은 도시변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앙마산 조성 및 매립 등으로 시가지가 확산되었으며 역세권이 강화되고 해안에 공업기능지역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거지의 범위도 넓어지는 등 토지의 이용구조가 크게 변했습니다.

일본인의 숫자는 1920년대 이후부터 별 다른 변화가 없이 5천명 내지 6천명 사이를 오르내리는 정도로 머물렀는데, 1930년대 이후 시가지가 넓어지고 상업기능지역이 확산되면서 원마산에 대부분 집중해 있던 일본인들이 시가지에 전역화(全域化)되었습니다. 즉, 일본인의 원마산 집중현상이 완화되었던 것입니다. 

2) 지형(地形) 변화

강점기 마산의 도시변화는 평면적 변화만이 아니라 입체적인 변화도 많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형 변화는 평면 변화인 면적의 변화가 아니라 단면 변화, 즉 표고의 변화를 말합니다. 

지형변화를 추정하는 근거로는

① 신마산 역 앞이 높은 언덕이었다는『馬山港誌』p.202의 기록

② 남성동 제일은행 앞이 언덕이었다는『마산야화』p.86의 기록

③ 1906년경에는 몽고정 옆 철로가 지금처럼 교량이 아니라 철도건널목이었다는 『馬山港誌』p.77의 기록

④ 신포동 매립 때 자산동 204에서 247번지까지의 임야의 흙을 取土해서 매립했다는『마산시사(1985년 판)』p.565의 기록

⑤ 반월동은 매립공사 때 흙을 파내어 만들어 졌다는 설.

⑥ 그렇게 많았던 매립에 사용된 흙을 어디서 가져 왔느냐? 라는 의문 등입니다.

확실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위의 자료만으로도 도시가 평면적으로 확장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예단(豫斷)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연 조건을 볼 때 일제강점기 이전의 마산은 무학산과 마산만으로 연결되는 도시의 단축 길이가 지금보다 많이 짧았을 것이고, 따라서 토지의 경사도 훨씬 급했을 것입니다.

긴 시간 동안 여러 방법으로 도시가 변화해가면서 지금과 같은 지형 구조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형 변화를 가져올만한 정황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① 1930년대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해 도시 범역이 확장되면서 구 진주가도의 서쪽 산사면(山斜面)이 시가화되는 과정에서 도로와 택지가 형성되면서 발생한 토지의 형태 변경

② 점진적으로 전개된 인구증가 과정에서 농지를 택지로 이용하기 위한 각 개인의 토지형태변경 시도

③ 강점기 동안 진행된「장기간, 대규모 매립」이 시행될 때, 이에 사용된 매립토의 확보와 토사채취 뒤 생기는 새로운 대지의 획득을 노린 일본인들의 지형변경 시도 (그 근거는 자산동과 반월동 토사 채취인데, 지금처럼 토목공사 장비가 발달해 있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가장 손쉬운 매립토 확보가 가까운 지역의 절토이기 때문에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④ 시가지의 도로와 토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절토와 성토 등의 행위 (예 : 앞의 지형변화에 나오는 남성동과 마산 역 앞 언덕의 경우)

이상의 사실을 근거로 하여 도시의 지형에 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