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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한국100명산 11. :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품은 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5.

 ♪ 해인사 가는길 : 대장경판을 전담하던 스님이 사고로 돌아가신터라 애절한 마음도 달랠겸해서 정해졌습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5월의 마지막날 3.15아트센터에 7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4명이 출발하는 관계로 카니발 차량이 널럴했습니다. 아침먹을 휴게소는 현풍에서 해결하려고 했으나 차선이 헷갈리는 관계로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합천으로 빠지는 길을 놓쳐서 결국 성주IC까지 갔다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여 아침은 길거리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컵라면과 김밤으로 떼워야 했습니다.

♬ 해인사 출입 배치가 이상해요! :해인사방향 주차장에 내리니 '성보박물관'이 가야산 전경을 막고 떡하니 서있습니다. 우리가 온 동선이 주로 많은 사람들의 동선인것 같은데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아 기분이 별로였습니다. 그리고 사찰로 향하는 동선도 박물관 좌측으로 마치 뒷간가는 길 같은 곳으로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마음으로 사찰참배를 하려는 사람들을(?)(우리는 산행이 목적이었지만) 의 주출입 동선을 왜이리 하찮게 처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반면 사찰로 향하는 차도는 우측으로 나 있는것 같았습니다. )  - 기와색과 비슷한 철판으로 마감한 성보박물관, 전면 주차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공간배치인 것 같네요.

  ♬ 정상으로 가는 길 :  정확히 해인사 일주문에서 10시에 출발했습니다. 해인사 일주문을 옆으로 하고 올라가는 곳에 아담한 한옥 한채가 떡하니 앉아있군요. 이름하여 '한옥카페' 단청하지 않은 목재의 민낮이 보기 좋습니다.- 한옥카페 : 기와의 담장두겁장식을 화단의 경계선으로 디자인한 센스!!!

- 입산신고와 함께 기념촬영 : 날씨도 덥고해서 긴장한 느낌이~~~

- 등산로 주변은 적당한 그늘과 함께 극락골이라는 하천을 끼고 올라가는 코스였습니다. 2시간 쯤 올라가니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위로 암반들로 가득합니다. 일단 숨을 크게 고르고 나서, 앞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 이정도 봉우리면 이름이 있을법한데, 지도상에는 아무런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타면 우리가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어보았습니다. "하마머리 바위" 동감하십니까? 자세히 보시면 미소짓는듯 돌출된 눈이 압권입니다.

- 이바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왼쪽 어깨를 기댄 모습, 오른쪽 손으로 껴안으려는 포즈같습니다.  여자의 두상이 약간 큰 것이 흠입니다만, 조금만 손보면 남녀간의 다정한 모습이 나올 것 같습니다.

-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 모습입니다. 첩첩이 산중임을 실감합니다.

- 이 바위 이름은 봉천대(奉天臺)입니다.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가야산에서 가장 신령한 곳으로 여겼던것 같습니다.

- 드텨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은 예상대로 정확히 오후 1시에 도착했습니다. 정상부 주변이 큰 암반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정상의 높이는 1430미터 였습니다. 그런데 건너편에 있는 칠불봉이 더 높다고 합니다. 3미터나 더 높다고 합니다. 경북 성주군에서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산객들이 헷갈린다고 합니다. 마련한 충무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 정상인 우두봉에서 바라본 칠불봉입니다. 여기서 봐서는 높아보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정상에서 다시 산아래를 본 모습입니다. 가야산이 내륙의 중심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정상 암반에 있는 연못입니다. 우비정(牛鼻井)이라고 합니다. 가야산 정상이 소머리라고 하는 것을 보아서 이 연못이 소의 코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이 연못은 단순히 물만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개구리가족이 살고 있답니다.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이맘때이면 갈수기인데 개구리가족이 살만큼 넉넉히 물이 고여있습니다. 누가 물을 길여다 주는 것도 아니고, 위치로 봐서 흐르는 물이 고이는 자리도 아니고, 아마 암반밑에 석수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 13시 30분에 하산하였습니다.

- 내려오는 길에서 본 석조여래입상입니다. 보물264호라고 합니다. 제작시기는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로 보고 있습니다. 양각이 그리 상세한 불상은 아니지만, 천 몇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원을 받아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우리들도 한가지 기원했습니다. 100산, 아니 200산까지 원정까지 무탈하게 해달라고~~~

- 여래상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개울가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열받은 몸을 식히기에 알탕이 최고겠지만 국립공원에서 그런 풍기문란을 할 수 없는터라, 족탕을 하기로 했습니다. 물이 엄청 찹니다. 1분이상 담구기 힘들지경이니까요, 시원해 하는 두번째 성님 모습입니다. .

 하산시간은 3시50분, 하산시간은 2시간 20분이소요되었습니다. 산행은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인사 경내을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 해인사에 대해서

- 잘 알다시피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사찰입니다. 통일신라 말인 802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일주문에서 부터 들러보겠습니다.

- 일주문은 사찰의 대문에 해당됩니다. 딸랑 2개의 기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의 지붕구조입니다. 지붕의 화려한 장식과 구조는 현대식 건축물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해인사 경내는 3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일주문과 해탈문을 통과해서 맞게되는 마당입니다. 바같마당에 해당됩니다. 이곳에는 관리사 및 범종루가 있습니다. 초파일이 지난지 제법되었지만 아직 연등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당모습입니다.

- 두번째 마당입니다. 구광루에서 본 대적광전의 모습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웅전 앞마당입니다. 상징적 공간입니다. 우측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면에 당간지주와 홍살문이 혼합된 장식물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대웅전과 대적광전의 차이가 무엇인가. 답은 간단했습니다. 대웅전은 주불로 석가모니상을 두고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상을 봉안한다고 합니다. 즉 석가모니를 위대한 인물, 즉 大雄이라 일컬은 데서 대웅전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적광전은 하엄경에 나타나는 법신(法神)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이라는 것입니다. 해인사가 법보사찰이니까 당연히 법신을 모시는 주 불전이 대적광전으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두번째 마당입니다. 구광루와 요사체가보입니다. 탑이 마당의 주인공입니다.

- 학습공간입니다. 대적광전 우측에 있는 학습공간이라서 일반인들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담장과 지붕처마선의 비례가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 세번째 마당입니다. 해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여기에는 3개의 국보가 있습니다. 첫번째 국보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창고입니다. 대장경판고 또는 장경판전(藏經板殿)이라고 하며 국보 32호로 지정되어 있읍니다. 1995년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읍니다. 그리고 이 건물안에 모셔진 대장경판전은 국보 52호로 세계기록유산으로 2007년 지정되었습니다. 이 안에 보관된 대장경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문을 새긴 목판과 함께 보관된 각판은 고려때 고승들의 저술 및 시문집이 새겨진 목판입니다. 고려각판은 국보 206호 및 73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장경판고의모습입니다. 목판본의 훼손을 막기위한 환기장치용으로 상하에 설치된 개구부의 모습이 특이합니다. 하부는 시원한 바람을 받아들이기 위한 큰 면적의 창살문을 설치하고 상부는 더운공기의 배출은 돕는 작은 크기의 창살문을 설치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바닥은 하부에 소금과 숯으로 다진 기초에 바닥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습도조절과 세균등의 번식을 방지하기 위한 처리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학적인 건축술에 의해서 대장경판이 칠백년이상동안 원형을 잘 보존할 수 있었겠지요

- 내려오는 길에 본 성철스님 사리탑 : 주변에 여러 사리탑들이 많았습니다. 유독 성철스님사리탑만이 가장 높은 곳에 넓직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청빈했던 스님의 성격상 크고 넓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그 분이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집에 가는길 : 5시 반에 해인사를 출발해서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항상 그렇틋이 등산을 마치고 가는 길은 뭔가, 해야 할 숙제를 잘 감당해낸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다음 산행을 고민하게 됩니다. 특이 내년 해외 원정지는 캐나다의 록키산맥 트레킹으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약간은 황당한 제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의 산행은 이러한 일탈을 통해 더욱 유쾌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산에 도착하니 7시를 넘었습니다. 5월 한달이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