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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편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by 허정도 2009. 10. 2.


〈공지영의 『도가니』〉

폭포처럼 글을 쏟아내고 있는 공지영의 소설입니다.

주인공 강인호는 남쪽 도시 무진(霧津)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의 기간제교사로 취직됩니다.
그가 차를 몰고 무진시로 들어오는 첫날, 지독하게 깔려있는 안개를 만납니다.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강인호가 자신의 승용차에 간단한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출발할 무렵 무진시(霧津市)에는 해무(海霧)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안개의 품에 빨려 들어간 사물들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미세한 수증기 알갱이에 윤곽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 첫 문장에서 소설의 분위기가 예고되었습니다.
책 읽는 내내 안개가 주위를 뒤덮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앞이 흐릿하고 답답했습니다.

장애 아이들을 십 수 년 간 성폭행해오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존경받고 호의호식하는 거짓 교육자들의 폭력과 위선, 그 광란의 ‘도가니’ 한복판에 주인공 강인호가 뛰어들면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마치 우리 공동체가 깊숙이 감추어놓은 밑바닥을 헤집는 것 같았습니다.

교육자, 그것도 장애인을 가르치고 키우는 사회사업가이자 교육자이어서 사회로 부터 존경 받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존경받고 있는 사람들이 내뱉는 쓰레기 같은 말들과 인간이하의 짓거리들을 리얼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가식과 편견과 왜곡된 권위로 가득 찬 세상살이를 드러내 놓았습니다.

적나라한 표현 한 군데를 소개합니다.
장애 아이들을 성폭행한 이강복의 아내가 법정에서 자신의 남편을 고발한 무진인권센터소장 서유진에게 일갈하는 장면입니다.
 

이 쌍년아, 니가 그 년이구나.
어디 상판 좀 보자, 이 마귀 같은 년아! 
니가 내 남편 잡아 먹으려고 이런 누명을 씌운 그년이구나, 너 남편도 없이 산다더니 그 짓을 오래 못해 환장을 했구나.
그래서 너 빼고 다 그 짓만 하고 사는 줄 알았니?
이년아,
내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니 씹을 갈아 마시고야 말테다, 이년!


책을 읽는 동안 아내와 몇 번이나 “이럴 수가, 정말 이 정도일까” 놀라면서 읽었습니다.
우리 주변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상상 속의 픽션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뒤에 붙은 ‘작가의 말’을 보니 이 나라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현실이었습니다.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한번 씩 듣긴 합니다만, 해도 해도 너무해서 사람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는 소설입니다.

꺼림칙해서 읽기 힘든 소설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뿌예지는 아픈 소설입니다.
‘다른 세상 이야기겠지’ 라며 못 본 척 피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우리의 치부가 너무 적나라해서 아내와 나는
 ‘우리가 과연 국민소득 2만 달러 국가 맞나?’ 라고 서로 물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난 뒤 ‘누가 장애인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과 폭력과 무관심 속에 버려진 청각장애의 선량한 아이들과, 사회적 지위와 부와 명예를 갖춘 사악한 어른들 중 ‘누가 진정 장애인인가?’ 라며 작가가 묻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아예 날 향해 ‘왜 사니? 넌 무슨 생각하며 사니?’라고 대드는 것 같았습니다.

공지영은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장애 아이들을
‘발톱 없이 태어난 사자, 다리 없이 태어난 사슴, 귀먹어 태어난 토끼, 팔 잘린 원숭이·········’ 라고 했습니다.
‘발톱 없이 태어난 사자’ ‘다리 없이 태어난 사슴’ 이 밀림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추석입니다.
집 주변을 정리하다보니 그리도 푸르싱싱하던 담쟁이가 누렇게 물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책, 『책 읽어주는 남편』 때문에 여성잡지 몇 군데와 인터뷰하면서, 그림이 좋아 담쟁이 앞에서 아내와 사진을 찍었던 게 생각났습니다.
지난7월이었습니다.


7월의 담쟁이.
정말 세차고 거침없었습니다.
온 담벼락이 자기 터 인양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놈들이 어느새 힘을 잃고 가을햇빛에 천천히 삭아들고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7월 아내와 담쟁이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석 전날 찍은 사진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누런 잎 떨어내는 우리 집 담쟁이를 본 것도 벌써 스무 두 번째입니다.
한 번 보면 그새 깜빡 일 년인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요?
올림픽 했던 88년도에 처음 봤을 때는 나도 ‘7월 담쟁이’ 같았는데 이젠 내 나이도 수월찮습니다.

"하아- 오늘은 잎 떨어지는 담쟁이가 내게 인생을 가르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