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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2015년 우리의 도시는?

by 허정도 2015. 1. 1.

시간은 재촉하듯 우리 앞에 2015년을 보냈습니다.

새해 첫날 받아든 신문 1면 <광복 70년 특별 여론조사 ‘향후 희망하는 사회상’>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10년 전인 2004년과 현재의 국민의식을 비교한 것인데, 10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회의식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에서 국민 대다수는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복지와 평등’을 꼽았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경제적 풍요’를 꼽은 사람이 31.9%나 되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경제적 풍요’를 기대하는 사람이 14.8%로 반 토막 나버렸습니다.

대신 ‘사회보장’은 37.3%에서 47.3%로, ‘평등’은 22.5%에서 28%로 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깊어지면서, 다수를 위한 사회적 연대의 욕구가 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결과입니다.

<한겨레>에서 밝힌 이번 조사를 다시 정리하면,

빈부격차가 적고 복지가 잘된 사회가 47.3%

약자도 보호 받는 평등한 사회가 28%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는 14.8% 였습니다.

국민 3/4이 ‘복지와 평등’을 원하는 반면 ‘경제적 풍요’를 원하는 사람은 1/7 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사실상 ‘나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 대다수가 알아버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도 결코 내 노력만으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사람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끝났음’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경제적 풍요’가 아닌 ‘복지와 평등’이었습니다.

황당했지만 최고의 광고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가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일거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빈부격차의 심화, 장기 실업, 인면수심의 갑질, 사회안전망의 붕괴 등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철벽들 앞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지난 10년 간 엄청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경제적 풍요’를 포기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과를 도시문제로 끌어들여 보았습니다.

‘경제적 풍요’보다 ‘복지와 평등’을 원하는 시대에 우리의 도시는 어떻게 변해야 할지, 새해 아침 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간략한 제 생각입니다.

‘경제적 풍요’를 꿈꾸던 보통 사람들에게 개발은 기회였습니다. 개발이 낳은 돈의 은덕을 받든 못받든 개발은 그 자체가 기회였습니다.

언제나 그 끝은 가진 자들의 잔치였지만 혹 있을지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없는 사람들도 함께 뛰었던 것이 개발에 대한 우리의 모습이었죠.

하지만 이제 ‘경제적 풍요’를 기대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니 도시의 미래 방향도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의 도시변천사는 물리적 개발에 의한 외형적 성장의 연속이었고, 그 성장의 목표는 ‘발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확장’이었을 뿐 진정한 의미의 ‘도시발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도시를 사회문화적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도시를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도시행정을 맡은 사람도,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도, 도시는 그저 ‘뚫고, 짓고, 메우고, 넓히고’ 해야 발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오래 동안 이 나라 경제성장정책의 한 축을 ‘건설’이 담당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지역만 해도 그렇습니다.

인구가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쉬지 않고 도시를 키우고 있고, 보다 수준 높은 도시의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키우는 것은 곧 자멸’ 임에도 불구하고 키우는 것 외 어떤 정책도 없어 보이는 이 도시의 미래가 저는 불안합니다.

그렇다면 2015년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복지와 평등’, 그것이 녹아있는 도시란 어떤 곳일까요?

그 도시는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각의 링과 같은 곳이 아닐 겁니다. 부동산의 수요와 공급 논리로만 만들어지는 상품 같은 도시는 더더욱 아닐 겁니다.

그 도시는,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시민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하고, 모든 시민의 공동생활이 고루 추구되는 사회적 장소이어야 합니다.

추상적이면서도 정확한, 그러나 진부한 주장, 곧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어야 합니다.

'복지와 평등'이 녹아 있는 도시의 시설은 기념비적인 거대한 것보다 개인이나 가족의 사적생활 만족도가 높은 시설들이어야 하고, 이러한 시설들이 도시구성원들 모두에게 이용되어야 합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도시사회학자 테오도르 폴 김이 말했죠. "공간이 경제적 계층에 따라 나누어진 도시가 가장 나쁜 도시다"라고. '복지와 평등'이 녹아 있는 도시는 물론 이런 도시도 아닐 겁니다.

뉴타운 운운하며 원주민 80%를 내쫒는 도시재개발도 '복지와 평등'이 녹아있는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죠.

'복지와 평등'이 녹아 있는 도시에서는, 인구증가 운운하며 거대교통시스템을 그려대거나 여기저기 땅 파헤치고 바다 메우는 구상하지 않아야합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반성과 함께 끝난 도시관입니다. 지금은 헐고 짓기를 반복하는 무정체의 도시가 아니라 시대상황에 변함없이 영구적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영속성의 도시를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복지와 평등’이 녹아있는 도시 만들기, 그리 어려운 일 아닙니다.

개발에 대한 맹목을 버리고 생활세계 속의 도시환경에 눈을 돌리면 의외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정 백성을 위하는 일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일 중 나쁜 것을 고치는 일이다’라고 했던 몽골의 정치가 야율초재의 말에 귀를 기우리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거시설, 산업시설, 문화와 교육시설, 수많은 길과 보행권과 교통시스템, 거리의 간판과 스트리트 퍼니처, 공원과 해안과 하천, 도시를 둘러싼 숲과 자연환경, 에너지 사용과 생태계 보전,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등등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있는 것 중 나쁜 것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를 크게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것만이 이 도시를 바꿀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경제도 안 좋은데, 돈 많이 드는 새로운 일 시작하지 말고 있는 것 중 나쁜 것들을 고치는 쪽으로 눈을 돌려봐야 합니다.

왜냐고요?

바로 그 곳이 우리의 생활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복지와 평등’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