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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 B29의 맹위, 15. 학병의 출진

by 허정도 2015. 5. 11.

14. B29의 맹위

 

그라만 함재기가 수십편대로 동경 천지를 저공으로 전주 사이를 날아다니며 곡예식으로 맹습한 것은 일본이 진주만을 암타(暗打)한 131일만인 1942년 4월 18일인데,

그로부터 오랜 침묵을 지켜오던 연합군 측의 소위 대공의 요새라는 B29기가 행동을 개시한 것은 1940년으로서 중국 성도에서 이륙, 마산의 무학산정을 거쳐 천자봉을 경과, 일로(一路) 일본 본토를 진공하였는데 처음 마산 상공에 나타난 것은 한여름 오후 9시경. 어스름 달밤에 가는 비가 내렸다.

이로부터 한반도 상공으로 B29기가 통과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이것들이 통과하고 나면 일본 각 도시는 소이탄(燒夷彈)과 폭격으로 날로 초토와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은 무사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 다소의 피해가 있었으니 마산, 부산 간 여객열차가 삼랑진 역을 통과 약 9km 지점, 원동 역 전(前) 철교에서 B29기가 기총 소사를 하여 기관차의 중요부분이 파괴되어 운행 정지가 되었으나 승무 기관사 김석권 외 조수 2명은 다 무사하였다.

피습의 기관차는 해방 후 대판 공작창에서 수리하여 6·25 때는 군에 징발되었다가 지금은 디이젤에 밀려 호남선 이리역 소속이 되어 화차(貨車)를 끌면서 노후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피해는 마산 부산간 정기 여객선이 가덕도 연안을 지나다가 B29기의 폭격을 입어 승객 중 한 사람도 구조되지 못하였는데, 이 가운데는 전 부산일보 마산지사장이었던 일인 고교무부(高橋武夫)도 타고 있었다.

이리하여 일본 광도(廣島)와 장기(長崎)에 원폭이 투하되면서부터 일본의 패전이 결정되었지만 1940년 8월 3일 상오 8시경 창원군 구산면 덕동에 그라만 B51을 표식한 폭격기 5대가 저공으로 정찰하다가 솔단으로 위장한 목선 2척을 목격하고 파상적으로 선회 끝에 투탄하였다.

이것은 일본 해군 당국이 정예 비행정을 수일 전에 구입하여 시험 결과 성능이 나빠 부득이 소개를 시켜 솔단으로 위장을 해둔 것을 탐색, 폭파한 것이다.

또 통영에서도 수차 연합군 비행기가 나타났는데,

일본 군수물자 수송선들은 정찰의 눈을 피하여 거제도 칠천도와 송진포 쪽으로 해서 통영 판도다리 방면으로 항해하는 것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수송선이 나타남과 동시에 이를 맹폭 격침한 일이 몇 차례나 있었으며, 인근 동장과 동민들은 폭사된 표류 시체 처리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고,

한번은 통영 벽지에서 연합공군의 기총 소사를 받아 조선인 십수 명이 폭사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15. 학병의 출진

 

일본의 침략 군국주의자들이 명치 유신을 단행한 후 그들의 팽창해 가는 외국 영토 잠식의 마수는 대만을 위시하여 조선, 만주 대륙을 유린, 기어코 소위 대동아 전화(戰火)를 일으켜 대평양 전쟁까지 확대시켜 서전(緖戰)의 암타(暗打)로 달콤한 맛을 보았지마는 수개월 후 마리아나 해전에서 패전으로 역전되자 개전 만 1년 358일만인 1943년 12월 일본 각 대학 학도병을 강모출진(强募出陣)케 하였다.

이 때 조선의 총독정책은 어떠하였는가?

조선에서는 지원병 제도라는 미명 아래 하등의 병역 의무도 없는 조선 청년들 특히 전문교 학생들에게는 병역 면제라는 특권을 부여해 놓으니 영장이 발부될 것을 전전긍긍하던 나머지 중산 계급층 자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전문교에 응시 입학하여 마음 놓고 면학에 힘썼던 것이다.

그것도 한바탕 꿈으로 돌아갔으니, 1944년 침략자들은 조선인 전문학도들에게도 학도병 출진이란 일본 제국주의 전쟁 재단의 희생물로써 강제 소집 영장이 발부되어, 마산과 인근 학도병들의 소위 환송 및 장행식(壯行式)이 마산부내 공락관에서 거행되었다.

그날 밤 민충식 학도는 약소민족의 비분을 통렬히 토로하여 만장을 숙연케 하였으며 평소와는 다른 ‘출정 학도병’인 만큼 구금도 할 수 없는 판국이라 헌병 당국은 마치 울면서 겨자 먹는 격이 되었던 것이다.

마산 출진 학도병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민충식, 이진영, 정태열, 이정우, 문호식, 조호제, 노현섭(아래 사진), 하광호

부기 ; 태평양 전쟁 당시 강징(强徵)된 학도병들은 해군으로서 일망 부제한 대평양으로, 또 육군으로서 광막한 남북 대륙으로 갖은 고초를 당하다가 사선을 넘어 생환한 학도병들은 1월 20일이라는 출진일을 영구 기념하기 위하여 1·20회라는 명칭 아래 친목과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