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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27. 미잠수정 출몰, 28. 조언 단속법

by 허정도 2015. 6. 29.

27. 미잠수정(美潛水艇) 출몰

 

1941년 일본의 대미 선전포고를 며칠 앞둔 12월 모 일,

청진과 일본 쯔루카(敦賀) 사이의 정기 연락선 게히마루(氣比丸)가 청진 출항 얼마 후 로영(露領) 블라디보스톡에서 부설하였던 기뢰(機雷)에 접촉 침몰하여 승객 백수 십 명이 몰살되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사이라 하여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으며 소련 역시 반구의 진사(陳謝)도 없이 이렁저렁 끝맺고 말았다.

이 배의 승객 중에 경도제대의 철학과 일본인 학생이 있었는데, 당시 대판 조일신문에 게재 소개된 그의 수기인 즉 생과 사는 표리가 동일하다는 내용인바, 배는 해저로 내려가는데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종용(從容)히 최후를 마친 그의 유서였었다.

<침몰한 게히마루 / 3,000톤급>

 

이 해상 사고 후 일본 철도성은 부산과 시모노세끼(下關) 사이의 소위 관부연락선의 하나로 그 호화를 자랑하던 공고우마루(金剛丸)를 취항시켰으나 이 배 또한 취항 2, 3주 만인 어느 날, 하관 출항 시간여에 히꼬지마(彦島) 근해에서 연합군 잠수정에 의해 폭침당하고 말았다.

이것이 대한해협과 현해탄에 출몰하는 잠수정 활약의 서곡이었는데,

이로부터 연합군 육··공의 3파 작전은 쉴새 없이 일본 본토와 바다의 영역 내외를 완전히 포위 맹타함으로써 일본의 운명은 바야흐로 풍전등화의 경지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남해안 어부들 사이에는 진해 앞바다에서 미 잠수정에 타고 온 이승만 박사가 태극기를 흔들면서 어부들과 악수를 나눴다는 풍설이 나돌더니,

종전 전년(?) 경남 통영군 사량면 사량도 앞바다에서 두 사람의 낚시꾼이 낚시에 열중하고 있던 밤 두 시 쯤, 낚싯배 앞에 별안간 검고 큰 괴물이 솟아 오르는지라 눈앞이 아찔해서 급히 배를 돌려 피하려 할 때다.

이미 검은 괴물은 뱃전에 닿아 난데없는 양인과 조선인 통역 3, 4명이 나타나더니 낚시꾼에게 레이션 박스 4, 5통을 내놓고 식수를 요구하면서 조금도 낙담 말고 조금만 더 고생하면 얼마 안 가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위로하고는 연안의 수로 안내자로서 한 사람을 정내에 태우고 사라졌다 한다.

남은 한 사람은 무사히 통영으로 되돌아 왔으나 레이션 박스가 화근이 되어 일본 헌병대에 구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잠수정에 실려 간 한 사람은 그 후 소식이 묘연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도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성시가 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

<2차대전에 투입된 미국 잠수정>

 

28. 조언(造言) 단속법

 

동양귀(東洋鬼)’ 일본(중국인의 評言)의 군국주의자들이 한반도를 그 더러운 토족(土足)으로 짓밟고 선전포고 아닌 소위 사변(事變)’에 칭탁(稱託)하여 만주와 중국 본토에 마구 불을 질러 전 인류의 저주와 지탄을 받더니 급기야 진주만을 암타(暗打)하여 태평양상에 먹구름을 펼쳐 놓았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위세에 물리어 전세는 불리일로(不利一路)를 치달려 드디어 천주(天誅)가 내릴 날이 시시각각 임박해 올 무렵이다.

전세가 불리해지는 것을 애꿎은 국민(조선인 포함)의 비협조에 원인이나 있는 것처럼 청일, 노일 전쟁 때 제정한 육해군 형법을 발동하여 국민의 말을 통제했다. 그야말로 단말마적 광태여서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말까지 귀에만 거슬리면 탄압을 했다.

말하지 말라’ ‘듣지 말라’ ‘보지 말라는 등의 표어를 내결고 입과 귀와 눈을 완전히 봉쇄했기 때문에 익살맞은 사람 중에 맹아룡(孟雅龍 / ··)의 폭거라고 비웃는 자도 있었다.

이 법이 발동된 후 잡혀서 투옥된 사람도 많았는데 개중에는 배급 쌀이 모자라서 배가 고프다고 푸념했다 해서 심리도 간단하게 일 년 내지 6월의 형을 선고한 예도 있었다.

이들을 적발한 자는 일경이 아니라 그 전부가 조선인 형사와 그들 앞잡이들의 모략이라고 되어 있으니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전조선군보도부장(前朝鮮軍報道部長)이요 당시 대일본 부인회 조선본부 사무총장이던 창무주장(倉茂周藏) 소장은 계면쩍었던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었다.

……(전략)…… 무더운 날 덥다라든지, 장마철에 비에 지친 사람이 푸념을 하는 것은 인간의 상정(常情)이 아니냐 이런 식의 불평,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해서 조언비어(造言蜚語)로 다루는 것은 취체당국이 삼가야 할 일이다……

* : 당시에 적용한 육군 형법 제99조 및 해군 형법 제100전시 또는 사변에 제()하여 군사에 관하여 허위명령, 통첩 또는 보고를 행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