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유장근 교수의 「마산도시 탐방대」에 참가하여 20여 일행들과 '진주가도'를 걸었다.
'진주가도'는 근대기 이전에 진주와 창원을 잇는 큰길이었다.
현재의 소답동에 위치했던 창원도호부에서 마산포를 거쳐 자산리 완월리 신월리 월영리를 지나 밤밭 고개를 넘어 진동 양촌을 거쳐 진주로 가던 길이다.
롯데그룹 소유인 구 크리스탈 호텔 앞길인데 장군동 거쳐 중앙동 신월동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가장 좋은 도시는 ‘걷고 싶은 도시’라 했는데,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큼 좋은 길은 아니었다.
-마지막 황제 순종의 행차길-
100년 전인 1909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즉위 후 몇 차례에 걸쳐 지방 순행에 나섰다.
순종황제의 남부지방 순행은 1909년 1월 7일~13일까지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황제의 마산 순행 일정에 대한 『승정원일기』순종 3년 1월 5일자 기록이다.
「…… 9일에는 부산에 머무르고, 10일 오전 9시에 부산정거장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11시 25분에 마산에 도착, 하룻밤을 유숙한다. 11일에는 마산에 머무르고, 12일 오전 8시 40분에 마산 정거장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11시 45분에 대구에 도착, 하룻밤을 유숙한다.」
원래 통치자의 순행은 지방의 사정을 감찰하고 백성의 고통을 살피는 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하지만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내각과 통감부 관원들을 대거 수행하고 순행에 나선 것은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내세워 지방민들을 통제하려는 일제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 아닌가싶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순행의 정치적 해석보다는 융희 황제가 이곳 마산에 왔다는 사건에만 관심을 갖는다.
궁정열차를 탄 황제는 1월 10일 아침 9시에 부산역을 출발하여 9시 59분 삼랑진에 도착하여 마산이사청 이사관과 동래부윤의 알현을 받았다.
11시 25분 마산역(마산중부경찰서 건너 편 벽산 아파트 자리)에 도착하여 역내에 마련된 편전에서 잠시 쉰 후에 12시쯤에 바로 이토통감 이하 수행 관원들을 거느리고 어교를 이용하여 행재소가 마련되어 있는 마산이사청(현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자리)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중요한 관민을 만났다. 모두 일제 관리와 군인들이었다.
오후에는 창원부청(지금의 남성동파출소와 제일은행 일대)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경상남도 각 군 군수, 기타 고등관, 민간인 등을 만났다.
황제는 11일 하루를 마산에 머문 후 12일 화요일 오전 8시 40분에 마산역을 출발하였다.
이때 일본에서 파견한 제1, 2함대에서 예포를 각 21발을 발사하며 경의를 표시했다.
순종황제의 행렬을 보기 위해 마산에 이르는 철도변과 각 역에는 사람들로 넘쳤다.
약 3만 여명의 군중들이 모여 황제의 일행을 맞이하였으며 떠날 때에도 연도의 관민들은 각 역 및 그 부근에서 만세를 외치며 황제와 일행을 봉송하였다.
2박 3일 간의 순종황제 마산순행 중, 행재소와 창원부청 간이 가장 긴 이동거리였다. 지금의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남성동 파출소까지의 길이다.
당시에는 신마산 일부에만 근대식 직선도로가 있었기 때문에 신마산에서 장군동 다리까지는 일제가 놓은 근대식도로를 이용했고, 장군동 다리부터는 진주가도라 불렀던 크리스탈호텔(전) 정문 앞길을 통과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로「마산도시 탐방대」 일행과 함께 걸었던 길의 일부다.
봉건왕조 시대에 통치자가 마산을 방문한 것은 단 두 번이다.
고려시대 일본정벌을 준비하던 여몽연합군을 격려하기 위해 마산에 왔던 충렬왕과 100년 전인 대한제국 순종, 융희황제이다.
충렬왕이 마산에 머물 때의 기록은 상세하지 않다. 하지만 순종황제는 그렇지 않다.
수행자의 숫자와 직위, 어가 행렬, 궁정열차의 배치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다.
국화축제로 온갖 이벤트가 넘치고 있는 마산의 가을, 토요일 오후.
진주가도를 걸으며 이 길을 지났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지났던 길, 그 흔적의 역사 문화적 가치는 없는 것일까?
이 도시에 남겨진 과제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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