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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129. 애국 여성들

by 허정도 2016. 12. 19.

129. 애국 여성들

 

 

여기에 소개하는 애국 여성은 대한제국에 대하여 애국을 했다거나 대한민국에 대하여 충성을 한 여성을 말함이 아니다. 일정시대에 일본의 잔학한 군국주의자에게 충성을 다한 여성을 말함이다.

 

일정시대에 그자들에게 충성한 자가 하필 여성 뿐이리오마는, 여기에 뫼시는 세 사람 여성은 그들의 생리처럼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애국심을 발휘하는데 이름이 높았다.

 

지금 회고해 보면 그때 신문들이 하도 극성스럽게 그들의 애국심을 과시(?)해주었기 때문에 인상이 생생하다.

 

진주부내 모 권번(기생들의 대기소-편자 주 / 민족항일기의 기생조합-옮긴 이)에 입적한 강모라는 기생은 매월 8일 즉 대조봉대일(大詔奉戴日, 진주만 공격의 날, 즉 일본 천황이 대미선전포고의 조칙詔勅을 내린 날-편자 주)이 되면 일금 오원야(五圓也) 혹은 10원야(圓也)를 꼭꼭 출전 황군(일본 천황의 군대-편자 주)을 위하여 헌금했다.

 

일본 신문들은 애국 기생이라고 명명하여 그 이름이 자못 높았다. 그러나 이 기생의 헌금은 자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 기자들의 권유와 짓궂은 기자들의 과찬한 보도에 얽매여 종전까지 억지 춘향을 한 것이었다.

 

웃지 못할 넌센스였으나 이 애국(?) 행동이 보도되자 마산의 두 여성이 진주의 한 천하고 미미한 기생에게 질세라 감연히 궐기(?)했다. 두 여성(가정부인)은 맹약이나 한 것처럼 매월 정기에 10원야(圓也)를 국방성금조로 꼬박꼬박 종전까지 헌납했다.

 

한 여인은 신마산 동경관 스타지오의 조재동 부인 김 씨요, 또 한 여인은 구마산 시계병원 조상록 부인 장 씨다.

 

특히 장 씨의 경우 금포상(錦布商)을 차리고 있었는데 그 당시 소위 애국부인들과는 교류가 각별한지라 그 점방에는 대일본 애국부인들이 단골 거래처가 되어 상당한 은진(殷賑)을 이루었다.

 

장 씨의 애국사상은 골돌하여 과연 남성 이상으로 멸사봉공의 정신이 투철했다. 1942(?) 727일 일본 해군 기념일에는 전월(6)의 장사 이익이 윤택했다면서 평소 정기 헌금액의 50배인 일금 5백원야(百圓也)를 기꺼이 헌금하여 병사계는 물론 부민들을 감동케 했다.(부산일보 728일 소재所載)

 

그런데 이 두 애국 여성 중 신마산 김 씨는 해방이 되자 대한민국 부인회에 돌아왔으나 구마산의 장 여사는 부처(夫妻) 공히 좌파(左派)로 일변하여 일본에 애국하던 마음이 자기들의 조국에는 끝끝내 충성을 하지 못하고 길가에서 방황하고 있더라는 소문이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1930년대 엽서로 소개된 진주기생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