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7.08.07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19. - 진해현 지승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19. - 진해현 地乘地圖

 

鎭海縣 지승지도(奎15423)/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지승은 군사요지인 일부의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책으로 각 책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7.0*19.0cm이다.

1책에는 경기도, 2책에는 충청도, 3책에는 경상도, 4책에는 전라도, 5책에는 평안도와 황해도, 6책에는 함경도와 강원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전반적인 구도와 내용은 해동지도, 광여도, 여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도제작 시기는 빨라도 1776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지도배치를 살펴보면

읍치를 중심으로 北面, 西面만 표기되어 있다. 읍성 부근이 東面인데, 읍성 주변의 표기와 함께 같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3개면의 현재 지명은 읍성이 있는 동면은 진동면이고, 북면은 진북면, 서면은 진전면에 해당된다.

읍성은 표기상 누락하였지만, 내부 관아건물은 표기하고 있다. 성문은 남문만 표기되어 있다. (해동지도상에는 동, 서, 남문 3개가 표기되어 있으며, 여지도에는 남문만 표기되어 있다. 정확한 성문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훗날 지리지를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읍성내 전면에 객사가 있으며, 후면에 아사가 있고 서측에 창고 1동을 배치하였다.

주요 시설로 동측에 북측에 文廟가, 서측에 社稷壇이 있으며, 해안가 (지금의 시락면 정도)에 大變亭이 나타나 있다. 대변정은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군사용 비상 대기시설로 항시 전선 1척, 병선 1척, 사복선 2척이 대기하였으며, 군인은 대장 1인과 감관 1인이 배속되었다. (嶺南邑誌 鎭海縣. 1871)

지도의 구성은 중심이 되는 읍성을 지도 중심에 크게 배치하고, 주변에 산세, 물길, 도로망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북쪽방향 진해읍성의 진산에 해당하는 鷲山(취산)이 산줄기가 남측 해안까지 연결되어 있다.

남북방향 뻗어 내린 3개의 산줄기는 칠원계에 면하여 광려산이, 북면에 면한 곳은 여항산, 진주로 가는 방향에 적석산이 뻗어내려 있다.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외방도로로 창원부로 향하는 도로는 생략되었으며, 칠원으로 향하는 쌀재고개 방향길과, 함안 여항산으로 향하는 길과, 현재 진전면 삼거리에서 고성으로 직진하는 길과 우측 진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나 있다.

 

웅천현 내의 물길(하천)을 살펴보면

크게 읍성 우측면의 하천은 현재 인곡천이며, 읍성 좌측면의 하천은 진동천으로 하류에서 인곡천과 합류하고 있다. 대변정 앞으로 내려오는 하천은 지금의 진전천에 해당된다. 대변정이 있었던 지역은 미더덕으로 유명한 율티리 일대로 추정된다.

지승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북면, 서면

2

자연지리

산천

鷲山

1

島嶼

羊島, 酒島, 虎島

3

인문지리

읍성

客舍, 衙舍, 倉, 南門, 기타

5

교육

文廟, 社稷宇, 待變亭

2

烽燧

烽臺

1

기타

待變亭

1

 

진해현 地承地圖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방리

 동면, 서면, 북면

3

호구

- 호구수 : 2,302호 - 2,356호

- 인구 : 8,887명 (남자 3,988명, 여자 4,899명)

9,378명 (남자 4,131명, 여자 5,247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214명

- 監營屬 : 92명

- 統營續 : 673명

- 右兵營屬 : 188명

- 左水營屬 : 15명

- 烽軍 : 25명

= 합계 1,182명 (1,207명 계산 오류 정정) 

6

지리

시설

기타

시설

- 煙臺 2庫, 驛 1庫, 寺 2庫

(餘浦烽臺, 常令驛, 義林寺, 胎封庵)

4

경제

元田沓

- 1,326결 10도 5속

 

案田沓

- 923부28부5속(案田389결18부5속, 案沓534결10부

 

곡물

- 元會米 : 78석 12두, 잡곡 272석 10두

- 常賑米 : 9석 2두, 잡곡 522석 72두

- 別餉米 : 1,153석 14두

- 監營米 : 7석 9두, 잡곡 728석 11두

- 統營米 : 319석 7두

- 浦項租 : 476석 3두

- 私賑雜穀 : 1,138석 1두

- 帖價租 : 29석 5두

- 儲置米 : 449석 13두

- 戰兵舡價米: 28석 9두

- 除留米 : 81석 1두, 태 2석 9두

- 各樣軍作米 : 117석 13두

- 南倉作米 : 27석 8두

13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