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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00:00

기억을 찾아가다 -7

7.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 떠돌이 수업

 

피난 갔다 와서 학교에 나가보니, 들은 대로 학교는 이미 군용병원이 되어 있었다. 이웃 마산상업중학교(용마고의 전신인 마산상고와 마산동중이 분리되기 전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우리들의 떠돌이 학교생활은 2년 남짓 계속되었다. 처음엔 용마산 남쪽 비탈 중하단 정도 되는 곳으로 등교했다.

거기엔 전쟁에 대비하여 파놓은 자형의 참호가 많이 있었고, 거기서 우리 반뿐만 아니라 여러 반이 이웃하여 학습생활을 했다.

 

<교실이 없어 마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1953년 6월 서울에서 촬영>

 

가운데에 작대기를 세워 칠판을 걸고 우리들은 호 안에 기대거나 서고, 바깥 풀 위에도 앉고 하여 진행하는 수업형태였다.

그때 우리들 각자가 선생님 지시에 따라 마련한 책상 대용 필수품이 화판이라 불린 물건이었다. 판자들을 덧대어 만든 넓적한 판 양쪽에 끈을 달아 목에 걸고, 판 위에 책과 노트를 올려 책상 대용으로 썼던 것이다.

노천에서 여러 반이 얼마 거리 없이 그렇게 수업하니, 두세 분 선생님의 목소리가 섞여 들리기도 했고 어떤 목소리 큰 선생님의 말씀은 다른 반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가을이 되자 우리가 옮겨간 곳은 용마산 동편 자락에 있던 서당과 그 옆의 어떤 창고였다.

당은 낡아 바람 막기도 어려워 판자나 비료포대 같은 것으로 얼기설기 벽을 만들어 사용했고, 창고는 판자벽이 그래도 양호하여 서당을 배정받은 우리 반 친구들은 창고 반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바깥생활 내내 그랬지만 여기서도 학습생활이 옳게 될 리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곳에서 취한 놀이 행태는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있을 만큼 재미를 만끽시킬 정도였다고 생각된다.

창고 뒤쪽, 그러니까 용마산의 동쪽 끝자락이며 산호동의 뒷동산이 되는 곳에 열 그루도 넘었음직한 푸조나무가 있어, 나무에도 오르고 나무 뒤에도 숨고 동산 여기저기로 뛰어 다니며 쏘고 잡고 하는 푸조나무 열매 총놀이가 너무나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용마산 동쪽자락에 푸조나무가 있다. 전문가들은 수령 2~300년으로 추정한다>

 

댓가지를 10티미터 남짓 길이로 잘라, 가운데 홈에 푸조나무 열매을 넣어 앞 구멍을 막고, 다음 알을 뒤에 넣고는 구멍에 알맞은 크기의 나무공이로 힘껏 밀면, 압축된 가운데 공기의 힘으로 앞의 알이 튀어나가는데, 그 힘이 꽤 되어 맞으면 따끔한 정도라 우리가 편을 갈라 쏘고 잡으면서 용마산 자락 일원을 누비고 다녔던 것이다.

4학년이 되자 우리 반만 따로 회원동으로 갔기 때문에 다른 반은 어땠는지 잘 모른다.

봉화산 자락에 위치한 회원초등학교(당시 회원국민학교) 바로 아래에 있는 판자 창고에 우리 반이 들어갔다. 물론 책걸상은 없으니 화판은 필수품이었다.

일제 때 마구간이었기에 퀴퀴한 냄새가 났고, 낡고 파손된 판자벽은 매섭기로 이름났던 봉오재바람을 그대로 통과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별 불평들 없이 생활했던 것 같은데 정작 견디기 어려워했던 것은 회원초등학교 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이었다.

반별로 전 시내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기에 선생님들이 여러 가지 업무 차 교실을 비울 때가 잦았었는데 그때를 틈타 수십 명(어떤 때는 백 명도 넘어 보였다)씩 몰려와 이유 없이 때리고 물건을 뺏곤 했고, 하교 시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또 그렇게 괴롭히곤 했다.

선생님(실력이 뛰어 나기로 소문났던 배종호 선생님이셨다)께 일러 학교에 항의하고 나서 좀 덜한 듯했으나 하교 길에 해코지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걸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인연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웃인 마산상업중학교가 회원초등학교 운동장에 군용텐트를 치고 학습생활을 했었는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방과 후 좀 시간을 보내다가 그 형들이 하교할 때 같이 하는 것이었다.

형들은 우리들의 사정을 듣고서 잘 보호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봉암동, 양덕동에서 다니던 우리들은 바냇들 가운데 길로 오면 가깝고 편했는데도 근처에서 지키는 아이들한테 한두 번 당한 뒤로는 그 형들을 따라 구마산 역으로 둘러오곤 했다.

런데 이런 유형의 패거리 행패문화는 그때 거기서만 체험한 게 아니었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여러 곳에서 여러 유형으로 아주 아프고 부끄러운 체험으로 남아 있어 뒤에서 한 번 더 거론하고자 한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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