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8.03.12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마치는 행사였으며, 선수 수는 30, 경기 시간은 30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술한 바처럼, 청수(淸水)들판 오른쪽 동네(봉덕동, 봉암2)와 봉암다리쪽 동네(봉암동, 봉암1)를 시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는 통에, 한 팀이 되었다 분리되었다 했지만, 성적은 분리되었을 때의 성적이 훨씬 좋았다.

여러 번 우승한 것도 그때였다. 그때 우리 동네는 비록 떨어졌어도 한동네라는 의식이 강했기에 함께 모여 응원도 하고 밥과 술도 같이했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장 군데군데에 각 동의 선수와 응원꾼들이 자리들을 잡았었는데, 중심지 동네 사람들과 변두리 동네 사람들의 입성과 모습, 준비물들엔 차이가 많았다.

특히 우리 동네보다 더 가난하고 외진 봉암1동 사람들은 첫눈에 드러날 정도로 그랬다.

선수들의 덩치도 별로 없는데다가 얼굴들은 대체로 새까맣고 깡마르고, 밥함지와 반찬통 이고 들고 온 부녀자들도 깡마른 몸에 검누른 얼굴, 입고 있는 저고리와 몸빼(もんぺ , 일본여성들이 일할 때 입는 헐렁한 바지), 몽당치마들에선 땟국이 묻어날 것 같았다.

그런 잔칫날인데도 함지 밥은 거무스럼했고, 반찬은 풋고추와 생된장, 열무김치가 주를 이루었다. 사이다 한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쪽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엔 활력이 넘쳤었다.

백여호 남짓밖에 안 되는 동네에서 칠팔십명도 넘어 뵈는 사람들이 왔다는 것부터가 그랬고, 평소엔 시내 중심가에 들어설 때부터 쭈뼛거리던 사람들(특히 아낙네들)의 모습과는 대조될 정도로 그 장소에서만은 생기들이 있었다.

비쩍 마른 아지매들도 이쪽 남정네들이 건네는 막걸리잔 스스럼없이 받아 단숨에 들이키고는 우승을 확신하는 큰소리를 주위에서 들으란 듯이 외쳤다.

그도 그럴 만했다. 마산시에서 가장 작고 가난하고 외진 그 동네가 다른 동네 사람들이 의외라고 화제로 삼을 정도로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해왔던 것이다.

아마 선수들의 몸무게 평균을 내어봤다면 80:60 정도거나 그 이상의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하여 그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눈여겨 본 장면들을 떠올려보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줄다리기는 고대부터 있었던 인간이 만든 게임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부들이었다. 작은 어촌에 큰 배는 없었기에 모두 노젓고 그물 끌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특히 대다수가 꼬시락잡이를 주업으로 했기 때문에 꼬시락 몰이용 줄(‘방줄이라 불렀다.) 끄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줄을 몸에 붙일 줄도 알았고, 줄에 힘을 싣는 요령도 몸에 배어있었다.

준비 신호를 듣자 모두 줄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나중에 보니 모두 적삼 겨드랑이에 두꺼운 천을 대었다.

새 짚신 신은 두 발은 오륙십센티 정도의 폭으로 좌우 수평을 잡았다. 몸은 약간 뒤로 기대듯이 하는 듯하더니 땅!하는 신호와 동시에 전신을 45도 정도로 뒤로 일제히 눕히면서 버텼다. 다리에서 어깨까지 거의 일직선에 가까왔다.

상대방처럼 영차!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모두 그런 자세로 버티니, 상대가 영차!할 땐 이쪽 선수들의 등줄기만 약간 구부러졌다가 다음 순간 재빨리 한치나 두치 정도 발바닥을 뒤로 옮겨 자세를 잡고, 그 다음 순간 또 그렇게 하고...... 한 치도 끌려가는 일 없이, 한 명도 옆으로 쓰러지는 일 없이, 특별나게 끌어들이려는 모습도 없이, 전신이 하나되어 끌었다.

흙투성이 선수들의 손에 우승기와 상금이 들려지는 순간 우리동네 사람들도 모두 하나로 어울렸다.

그때쯤이면 응원꾼들 대부분이 얼큰한지라, 자연스레 춤들이 나왔다. 곧 폐회가 되면 장구와 꽹과리가 나오고 막걸리통을 실은 수레가 나오면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주눅이 들어 지나다니기를 꺼려하는 남성동 오동동 대로를 거쳐 동네까지 이십리길을 그렇게 마시고 춤추며 가는 것이었다. 상당수의 아이들도 막걸리나 떡을 얻어먹으며 따라가고......

어느해인가 나도 그 광경을 보며 따르다가, 그러나 삼백 미터도 못 가 슬그머니 빠져버리고 말았다. 후줄근한 차림의 촌사람들 따라가기가 챙피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랬다. 나는 남성동이 가까워지면서 중학교나 초등학교 친구들이 볼 것 같은 느낌에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이 확실했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역사속 도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을 찾아가다 - 23  (0) 2018.03.26
기억을 찾아가다 - 22  (0) 2018.03.19
기억을 찾아가다 - 21  (0) 2018.03.12
기억을 찾아가다 - 20  (0) 2018.03.05
기억을 찾아가다 - 19  (0) 2018.02.26
기억을 찾아가다 - 18  (0) 2018.02.19
Trackback 0 Comment 0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2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1. 연구 대상자 프로필 (이 부분은 연구 대상자가 필자의 장인이어서 평소 필자가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과 그의 사망 후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그의 가족, 일가, 지인..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1

이 글은 1960년 3․15의거 당일 야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한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개인사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서익진 교수의 논문이다. 연구는 사적 기록이나 증..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4

도강언(都江堰)에 올라 이빙(李冰)을 생각하다 저명한 중국의 역사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중국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건축물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도강언이라고 했다. 도강언의 외관상 규모가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3

위대한 목민관 이빙(李冰) 도강언 주변 일대는 성도나 인근 지역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천 매미가 왕왕거리며 울어댔고, 서북쪽의 산록에서는 시원한 고원 바람이..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의 추억 2018.07.30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년 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