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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기억을 찾아가다 - 24

by 운무허정도 2018. 4. 2.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길었고, 나머지 대부분도 자유당 각료들과 국회의원들 이야기였으며, 조병옥, 장면 등 야당정치인 몇명의 이름도 본 것 같다.

거기에 이용범도 올라있는 걸 기억하는 건 당시 그의 이름이 마산 창원을 통털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많이 쓰는 신사정치인정도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여당에 오히려 누가 될 희작이 되었겠지만, 그때 나의 머리엔 그런 인식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엔 여당성향의 우리집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 1,2년 때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을 단체관람하면서 느꼈던 감동의 일단도 기억에 남아있어 약간의 부끄러움을 환기시켜준다. 담임선생님이 여늬때와는 달리 반강제적이라 할 만큼 적극 권유했던 영화였다.

 

이승만역으로 김진규가 나왔고, 김승호, 최무룡, 최남현, 허장강, 주선태 등등,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이름깨나 있다는 배우는 다 동원되었던 영화였다.

일제에 저항하다 모진 고문을 받고, 그러면서도 조금도 좌절함이 없이 애국지사들을 영도하여 투쟁의 길에 매진하는 독립투사의 근엄하면서도 처절한 모습, 김진규의 생김새와 연기가 그 역에 잘 어울려 그런 분위기를 더 느끼게 했던 것 같다.

특히, 양팔과 양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해떠오르는 동해가로 한발 두발 걸어가며 민족의 미래를 다짐하던 끝장면은 그 후 한참동안 나의 뇌리에 남아 감동을 재현시켜주곤 했었다.

자유당이 적극적 친일행위자들을 중심으로 이룩된 당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자도, 심지어 반대당이 뿌린 유인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내 고3때 전개되었던 정부통령 선거운동 기간 내내 전국의 담벼락들에 도배되다시피했던, 민주당의 부통령후보 장면에 대한 비방 벽보(구국철혈동지회란 명칭 밑에 일본 고위관료나 작위수여자가 입었던 금빛 제복 차림의 장면이 의자에 앉아있는 사진)가 더 나의 눈길을 끌었었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은 선거기간 중에 위암으로 사망했으니 부통령 자리만 쟁점이 되었던 시기였다.

 

나는 친구들이 이승만이나 이기붕을 비난하면, 애국지사 이승만은 물론 스마트한 양복차림의 이기붕까지 근거도 없는 외교력을 내세워 옹호했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던 민주당구호보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자유당구호의 합리성을 더 강조하기도 했었다.

이승만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은 그해 전교생을 의무적으로 참여시킨, ‘이대통령 탄신 00주년 기념 글짓기대회에서 효력을 발휘했다.

평소 한번도 문재를 인정받아 본 경험이 없었었는데, 이때 시조형식을 빌어 그 감동을 표현했더니 분외의 평가가 따라와서 놀랐다. 학교에서 뽑히고 시(市)에서 뽑혀 도(道)에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전국 예심을 통과하진 못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나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으며, 심지어 나에게 뛰어난 문재가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도 했다.

그것이 종당엔 이과 출신인 내가 문과인 국문과 지망을 하게한 단초가 되기도 했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사고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 일생의 삶을 지배했으니 참 우습기도하다.

이승만 관련 행사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인잔치다.

매년 이승만의 생일날 전국의 지자체별로 노인들을 모아놓고 술밥간에 대접하며 축하잔치를 벌였었다. 주로 무학초등학교에서 많이 벌였다고 들었는데, 푸짐한 상차림과 술추렴에 대해 다녀온 노인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것을 여러번 들었다.

그 자리에선 주로 공무원들의 주도로 이승만에 대한 찬사와 후계자 이기붕에 대한 칭찬이 머리에 박힐 정도였다고 했다. 그리고 찬사경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다못해 입바른소리를 하다가 멱살 잡혀 끌려나간 노인 이야기도 들은 일이 있다.

일제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해 손톱이 다 뽑혔다느니, 지금의 일본정권은 이승만만 보면 두려움에 떤다느니 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들려왔고, 학교 아침조례 때 항시 있은 교장훈시’에서도 그런 내용으로 삼사십분에 걸쳐 침을 튀기던 여러 교장들을 보았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