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8.05.07 00:0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벽은 방바닥으로부터 색깔 있는 벽지에 이르기 까지 훌륭하게 치장되어 있다. 창문은 네모꼴이며 안이나 바깥쪽으로 살을 대었고 기름을 먹였거나 먹이지 않은 거친 종이를 바른다.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만든 발은 창의 장식을 매우 다양하게 꾸며주고 있다. 유리는 아직도 조선의 평민사회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장식품이다.

 

하지만 당시 문화를 주도했던 소수의 중·상류 계층의 주택을 제외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초가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시작된 개항은 외국의 여러 문물을 직접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과 서구의 건축문화도 들어오게 되었다.

개항 이후 항구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면서 부산·서울·인천을 비롯해 경남에서는 마산에 일본식 주택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소위 신마산이라 불리는 마산의 개항장은 일본식 주택이 많이 지어져 마치 일본의 소도시 같은 도시 경관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 해군기지와 함께 조성된 진해 신도시에도 나가야(長屋) 중심의 일본식 주택이 대거 건립되었다.

그런가 하면 1907년부터 통영시 도남동 일대에 조성하기 시작한 일본인 이주 어촌 오카야마무라(岡山村)는 나가야(長屋)를 중심으로 신사·학교·사당 등이 들어섬으로써 전형적인 일본 어촌 형태로 조성되기도 했다.

<창원시 진해구(구 진해시) 중원로터리 부근 일본인들이 살았던 목조 나가야(長屋) 전경>

 

<통영 도남동 오카야마무라(岡山村) 전경>

 

<오카야마무라 우편소(남포우편소, 1912년 건축)의 사택>

 

개항장에 건설된 일본인 주택들은 당연히 일본인의 자본에 의해 일본인의 설계와 시공으로 이루어졌다. 그들 대부분이 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주택과 점포를 겸한 단층 혹은 이층의 주상(住商) 복합건물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 같은 건축형식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외래적인 주거형식이었다.

온난 다습한 풍토에서 발달한 일본식 주택은 한국의 기후와 풍토에 맞지 않아 점차 다다미를 덜어내고 온돌방을 들이는 일본인들도 많아졌다.<<<

 

 

 

 

 

Trackback 0 Comment 0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의 추억 2018.07.30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년 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2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2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홍수의 시작은 1988년에 시작한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다. 이 사업은 전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었다. 2백만 호..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1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1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택지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을 낳았다. 이런 현실은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단화와 고층화를 요구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