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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by 운무허정도 2018. 7. 23.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에 실려 고향의 봄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을 때는 마치 꿈인 듯했다. 눈시울을 적신 이도 많았다.

거기다 북미정상회담에 종전협정, 평화협정 같은 말까지 나오니 벅차다 못해 오히려 두렵다. 쏟아지는 억측들만큼 넘어야 할 산도 많겠지만 열린 빗장이니 이대로 쭉 가리라 믿는다.

 

기왕 판이 벌어졌으니 우리의 모습을 보자. 북한건축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일본사람 안도 타다오도 알고, 먼 나라 사람 르 코르비제도 알지만 가까운 북한의 건축가는 한 사람도 제대로 모른다.

생전의 설계도구가 조선혁명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건축가 김정희도 모르고, 조선건축사를 저술한 건축사학자 리화선도 모른다. 대학에서 가르쳐 주는 이도 없다.

최일룡이 설계한 평양 빙상관이 오스카 니마이어의 브라질 대성당을 닮았다는 모방논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89년 준공된 능라도 5.1 경기장이 충격흡수공법으로 그 해 제네바국제발명 신()기술전에서 금상을 받은 사실도 잘 모른다.

부유층이 모여 사는 거리가 화려하고 높아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는 사실도 모르는 이가 많다. 

<평양 대동강변의 미래과학자 거리>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하나, 북한의 건축은 통치수단이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북한건축에 대한 지식은 일목요연하다. 높으면 체제선전용, 화려하면 사회주의 우월의식 선전용, 형태가 남다르면 이념선전용 건축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이 정도이니 일반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질문할 때가 되었다.

사실이 그런가? 북한에서 이루어진 모든 건축적 성과를 통치수단으로 보는 것은 적절한 평가인가? 건축은 그렇게 서너 가지 개념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인가?

우리 눈에 익은 두 사례만 보자.

우선 평양의 옛 이름을 딴 105층 류경호텔. 디자인이 좀 과해보이는 이 호텔의 연면적은 무려 36이다. 1987년 착공해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이집트의 통신회사 오라스콤(Orascom)이 투자해 6~7년 전에 공사를 마무리시켰. 오라스콤은 5백만 명이 이용한다는 북한의 이동통신업에 진출한 회사다.

화려한 고층건물들이 늘어선 여명거리는 어떤가? 김일성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궁전에서 용흥 네거리까지 약 3구간에 조성된 거리다. 20164월에 착공되어 1년 만에 완공, 작년 봄에 준공되었다.

착공 때 미제와 그 추종 세력들과의 치열한 대결전이라고 선전까지 한 개발사업이다. 70층짜리 건물을 비롯해 총 44, 4804세대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주로 학자·연구자 등 인텔리 계층을 위한 주거시설이며 태양열·지열 등 신재생 에너지는 물론 생태녹화기술까지 적용시켰다.

위의 두 사례, 류경호텔은 체제선전용이고 여명거리는 사회주의 우월의식 선전용, 맞는가?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프레임으로 우리의 것도 돌아보아야 한다.

123층 제2롯데월드는 어떤가? 강남의 테헤란로는 또 어떤가? 롯데월드는 아무리 높아도 체제와 상관없는 사기업 건물이고, 테헤란로는 도시발전과정에서 생긴 경제성장의 상징이라 북한 것과는 다른가? 

<류경호텔>

 

향후 남북은 각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건축계에서도 바람이 일 것이다.

남과 북의 진정한 교류는 상대방을 바로 알고 바로 이해할 때 가능해진다. 북한의 도시와 건축을 이데올로기 결과로 보기 보다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아야 건축이 건축으로 보인다.

'동질성의 공간'이었던 남북이 '분단된 시간' 때문에 '이질화된 건축'으로 양분되었다.

이제는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다. 건축계의 지난 시간을 반추해보면, 부끄럽지만 우리는 민족건축에 대한 어떤 노력도 없었다.

DNA처럼 각인된 이데올로기가 쉽게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민족''이데올로기'를 넘을 것이다.

남한이 '자본주의적 건축'이라면 북한은 '사회주의적 건축'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각으로 혹 납득되지 않는 건축이라 하더라도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 즉 북한이라고 하는 지역의 문화로서 북한건축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에서는 북의 건축을 일인독재를 위한 도구로서의 건축이라 하고, 북에서는 남의 건축을 퇴폐적이고 변태적인 자본주의 건축이라는 양쪽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왜곡되고 혼돈한 프레임을 통해 상대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체제 우위적 논리''동정론'은 건축적 접근이 아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가 우리의 건축을 볼 때처럼 북한건축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