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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도시이야기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by 운무허정도 2018. 9. 10.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들 서양식 건축은 이집트에서 흔한 흙 대신에 시멘트를 사용하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싼 건축비를 감당 할 수 없었고, 서양식 공사를 할 수 있는 숙련공도 모자랐다.

콘크리트 건물은 단열성이 낮아 이집트의 기후조건에 전혀 맞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쪽으로만 몰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싼 화티가 이집트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도전장을 냈다.

그는 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과 나무, 갈대 등을 사용하여 직접 하나의 마을을 건설하고 세계와 이집트인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특히 이집트 시골에서 흔히 쓰이던 전통적인 건축 자재로 아름다운 아치형과 돔형의 건물들을 지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이슬람 건축의 예술미를 품위있게 표현하여 서양 건축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구르나 마을의 흙 건축들>

 

그가 실험하고 검증했던 진흙 건축술은 현재 아랍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하지만 하싼 화티의 진흙 벽돌구조로 이루어진 전통적 양식의 개량 집단주택 건설은 성공하였으나 그에 대응할 주택 정책과 주민 계몽에 있어서는 실패하였다.

이집트인들에게 있어서 근대화란 전통적인 것을 버리고 서양식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하싼 화티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 이집트 양식과 전통의 부활은 신() 구르나 마을에 사는 농민들이 살고 싶던 곳이 아니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이집트 시골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콘크리트 집이 부()의 상징이 되어 머리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싼 화티의 실용적 이론과 철학을 인식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콘크리트 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과 전통 진흙 벽돌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건축 비용이 비싼데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비실용적인 콘크리트 집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막연한 선망은 이집트의 주택 문제를 더욱 어렵게 했다.

또한 정부와의 관계가 항상 소원했던 하싼 파티는 언제나 정부로부터 외면당했다.

이집트 정부는 구르나 마을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진흙집이나 건물은 가난의 상징이라고 매도하며, 낡은 집들을 보수하기는커녕 도리어 집을 뜯어내고 콘크리트 집으로 대체할 것을 은근히 장려하기도 했다.

오늘날 구르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가족의 팽창에 따른 수요와 공급을 이유로 모든 하싼 파티의 작업을 거의 무너뜨리고, 대신 비싼 콘크리트와 빨간 색 벽돌, 평평한 직선형의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으로 대체되어 있다.

그러나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설득하고 계몽하여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으로부터 구르나 마을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전 아랍 세계에 하싼 파티의 정신과 건축술을 소개하면서 서구화가 가져다 준 병폐인 전통의 말살을 전통의 계승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건축가 하싼 화티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그가 구르나 마을의 건립에 관계하면서부터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도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건설에 관한 내용이 소개된 책 이집트 구르나 마을의 이야기이다. '말하는 건축가'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 고 정기용이 번역하여 1988년 초판 발행된 이 책은 열화당에서 출간하였다.

 

나는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알게 된 하싼 화티의 건축가로서의 삶은 젊은 건축가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였다.

평범한 건축가에게 던진 이 위대한 건축가의 질타는 이른바 문화 충돌로 다가왔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나는 이미 그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이후 강단에서 수없이 그의 삶을 소개하였고 종강 때는 언제나 이 책을 필독서로 권했으며 그를 주제로 어설픈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집트 여행을 위해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내가 구르나 마을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나의 머리 속에는 카이로와 나일강, 그리고 룩소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행 중 우연히 이스탄불 탁심거리의 한 서점에서 하싼 화티의 작품집 An architecture for people를 구입하면서부터 혹시 이집트에 가면 구르나 마을을 볼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막연한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졌으니 하싼 화티를 오래 전부터 흠모하던 나에게 있어서 의미 있었다라는 투의 상투적인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놀라움이었다.

기적처럼 일어난 이집트에서의 구르나 마을 답사는 내 인생 최고의 우연이자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