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0/07/30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사례(5)-오다와라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오다와라시는 가나가와현 서부지역 도시입니다.
오다와라는 경관색채계획에 따라 코카콜라 자판기 고유의 붉은 색을 고유의 경관에 맞추기 위해 아이보리색으로 변경하도록 설득했다는 에피소드로도 유명합니다.

2005년 12월 경관법에 의거해서 경관색채계획과 경관조례를 결정하였습니다.
장소의 특징을 살린 경관형성, 시민의 참여가 함께하는 경관형성 등 지역특수성과 함께 시민 자체의 협력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오다와라시는 경관을 아름답게 정비하기 위해서 도시의 색채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우선, 경관색채계획에 앞서 도시의(개별건축물 포함) 색채현황을 먼저 조사하고, 이와 동시에 시민들의 색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과 도시에서의 색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독특한 방식의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시말해, 색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건물입지, 규모에 따른 바람직한 색채와 바람직하지 않은 색채(피해야할) 색채를 알기쉽게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내용들을 경관계획과 경관조례에 담고,  색채에 대한 방침과 제한의 내용으로 하되, 이를 시민들이 쉽게 알게 하는 작업들을 한 것입니다. 
간단한 일이지만, 도시의 색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행정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쉽게 볼수 있는 색채 안내서 말입니다..


개별 건물 색채선정 때 참고가 되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소개한 안내서입니다.

주로 건축물과 공공시설물의 기조색에 대한 내용과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그리고 액센트가 되는 강조색에 대한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도시, 가로와의 조화를 우선시하고, 그 다음으로 건축물의 기조색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것.
더욱이 면적과 위치 등을 고려하여, 이를 시민들에게 권장한 것인데, 이러한 과정이 현실화 되는데에는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색채안내서가 큰 몫을 해냈습니다. 

오다와라 경관색채계획의 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오다와라 경관색채계획

1. 바다에서 산까지 연속되는 풍부한 자연의 존재감과 두드러지는 경관색채
2.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한 안정과 품격이 있는 경관색채
3. 계절 꽃들과 축제의 색채가 반영되는 변화와 활력이 있는 경관색채

** 경관색채의 기초지식과 배려사항으로
1. 눈에 띄게 하는것, 어울리게 하는 것
2. 건축물의 관례색
3. 색채 이미지 효과와 그 한계
4. 지역과 지구의 특성과 타인의 의도
5. 주위의 건축물 등의 색채조화
6. 고모와 형태에 어울리는 색채, 배색
7. 색채의 내구성과 메인터넌스

이러한 주요내용을 큰 틀로 하고, 오다와라의 몇군데 지역을 색채에 대한 중점관리지구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개별건축물 > 가로 > 지구의 순서대로하여 도시색채를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다시 말해 도시의 색을 바르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다와라는 건축물들의 색채뿐만 아니라 공공시설물의 색채는 지구의 상징이 되고, 그외 무채색과 극저채도색으로 구성된 지역의 배경이 어우러지면서, 차분한 색으로 일체감을 주는 동시에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게 된 것입니다.
 
가로의 기조색은 황색과 황적색을 기본으로 안정된 저채도로 유도하였으며, 건축물의 지붕색은 지역의 공원녹지와 어우러지는 연출이 되도록 저채도 게통으로 하는 동시에 중후함을 주기 위해 저명도를 지향했습니다.

 <건축물 등의 외벽> <건축물 등의 지붕>  <옥외광고물, 차양>  <자동판매기>
현재 마을의 기조색인 황적, 황색계를 기본으로 안정된 저채도 색 지향  녹색과 융화된 독특한 멋이 있는 경관을 형성하기 위해 저채도, 저명도 지향  안정감과 독특한 멋을 내는 편안한 색을 지향  지정색으로 통일


또 다른 색채 중점관리지구에 대해서는 수목의 녹지색이 반영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난색계열을 많이 쓰면서 명암대비가 확실한 기존의 거리색상특징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사용색 범위를 좀더 넓게 활용하도록 융통성을 발휘하였습니다.
난색계에 반대되는 한색계열의 색채나 기타 색상이 대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다와라'는 기존의 도시색상을 존중하면서도 질서와 품격이 있는 도시경관색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명도에 대해서는 기존에 명암의 구분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가로가 있을 경우, 거리특성을 살리면서도 명암에 대해서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 명암의 다양성을 살려 거리의 기존 특성을 살려둔 것입니다.

건물과 옥외광고물에 대해서는 건물 전체적으로는 제한된 범위내의 색채를 기조색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되, 저층부에 이목을 집중시키도록 하였으며, 옥외광고물은 중채도 색을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또한 가로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과 광고물에 기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융통성있는 권장기준을 적용한 것입니다.

장소의 특성을 살리는 경관색채를 형성하는 것. 
행정에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방식으로 추진하여 성공적인 도시의 색채를 만들어가는 것.
여기에는 시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관)계획보다, 한번보고 쉽게 이해할수 있는  컬러가이드라인을 중한 오다와라의 독특한 방식이 있었습니다.

배울만한 도시디자인 사례죠?   <<<

 



 

Trackback 0 Comment 0
2010/07/28 00:00

'오동동 아케이드'가 철거된다고 ?

오동동 아케이드가 철거된다고?
- 얼마전에 오동동 아케이드가 철거될거라는 얘기를  듣고서,
 갑자기 철거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시청에 알아보니 자유상가아파트는 보상이 끝나서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고, 오동동 아케이드는 아직 보상이 끝나지 않아서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 그래서 지역사에 관심이 많은 박영주선생과 의논한 바, 우리라도 한번 기록을 남겨보자는 거사(?)를 치를것을 결의하고 박선생과, 김주완 국장과 함께  지난 6월 12일 토요일오후에 방문을 하였었다.
 
(게을러서 글 정리가 조금 늦었음)
사전에 간단한 자료를 준비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 건물전경 (2010년 6월 12일 촬영)



● ‘오동동 아케이드’와 '자유상가아파트'의 기록
- ‘오동동 아케이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식 명칭은 '마산 자유시장’ 이다.
이것은 시장개설허가를 득한 건물에 붙여지는 공식명칭이고 '아케이드'는 우리가 부르는 애칭에 해당된다. (이 글에서는 '오동동 아케이드'로 칭함)
- 이 건물이 약 40년 가까이 되어가면서 주변환경의 변화와 시설의 노후화로 철거 명분을 찾지 못하다가, 도시환경 개선사업의 일환인 ‘생태하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철거될 상황이다. 
도면 관련 자료를 시청에 확인해보니 별도의 자료는 없다고 하였다.
- 단편적인 기록들을 찾아보니
‘오동동 아케이트’ 는 지난 70년 9월에 오동동 일대 회원천을 복개하여, 74년 1월에 ‘마산 자유시장’으로 문을 연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하천 상류쪽의 '자유상가 아파트'는 1층 상가, 2층에 27세대의 아파트로 구성된, 요즘 말로 '주상복합 아파트'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건물은 1977년 지어졌으나 ‘하천터’라는 이유로 2년동안 준공검사를 받지 못하다가, 2년이 지난 79년에야 준공필증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 당시로서 흔치 않은 건물 상호로 '아케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볼 때,
근대적 상가를 지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아케이드'라는 용어의 의미는 쇼핑을 위한 보행로에 지붕이 있는 구조를 나타내지만,
'발터벤야민'이라는 사람이 근대성의 상징을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을 통해 소개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오동동 아케이드'라는 명칭도 당시로서는 첨단의, 근대화된 시설을 지향하였으리라 생각된다.
-  당시로서 이만한 규모에 다양한 용도가 어울러진 건물은 없었기 때문에 작명부터 상당한 의지를 내포한 건물이라고 생각되었다.

● 수출자유지역과 함께한 ‘오동동 아케이드’의 역사
- '오동동 아케이드'의 건설 배경은 수출자유지역의 역사와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수출자유지역'의 시작 당시 산호동은 주거지역으로 구획정리되어 개발되는 과정이었기에, 상권의 중심지는 수출 정문앞과 가장 가까운 기존의 중심상권인 오동동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당시에 워낙 오동동 상권이 부흥했었던 터라, 기존 대지에는 손을 못되고, 가장 용이하게 개발할 수 있는 곳이 공유부지에 해당되는 오동동 하천의 복개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 70년대에 수출자유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꾸준히 늘어서 70년대 말에는 3만 6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소비층이 생기면서 '오동동 아케이드'는  청춘 남녀들의 해방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 수출자유지역이 마산을 산업도시로서의 성장 동력 역할을 하였다면 ‘오동동아케이드’는 그 동력원이 되는 근로자들의 휴게, 오락 및 거주시설로서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권도 '수출자유지역'의 경기와 부침을 같이 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하천을 따라 휘어진 것을 알 수 있다.

* 건축물의 공간 구조
도면도 없이 건물을 조사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건축하는 전공을 살려서 대략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상당한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 '오동동 아케이드' 건물 규모는?
- 대략 40미터 되는 건물 3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 건물의 길이는 120미터에 이른다, 길이로서는 최근의 건물도 이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 건물을 3동으로 붙여서 지은 이유를 살펴보니
하천 상류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는 것을 건물이 연결되는 부분에서 계단 처리를 하여 자연스럽게 보행동선이 연결되도록 되어있었다.
- 그리고 구조적으로 건물은 일정길이 이상이 되면 구조적으로 신축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구조적인 안정을 고려하여 3동으로 구분하여 지어진 것 같았다.
- 건물의 폭은 약간의 차이은 있지만 대략 21미터 정도 였다.
정면에서 양단부에 폭 5미터의 점포와 각 2미터 복도를 설치하고 내부 점포는 7미터 정도로 칸을 구획해 놓았다.
- 건물의 측면폭은
 1칸이 5미터로 건물에 따라 7.5칸에서 8칸으로 길이는 약 40미터 내외로 되어있었다.
- 점포의 크기는
외부 상가 정면폭과 측면폭을 계산하면 약 25평방미터, 평수로 환산하면 7.5평 정도였다.

● '자유 상가아파트' 건물 규모는?

- 상가아파는 2층 아파트 세대당 폭이 6미터 13칸과 발코니 길이가 합쳐서 약 80미터에 이른다.
- 상가는 2층 아파트 폭에 의해 정면 6미터로 되어 있다.
- 단위세대 면적은 외부에서 추산해 보았을 때 정면 6미터에 깊이가 약8미터로 전용면적 48평방미터, 평수로 14.5평 규모 아파트 27세대로 지어졌다.
- 일단의 하천위에 약 200미터에 이른는 초대형 상가건물과 주상복합건물이 있었다는 것과 약 400여개의 점포와 27세대의 아파트가 공존했던 흔적은 건축사적으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 아케이드는 3동의 건물이 이어져 있다.(총길이 120미터)

▲ 3개의 동으로 분리된 이유는 구조적인 이유와 높이차를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 분홍색 건물이 오동동 상가 아파트 이다. 이건물은 직선형태임.


▲ 상가내부 : 소규모 사무실들이 아직 남아있다.

▲ 외부 상가와는 달리 여러 업종들이 많이 남아 있다.



● ‘오동동 아케이드’의 추억
- 수출자유지역 근로자들의 애환과 이곳을 생업의 터전으로 삼았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있으며, 마산의 근대화와 영욕을 같이 한 상징성이 있는 건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 탐방 중에, 철거를 기다리며 아직도 막걸리 장사를 하는 집을 들러 간단하게 목을 축였다.
주모인 할머니는 처녀시절인 70년대 초반부터 여기서 장사를 하면서, 딸 아들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고 지금껏 여기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 하였다.
- 올해 70을 넘긴 할머니는 해병대 출신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애를 먹였던 이야기를 하며 ‘오동동 아케이드’와 함께한 자신의 애환을 늘어 놓았다.
- 얼마지 않아 철거될 '자유상가 아파트'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닌, 도시빈민들의 주거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찌짐도 부쳐먹으면서, 카드놀이도 하는 노인분들이 많이 보였다.
공터에 텃밭도 가꾸면서 도심형 빈민가를 형성하고 있는듯 하였다.
철거가 되면 이들은 어디로 갈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당시 수출에 근무하면서 '오동동 아케이드'와 함께 청춘 시절을 보낸 사람들과 이 외에도 많은 마산사람들이 ‘오동동 아케이드’에 대한 얽힌 사연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우측면 : 복개한 부분을 아케이트의 진입로 겸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상가 후면 모습 : 지금도 성인텍이 영업중에 있다.

▲ 건물 좌측면 전경 : 1층 점포는 영업중에 있다.

▲ 좌측면 전경 : 셔터가 내려진 점포도 더러 보인다.

▲ 우측 하천변에 지어진 무허가 건물들도 거의 문을 닫았다.

▲ 하천변의 우측면 상가는 문닫은 곳이 많다.


<<< 여기서 부터는 '자유상가 아파트' 풍경입니다.>>>
 

▲ 자유상가 아파트의 출입구 : 현재 보상이 되어 철거 직전의 상태이다.

▲ 오동동 '방석집(?)'에 면한 상가 모습.

▲ '방석집(?)'- 왕년의 흥청거림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 복개천에서 본 오동동 상가아파트 : 1층은 상가이고, 2층은 아파트이다.

▲ 자유상가아파트 전경 : 도시빈민들의 주거지로 변해 있다.(텃밭을 가꾸면서)

▲ 편안한 주말 오후 풍경: 전도 부치고 카드놀이도 하면서

▲ 아파트 1층 입구 통닭집 : 학생들의 아지트로-

▲ 수천마리의 통닭을 꾸었을 화로의 마지막 모습


●  '도시 기록화 작업' 누구의 몫인가?
- 우리가 사는 도시는 단순한 구조물로 형성되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생명체 처럼 성장하고 소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주로 개발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 최근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도시들은 재개발전에 의무적으로 도시기록화 작업을 요구 하고 있다.
그간 무시되었던 도시 기록화 작업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어, 도시역사의 보존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 인근 지역 부산시는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정비사업 도시기록화’ 프로젝트를 2008년 7월에 시작, 금년 5월에 마무리 하여 과거 도시의 사진 자료들을 시민들에게 제공해 주는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 도시기록화 작업’은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을 수집하고, 현대를 충실하게 기록하면서, 미래의 변화를 앞서 확보해 놓는 작업이다. 단순한 역사적인 기록 보존의 역할 뿐만 아니라 도시정책 수립과 경관 관리를 위한 기초자료로서도 활용될 수 있기에 서둘러 해야 할 작업이다.
- 지금 '오동동 아케이드' 건물에 대하여 어떤 조사를 하여야 하는가?
: 건축물의 도면화 작업과, 과거사진 및 현재 사진의 보존, 경제적인 역할에 관한 기록자료,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생활사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동동 아케이드'
- 근사하고 멋진 풍경은 아니지만, 어둡고 지저분한 모습을 통해 과거의 어려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었기에, 마치 그 건물과 함께한 추억도 사라지는듯하여 아쉬움을 남기게 한다.
-
우리가 사는 이 도시는 과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결과물이며, 우리 역시 살다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대상이다.
- 이 도시에 남아있는 도시의 흔적들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도시 기록화작업’은 현재의 도시를 꾸려가는 도시행정가들의 중요한 역할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Trackback 0 Comment 11
  1. 괴나리봇짐 2010/07/28 15:33 address edit & del reply

    철거된다니 많이 아쉽네요. 저런 공간이라면 도심의 '아트 레지던스'로 활용해봄직한 데 말이죠. 경남도립미술관 등과 협의해서 일정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국의 예술가들의 입주를 지원해서 성공적인 이벤트를 만들어낸다면, 새로운 지역의 명소로 태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아이디어를 누가 좀 내주시면 안 될까요?

    • 허정도 2010/07/28 16:25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림동 시장 쪽을 아트레지던스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오동동아케이드는 밑에 흐르는 하천에 햇빛 넣는 것이 더 시급한 것 같습니다.

  2. 최정건 2010/07/28 17:57 address edit & del reply

    한 달 전에 마산시립도서관에 걸어 가면서 한 번 돌아 보왔습니다.

    안타깝웠습니다.

    저는 마산 상권이 몰락한 이유는 시민극장, 중앙극장, 연흥극장의 몰락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마산 상권의 특징이 주차공간이 없다는 겁니다.

    시민극장과 중앙극장은 오래된 건물이라 어쩔 수가 없었도

    연흥극장은 시에서 인수하면 좋았을 것인데.....

    제가 한 번 마산 골목길을 구석구석 다녀 보았는데

    이외의 풍경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와 초기산업사회의 오욕의 길

    마산골목길 그곳을 촬영하고 싶은데

    지금은 아직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어요

    • 허정도 2010/07/28 22:38 address edit & de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산에는 지켜야할 것, 살려내야할 것, 키워야할 것 들이 참 많거든요.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만가는 이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3. 옥가실 2010/07/29 16:01 address edit & del reply

    부산의 기록화 작업은 좋은 사례군요.
    마산에도 급히 도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창원시에 좀 건의를 해야겠군요.

    • 허정도 2010/07/29 16:23 address edit & del

      '기록'이라는 말만 나오면 눈이 번쩍 떠이는 분이라 다르군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 옥가실 2010/07/30 14:36 address edit & del

      흐....
      기록없이 인간없다?
      혹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기록 뿐이다?

  4. 이원정 2010/09/29 12:29 address edit & del reply

    의미있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5. 숨은별 2011/12/07 14:19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오동동 아케이트에 대한 포스팅을 준비중에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자료, 의미있게 읽고 갑니다.
    저의 경우는 20대가 알고 있는 아케이트의 추억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데... 아케이트가 건재할 때의 사진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던 중에 선생님의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윗 첨부 사진을 사용해도 될까요?
    출처는 정확하게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

    • 허정도 2011/12/07 21:21 address edit & del

      사용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우리 블로그는 완전 개방입니다.
      저도 젊은 날 오동동 아케이트에서 많은 시간 보냈습니다.
      좋은 결과 기대합니다.

  6. 숨은별 2011/12/08 10:45 address edit & del reply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알차게 쓸 수 있었습니다.
    오동동 아케이트에 대한 제 글은 <창동 오동동 이야기>에 만날 수 있어요 :)

2010/07/2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가포에 똬리 튼 러시아>

마산포는 러시아와 일본이 서로 식민야욕을 불태웠던 각축장이었습니다. 시기는 개항 전후였고 그 절정이 「마산포사건」입니다.
「마산포사건」은 러시아가 부동군항(不凍軍港)을 얻기 위해 마산포를 점령하려했던 사건입니다. 사건개요를 요약합니다

러시아는 군사적 목적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 우선 조선정부와 마산포 저탄소(貯炭所) 설치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일본이 러시아가 목적한 토지를 미리 매입해버림으로써 러시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1900년 때 일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단념하지 않고 마산포 남쪽의 율구미(현 마산시 가포동의 국립결핵병원에서 MBC 송신소에 이르는 바다 쪽으로 돌출한 지역)를 얻어
1900년 6월 4일 30여 만평의 러시아 단독조차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이에 질세라 일본도 1902년 5월 17일을 기해 자복포(구 한국철강과 월영동 아파트단지, 구 국군통합병원 일대)에 일본 전관거류지 30여만 평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미 설치된 신마산 각국공동조계지 인근 두 곳에 러·일 단독조계지가 추가되는 기현상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나라 각축이 있었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러시아 단독조계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러시아 단독조계가 없어지니 일본도 굳이 단독조계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일본은 각국공동조계지를 그들의 전관거류지처럼 사용하고 자복포의 단독조계는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상황 몇가지 소개합니다.

당시 마산의 분위기가 그랬던 만큼 강대국 군함의 마산 입출항도 많았습니다.
1899년 4월부터 1900년 11월까지 러시아와 일본을 비롯한 외국 군함의 마산항 출입 상황은 러시아가 가장 많은 28척, 일본이 10척, 영국이 4척, 독일이 1척이었는데 이 배는 모두 병함(兵艦) 혹은 수뢰정(水雷艇)이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는 가포 인근인 율구미에 군대까지 주둔시켰습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의미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 두 장은 당시 러시아 해군이 율구미에 주둔했던 사진입니다. 
먼저 것은 ‘율구미 주재 러시아 사관 및 부영사 가족’ 사진입니다. 사택으로 보이는 뒷 건물에 사용된 재료는 형태를 보아 조선 현지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조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율구미 주재 러시아 군대 체조장의 사관 및 수병’들 사진입니다. 수병들이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했습니다.


개항 나흘 후인 1899년 5월 5일, 러시아 고위공직자들이 마산포에 왔습니다. 주(駐)조선 러시아공사 파블로프가 일행과 함께 만추리아호를 타고 마산포에 도착합니다.
일행은 율구미라 부르는 자복봉 능선을 따라 30여만 평의 토지에 표석 500본, 표목 500본을 꽂아 임의로 그곳이 자신들의 영역임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국기가 달린 5.4m의 표간(標杆)을 자복포 배후의 구릉과 가포에 인접한 해안에 각각 12개를 세웠습니다.
이곳이 나중에 러시아 단독조계지가 됩니다.


위 그림 왼쪽에 그려진 것이 바로 그 표간입니다.
미의회 도서관자료인데 마산포사건과 관련한 일본해군대신 관방서류에 수록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이 도면에는 율구미 능선을 따라 늘어선 표석과 표목의 위치와 함께 러시아 국기가 달려있는 표간의 상세한 도면이 그려져 있으며 표시물의 위치와 숫자는 이 도면을 설명하는 보고서에 별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구미 일대에 꽂힌 표석과 표목 각각 500개, 그리고 율구미 능선과 가포해안에 선 5.4m 높이의 24개 깃발을 상상해 보십시오. 러시아의 위세가 당시 어떠했는지,,,,
표목과 표간은 이미 썩어 없어졌겠지만 표석 500개는 땅 밑 어딘가에서 아직 잠자고 있겠지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표석 발굴에 나서 보면 어떨까요?

이러한 러시아의 행동은 호시탐탐 마산포를 넘보던 일본을 자극하였습니다.
일본은 마산포의 당시 상황을 일일이 본국 정부에 보고하면서 마산포를 러시아보다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에 이어 일본도 자복포에 전관거류지를 설치하게 되었던 겁니다.

다음 그림은 그 시기에 첩보용으로 율구미를 촬영했던 사진입니다.
일본 해군소속 군함 '대도(大嶋)'의 첩보주임 이집원후(伊集院後)가 1900년 5월 1일에 촬영한 것입니다. 가운데 높은 봉이 갈마봉인가요?


마산포로 진출할 의사를 가진 나라가 러시아와 일본, 영국뿐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도 석탄하역장과 해군병원의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마산포 부근에 진출을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1885-1913년 외교보고서』 중 마산관련 자료입니다. 

No 65
1901년 9월 17일, 동경
조선에서의 프랑스와 러시아

존경하는 백작각하!
제가 이미 이전의 보고에서 자주 말씀드렸던 바, 조선 내에서의 프랑스의 활동은 일본신문에 계속 표제화되고 있습니다․․․․․․․․
신문들에 의하면 이전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제 프랑스도 석탄하역창과 해군병원의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마산포 부근에 위치한 작은 항구를 양도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브로 <<<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Trackback 0 Comment 2
  1. 김석 2010/07/29 20:19 address edit & del reply

    이사장님 건강하시지요? 옛 마산...이젠 통합창원시...
    왠지 통합창원시와 마산...되게 어색하네요...
    앞으로 마산 도시변천사 자주 구독하겠습니다.

    • 허정도 2010/07/29 20:53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간사님, 아니 의원님.
      늦었지만 당선 축하드립니다.
      화상경마장 싸움할 때 이미 알아 보았습니다만 지역이 지역인지라 어쩔까 했는데 역시나 당선되더군요.
      지역 위해 더 큰 일, 더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2010/07/23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사례(4) - 토리노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토리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아트(Fiat) 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시입니다.
이 공장이 도시 외부로 이전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시재생을 선택한 도시입니다.
토리노의 성공적인 도시재생에는 민관협력이 열쇠였습니다.


** 토리노 민관협력의 구성
(1) 토리노 국제협회 : 시 + 시민단체 + 기업체 + 노조
(2) 협력투자 유치단(ITP) -> 시 홍보와 투자유치

토리노의 도시재생사업은 먼저 민관협력의 구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다음 피아트 본사(1899년~)가 있던 공장을 리모델링하고 주변정리를 시작하였습니다.

** 피아트 in 토리노 (1899년~ )
- 종업원 : 22만명
- 이탈리아 전체의 85% 자동차 생산

>>  피아트 공장 이전후 인구 17.5% 감소

그 후 쇼핑센터, 교육기관, 주거공간 등으로 개발하였습니다.
또 이에 그치지 않고, 산업유치와 토리노 홍보를 위한 국제행사(올림픽)을 유치해서 도시를 활성화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피아트 본사가 이전한 후 공장건물은 고스란히 흉물로 남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찾은 돌파구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여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에는 창조적인 전략이 있었습니다.
공업도시의 역사성이 담긴 전통 건물의 외관을 보존하면서 내부를 개조했던 것입니다.
이 방식에 피아트 공장의 건물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일은 토리노시와 민관협력단이 협력하여 진행하였는데, 이 협력단은 1997년에 설립되었으며, 본격적인 활동은 2000년부터 한 것으로 '토리노 국제협회'와 '민관 협력 투자 유치단(ITP)'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997년부터 구체적인 기획활동을 시작했는데, 2010년을 목표연도로 정했습니다.
1차 계획에 따라 도심재생프로젝트들이 성공하자, 2002년에 이르러서는 2020년까지의 제2차 전략계획을 마련하게 됩니다.

** 2차 전략계획의 내용
- 시내 곳곳의 공장부지를 포함한 도심 재개발 내용
-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 유치

토리노의 도시재생을 위한 사업은 살펴보면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1) 리고트지구의 재개발
- 피아트 공장지구 (3만명 근로자 수용, 1920년 조성)
- 내용 : 건물보수, 주변정리 -> 쇼핑센터 조성
- 쇼핑센터의 구성 : 상품전시장 + 8개 쇼핑센터   --> 컨퍼런스센터 신축(1994)

(2) 미라포리 지구 재개발
- 피아트 본사지구 (5만명 근로자 수용, 현재 15천명)
- 내용 : 신산업공간으로 재개발
- 첨단 정보통신업체 유치 +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 조성

(3) 스피나 사업
- 철도역 주변 등 기존 도심의 재개발 -> 연구개발, 쇼핑, 업무, 여가 등의 공간 조성

** 혁신사업
- 사업명 : The Gate 사업 (시장재개발사업)
- 도심상가지역의 물리적 환경 개선 -> 범죄 및 환경오염 완화, 고용창출, 전통시장의
                                                     열악한 환경 개선 --> 노점상정비
   --> 접근성 확보(대중교통, 주차, 자동차 교통량 조정 등의 추진 : 컴퓨터 통신체계)

※ 신동호, 선진공업도시의 지역재생정책에 관한 연구, 국토계획, 제43권 제2호, 2008. 4
                                          토리노 도시재생 사업지구
                                        (Citta di Torino, 2006 : 18-19)
        
- A (스피나 1지구),  B (스피나 2지구),  C (스피나 3지구),  D (스피나 4지구)
- 붉은 실선 : 지하화 되는 도심철도
- 1 (링고트),  2 (미라피오리),  3 (스피나 2,3지구),  4 (스피나 3지구)
   5 (토리노 중앙역전 역사경관지구)


그 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992년  도시마케팅 대회 개최 
 1993년 '국제 도시 토리노' 도시부흥 전략계획 제안 (시장)
 1994년  컨퍼런스센터 신축(링고트지구) - 9천명 수용규모 
 1997년  토리노 국제 협회 결성 
   제1차 토리노 전략계획 수립(2010목표)
 - 6개부문, 총84개 사업
   재래시장 재개발사업 (The Gate) (1997~1999)
 1998년  민관협력 투자 유치단 (ITP) 조직
 2002년  제2차 토리노 전략계획 수립(2020목표)
 - 3개부문 
 2006년  철도역주변 재개발(스피나) 1, 2단계 완료


토리노는 알다시피 2006년 동계올림픽, 2007 동계 유니버시아드 그리고 2008년 국제 건축대전 등과 같은 세계적인 행사를 유치하였고 지금도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20회 토리노 동계올림픽

토리노는 기존 도시의 역사적 증언인 건축물(공장 포함)을 보존하면서 도시를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도시경관도 개선했고 도시의 정체성도 지켜나갈수 있었습니다.

                                              (구) 피아트 본사

                                                (현) 피아트 본사

토리노의 교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민관협력을 통해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시장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국제협회가 비전을 정립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한편, 사업추진과정을 모니터링까지 한 것입니다. 다른 주체들은 국제협회가 지정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책추진을 가능하게 하는 거버넌스 체계였습니다.

민주적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체제가 진정한 민관협력체계이겠지요.<<<






Trackback 0 Comment 5
  1. 빡빡이 2010/07/23 21:35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 너무 감사드립니다^^

    조언까지 해주셔서 너무 좋은 정보를 받았네요~

    더욱 열심히해서 좋은 결과 만들겠습니다^^

    • 허정도 2010/07/23 22:31 address edit & del

      나도 반가웠어요.
      좋은 작품만들어 마산도심재생에 멋진 아이디어를 제시해 보세요.
      빡빡이 화이팅!!

  2. 정대호 2010/07/30 22:47 address edit & del reply

    수많은시간 건축에대한애정과 폭넓은식견이 언제쯤행정과 연계되어 맘껏 펼칠날을 기대해 봅니다

    • 허정도 2010/07/31 08:40 address edit & del

      오랜만이네, 반가워.
      방문 고맙고, 하는 일 잘 되기 바라네.

  3. bluelizard face sunscreen 2011/10/11 12:08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기사. 정말 멋진 사진

2010/07/21 00:00

마산에 눈 내렸던 날 기억하십니까?

그제가 초복이었습니다.
많이 더우시죠?
추워 떤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여름 한복판입니다.

지난 겨울 마산에 눈 내렸던 날 기억하십니까?
눈 땜에 집에 갇혔다가 사진을 몇 장 찍어두었습니다.
더위 식히는데 도움될까 싶어 올려봅니다.


<옥상에서 본 정원입니다 / 가운데 가지 앙상한 나무는 매화나무입니다>

<마당 한 복판입니다 / 사각형으로 틔어 오른 부분은 고추와 상추를 심는 텃밭입니다>

<집 건너편 무학산 끝자락입니다 / 가운데가 벚나문데 꽃 피면 볼만합니다>

<앞의 낮은 게 주목, 그 위가 매화, 건너편이 영산홍, 자동차도 눈을 듬뿍 맞았습니다>

<눈 맞은 동백꽃이 처연합니다>

<눈 속에 핀 매화, 설중매입니다>
매화 꽃봉오리 맺혔던 자리에 굵은 매실이 달려 한 달 전에 따냈습니다.
그새 눈내린지 반 년이 지났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저만치 크리스마스가 또 다가옵니다.

어떻습니까, 더위가 조금 가셨습니까?
한 더위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유난히 덥고 비도 많을 거라는데 올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Trackback 0 Comment 2
  1. 김막달 2010/07/21 09:29 address edit & del reply

    마음까지 시원해 집니다.

  2. 이윤기 2010/07/21 10:08 address edit & del reply

    저런 겨울이 있었군요.
    너무 더워 깜박 잊고 지냈습니다. ^^*

2010/07/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마산개항의 배경>

한국 개항의 효시인 부산에 일본단독조계가 설치된 이후 전국의 여러 도시에 조계(租界)가 계속 설치되었습니다.

1876년 부산에서 시작된 조선의 개항은 1880년대에 원산·인천·서울(*)·용산(*)·경흥(*), 1890년대에는 진남포·목포·평양(*)·마산·군산·성진, 1900년대에 들어 의주(*)·용암포·청진까지 모두 15곳을 개방하였습니다. (*)표는 개시장(開市場)입니다.

아래 그림은 전국개항장의 위치도(1890년대 이전 , 1890년대 , 1900년대 )입니다.



다음 사진은 대표적인 개항도시였던 인천개항장의 근경(위) 및 부산개항장의 원경(아래)입니다.




1890년대에 접어들자 조선은 강대국들의 이권쟁탈외교 각축장이 되어갔습니다.
특히 철도․광산․은행․통신․어업 등에서 이권을 독점하기 위한 경쟁이 격렬했고, 이러한 왜곡된 외교정세 때문에 국내 사정은 점차 악화되어 갔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조정하는 한편 경제적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제로 개항장이 된 부산․원산․인천과 달리 1897년에 자발적으로 목포와 진남포를 개방하였습니다.
단독조계를 두었던 과거와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는 각국공동조계지 만을 두어 열강들의 상호견제로 인한 세력균형 속에서 실익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부의 이런 의도와는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 설치된 공동조계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토지이권다툼이 노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산포는 그로 부터 2년 뒤인 1899년에 군산․성진과 함께 개항되었습니다.
마산.군산.성진
 개항은 앞의 목포․진남포와 같이 외견상으로 자발적이었고 그 형식과 절차도 목포.진남포와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개항이 결정되기까지 마산포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다툼은 목포와 진남포보다 더욱 치열했습니다.

개항직후인 1900년에 제정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조선에 관한 기술(記述)』에서 ‘마산포와 군산을 일찍이 영국에서도 장래성 있는 항구라고 평가했다’ 고 하면서 군산만(群山灣)은 자연적인 조건이 편리하지 못한데 반해 마산포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산항의 상세(商勢)와 입지를 극찬하고 그들이 일본보다 마산항을 선점해야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산포는 부산에서 서쪽으로 60베르스트(verst, 핀란드의 옛단위, 1베르스트는 0.6641마일 또는 1.069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조선의 남쪽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지였다.
외국상업을 위해서 개방되자 이로 인해 현저한 타격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부산과 함께 상당한 양의 무역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조건이 우세하여 개항 이후 현재 부산항에 위협을 주는 경쟁지로 되었다.
만약 부산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지금의 우세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부산의 모든 상업상 가치를 빼앗아 버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러시아뿐만 아니라 19세기말 모든 제국주의국가들에 깔려있었던 마산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마산 개항에는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이를 견제한 '일본의 대륙정책'이 많은 작용을 했습니다.

'러시아 남하정책'은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한반도 남쪽에 부동항(不凍港)을 건설하여 자국의 블라디보스토크과 중국 요녕성의 여순을 해상으로 연결하려고 했던 정책입니다.

'일본의 대륙정책'은 이와 같은 러시아의 해양세력 확장계획에 대한 견제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향한 자국 세력 확장을 위한 거점으로서 마산포를 수중에 넣으려한 정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 각축의 먹잇감이 마산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Trackback 0 Comment 0
2010/07/16 00:00

통합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3)-빌바오의 도시재생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빌바오(Bilbao, Spain).
면적 41.3㎢, 인구 35만의 중소도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부각되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주의 주도인 빌바오.

※ 월드맵파인더 캡쳐


광장을 중심으로 뻗은 방사형 주간선도로와 중정형의 블럭을 가진 정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입니다.


네르비온강변으로 3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비스케이만(灣, Bay)에서 10km 내륙으로 들어오 네르비온강에 면한 빌바오의 이곳.
철광산업의 부흥을 이어오던 이곳에 새로운 도시디자인을 통해 일약 월드스타급의 도시로의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빌바오 효과"는 1995년에 수립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으로부터 이뤄낸것입니다.
물론 1991년에 '구겐하임미술관'의 유치가 확정되면서부터 그 신조어(Bilbao Effect)가 톡톡히 효과 본것이기도 합니다.

그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한 자료를 보면, 과거 10년동안의 관광객이 986만명. 수익은 약 2조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소도시인 빌바오는 도시규모에 대비되는 엄청난 도시브랜드를 일궈냈습니다.

우리나라 관광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방안외래관광객 수 =  약 780만명.(2009년)


이렇게 되기까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사가 있었습니다.

빌바오는 1970년대까지 45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철강, 조선산업의 중심지 (빌바오는 스페인 최대항구)로 급성장해오던 이곳에
1970년대 말, 유럽의 산업위기로 인해 그간 이루어낸 경제적 성장이 멈춘것은 물론이고
중공업과 그 부속되는 산업, 이와 견주는 서비스업 마저도 붕괴되고 맙니다.

70년대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관련 산업의 고용이 25%나 감소되고,
이에 따라 실업율도 30%까지 치솟습니다.
인구감소현상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각종 사회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바오의 위기 앞에서,
시는 산업위기 등으로 도시침체를 맞은 타도시사례(피츠버그, 글라스고우 등)의 정황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도시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합니다.
즉, '산업도시 빌바오'의 도시재생방안으로 '탈산업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탈산업화를 통한 빌바오의 도시회생을 위해 '문화와 예술적인 도시'를 목표로 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이 1995년에 수립됩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도시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시작해서, 문화와 예술관련 부문을 활성화시키고, 자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영국 글래스고우 도시재생전략 벤치마킹)

빌바오의 도시재생의 특징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입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에 설립된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공공과 민간의 활동이 도시재생 과정을 주관하도록 하였고,
1992년에 설립된 '빌바오 리아 2000'은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50%씩 공동으로 출자하여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공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관은 독립성을 보장받고(정치적 개입 방지), 운영도 독립적으로 하되, 경제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은 실제로 빌바오항만청에서 외부 항구의 확장공사계획에 따라 네르비온강 주변지역을 활용할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기회였습니다.

현재 마산지방행양항만청에서도 부두를 도시의 유휴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며, 이에 대한 '마산만 르네상스 정책'의 일환으로 워터프런트 계획을 현재 창원시 도시디자인과에서 추진중입니다.
이 구상이 통합창원시의 기회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현재까지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에서 사용된 자금은 신공항에 190백만유로, 빌바오전철 900백만유로, 외부항구 600백만유로, 지상궤도열차(트램)에 20백만유로를 투입하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의 계획은 지금으로 부터 15년전에 되어졌던 것입니다.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의 설립시기로 보면 20년전입니다.

 1991년  빌비오 메트로폴리탄 30설립 
 1991년  바스크 주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확정 
 1992년  빌바오 리아 2000설립 
 1992년  외부항구 확장공사 시작 
 1995년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 수립
 소로사우레 마스터플랜 통과 
 1995년  지하철개통, 네르비온강 인도교, 수변지구 재개발공사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 완공 
 1998년  Aalborg 법규 통과 - 21 지방 의제
 2005-2008년 활동 계획 수립
 1995년
 2001년  소로사우레(Zorrotzaurre) 도시발전관리위원회 구성 
 2002년  에우스꼬뜨란 완공 
 2003년  소로사우레  
 2004년  아메촐라 공원 개장
 2007년  사로사우레 마스터플랜 완료
 마스터플랜 목적과 지침 목록서 계획

빌바오의 트램 

구겐하임 미술관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1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2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3

스비스리 다리(Pasarela Zubizuri), 보행전용교
※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디자인


 에스칼두나 다리.
보행자와 자전거이용자를 배려한 캐노피 디자인인 돋보입니다.


기업의 생명이 30-50년이라고 본다면, 도시의 생명은 무한대일 것입니다.
그런 도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실천해나가는 것.
절대 서둘러서는 안될 일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3
  1. 노래 2010/07/16 17:58 address edit & del reply

    관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빌바오는, 스페인이 관광대국이기에 관광이 중심이 될 수 있으나
    창원은, 한국이 관광으로는 스페인에 못미친다.
    따라서 제조업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 허정도 2010/07/17 11:34 address edit & del

      맞는 말씀입니다.
      도시를 조금 고친다고 관광객이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워터프런트나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도시에 생기가 넘치면 마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많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2. 똥곰 2011/04/24 23:33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구글링중에 좋은정보 많이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0/07/14 00:00

마산만 워터프런트의 미래는?


두바이의 인공섬(팜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들어보셨나요?

총3개의 인공섬 계획 중 팜 주메이라의 모습이 공개된 후, 월드축구스타인 '베컴'이 이곳에 집을 하나 산다고 떠들썩하기도 했습니다.
(※ http://blog.naver.com/aerosohn)

** 팜 아일랜드 시리즈
(1) 팜 주메이라 
      - 규모 : 직경 = 5.5㎞, 면적 = 25㎢
      - 용도 : 특급호텔, 고급빌라, 아파트, 쇼핑센터 등
(2) 팜 제밸알리
      - 규모 : 직경 = 7.5㎞
      - 용도 : 수상가옥 등의 계획 포함
(3) 팜 데이라
      - 규모 : 직경 = 14.5㎞, 해안선 길이 400㎞ (파리시 규모)







거제시의 고현만 인공섬 조성사업(Waterfront City 사업)도 있습니다.
총 203,972㎡(61,702평)의 상업용지와 그 상업용지를 매각해 5,517억원을 조성하여 인공섬을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각종 법규 (공유수면매립법+도시개발법, 항만재개발법 : 항만과 그 주변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검토와 사업자인 거제시와 삼성중공업의 업무협약에도 불구하고 사업추진에 대한 행정적 뒷받침이 되지못해 현재 보류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http://cafe.naver.com/shipilot)
 


오스트리아 그라츠에도 인공섬을 조성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라츠는 바다가 아닌 무어(Mur)강에, 또한 도시개발을 위해서가 아닌 문화기능으로 인공섬을 만들었습니다.
(※ http://blog.naver.com/qxer/90072578554)

1999년에 디자이너(아콘치, 푼켄호퍼)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2001년에 인공섬프로젝트에 대한 당국의 발표, 2002년에 제작 및 이송과 뉴욕에서 오스트리아 문화포럼을 발표, 2003년에 무어강위에 인공섬을 개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내호텔 투숙객은 전년대비 22.9% 증가, 관광객수는 110%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습니다. 구도심의 '그라츠 역사문화지구'에 현대식 인공건물을 조성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낯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휴식, 문화향유의 장소로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라츠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근사한 랜드마크 하나가 도시를 살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일 수 있습니다.
그라츠의 사례처럼 도시의 건축물, 환경시설물이 그 지역민의 삶과 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의 문화인공섬 프로젝트 사례입니다.
부력을 이용해 뜨는 인공섬 방식으로, 다목적홀, 옥상정원, 카페 등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692석의 컨벤션홀이 있어 2011년에 열리는 G20 정상회의도 이곳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서울 한강 물위의 또하나의 랜드마크.

** 서울시 인공섬(플로팅 아일랜드) 프로젝트의 구성
- 총사업비 : 964억
(1) 제1섬
- 규모 : 4,737㎡
- 용도 : 컨벤션(692석) 및 근린생활시설
- 시설구성 : 1층(레스토랑, 리테일), 2층(컨벤션홀, F&B), 3층(F&B)
- 옥외시설 : 바베큐가든, 달빛산책로, 테라스 칸타빌레(전망, 휴식, 선큰데크), 옥상정원
(2) 제2섬
- 규모 : 가로 12m, 세로 3m, 높이 3m (철제블록 134개)
- 용도 : 근린생활시설
- 시설구성 : 1층(대기업 F&B), 2층(다목적홀), 3층(F&B)
- 옥외시설 : 비트광장, 젊음의 숲(대나무숲, 산책로, 잔디구릉)
(3) 제3섬
- 규모 : 1,200㎡
- 용도 : 스포츠 레저시설
- 시설구성 : 1층(요트클럽라운지), 2층(요트클럽 라커)
- 옥외시설 : 왈츠의 숲(단풍숲, 잔디구릉, 안개분수), 옥상정원
(※ http://blog.naver.com/gowill)







현재 건조중인 인공섬(플로팅아일랜드) 의 모습입니다.


비판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습니다.
콘크리트 블록 박스의 설계방식이 반환경성이라는 것.
또 강의 자연적인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
인공섬에 들어서는 시설의 용도도 일반적이라는 것. 등 등
연말이면 준공한다는데 아직도 찬반논란이 끝나지 않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지역에서도 워터프런트 담론이 한창인데,
통합창원시가 추진하려는 마산만 워터프런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Trackback 0 Comment 11
  1. 이윤기 2010/07/14 11:51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에도 재미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과 생태환경적인 측면의 검토라고 생각됩니다.

  2. 합리적사고 2010/07/15 03:01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의 글을 훔쳐만 보다 처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먼저 선생님의 고견들이 이전 마산시에 반영되지 못했던 것이 영원한 마산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픕니다. 앞으로는 통합창원시의 일원이 된 진해의 발전방향에 대한 충고도 부탁드립니다. 그 첫번째로 감히 진해선의 활용방안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구미 선진국의 도시발전에는 도로와 함께 철도가 중요한 근간을 차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진해지역은 교통의 요지 창원역과 진해시가지 그리고 멋진 해안을 감상할 수 있는 진해웅천항을 연결하는 진해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이를 활용할 계획이 전연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돈이 드는 도시철도 이전에 진해선을 복선전철화해서 진해에서 KTX 창원역까지의 접근성을 높이고 아울러 바닷가를 따라 부산신항배후철도, 하단까지 연결하여 관광과 화물수송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가이신 선생님의 고견을 구합니다. 두서 없는 장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허정도 2010/07/15 09:18 address edit & del

      방문감사합니다.
      진해선 철도는 역사적인 가치는 물론 시내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간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철도는 다른 교통수단과 공용이 어려울뿐 아니라 자유롭지 못한 정차 시스템 때문에 도시교통수단으로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할 도시공간을 강제적으로 분할시키는 역기능도 합니다.
      진해선 철도가 감당하고 있는 기능에 대해서 제가 잘 몰라 아쉽습니다만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진해선철도의 현재기능을 감당하면서 철도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진해도시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진해도시발전을 위해 깊이 생각해볼만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합리적사고 2010/07/16 07:48 address edit & del

      선생님께서 생각해볼만한 과제라고 하신 것만으로도 제 역할은 다 한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3. 합리적사고 2010/07/15 03:07 address edit & del reply

    아래글은 이전에 마산시청에 글을 올렸다가 실현불가능판정을 받았던 내용입니다.
    단순한 망상인지에 대해 선생님의 고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임항선과 낙후된 주위지역이 마산 지역발전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마산시가 그린웨이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도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임항선 철거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철도를 이용하여보다 '상품성'있는 임항선 활성화 방안을 제안하려 합니다. 이미 영국과 독일에선 '레일버스'라는 것이 운행되고 있는데 이를 관광열차로 만들어 임항선을 달리게 한다면, 주위의 낙후된 지역도 자연스럽게 민간자본에 의해 재개발이 유도되어, 임항선이 더 이상 골칫거리가 아닌 통합 창원시에서 근대도시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될 것임을 확신해마지 않습니다. (이것은 진해 웅동바닷가를 달리는 진해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수 있습니다)

    • 허정도 2010/07/15 11:40 address edit & del

      아시다시피 그 동안 임항선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안된 내용들을 보면,
      1. 레일을 걷어내고 그린웨이를 만든다.
      2. 철로를 이용하여 관광용열차를 운용한다.
      3. 1안과 2안을 섞어 사용할 수도 있다. 등등입니다.
      임항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우선 급한 것은 임항선의 폐지입니다.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철도가 도시한복판에 누워있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지금의 형태에서 벗어나 도시 공공공간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녹지가 부족한 도시이니 만큼 관광열차보다는 폭을 30-40m 정도되도록 넓힌 후 시민들이 나무그늘 아래에서 걷고, 뛰고, 자전거도 탈 수 있는 '도로를 겸한 녹지공간'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그린웨이가 창동을 거쳐 어시장을 지나 바닷가까지 연결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 합리적사고 2010/07/16 07:47 address edit & del

      선생님의 고견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는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임종만 2010/07/15 18:22 address edit & del reply

    반갑습니다.
    구천을 떠돌다 이제사 공원사업소 마산공원관리과 도시녹화담당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린웨이와도 인연을 가지게되어 직접 업무를 보게되었고요.
    많은 조언부탁드립니다^^

  5. 방수한 2010/08/18 01:35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방수한입니다 합리적..님과 임종만님의 의견과 허선생님의 고견 공감합니다 저역시 선생님이 아시듯이 마산의 역사 3.15 부터 모두생생히 기억합니다 3.15학생의거때 무학초등학교 그땐정문이 도로변에있었습나 저가그곳에서 놀고 있는데 (태어난곳 자산동 사거리)난리를 목격하고 집으로 쫒겨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께서 tv 에서마산의역사를 소개하는 프로 감명깊게 보며 추억한 얼마전의 기억도 있습니다 님께서 마산의 역사를 또한 도시건축공학의 전문가시라면 저같이 전문지식이 부족한 (지식도없이 도시정비업 하는사람) 저도 워터프런트 그린웨이 도시철도 그무엇보다 우선적인것 도심재개발을 활성화해야 통합창원마산이 기존창원시 절반이라도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하니다 얼마전 준공입주한 양덕동 메트로씨티 함보세요 아파트 부지 면적의 약절반을 시에 도로및 공원 학교 용지로 내주고도 용적률로서 시공사에 보전해주니까 시공사 손해는 전무 아니 오히려 득이죠 사방이 2~3차선도로 공원등 주변입지가좋으니 높은 분양가 받을수 있으니까

  6. 방수한 2010/08/18 02:01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께서 해박한 전문지식과 또한 건축가로서 도시건축 마산의 일인자시라면 도민일보 대표이사 환경운동을 하신분이 어째 그많은 세월과 인맥풀도 많으신데 아직도 5~6십년전의 공동화장실사용하며 비위생적이며 문화공간이라곤 전무한 자동차가 일가구 2대씩되는 시대에 주차할곳 하나없는 그런곳의 최우선 시도시과에서 서울 대도시처럼 적극행정을 지원해야 당연한 그런일은 이도시의 오피니언 으로서의 침묵은 왜인지요 정말 오늘 우연히 선생님의 글을보고 한편 반갑고 한편 서운함에 두서없이 몆자올립니다 현재 행정이 소수몆명 몆십명도아닌 자기들 이해관계 또는 자기들이 집행부에서 소외됐다는 몆가지 이유많으로 시청 담당부서 항의하면 그쪽말만 듣고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기 일쑤인 이런것의 바로잡음과 재개발의 필연성 당위성에 좀더 관심집중바라면서 저가 도시정비업을해서가 아닙니다 전 원래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햊고 지금도 하고있으며 3개월전 고향 마산으로 회사를 옮겨왔지만 전사업 안해도 진심으로 미련없지만 전부산 울산 어디에서해도 되지만 선생님같은 전문가께서 꼭 마산 구도심 재개발에 관심좀 집중해주신다면 넘 감사또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바라면서 안녕히계십시요...죄송합니다...

    • 허정도 2010/08/18 07:19 address edit & del

      방 회장님 반갑습니다.
      이 도시에 산적한 문제들이 어디 행정이나 전문가 몇 사람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방 회장님 처럼 현장에서 직접 뛰는 분들의 협조와 시민들의 높은 관심이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방문 감사드립니다.

2010/07/1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개항기'에 대한 글은 모두 10편으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도시문제에 시각을 맞추겠습니다만 개항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히 싣겠습니다.
이 글은 마산개항 직전의 국내외 상황을 소략하게 쓴 글입니다.


<개항 전야>

19세기 중엽,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 확보를 위해 동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는 19세기 중엽에 베트남을 지배하고 캄푸치아를 보호령으로 하였고, 일찌감치 인도를 병합한 영국은 19세기 전반기에는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여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를 수중에 넣었으며 아편전쟁을 계기로 홍콩을 얻었습니다.
홍콩을 내 준 중국은 그 후 프랑스·러시아·미국 등에도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태평양을 건너 온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강경했던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1854년 카나카와(神奈川)조약을 시작으로 영국․러시아․네덜란드 등 여러 선진 국가들도 받아드렸습니다.

1868년 일본은 하급 무사계급의 주동으로 명치유신을 단행하고 천황제 전제국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시급한 과제는 빠른 시일 내에 자국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양이쇄국정책(壤夷鎖國政策)이 대세였습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구미각국의 여러 차례 통상요구가 있었고 이로 인한 갈등과 충돌도 많았지만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여론을 등에 업고 굳어 갔습니다.

명치유신 후 일본정부는 덕천막부가 폐지된 사실을 조선정부에 통고합니다. 그러나 대원군의 조선정부는 문서의 격식과 인장이 옛 것과 다르다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고종 9년(1872년)에 일본은 외무대신 화방의질(花房義質)을 부산에 파견하여 교섭을 추진했으나 조선정부는 이도 거절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일본지배층 내부에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일본의 각료회의에서 조선침략에 대한 찬반논쟁을 하는 장면을 그린 「
정한논쟁도(征韓論爭圖)」입니다.


정한론에 힘입어 일본지배층은 장차 조선 침략에 필요한 조사도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침략 초기에 사용된 조선관련 문헌 중 대표적인 저작 『조선사정(朝鮮事情), 1876』도 이 때 나왔습니다.

정한계획의 실체는 1875년에 일어난 「강화도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은 그들이 당했던 것과 똑 같이 군함 운양호(위 사진)의 무력시위로 조선을 위협하여 강화도조약 혹은 병자수호조약으로 불리는 불평등한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부산·원산·인천의 3개 항구를 일본에 개방했고 치외법권을 인정했으며 일본화폐의 통용과 무관세 무역을 인정하게 됩니다.

서구제국의 개항압력에도 불구하고 쇄국정책을 견지한 조선은, 서구제국에 의해 강제로 개방된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습니다.

일본에게 문을 연 조선정부는 그 뒤 미국·중국·영국·독일·이태리·러시아·프랑스·벨기에·덴마크와도 수호조약을 맺고 전국 주요 도시의 문을 개항(開港) 혹은 개시(開市)라는 이름으로 열었습니다. 
마산포 개항도 그 산물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Trackback 0 Comment 0
2010/07/09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사례(2)-에슐링겐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독일 에슬링겐" 하면, 예전에 오세훈 서울시장인 디자인탐사단을 꾸려, 수개 도시를 방문하여 벤치마킹 했던 도시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낡은 공장건물을 대상으로 복합문화시설로 리모델링한 사례(다스딕, Das Dick)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창조도시'의 모티브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슬링겐은 시설을 재활용하는 사례중심이기보다는 주민과의 협의를 통해, 그것도 11년동안을 협의를 하고, 이후 도시계획사업을 시행한 것이 높이 살만합니다.

도시재정비 계획안을 1988년에 확정하여 착공은 그후 11년후인 1999년에 했으니 말입니다.
11년간 협의과정을 가졌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슬링겐은 슈투트가르트와 가까이 있습니다. 10여km 떨어져 있습니다.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자동차 기업인 포르셰, 벤츠의 본사가 있는 도시 슈투트가르트.
이와 가까이 있다보니, 자동차 부품, 철물제품 생산의 공업도시로 성장했음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인구는 9만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에 중세건축물 등의 도시공간 보존이 양호한 편이었나봅니다.
따라서 "공업도시+역사적 도시"의 컨셉으로서 구도심에 대한 정비계획을 수립하게 된것입니다.

핵심적인 이슈는 구도심의 정비문제였으며, 해당 상인과의 마찰로 이어졌습니다.
개별(사유)건물에 대한 입면을 개보수하고, 부분적으로 주차허용을 해주는 방안, 또 상인들의 물류를 공급하기 위한 동선방식, 보도 포장재 등의 가로기반시설, 공공시설물 등에 대한 것으로,
이에는 설계도면을 그림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여 설명하고, 협의하고 설득하였습니다.

수복형 재개발 사업에는 건축물의 입면을 보존,정비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로에서 역사적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마찬가지로 에슬링겐에서도 건물에 대한 개보수에 주력하였습니다.

이에는 9만2천명의 에슬링겐 인구대비 건축분야 공무원이 250명 이상이었으며, 건물의 개보수에 합의점을 찾아가는 역할을 매우 중시한 것입니다.
또한 시민위원회 15명과 시의원 40명이 각각 도시계획의 결정에 참여하고 권한을 가지므로 도시계획시행의 특징을 가집니다.

구도심정비사례로는 반호프 쉬트라세(Bahnhof Strasse, 에슬링겐 역 앞 폭25m, 길이 600m 가로)와 플린자우 포어슈타트(Plinsau Vorstadt)가 있습니다.
반호프 쉬트라세는 상인이 정비를 요구하여 계획에 반영된 것이며, 플린자우 포어슈타트는 터키 이민자들의 집단주거지에 대한 지역 중점개발 프로젝트입니다. 도시개발정책에 '사회적 도시(Soziale Stadt)'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서 6-7천명의 이민자 주거지에 생활환경개선을 추구한 것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자가소유주택을 늘리고, 놀이터와 공원 등의 공공시설물을 배치하는 것었습니다.

그리고 다스딕(Das Dick)이 있습니다.
다스딕은 1870년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철물공장건물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잘 알 수 있는 '휘슬러' 밥솥을 제품으로 생산한 곳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8년에 작고 낡은 설비 때문에 생산시설을 외곽으로 이전하게 되자,
에슬링겐 시에서 이미 130년된 건물을 등록 문화재로 지정한바,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건물주와 공동으로 2,500만 유로(약34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하고, 설계는 공모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건물사이 아케이드 지붕을 덮고, 굴뚝(78m높이)은 다스딕 상징물로 남기고, 석탄창고->첨단극장, 보일러실->디스코텍 으로 탈바꿈 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계획에 따라 영화관, 식당가, 쇼핑센터, 스포츠센터 등 48개업소가 배치되는 복합문화레져시설로 리모델링 된 것입니다.

에슬링겐의 도시정비계획에는 디자인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도심내 모든 가로의 역사성과 공간적 특징을 유형화 한것으로 조례로 결정된 것이기도 합니다.

1) 가로마다의 건축적 특성, 용도, 가로이용형태, 바닥포장, 가로등, 식재에 관한 사항
2) 그리고 각각의 가로특색을 살리면서도 도시전반적인 공간 맥락을 연속되고 일관되도록 하기 위한 가로망 계획
3) 보행공간의 쾌적성을 높이기 위한 지침 등이 포함된 것입니다.

건축디자인에 관한 설계지침을 마련하고 건물의 파사드를 거리의 얼굴로 여기어 통제, 관리하는 계획. 하지만 이에는 충분한 시민들과의 공감으로 얻어낸 후 시행하는 절차. 또한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현재의 에슬링겐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라압 에슬링겐 시장의 말입니다.

"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보존하고, 기존 건물의 개조는 최소화 할 것. 이것이 에슬링겐 시가 건물 리모델링에서 요구하는 디자인정책의 핵심입니다."
"원래 있던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는다면 에슬링겐이 역사가 깊은 공업도시라는게 잊혀집니다. 매력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전통을 유지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현재의 마산. 공업도시였던가요? 지금의 모습으로 도시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을까요?
현재의 창원. 공업도시의 모습은 무조건 탈피하고 바꾸어야 하는 이미지 인가요?
현재의 진해. 이 또한 도시개발정책으로 공업도시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겠지요?


 




Trackback 1 Comment 2
  1. 이윤기 2010/07/09 10:27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개발 사례군요.
    싹 부수고 새로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2. 선비 2010/07/09 22:09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을 보면 창원이 갈 길을,
    창원을 보면 마산이 갈 길을 알 수 있음에도
    박완수 시장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모를 일입니다.
    도시공학 보다는 정치공학에 훨 관심이 많겠지요.

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12)조명: 광선반(Light Shelf)

광선반은 간단히 말해 앞서 설명되었던 측창채광으로 들어오는 빛을 실내 깊숙이 들이는 장치입니다. 햇빛이 선반의 반사면에 부딪혀 다시 천정으로 반사되어 유입되는 것으로 측창채광에 비해 실내에 빛이 고른 분포를 가지게 됩니다. 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마우스랜드'라는 생쥐들이 모여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뽑은 지도자는 생쥐가 아니라 매번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가 생쥐를 위해 일할리가 없..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교장들의 학교건물에 대한 생각> 직전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의 1928년 편을 보면 「學校建築號」라는 주제의 특집기사가 있습니다. 당시의 학교건축물 현황의 일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쌍용양회 '싸이로'는 근대산업유산이다!

● 어는날 갑자기! 사는 곳이 해안도로 근처라 아침마다매 창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시설물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시멘트를 담아두는 창고와도 같은 곳으로 '싸이로(Silo)'라는 놈이다. 그런데 몇일 전부터 이 싸..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마산의 건축물과 각종공사> 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대식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한일병합 이전까지는 주로 목조로 지은 공공기관이 주류였습니다만 1910년경부터는 벽돌조도 많이 지었습니다...

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11)조명: 측창채광

측창채광은 천창채광과는 달리, 말그대로 벽면에 위치한 개구부(창문 등)를 통해 자연채광을 실내로 들여오는 방법입니다. 창문외에도 유리블럭, 낮은 고창, 채광뜰(Sunken)이나 안뜰로난 수직 개구부 등을 통해 측창채광으로 얻는..

진해
진해 2012/01/25

‘진해’ 지명에 대한 글입니다. ‘진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옛 마산시 진동면 일대’의 ‘진해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한제국시대에는 ‘통합 이전 창원시(옛 의창군)와 옛 마산시 진동면·진전면·진북면 일원’을 ‘진해군’이라..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 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

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10)조명: 천창채광

자연채광 부분에서 잠시 거론되었지만, 파사드(전면) 개구부(측면 창문)를 통해 유입되는 자연채광이 닿지 않는 공간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천창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측면에 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천정에 창을..

신년되면 많이 받게되는 달력, 디자인 확 바꾸면

1년동안 벽에 걸어두고, 또는 책상위에 놓게 되는 달력들은 1월에는 넘쳐납니다. 여기 저기서 받아둔 달력중에서 어떤 달력을 놓을까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절에서 나온 달력이며, 근사한 미술작품을 곁들인 은행달력, 자사의 실적홍..

동영상 - 마산
동영상 - 마산 2012/01/16

지난 연말, 재경마산향우회 송년회용으로 마산도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툰 작품이지만 나쁜 평은 하지 않아 공개합니다. 곧 설입니다. 마산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마산에 얽힌 추억이라도 나누어보시죠. 분량은 1..

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9)조명: 자연채광 조닝

자연채광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물내 다양한 공간들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하는 통합적 설계방법입니다. 자연채광을 위한 설계에 있어서는 방(실)별로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빛 환경을 필요로 하는 방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

보도 조차 맘 편하게 걸을 수 없다니

최근 창원호텔 맞은편에 현장이 생겼습니다. 두 달 남짓 사무실이 있는 정우상가쯤에서 중앙동 민원센터까지 하루에 두세번씩 걸어갔다 옵니다. 분명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길임에도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도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몇차..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마산상공회>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

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8)조명: 주광율

앞서까지는 외피에 대한 내용을 다뤄왔으면, 이제 더욱 시스템적이면서도 메카니즘적인 조명분야에 대한 내용을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주광율(DF)는 실내와 실외 밝기간의 관계를 수치로 나타낸것입니다. 자연채광을 통한 건물의 그린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