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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 - 개항기

'진주가도' 알 수 있는 유일한 지도

<租界地現況圖* (조계지현황도*)>

1899년 / 창원감리 / / / 「창원보첩」감리보고 제7호 / 奎章閣

마산보다 2년 앞선 1897년에 개항한 목포와 진남포의 조계지에서 러시아가 영사관 부지를 턱 없이 넓게 차지하려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은 마산조계지에서 무려 60,000㎡나 되는 땅을 영사관 부지로 먼저 차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조계장정 제10관 제2조에 각 영사관 부지는 15,000㎡를 넘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를 무시하고 나섰던 겁니다.

일본의 이러한 위법적 의도를 간파한 창원감리가 이 사실을 외부대신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본 지도는 그 보고서에 첨부되었던 것입니다.

지도를 그린 목적은 일본의 영사관부지에 대한 야욕을 저지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보면 초기 마산각국공동조계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비록 축척도 없이 붓으로 그린 재래식 지도이지만 조계지내의 당시 모습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도면 중앙부에 일본영사관의 영역을 넓게 표시하고 있는데, 이 만큼의 토지를 차지하려 했다는 겁니다.

지도 설명을 위해 예목(例目)을 표기해 놓아서 구로(舊路)․신작로․표목․해관․천․인가 등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표목은 각국공동조계지가 결정되면서 박은 것이며, 조계지 내의 인가(人家)는 당시 월영리를 이룬 마을로 보입니다.
영국․일본․러시아 영사관 예정 부지가 영관기(英館基)․일영관기(日領館基)․노관기(露館基)로 표기되어있으며 서쪽에 월영대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도에는 바다로 내려오는 세 개의 하천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운데 창원천은 지금도 시내 중심을 흐르고 있지만 조계지의 경계점인 왼쪽 월영천(현 경남대 정문 부근)과 오른쪽 신월천(현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우측도로)은 복개되어 지금은 땅 속에서만 흐르고 있습니다.

지도 좌측에 칠원계(漆原界)라는 표시는 당시 자복포를 포함한 현재의 경남대 서쪽이 칠원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편 가운데 바다와 면해있는 기역자 부지는 세관(당시 해관)입니다.

해안 가까이 직선으로 신작로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개항 직후 이미 예정되었던 주도로의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신작로는 마산 최초로 개설된 근대식 도로인데 개설 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산의 주간선도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작로 좌측 끝부분이 경남대 앞 월영광장인데 그 곳이 그 때까지는 바다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시내 한복판인 월영대의 위치도 당시에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이었다는 사실까지 학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특히 본 도면에 의해 ‘진주가도’라 불리면서 창원-마산-진동(당시 진해)-진주로 연결되던 구도로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옛날 마산사람들이 진주방면으로 갈 때 이용했던 길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해안과 마을 사이를 지나는 꾸부렁한 저 길이 마산포를 진동지역을 거쳐 고성, 진주와 이어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 길을 오고갔던 마산포 사람들의 발자국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지도의 위치를 현재로 옮겨 보았습니다.
그림의 방향이 다릅니다만 비교하기는 쉬울 겁니다.
푸른색이 위 지도에 표기된 세 개의 하천이며 황색직선은 위 지도에 직선으로 반듯하게 난 신작로, 곧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마산시내의 간선도로입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2010/08/2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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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08:44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9)-요코하마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만들어 대기오염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미나토미라이21(Minatomirai 21)
21세기 미래형 항구도시를 뜻하며, 2차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되어 있던 요코하마를 바꾸기 위한 도시디자인계획을 일컫습니다.
행정(시 정부)에서는 공공시설을 건립하고, 민간(기업)에서는 업무, 상업, 문화시설을 맡아 개발과 공공성의 균형을 추구하였습니다.







요코하마시의 도시다자인의 8대 목표는 이랬습니다.

1.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공간의 확보

** 보행권 관련 법률
우리나라에서도 '보행권 확보 및 보행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안'('09년 7월 6일 발의)이 발의(이미경 의원)되었습니다. 보행자의 권리를 법률로 보호하고자 한것으로 벌써부터 제정되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잃어버린 보행권을 기 (조성)개발된 도시에서 어떻게 찾을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 지역의 지형, 식생과 같은 쾌적한 보행공간의 확보
3.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 중시
4. 풍부한 오픈 스페이스 자연의 확충
5. 바다와 강 등의 수변공간 활용
6. 인간 교차지점에 커뮤니티 공간의 확충
7. 형태적이고 시각적 아름다움의 추구
8. 도시문화를 창달하는 창조도시 구축


요코하마시는 '미나토미라이 21'을 도시계획의 명칭으로 정한데에는 먼저 시민의 합의에 중심을 둔것으로 보입니다. 명칭부터가 시민공모로 1981년에 지어진 것입니다.
도시계획의 명칭을 시민이 짓다...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인가요?

이 계획이 처음 시작된것은 1985년으로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계획에서 도시재창조의 1차완공까지 25년이 걸린셈입니다.
이 계획은 일본정부와 요코하마시, 민간기업 드리고 제3섹터인'Pacifico Yokohama Corp'가 공동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가. 행정(일본정부, 시정부)는 항만의 매립과 항만정비 등 기반시설의 조성과 미술관 등 공공시설의 건립을 담당하였고,
나. 민간기업은 업무, 상업, 문화시설 등을 담당하여 개발하였는데,
다. 이에는 개발과 공공성의 균형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미나토미라아 21 지구게획의 진행을 위해 기본협정을 체결(1988년)하고 세부적으로 '미나토미라이21 중앙지구 지구계획'(1989년), '미나토미라이21 신항지구 지구계획'(1997년)이 잇따라 결정되었고, 중앙지구계획은 주로 민간주도로 고층빌딩군에 의한 미래형 도시조성을 추진하였습니다. 반면 신항지구계획은 넉넉한 오픈스페이스를 유지하며 조화된 시가지 형성으로 균형적으로 조성하였습니다.

** 지구계획
- 도시계획법에 기초하여 건물의 건축 등 그 지구에서 정한 룰에 따라 지구에 어울리는  도시 조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제도임
- 기본협정과 지구계획에는 도시조성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포함되고, 건축물에 관한 대지규모, 높이, 보행자 네트워크, 외벽 후퇴 등의 기준이 나타나며, 고도정보화와 재활용사회로의 대응, 도시방재와 주변 시가지로의 배려 등, 도시관리에 관한 지정내용임


총 186ha로 이중 76ha는 매립으로 만들어졌으며, 토지이용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택지(업무, 상업, 주택 등)  87 ha
 도로, 철로  42 ha
 공원, 녹지 등  46ha
 부두용지  11ha 
 합계  186ha 

이러한 토지이용계획에 의해 초기 인프라 구축에는 천문학적인 비용도 들었습니다.
37억불 규모로 매립과 투지구획정리, 인프라구축비용으로 든 비용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요코하마시의 경제적 파급효과로 2조2,240억엔과 사업활동에 의한 1조1,233억엔의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 http://www.minatomirai21.com)

이러한 결과로 세계적인 귀추를 주목시킨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프로젝트는 196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1965년 : 요코하마시 6대 사업 중 '미나토미라이21사업' 초기 구상    

** 요코하마 6대 사업
1. 도심부 강화사업
2. 가나자와지구 매립사업
3. 쿄호쿠 뉴타운 건설사업
4. 고속도로망 건설사업
5. 고속철도 건설사업
6. 베이 브릿지 건설사업

○ 1978년 : 요코하마시와 중앙정부의 공동계획, 조사위원회 설립
○ 1981년 : 요코하마시의 마스터플랜 발표
                 요코하마의 정·재계,시민, 노동, 부인회 및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협력체계
○ 1983년 : 요코하마시의 기본계획 수립 완료
                 공유수면 매립허가 및 토지구획 정리사업인가 --> 본격적인 개발 시작
○ 1984년 : 제3섹터 방식 '(주)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발족
○ 1988년 : 미나토미라이 21 시가지 조성 기본협정 체결
                 토지소유자와 '(주)요코하마미나토미랑21'간 협약
○ 1989년 : 미나토미라이 21 중앙지구 지구계획 결정
○ 1997년 : 미나토미라이 21 신항지구 지구계획 결정
○ 2010년 : 미나토미라이 21 계획완료 (예정)

올해로서 마무리되는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 21' 프로젝트.
65년부터 시작되어 협정, 협약을 통한 민관 협력체계.
그리고 지구별 지구계획을 통한 도시디자인적 접근방법.
즉, 도시조성 기본협정을 기초로 하여 자주적 법률로 도시조성을 법제도적으로 확실하기 다지기(?)하는 도시설계(지구계획)의 방법 요코하마의 노하우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요코하마는 2005년 기준으로 5만6천명의 고용과 기업 1,140개사의 진출, 시 세금수입 110억엔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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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5 00:00

'롯데시네마'에서 일어난 황당한 이야기

모처럼 주말저녁에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영화보러 갔다가
영화 못보고 돌아왔다.
아니 기분 나빠서 안보고 그냥 돌아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문제는 '18세 이하 관람 불가 영화' 때문이었다.
여름 방학중이라 딸이랑 아내랑 집 근처 '롯데 시네마'에 갔었다.
( 극장명을 밝히는 이유는 실랑이를 벌였던 매니저가 극장 규정을 당당하게 얘기 하길래,
괜히 다른 극장에 민폐를 끼칠까 하는 우려때문에 실명을 쓰게 되었다.)

영화내용은 납량특집극 형식의 폭력물이었기에 '18관람 불가'가 붙었던 것 같았다.
아무 꺼리낌 없이 상영관에 입장하다가 제지를 당했다.
딸도 대학2학년이라 아무 생각없이 들아가다가 당한 일이라 황당하기 이를데 없었다.
딸은 가벼운 차림의 외출이라 신분증없이 나왔던 모양이다. 
신분증 요구에 없다고 하니 즉각 바같으로 내침을 당하게 되었다.

본인과 부모인 우리가 '얘는 분명히 21살이다'라고 얘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증 없이는 이유불문하고 않된다고 한다. 아 뿔 사 !
모처럼 가족간 나들이에서, 30분 정도 대기하다가 설렌 마을을 가지고 들어가려던 찰나에 '오 마이 갓'
딸은 제지를 당하여 밖에 서있는 상태이고,
우리 부부만 둘이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얘는 분명 21살이고, 부모인 우리하고 같이 들어가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라고 해도
무조건 않된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일단 삭히면서
'그러면 우찌하면 되는데?' 하고 물어보았다.
밑에 사무실에 내려가서 신분확인하고 '롯데시네마 카드'를 만들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영화는 봐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얘를 사무실에 같이 내려보냈다.
기다리다 가만 생각하니 화가 주체가 되질 않았다.
'야!! 느그가 무슨 근거로 18세를 판단하는데? "하고 따졌더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서 한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정○○ 매니저가 와서 규정상 어쩔수 없다는 얘기만 너무도 당당하게 한다.

(입장을 제지당한 문제의 장소, 그리고 당당히 서있는 매니저)



그러던 중, 사무실에 같던 딸아이가 올라왔다.
일단 나이가 확인이 되었으니 영화보고, 극장 카드를 만들라고 했다면서 올라왔다.
'봐라 얘가 분명 21살인데, 느그가 주관적인 판단으로 입장을 제지해서 기분 망치고 이게 무슨 상황이고?'
하고 따져 물었더니 미안할 뿐이라며, 늦었지만 입장을 하란다.
약 20분간 실랑이를 펼치고 난 뒤,
미안하다는 얘기 한마디로 망친기분이 회복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티켓을 반품하고 돌아왔다.

(문제의 영화 티켓!)


집으로 돌아 오면서,
'롯데시네마 규정'에 의한 서비스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매표소에서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서 미리 사전에 점검을 하였다면, 상영시작전에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었를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실랑이를 벌이는 중에,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고 나이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영화상영을 앞두고, 입장하는 시간에 제지를 당하게 되니---
 어떠한 대책이나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약 20분간 쓸데 없는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사무실에 가서 신분을 확인하고, 롯데시네마카드를 만들라고 한 점이다.
본인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그렇타고 쳐도, 원치 않는 카드는 왜 만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카드작성 기록은 거짓기록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생각하기 따라서 카드를 만들게 하려는 속셈이 있는것 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 '18세 이하 입장금지'을 위한 규정 운운하는 절차가 너무도 주관적이고, 무례하고, 불쾌하여 다시는 받고싶지 않은 서비스였다.
결과적으로 매표시 확인절차를 거쳤거나, 입장시에 예의를 갖추어 신분을 확인 할 수있는 절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에 의할 뿐이라며 전혀 미안한 기색없이 로봇처럼 대하는 태도가 한심스러웠다.
고객의 입장을 고려한 서비스정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미성년자가 아닌 것이 확인되었을 때, 보여준 무책임한 소리 딸랑" 미안합니다"
내 머리에 열대야 현상이 확 퍼지는듯 하였다.


자녀와 동반해서 영화보러 가시는분들!
'18세 이하 관람불가' 영화볼 때--
자녀 신분증 지참하고 가는것 잊지마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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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08/25 09:04 address edit & del reply

    만약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궁금해집니다.

    다른나라와 비교해보고 싶어서요...

    • 신삼호 2010/08/25 10:56 address edit & del

      글쎄요,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2. 저녁노을 2010/08/25 15:12 address edit & del reply

    헐..좀 그렇네요. 바로 조치해 주고 영화 볼 수 있도록 해 줘야하는 것 아닌가요? 쩝~
    잘 보고 갑니다.

  3. 류창현 2010/08/25 15:15 address edit & del reply

    저 매니저분은 본인의 역할을 잘 모르는듯 합니다. 저런식의 자세라면 신분증 확인하는 기계하나 갖다놓는게 훨씬 효율적이겠네요.

  4. 오유림 2010/09/01 20:21 address edit & del reply

    신선생님 일전에 따님과 들러주셨는데
    제가 몰랐네요 ^^
    주방안에서 바쁘게 일을 보느라(손님은 없었지만서두 전 많이 바쁘답니다)
    따님의 스타일이 굉장하던걸요 (멋진 신세대)
    인사라도 나눌걸 죄송했습니다.

    그 따님과 영화를 보러 갔었던 모양이네요
    그 영화가 워낙 거시키해서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 신삼호 2010/09/02 00:05 address edit & del

      그러니까, 그날 밥먹고 영화보러 갔었죠,
      식사는 맛있게 잘했었는데---

  5. 이런 2011/01/11 08:33 address edit & del reply

    다른 나라에서는 신분증 없다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없이
    그냥 육안으로도 안됩니다. 우리나라나 그나마 친절하죠;
    그리고. 제 생각엔 청불보면서 신분증 챙기시는 건 당연하고. 그게 좋을듯.
    그거 신분증 없이 보다가 경찰단속오면 극장도 문제지만
    님 자녀가 나이가 되든 안되는 님도 문제가 될수 있을걸요?

2010/08/23 10: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오늘부터 개항기 때 제작된 마산지도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도의 기본정보 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는 지도의 제목이며 제목 아래에 표기한 것이 지도의 기본 정보입니다. 표기 순서는「제작연도 / 제작자 / 발행처 / 축척 / 수록처 / 소장처」순입니다.
기록이 불가능한 부분은 해당 칸을 비워「/ /」로 표기하는데 지도제목이 동일한 경우에는 지도명칭 뒤에「*, **, ***」를 붙여 구분하겠습니다.


<馬山浦 及 附近, 마산포 및 부근>

1899년 / 上野亮 外 / 일본해군 / 1 : 49,054 / / 일본국회도서관


일제는 일찍부터 마산을 자신의 식민지 주요 거점으로 눈독 들여왔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산․부산 등과 마찬가지로 마산지역의 측량과 지도제작도 진작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도는 일제가 침략을 목적으로 한반도를 측량하기 시작한 직후 제작된 것입니다.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마산관련지도로 추정됩니다.

표기내용과 축척, 제작시기 등을 미루어 지난 주 올린 글에서 소개한「군용비도(軍用秘圖)」의 초기도면으로 보입니다.

지도의 왼쪽 상부가 마산포인데 도면의 명칭처럼 진해, 웅천까지 마산포 근방 해안을 상세히 표기한 지도입니다.
오른쪽 상부에 별도로 그려놓은 것은 거제도 지세포 항을 확대한 지도입니다.

마산포부분만 확대하여 옮겨보겠습니다.


지도 상부에 짙게 표시된 삼각형 지역이 마산포입니다.

이 지도에 의하면 1899년 마산의 도시상황은 마산포(원마산)의 영역인 남성동을 중심으로 성립한 일단의 자연발생 취락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산포(원마산)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소위 신마산에 일본인들이 새로운 도시, 즉 각국공동조계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위치는 지도의 좌측중앙부입니다. 가늘게 직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두 곳 사이에 위치한 중앙부(마산포와
신마산의 중간 부분인 현 자산동․중앙동 그리고 장군동 일대)는 논밭으로 이어진 채 인가(人家)가 거의 없었습니다.

원마산 외에는 오산이라 불렀던 용마산 아래의 현 산호동에 마을이 있었으며 북쪽으로 교방동 및 회원동 그리고 현 봉암교 아래의 봉암동에도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양덕과 합성 쪽에도 이 당시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이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환주산 근처에 성호동과 자산동, 그 남쪽으로 완월동․신월동․월영동 쪽의 마을도 잘 그려놓고 있습니다.

무학산에서 마산만으로 흐르는 하천은 교방천과 회원천․척산천(尺山川)․장군천․창원천이 표기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장군천이 현재처럼 직선으로 마산만과 연결되지 않고 휘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지도상의 장군천 하구는 마산선 철로의 기점이었던 마산 역 자리입니다.
1905년 이후에 제작된 자료들과 관련해 볼 때
장군천은 1905년 일본군에 의해 마산철도와 마산 역이 건설될 때 지금처럼 직선화된 것 같습니다.

각국거류지라고 표기되어 있는 조계지 내의 세관․일본영사관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건물은 개항과 함께 개설된 우편국을 말하는 것으로서 1899년 당시에는 임대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봉암동 쪽입니다.
지금의 창원공업단지에 표현되어 있는 염전인데 구전으로 전해오던 봉암의 대규모 염전이 이 지도가 정확하게 그 실체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지도의 오른쪽 상부에 바둑판처럼 격자로 그어 놓은 것이 염전 표시인데 이 염전은 해방 이후까지 존속하여 1947년에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나타납니다.

보는 것처럼 이 지도에는 진해만을 중심으로 마산포 부근의 해안선․수심․지형 등이 비교적 정밀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특히 간석지의 경계까지 상세히 표기해 놓아서, 매립 등으로 사람의 손이 닿기 전에 존재했던 천연상태의 마산포 해안 원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보입니다.

이 지도는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찾았습니다.
지도를 보는 순간, 그리고 이 지도가 1899년 제작되었다는 기록을 보는 순간, 저는 전율했습니다.
너무나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의 내용에 놀랐고, 다음은 1899년이라는 시기와 제작자가 일본해군이라는 점에 또 놀랐습니다.

1899년에 제작했다면 비밀리에 한반도 곳곳에 들어와 측량한 시기는 그 보다 몇 년 전일 겁니다.
1899년은 마산이 개항된 해이기도 하지만 을사조약 6년 전, 경술국치 11년 전인데 이미 그 때 한반도의 해안을 이렇게 샅샅이 조사해 놓았다는 사실에 놀랐던 겁니다.

조선을 식민지 삼겠다는 야욕이 한 눈에 확인되는 이 지도를 보면서 '이렇게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준비한 일제의 야수를 벗어날 길이 없었겠구나'라는 자조감도 들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위 지도에 표기된 부분의 현재상황입니다.



끝으로 이 지도를 조금 더 확대해 현재 마산시내의 시설물들 위치와 비교해보겠습니다.
3.15의거 탑 바로 앞이 바닷가였고, 대우백화점은 바다 한 복판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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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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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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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0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8) - 물의 도시 오사카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만들어 대기오염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지난 슈투트가르트가 바람길을 만들었다면, 오사카는 물길에 주목했습니다.

직면한 사회문제(저출산, 고령화)와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물의 도시 오사카'를 추진하여 도시의 재생과 임해부 녹지거점을 만드는 등 14개의 도시재생프로젝트를 결정하고 시행하였습니다. 또 고층빌딩에도 옥상공원을 조성하여 옥상녹화도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 '오사카 21세기 종합계획'의 사업배경

면적 222.3㎡, 인구 2백60만명의 오사카는 상공업을 중심으로 일본 제2의 도시로 발전하여왔습니다. 하지만 오사카는 산업발전과 함께 급격한 인주증가와 시가지의 확대, 높은 고령화율의 문제에 직면하자 세계속의 오사카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도시로 단장하기 위해 '오사카 21세기 종합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오사카시는 1990년대부터 거품경제의 붕괴, 저출산 고령화의 진행, 정보화의 진전 등 사회경제적 변화에 적응하며 변화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따라 1991년 9월에 수립한 '오사카부 신 종합계획(10년 계획)'을 사회변화에 맞추어 2000년 12월에 '오사카 21세기 종합계획'으로 개정하였습니다.

이 계획에서는 '오사카의 재생과 원기 배중'을 목표로 하고 미래상으로 '건강한 시민', '생활의 안심', '활기찬 도시'로 하였습니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 '연계형 지역구조' 형성을 제시하여 오사카 각 지역의 생활축을 연계하는 거점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이 계획을 통한 종합적인 목표는 '도시재생'이며, 도시재생에 관한 시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01년 5월에 '도시재생본부'를 설치하고 총 여덟차례에 걸쳐 '도시재생프로젝트'를 결정해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오사카 도시재생프로젝트의 특징은 '경제와 도시방재 기능을 효과적으로 정비하면서도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입니다.
12개 도시재생 프로젝트 중 환경 측면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으로 '물의 도시 오사카', '오사카만 재생 프로젝트' 등이 있습니다.

** '물의 도시 오사카' 프로젝트
- 2003년 '물의 도시 오사카 재생 구상'을 기본으로 오사카시의 약 10%를 차지하는 
   수변공간(Waterfront)을 중심으로 도시를 정비하는 사업
- 인공매립된 오사카만과 도톤보리천 등의 하천을 중심으로 발전

큰 그림을 완성하는데에는 작은 하천정비계획과 같은 작은 계획으로부터 시작되었었습니다. 'Green Water Plan(1973)'과 'Green Water Plan 83(1983)' 등의 수립이 해당하며, 하수도의 정비나 공장배수 규제 등을 통해 수질개선과 하천정화, 도심환경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정비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심과 수변환경의 정비에 있어서 인식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에 '국제 수도 정상회의(ICAP)'를 개최하고 2003년에는 '세계 워터포럼'을 개최하였습니다.
도시재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물의도시 오사카'의 구체적인 사업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름다운 수변도시를 만든다.
2. 수변의 활기를 만든다.
3. 수변을 네트워크화 하여 매력을 높인다.
4. 안락한 물환경을 만든다.


수변정비사업의 중심에는 '도톤보리천'과 '요도가와강'이 있습니다.

** 도톤보리천(道頓堀川)의 수변정비 사업

- 도톤보리천은 오사카를 대표하는 하천으로 미나미 남쪽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이 2.7km, 폭 28~50m의 운하형 하천
- 수변정비 이전에는 하천제방이 콘크리트 옹벽으로 이것은 홍수방지턱과 하천접근을 할 수 없도록 만든 시설이 되었고 남북횡단의 16개의 교량에서만 하천을 바라볼 수 있음
- 친수성 하천으로 복원한다는 목표로 1990년 오사카시청 하천위 원회가 수변정비를 제안하여, 물의 도시 오사카를 재창조하는 야심찬 20년 장기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하고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동안 총 240억엔(2400억원)을 예산을 균등하게 연차적으로 투자
- 개발의 방향도 운하형 하천인 관계로 친수적 수변공원 이용에 목표를 두고 있으며 정비사업이 완료되면 프랑스 세느강 유람선을 모델 삼아 작은 유람선도 운행할 계획
- 최근 부분적으로 준공된 데라스형 수변데크조성 소재는 대부분 목재를 이용하였으며 다자인과 시공면에서 매우 섬세한 보습을 보여주고 있음

오사카의 다른 하천들(기즈천, 히가시요코보리천, 도시보리천 등)은 오사카시의 면적 10%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강변으로는 경관관리를 위해 4개의 경관관련 지구로 지정하였습니다.
시설광장지구, 야초광장지구, 자연지구, 경관보전지구가 있으며, 수변에는 인공습지를 조성하는 등 친환경적인 공간을 형성하였습니다.
수변정비사업에서 하천의 상류인 요다가와강을 정비하는 것과 오사카시 도심의 하천관리를 병행하여 도시의 생태를 살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수변정비사업으로 시작된 '오사카만 재생프로젝트'에는 또 하나 두드러진 내용이 있습니다.
수질오염이 만성화된 오사카만을 재생하기 위해, 이곳에 '공생의 숲'을 형성하여 대규모의 녹지를 조성한 것입니다.
'공생의 숲'은 폐기물 매립이 완료된 매립장을 녹지공간으로 재활용하여 순환형 사회형성의 상징사업으로 추진하고자 한것입니다.

'경제중심에서 환경중심으로', '인간중심에서 자연중심으로',
이것이 오사카로부터 배울 도시재생의 주제입니다.

http://byspeech.tistory.com/16

- 그린웨이



- 워터프런트





-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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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08/20 10:53 address edit & del reply

    네,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이 없어도 이런 도시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 맹나윤 2010/08/21 22:38 address edit & del reply

    많은 글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배울점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에 즐겨찾기를 하고 가는 1인입니다.
    현재 디자인분야의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도시디자인 및 공공디자인 분야의 일을 해보고자 공부중인 젊은이입니다. 제가 사는 도시는 인구 10만이 겨우 넘는 아주작은 지방도시인데요
    이와같이 작은 소도시가 새로운 창조적 디자인으로 보다 살기좋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 또는 더 많이 사람이 살고자 하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떤정비가 필요할까요? 카테고리의 글을 읽다보니 하나같이 크고 거대한 도시들의 성공사례여서..
    물론 이 글에서도 많은걸 배우고 가지만 혹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에 기대어 지방소도시의 성공사례에 관한 내용에는 어떤것이 있을까 여쭙고 싶어서요.. ^^; 짧게나마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허정도 2010/08/22 08:07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사는 곳이 어느 도신지 궁금하네요.
      인구 10만 이면 아주 작은 도시는 아닙니다.
      수십만 수백만 되어야 큰 도십네하는 우리의 풍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사례를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경성대 강동진 교수가 펴낸 '빨간벽돌창고와 노란전차'을 권해드립니다.

  3. 맹나윤 2010/08/24 13:27 address edit & del reply

    고맙습니다. 권해주신책 구매했습니다.^^
    제가사는곳은 경기도 안성시 입니다.
    아직은 그저 공부중인 시민이지만
    언젠간 써먹을 날이 있겠죠 ㅎㅎ

    • 허정도 2010/08/24 19:19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도시는 행정에 의해서, 혹은 전문가에 의해서 재생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정+전문가+기업+시민 등이 함께할 때 재생의 가능성이 넓어집니다.
      맹나윤 씨의 헌신을 기대합니다.

2010/08/1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식민지배의 예고, 일본의 조선 측량>

음 글을 시작으로 그동안 제가 수집한 마산의 지도를 간간이 소개할 계획입니다.
먼저
 일본과 우리나라의 근대지도에 얽힌 글 한 편 올립니다.<<<


고대 지나(支那)에서 행한 도량형 및 측량 등의 기술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조선반도를 거쳐 점차 일본에 도래하였다. 따라서 일본에 있어 태고로부터 행한 원시적 측량은 이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변천을 보았다

이 글은 『일본토목사(日本土木史)』의 측량 장(章) 서두입니다.
이 글에서처럼 고대 일본은 중국의 측량술을 우리나라를 통해 도입하고 개선해 나갔습니다.

근대 일본의 측량술은 이노우 타다타카(伊能忠敬, 1745-1818)가 기틀을 세웠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측량기술 개발이 일본근대측량술의 발전을 앞 당겼습니다.

'일본의 김정호'라 부를 수 있는 이노우 타다타카는 1745년 혼슈 지바현에서 태어났습니다.
 50세가 되던 1794년, 장남에게 가사를 맡기고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에 나가 서양의 천문, 역법, 측량을 배웠습니다.

1800년 막부(幕府)의 명을 받아 홋카이도 동남 연안을 측량한 것을 시작으로 1818년 에도부(江戶府) 측량도를 완성하기까지 19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측량에 몰두하였습니다. 측량기기는 직접 제작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노우 제작한 지도는 당시의 기술수준에 비교해 놀랄만큼 정확했습다.

이노우의 업적은 1/36,000(대도, 大圖) 1/216,000(중도, 中圖) 1/432,000(소도, 小圖)라고 부르는 유명한 이노우도(伊能), 즉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與地全圖)가 대표적입니다. 

아래 지도가 이노우가 제작한 '대일본연해여지전도' 중 서일본, 즉 큐슈 쪽입니다. 왼쪽 윗부분에 대마도도 보입니다.
몇년 전에 "일본 최고의 지도에 독도 표기가 없으니 독도는 원래 일본영토가 아니다"라며 국내언론들이 크게 보도한 그 지도입니다.
이노우가 직접 실측한 이 지도는 그가 죽은지 3년이 지난 1821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김정호 보다 60여년 먼저 태어난 이노우가 이런 근대식 지도를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일본의 근대 측량술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노우는 일본인들에게 ‘일본 근대측량의 아버지’로 불리면서 지금까지 일본국민들로 부터 대단한 숭앙을 받고 있습니다.

측량과 관련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측량을 하기 위해 일본 열도를 답사한 거리가 4만 킬로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지바현에 있는 그의 생가에 선 그의 동상입니다.


이노우(伊能)와 같은 선각자가 있었던 탓인지 일본은 19세기 중반부터 서구의 측량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측량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해 측량기술의 개발과 전승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도제작을 이적행위로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측량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일본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876년)에서 조선항로의 측량을 요구했습니다만 우리 정부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들의 측량을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약 체결 이후에도 일본의 조선항로측량은 뚜렷이 진행되지 않았으며 일본 내부의 측량 기술력을 향상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실제로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목적으로 이 땅의 측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895년경이었습니다.

1895년 3개조로 나눈 일제 임시측량반이 한반도에 파견되어 1/50,000 지도를 간행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한반도 측량계획은 조선주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1개조만 남아 1900년까지 1/200,000 지도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공식적인 시도와는 별도로 일본육군참모본부가 한반도를 비밀리에 측량하여 제작한 지도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1899년 발행한 1/50,000의「군용비도(軍用秘圖)」입니다.
총 300개의 도엽으로 만들어진 지형도입니다만 여기에 마산 도엽은 빠져있습니다.

1895년에 들어온 일본인 측량부대를 관청에서는 제반 편의를 제공하는 등 극진히 대우하였습니다만 주민들은 대부분 이들을 싫어했고 지역에 따라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측량기사들에게 칼을 주어 스스로 신변을 보호하게도 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함흥, 대구, 제천, 여주와 함께 창원지역에서 특히 저항이 심했다고 합니다.


창원에서는 1895년 11월 동래부 근방에서 요코이(橫井) 측량수가 작업 중 한국인 6-7명에게 담배가 든 휴대품 등을 강탈당하였고 투석의 위험이 있어 간신히 도망쳐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또 창원의 자여역(自如驛)에서 스이스이(垂水) 측량수가 동행한 고용 한국인이 촌민과 논쟁한 후 얻어맞자 이를 제지하였습니다.
그날 밤 촌민 수십 명이 스이스이의 숙소를 습격하려했습니다만 창원부에서 출장 온 한국 관리가 제지하여 무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측량수를 습격하려던 주모자는 그 근방의 관리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근대적 측량을 최초로 접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일본육지측량부'가 펴낸 육지측량부연혁지에 의하면 1896년에 조선왕족 이준용이 일본 육지측량부 제도작업을 참관하였고, 1898년 이주환이 2년 과정의 초등지형측량학과를 졸업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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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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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7 19:3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허정도 2010/08/18 07:12 address edit & del

      박현수 학생,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네.
      생각대로 잘풀린다니 다행이군.
      창의적인 작품으로 높은 평가 받아 꼭 마산에 다시 한 번 오기 바라네.
      빡빡이 회이팅!!!

2010/08/13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7) - 슈투트가르트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만들어 대기오염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최근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습니다.
도시들이 이제서야 도시개발과 산업화에 대한 후유증을 깨닫고, 자연환경이 지속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조정,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슈투트가르트가 있습니다.

도심내에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고 분지의 지리적 특성과 공업도시라는 태생적 특성을 도심내 녹지조성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람길을 열어주는 도시계획이 그 주요내용입니다.
도시외곽에서 부터 도심내부로 바람이 잘 통과할 수 있도록 9개의 공원을 U자형으로 조성하여 지속적으로 그 변화를 관찰하고, 건물의 외부상한선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 시작은 문제점의 발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3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평균풍속이 0.8m/s~3.1m/s로 타지역에 비해 바람의 흐름이 느렸습니다.
그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각했으며, 스모그의 피해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람의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도시에서 바람이 다니는 길을 파악하여 그 곳에 녹지를 조성, 바람길에 따라 녹지축을 형성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도시기본계획에 해당하는 F-Plan과 지구단위계획에 해당하는 B-Plan을 통한 규제방안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바람길의 연결을 위해 9개의 공원으로 이어진 바람길을 조성한 '그뤼네 U프로젝트', 주거지역인 '아젬발트 지역정비' 그리고 도심지인 '중앙역사 지역 재건축'등이 있습니다.



1. 그뤼네 U 프로젝트
바람길을 연결하는 녹지축의 모양이 알파벳 'U'자 모양을 닮았다는 뜻입니다.
총 8km의 길이 정도로 생태다리, 숲길, 재단 등의 다양한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 각각 떨어진 녹지를 연결하며, 도시의 정체된 공기를 순환시키는 허파기능을 함으로써 도시기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2. 아젬벨트 지역 정비
1968~1972년, 약 3,0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20층 건물 3동을 건립하는 계획으로, 처음에는 녹지를 피하고 단독주택을 건설하는 내용이었으나, 녹지를 보호하고 바람길을 고려하여 고층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고층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찬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건축한 고층건물의 모범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3. 중앙역 지역 정비
이 프로젝트는 1988년부터 슈투트가르트시가 주정부와 (주)독일철도와 함께 논의해 온 슈투트가르트 21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중앙역의 기능을 개조하고, 철도교통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화물역사를 신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시는 SLAS 프로그램을 자체 운영하여, 2년마다 시 차원에서 항공기를 이용하여 촬영하는 항공사진을 통해 어디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고, 녹지율이 어떻게 변하는지 등 도시를 지속적으로 관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법적으로 안정적인 녹지지역, 공사 및 건축금지지역, 공공녹지, 정원용 부지 등으로 분류하여 숲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규제를 시행중이며, 시행중인 규제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보기

슈투트가르트에서 바람길 활용계획에 따라 수림지가 전체 도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3.9%에 이릅니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한 프로젝트의 추진은 사실상 1968년부터였습니다.

 1968~1972년 : (녹지보전과 바람길 보전하면서) 주택건설 : 아젬발트 지역
 1976년, 1979년 : 독일연방 건설법 개성(바람길조성과 활용에 관한 법적 근거 마련)
 1988년 : 중앙역 지역 재건축 결정(슈투트가르트 시와 [주]독일철도 공동시행)
                * 슈투트가르트 21프로젝트의 일환
 1997년 :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재개발 설계안 공모(126개 접수)
                * 도르프 건축설계사무소의 안으로 최종선정
 2020년까지 : 모든 기차역의 지하화(바람길을 완벽하게 형성)
 2040년까지 : 지속적인 토지이용계획
                 * Sutainable Brownfields Development Stuttgart(NBS) 프로젝트 

2020년까지 기차역까지도 바람길 활용계획에 따라 지하화 한다는 계획, 그리고 2040년까지 지속적으로 토지이용계획에 따른 NBS 프로젝트로 녹지율 20% 이상 향상을 목적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가 다른 도시와 차이를 보이는 점은 숲이 끝나는 지점과 도시의 시작지역(주택지역)을 녹지로 연결한 점입니다.
고질적인 대기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외곽으로 부터 바람이 자연스럽게 도시로 들어와 순환할 수 있도록 한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도 도시의 형성에 있어 알맞은 균형을 이루어 가는 도시계획.
이러한 노력으로 슈투트가르트의 수림지 ('암랭크', '그린비웬' 호수)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유럽의 조류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도시계획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균형이 아닌가
'
하는 생각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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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비 2010/08/13 14:52 address edit & del reply

    창원은 78년 신도시설계시 바람길을 분석하여 공업지역과 주거지역을 배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공무원이나 시민은 몇이 되지 않지요.
    하여 저는 박완수시장이 읍면동 순시시에 창원의 인구밀도 조절과 바람길 조성을 이야기 하였더니 다음 도시기본 공청회에서는 바람길을 어쩌구 저쩌구 하여 참석한 도시공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지요.
    그런데 그 이후 바람길에 대한 계획은 언제나 글귀만 있고 도시계획 어디에도 흔적을 볼 수 없었습니다. 창원39사단 이전부지에 대한 저의 견해는 그 연장선에서 이야기 한 것인데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말로는 그럴싸, 실속은 전혀 없는 환경수도, 생태도시, 자전거 도시의 창원을 보면서 실망만 늘어갑니다. 아마 앞으로도 박완수는 변함이 없을 것이3ㅂ니다.

  2. stuttgart21 2010/09/07 04:20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 이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지않은
    Stuttgart21프로젝트가 큰 문제로 대두되어 몇만명씩 데모를 하고 있는상황입니다.
    조류보호지역이자 여러 희귀동물의 서식지였던곳을 다 밀어버리고 몇백년 된 나무들도 가차없이 베어지게될 운명입니다.
    바람길이라 할수 있는곳에 버젓하게 서있는 지방은행의 건물 또한 가관이구요
    몇몇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연합하여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거짓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아주 볼만한 쇼를 하고 있습니다.

    • 허정도 2010/09/07 08:46 address edit & del

      놀랍습니다.
      현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는지요?

  3. stuttgart21 2010/09/07 19:51 address edit & del reply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몇가지만 말씀드리면,
    60년간 바뀐적이 없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지방 정치권에서
    거짓자료를 바탕으로 이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는 예산은 이미 공사가 시작도 되기전에 우려의 목소리를 자아내고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바람길을 위해 몇백 그루의 나무들이 베어져야하며
    공사가 끝날때까지의 15년에서 20년간의 환경오염은 말할것도 없고
    그 후에도 그지역에 나무가 자라기까지의 시간은 최소한 몇십년이 걸리며,
    게다가 그 지역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가능성 또한 높습니다.
    그들이 내어놓은 터널계획은 예산을 줄이기위해
    14cm 가 모자란 벽의 두께로(정상 두께일경우 예산을 넘게됨) 안전성을 위협하고 있고
    완성된 플랫폼의 경사는 6,5미터로 여행가방과 달리기 경주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쉽구요
    그밖의 여러가지 일들이 시민들을 분노에 휩싸이게하고 있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건축가가 한 지리학자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작년에 손을 떼는일도 발생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의 지형은 구멍난 치즈와 같아서 건물에 금이 가는정도가 아닌 건물 자체가 사라지는 엄청난 위험부담이 있음) 이미 독일 쾰른에서 그와같은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구요.
    그밖에 고위 정치인이 고문자리에 있는 담당 건축회사도 문제였고,
    프로젝트를 위해 역사적보호건물로 지정되어있던 중앙역을 법을 바꿔가며 해지시켜
    지금 열심히 무너뜨리고 있구요.
    여러 지리학자와 환경청에서 경고를 하고 있음에도 서둘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제 어쩔거냐는 식의 배짱을 튕기는 몇몇 정치인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이 Stuttgart21 입니다
    www.kopfbahnhof-21.de
    www.parkschuetzer.de
    에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 허정도 2010/09/07 22:57 address edit & del

      탐욕에 가득찬 자본가들과 악한 정치인들이 빚어낸 슈투트가르트의 비극이군요.
      시민들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합니다.

  4. stuttgart21 2010/09/08 01:51 address edit & del reply

    조사결과에 의하면 시민의 3분의 2가 이 프로젝트에 반대를 하고 있고
    애초에 이 결의안이 통과된것도 조작된 자료와 진실을 숨기는 방법으로 가능했던것입니다.

    독일인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시위를 하는일이 얼마나 드문일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정치인들도 이정도의 파장은 예상치 못했구요
    이런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TV 토론이 벌어졌을 정도니까요.
    신가한것은 보란듯이 기차역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데모에 참가하는 시민수가 급 증가 했다는겁니다. 비오는 거리에 5만여명이 모인것을 비롯하여 그때부터 데모는 더 가열되고 있고 점점 더 전 독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집권당의 대표적인 표밭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선거때 보자고 벼르는 대형플랜카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메르켈 독일수상이 언제까지 침묵할수 있는지도 관심거리중 하나이구요.

    말이 많이 길어졌군요...그래도 진실은 알리고 싶어서 아는대로 적고 갑니다.

    • 허정도 2010/09/08 08:28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도시를 지키려는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의 행동이 경이롭습니다.
      진정한 시민정신이 느껴집니다.

  5. harpiai 2011/11/15 04:53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고 갑니다. 약간 퍼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과 좋은 이야기 담아주셔서 많이 배우고갑니다.

2010/08/0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마산이 문을 열다>

1899년 5월1일, 마산이 문을 열었습니다.
'개항'이라는 이름으로 인근 신월리와 월영리(현, 신월동과 월영동)에 '각국공동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이 도시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습니다.
'조계지'의 위치는 마산포의 남쪽 약 2km 거리의 해안이었습니다.
 


개항은 긴 세월 동안 마산사람들 삶의 터전이었던 마산포의 도시구조에도 결정적인 변화와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마산포(원마산)의 모든 것들은 개항지인 소위 ‘신마산’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됩니다.

마산포 개항은 1898년 5월 26일 의정부 회의에서 찬성 7표 반대 3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사흘 뒤인 5월 29일, 대한제국 외부대신이 마산포․군산․성진의 개항과 평양의 개시(開市)가 결정되었음을 각국 공사에게 통고하였습니다.
이 중 평양은 연기되었고 마산포․군산․성진 만 시행되었습니다.

개항업무를 관장하기위해 구(舊) 조창전운사아문(漕倉轉運使衙門)이었던「마산창」자리(현 남성동 파출소 일대)에 「창원감리서」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원군수 안길수를 창원감리서리로 겸임시킨 후 1년 이내에 개항준비를 마치도록 명령했으며, 해관(海關)측량사를 마산포에 파견하여 그 해 8월까지 조계지로 사용할 부지의 측량을 마치게 하였습니다.

외부대신의 명령을 받은 창원감리는 곧바로 신월리와 월영리 일대 138,880여 평을 구획하여 각국공동조계지로 정하고 이를 1899년 5월 1일 각국 대표자인 부산세관장 스카글리오티(A. Scagliotti, 이태리인)에게 인도함으로써 마산포 개항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계장정의 조인은 같은 해 6월 2일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공사가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스카글리오티는 각국공동조계지를 인도한 후 곧바로 창원감리서 내에 부산세관 마산출장소를 설치하고 출장소 주임에 독일인 아르노스(Arnous)를, 보조로 일본인 관세사 등본종태랑(藤本鍾太郞)과 고교가길(高橋嘉吉)을 임명하여 조계지 획성(劃成)업무를 보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신마산'은 개항기 때 설계한 '조계지'의 도시형태 그대로입니다. 현 마산도시의 공간구조가 '조계지'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항 당시 '조계지'의 설계는 현 마산도시구조의 근간이었습니다. 시내 간선도로를 살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시사학자 손정목 선생은 마산 조계지의 설계자가 네델란드인 스태든이라고 했습니다.

스태든은 일찌기 주한 초대 영국공사 파크스와 초대 경성총영사 아스톤(W. G. Aston)에 의해 고용된 측량기사입니다.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그들과 더불어 내한하여 마산조계지 외에도 인천 목포 군산 등 여섯군데 조계지를 설계하였습니다.
앞에서 말한 '마산포에 파견된 해관측량사'가 스태든 아닌가 싶습니다.

아래의 그림이 조계장정에 첨부되었던 마산의 각국공동조계지 설계도면입니다.
설계도면에 그은 푸른색 안쪽 부분과 현재 도시 상황을 자세히 비교해보면 개항 때의 도시계획이 이 도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계지가 확정되자 공동조계의 획정을 내용으로 하는 조계장정을 조인했습니다.

각국공동조계지로 구획된 토지는 제1등지(甲地區․A地區․Low Lying Lots․低地區), 제2등지(乙地區․B地區․Hill Lots․山地區․高地區), 제3등지(丙地區․C地區․Foreshore Lots․海邊地區) 3종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제1등지는 해안에 근접한 상업지로 현재 시내버스가 다니는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동쪽 바닷가 일대입니다. 위 설계도면에 표기된 부분이 제1등지입니다.
제2등지는 제1등지가 근접해 마주보는 서쪽일대였으며, 제3등지는 제일여고 정문앞도로 주변의 경사지였습니다.

조계장정에는 조계지 주위 10여리를 개방하여 매매와 양도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한 조계지 내에는 경작을 금지하고 오직 건축만 하도록 했으며 위험하거나 고열을 취급하는 건물은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조계지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마산포각국조계(馬山浦各國租界)’라는 문자를 조각한 표목을 경계선 양단의 만조점에 각각 한 개씩, 그리고 조계지 구역 경계선이 꺾어지는 지점마다 한 개씩 세웠습니다.

마산에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살 수 있었던 최초의 땅 '마산포 각국공동조계지'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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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사례(6)-파리 라데팡스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프랑스 파리는 계획된 도시로 유명합니다. 또한 그 면적은 0.25%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인구의 1/6이 집중되어 있고, 세계적으로 4위의 인구밀집지역입니다.
또한 오랜역사를 통해 형성된 도시로, 각 시대별 특징이 나타나는 건축물들이 모여있는 도시로서 하나의 도시건축 박물관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파리는 전통만을 고집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통의 보존과 더불어 현대와의 조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왔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부터 도시계획이 시행되어 본격적으로 도시를 가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테랑 대통령시절,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국책사업으로 아랍문화원(Jean Nouvel), 국립도서관(DOminique Perrault), 루브르 유리피라미드(I.M.Pei), 라빌레뜨공원(Bernard Tschumi) 등 10여개 사업을 시행하였습니다.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들, 그것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축가들에 의해 디자인된 건축물은 오랜(낡은) 도시의 전통과 어우러지며 도시의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전통도시 파리를 현대화된 젊은 도시, 변화하는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그랑프로제(Grand Project)로서 파리외곽 신도시인 라데팡스를 조성하는 도시계획 사업입니다. 파리의 구도심과 신도시(라데팡스)를 연결하여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랑프로제(Grand Project)를 통해 라데팡스 개발은 1964년 마스터플랜 수립에 따라 단계별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최근 2007년까지 주거기능이 보완되었습니다.

그랑프로제의 추진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시기
(1958~1969년)
 라데팡스 개발청(EPAD) 설립
 제2시기
(1970~1980년)
 RERA선 개통 및 라데팡스 순환도로 개통
 Aurore 타원, Defence 2000타워, Manhattan 타워 완공
 제3시기
(1980~1990년)
 Les Miroirs 타워, Scor 타워, Athena 타워, Descartes
 타워 완공, 쇼핑센터 Les Quatre Temps오픈
 신개선문 완공
 2000년 이후~  기타 각종 무수의 타워 건립
 지하철1호선 개통 및 완공
 트램 개통 및 완공

라데팡스 개발은 총 750ha 지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비즈니스지구와 공원 및 주거복합지구로 구분되어 계획, 시행되었습니다.
라데팡스 개발청은 1958년부터 준비 및 설립이 이루어졌고, 운영비는 라데팡스 지역에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건축권을 판매하는 것으로 충당하며, 건축권 판매비는 개발청의 유일한 수입원이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신도시 라데팡스의 혁신을 주제로 다시 또 한번의 라데팡스 부흥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신도시로 계획하여 추진하였지만 70,80년대부터 들어선 건물들이 낡아버린 셈이지요.
따라서 '라데팡스 2015-미래의 감각'이란 프로젝트를 발표해서 "낡은 라데팡스를 혁신한다"는데 초점을 두고, 사무공간과 주거공간을 확장하는가 하면 기존의 낡은 빌딩들을 개보수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
이 노력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파리는 매년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으며, 그로인한 80억유로의 경제이익을 챙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58년 부터 시작된 파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계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그들의 '끝 없는 도전과 비전',,,,,,,
우리가 배워야할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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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mmy 2010/08/06 10:21 address edit & del reply

    소중한 글들 잘 보고갑니다 ^ ^*

2010/08/04 02:12

보행로에 주차한 자동차를 밟고 지나간다면?


"당신의 차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 밑으로 기어서 가기가 싫어서요."

보도를 막고선 자동차를 보면 어떻게 하세요?
 

짜증은 나지만 대부분 차도로 비켜갈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간혹 소심하게 윈도우브러시를 세워놓거나, 짜증이 인내를 넘어서면 차주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육두문자도 좀 가미해서....  진짜 속마음은 이놈의 예의없는 주인의 차를 발로 걷어차고 싶지만,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차주가 나타나 손해배상을 청구할것만 같아 그렇게까진 못합니다.

저보다 용감한 한 사람이 인도에 주차된 차들 위를 걸어서 지나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독일인'미하엘 하르트만'이라는 사람인데요. 그는 자동차들이 인도를 점령해 보행자 뿐만 아니라 휠체어나 유모차까지 가로막자 인도에 주차된 차들 위를 걷기 시작했고, 이는 단순한 사건을 넘을 하나의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인도에 주차된 차들 위를 지나가면 "당신의 차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 밑으로 기어서 가기가 싫어서요."라는 전단을 앞창에 남겨두기도 했답니다.

인도에 주차했다가 차가 밟힌 어떤 운전자가 법원에 제소를 했는데요, 독일법원은 그차를 손상할 의도가 없다면 자동차위를 걷는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고하네요. 참 부러운 판결입니다.


요즘 TV에서 자주보는 현대자동차 쏘나타 광고를 캡쳐해봤습니다.  전하는 내용이 일맥상통하진 않지만 운전자가 결국은 보행자임을 자각시켜줍니다. 
운전자나 차도 보다 보행자와 보행환경을 먼저 고려하는 정책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습니다.하지만 그에 앞서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자의 의식이 나아지길 바래봅니다.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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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춘풍 2010/08/04 02:21 address edit & del reply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데, 운전자의 마음은 또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답답하겠금 하는 보행로 길막음은 정말, 법적인 해결방안이 강구될때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달팽이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

    • 류창현 2010/08/04 13:56 address edit & del

      맞습니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제도로 의식을 전환시킬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방문감사합니다.

  2. 이윤기 2010/08/04 06:34 address edit & del reply

    경고 스티커를 제작해서 무료로 나눠줄까요?
    보행자를 가로 막은 차를 만나면 붙이고 가도록...

    • 류창현 2010/08/04 13:57 address edit & del

      보행자 권리찾기 운동 한번 하죠. 스티커 만들면 저도 좀 나눠주세요.

    • 허정도 2010/08/04 13:58 address edit & del

      괜찮은 생각인데요?
      보행자 막는 버릇 없는 차 만나면 스티커 한 장 꺼내 운전석 앞 유리창에 딱 붙여주는 운동....
      엘로우 스티커가 어울리겠네요.

  3. 옥가실 2010/08/07 11:58 address edit & del reply

    혹, 나도 저런 곳에 주차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밟히지 않은게 다행이네요.
    하지만, 남이 해놓은건 짜증이 팍 나니,
    딱지붙이기도 한 방법이겠네요

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12)조명: 광선반(Light Sh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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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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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11)조명: 측창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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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진해 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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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10)조명: 천창채광

자연채광 부분에서 잠시 거론되었지만, 파사드(전면) 개구부(측면 창문)를 통해 유입되는 자연채광이 닿지 않는 공간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천창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측면에 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천정에 창을..

신년되면 많이 받게되는 달력, 디자인 확 바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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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마산
동영상 - 마산 201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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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9)조명: 자연채광 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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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창원호텔 맞은편에 현장이 생겼습니다. 두 달 남짓 사무실이 있는 정우상가쯤에서 중앙동 민원센터까지 하루에 두세번씩 걸어갔다 옵니다. 분명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길임에도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도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몇차..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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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2배출 줄이는 그린빌딩(Green Building)설계(8)조명: 주광율

앞서까지는 외피에 대한 내용을 다뤄왔으면, 이제 더욱 시스템적이면서도 메카니즘적인 조명분야에 대한 내용을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주광율(DF)는 실내와 실외 밝기간의 관계를 수치로 나타낸것입니다. 자연채광을 통한 건물의 그린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