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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0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5. 진해만의 군항 건설

 

135. 진해만의 군항 건설

 

 

1. 국토의 약탈과 국민생활 제재(制裁)

 

일본은 노일전쟁 전에 거제도 일대(송진포松津浦 / 원문에는 송포진)를 근거로 어업 이권을 독점하고 있던 중 일본 대노국(對露國)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군사적 근거지로 획정하여 우리 국민들의 가옥을 철거하게 하고 전답을 점령하였다.

 

광무 89월에 그들은 소위 해군 방위대 본부를 거제군 송진포에 두고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일본 가근거지(假根據地) 방비대 군령을 공포(광무 8927일 감시 보고 제58호에 의거)하고 우리 국민의 생활에 제재를 가하였다.

 

 

방비대 군령

 

대일본 해군 방비대 사령관이 군대를 안전케 보지(保持)함을 위하여 각하(刻下)에 긴급한 좌개군령(左開軍令)을 제정하여 지실(知悉)게 하니 이등(爾等) 국민은 능히 준봉(遵奉)하여 만약 위범자가 유()하면 속히 아군위(我軍衛)에 신고함이 가().

 

명치(明治) 378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 가근거지(假根據地) 방비대(防備隊) 사령관(司令官)

 

군령

 

1조 결당(結黨) 반항(反抗)을 기도하며 기타 군대와 군함(軍艦)과 군용 선박에 대하여 적항소위유(敵抗所爲有)하 자를 사형에 처함이라.

 

2조 방비지역과 수역내(水域內)에 가설(架設)한 군용 전선에 가해한 자를 사형에 처함이라.

 

3조 간첩(間諜, 탐지군探知軍) 행실(行實)이 유()한 자를 사형에 처함이라.

 

4조 군사기밀을 누설한 자를 사형에 처함이라.

 

5조 군사 시행(施行)함을 방해하는 자를 군벌(軍罰)에 처함이라.

 

6조 군용지(軍用地) 영조물(營造物)과 선박과 도로와 교량과 정천(井泉)과 수도를 비해(備害)하고 또 파괴오탁(破壞汚濁)케 하거나 또 병기탄약(兵器彈藥) 군수물건(軍需物件)盜奪毁損(도탈훼손)하는 자는 군벌에 처함이라.

 

7조 방비지역(防備地域)과 수역내(水域內) 수륙형상(水陸形狀)을 측량(測量)촬영하게 사형녹취(寫形綠取)하거나 우간연(又干連)한 도서를 발간함을 금함이라. 우범(右犯)한 자를 군벌에 처하되 기제출물(其製出物)과 범행지용(犯行之用)에 공()하는 물건은 몰수(沒收)함이라.

 

8조 방비지역(防備地域)과 수역내(水域內)로 출입하야 방비상 현상과 지형을 시찰하는 자를 군벌에 처함이라.

 

9조 방비수역내(防備水域內)에서 방비대사령관(防備隊司令官) 허가를 득()하지 못하고 일반 어장과 채조(採藻)함을 금()함이라. 우범()한 자를 군벌에 처하고 기범행시(其犯行時)에 공용(供用)하던 물건을 몰수함이라.

 

10조 방비 수역 내에는 일본제국 관선(官船) 이외 방비대 사령관 허가 없이 선해급(船海及) 정박(碇泊)함을 금함이라. 우범(右犯)한 자는 군벌에 처하고 기선박(其船舶)을 몰수함이라.

 

11조 자제일보(自第一條) 지제사조(至第四條)를 범()한 자는 정범종범(正犯從犯) 교사자(敎唆者) 범행(犯行) 기수자(己遂者) 미수자(未遂者) 기타 예비(豫備)와 모사(謀事)만 하는 자를 물론하고 기정장(其情壯)에 유()하여 사형에 처하되 혹은 감등 처분함을 득()함이라. 정장(情壯)을 지()하고 전항(前項) 범행자(犯行者)를 장닉(藏匿)한 자도 역이동벌(亦以同罰)로 논()함이라.

 

12조 전조(前條) 범행자를 체포하여 내고(來告)하는 자에 금이십원(金貳拾圓) 이내로 상여(賞與)함이라. 우범자(右犯者)를 밀고하여 체포케 한 자에는 금십원(金拾圓) 이내로 상여(賞與)함이라.

 

13조 방비지역(防備地域)과 수역내(水域內)에 가설(架設)한 군용전선 보호는 공전선(共電線)이 통과하는 동내(洞內)의 책임으로 하고 각 동리에서 존위동(尊位洞)을 수석(首席)으로 하여 위원(委員)으로 설치하여 전선 보호를 담당함이 가(). 보호위원의 태만으로 군용 전선에 손해가 날하면 기보호위원(其保護委員)을 태형(笞刑) 혹은 구수(拘囚)에 처하되 동내(洞內)에서 기가해자(其加害者)를 체포하여 내고(來告)하면 기형벌(其刑罰)을 면제케함.

 

14조 본회 중 군벌이라 칭함은 사형 감금(監禁) 축방(逐放) 과료(過料) 태구수(笞狗囚)라 하되 필요에 응()하여 벌명(罰名) 변개(變改)함을 득().

 

군령 시행법 중 중요한 조항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3조 가덕도(加德島) 거제도(巨濟島) 봉엄도(峰嚴島) 한산도(閑山島) 부근에서 어장 채조(採藻) 등 사업을 경영하고자 한 다는 거처, 성명, 연령을 기록하여 주마산제국영사관(駐馬山帝國領事館)을 경유하여 방비대사령관처에 청원하고 기허가(其許可)를 득()한 후 어장 채조(採藻)를 시행 작업할 시()는 반드시 허가표를 대행(帶行)하여야 한다.

 

4조 어장 채조 허가표는 목판에 청원자 거처, 성명, 연령, 어장과 채조할 허가 문자를 명기하고 기외(其外) 가근거지방비대(假根據地防備隊) 사령관인(司令官印)을 압날(押捺)함이라.

 

5조 어장과 채조 허가표는 일장일인(一張一人)을 한하되 가족과 종자(從者)가 항상 가주(家主)나 주인에게 반종(伴從)하여 어장과 채조에 참여하려면 일장(一張) 청원서에 각자 거처와 성명, 연령을 열기(列記)하여 일장(一張) 허가표 수용함을 득()하되 차장합(此場合)에는 허가표에 수반자(隨伴者) 씨명(氏名)을 열기(列記)함이라.

 

6조 어장과 채조허가표(採藻許可票)는 표기인명 외에 통용함을 득()치 함이라.

 

7조 어장과 채조허가표(採藻許可票)를 대지(帶持)아니하고 채조한 자로 인()하면 속히 제지(制止)하여 역외(域外)로 퇴거(退去)케 함이라.

 

이와 같이 군령이 시행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아국민(我國民)이 얼마나 속박을 당하였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록을 보면 광무 1013(감리보고 제2) 군용전선을 절단한 아국인(我國人)20년간 경상도 외로 추방한 일까지 있었다. 또 일본 방비대의 요새지 부근에 우리의 무기고가 있으면 우리 국민이 그들에게 봉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서 약탈을 자행한 것이다.

 

전략(前略) 거차조회우주(據此照會于駐) 본항일영사(本港日領事)······ 현접(現接) 해영사(該領事) 삼포미오랑(三浦彌五郞)의 회복내개(回覆內開)에 웅천군수(熊川郡守) 권석구(權錫九)에서 동군가덕면(同郡加德面) 병천역면(並天域面) 소재(所在) 군기고지(軍器庫之) 무기고류(武器庫類)를 일본인이 취거(取去)한 지의(旨意)를 통보(通報)에 접()하여 우환부사조회(右還付事照會) 제오호(第五號) 양실(諒悉)인바 가덕도 일부를 일본 육군에서 수용하여 기이방비(旣以防備)를 요새지대(要塞地帶). 우지대부근(右地帶附近)에 무기고지존재(武器庫之存在)라 함이 혹도민지간(或島民之間)에 불은(不隱)을 유기려(誘起慮)가 유()하니 방비지배치상(防備之配置上)에 직()히 방애(妨碍)한지라. 동도(同島) 요새관헌(要塞官憲)에 우등(右等) 무기(武器)를 일시 영지(領置)하였사오니 양지상성도(諒知相成度) 회답등인(回答等因)이옵기······.

 

이 같이 거제도 일대를 해군 방비대 가근거지로 삼고 그들은 야비한 약탈 행위를 하였고, ·러 전쟁이 일본 승리로 돌아가자 일본국은 본격적으로 동아침략(東亞侵略)의 근거지로 해군 공항 건설에 착수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진해만'이라고 불렀던 범>

 

 

 

2. 진해만 일본 군항

 

광무 10820일 재정 의정부 훈령 제3호에 의하면

 

경상남도 진해만(鎭海灣)을 군항(軍港)으로 예정(豫定)하고 국군비(國軍備)가 충실(充實)하기까지는 일본 정부에 행장위탁설비(行將委託設備)이기 경계(境界) 도면급준수사항(圖面及遵守事項)을 당경반포(當經頒布)이니 준차양실(遵此量悉)하려니와 당선(當先) 해지역내토지(該地域內土地), 가옥 기타 부동산을 외국인에게 매각(賣却), 교환양여당(交換讓與當)하거나 혹한(或韓일관헌(日官憲)에 허가를 불경(不經)하고 대여(貸與)함을 금()한 사()로 별회(別繪) 도면(圖面)하고 준변(遵辨) 사항을 훈령(訓令)하니 조량신변(照諒迅辨)하여 무혹만환(無惑漫患)함이 위가(爲可).

 

광무 10820

 

의정부(議政府) 참정대신(參政大臣) 박제순(朴齊純)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 김서규(金瑞圭) 귀하(貴下)

 

좌 개(左 開)

진해만 군항 예정지내(豫定地內)에서 별지(別紙) 도면에 적선(赤線)으로 기재(記載)한 토지 중 수수(手授) 절차(節次)

 

1. 일본 정부에 인도(引渡)를 수()할 구역내(區域內)의 사유지는 본국 정부에서 매수하고 기대가(其代價)는 일본 정부가 본국 정부에 지변(支辨)할 사().

 

2. 양국 정부 간에서 전기(前記)한 토지의 수수대금(受授代金) 지발기타(支撥其他)에 관한 상호간 귀결(歸決)은 별위(別爲)함을 요함으로써 마산 이사청 이사관 삼증구미길(三增久米吉)과 협의하고 실행에 당()케 하기 위하여 상당한 권한을 당해 관헌에게 부여(付與)할 사().

 

3. 전기(前記) 양항(兩項)을 실시함에 대하여 내외인의 교회(狡獪)한 획리수단(獲利手段)을 예방하기 위하여 별지(別紙) 도면에 적선(赤線)으로 기재(記載)한 지역은 현금간(現今間) 매매(賣買), 교환, 양여(讓與), 당대차(當貸借)를 금지할 사()로 관계 관헌급 국민에 대하여 지급(至急) 발령(發令)할 사() 광무 10815일 진해 요새지대 취체규칙(取締規則)과 진해 요새지대 시행세칙(施行細則) 및 요새지대 내 세입취체규칙(歲入取締規則)을 별책(別冊)과 같이 규정하여 시행하다.

 

이렇게 당시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은 창원감리 김서규에게 훈령을 내렸다.

 

한편 군항 예정지를 일본 통감부에서 일방적으로 선정한 위원으로 하여금 실지 입회하여 조사 정계(定界)한 다음 입계표(立界標)를 세워 군항 경계를 획정(劃定)토록 하고 그 위원인 해군 중좌(中佐) 삼월즉(森越卽)과 해군주계중위(海軍主計中尉) 영본요랑(鈴本要郞)이 광무 1098일에 본항(本港)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동() 14일에는 마산 이사청(理事廳) 일본 이사관(理事官)(三增久米吉)과 참원감리(金瑞圭) 입회하에 진해군항 예정지를 획정하고 입계표(立界標)를 세웠다.

 

그러나 군항 요새지로 획정(劃定) 정계(定界)한 범위가 주위 2백리, 7·8()이 이에 포함되므로 경내(境內) 주민들의 소요(騷擾)와 의구(擬懼)가 반드시 일겠기로 정계위원(定界委員) 삼 중좌(森 中佐), 영목(鈴木)중위, 삼증(三增) 이사관, 경 경부(境 警部), 창원감리 등은 이들 주민을 열유위무(說諭慰撫)함에 주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창웜감리의 보고에 의하면

 

해단항지(該單港地)에 대하여 일반사무(一般事務) 창원감리(昌原監理)가 담임(擔任)토록 지령(指令)하였으나 본부(本府)에서는 기무특정권한(旣無特定權限)이옵고 후운(後云) 담임(擔任)이 이난청종(理難聽從)이옵고 본서무항(本署務煩)’에 불가구광(不可久曠)이옵거날 여욕전력해지(如欲專力該地)오면 동다체애(動多滯碍)이오며 차이(且以) 요새지대(要塞地帶) 실선이내(實線以內)로 언지(言之)하오면 주긍(周亘) 이백리(二百里)에 범입(犯入) 7,8()하오니 수비현행미수(雖非現行買收)이오나 기어정계(其於定界)에 필히 소요(騷擾)할 것이고 이적선이내(以赤線以內) 1(第一區)로 말하면 민유토지(民有土地)를 일병(一幷) 매입하고 급기(及其) 해당지내(該當地內) 가옥(家屋)을 철리(撤利)하게한 바 언념중정(言念衆情)에 조현어우(鳥䮄魚喁)는 여소필지(廬所必至)라 이에 위무(慰撫)하여 아국인민(我國人民)들의 전답(田畓), 가옥수용조치(家屋收容措置)‘(광무 1095일 감리보고 제42, 동년 98일 동보고同報告 42호 의거)

 

그리고 동년 916일 동보고(同報告) 45호에 의하면 전기(前記) 삼 중좌(森 中佐), 영목 주계(鈴木 主計), 삼증 이사관(三增 理事官), (경희명 경부)境喜明 警部는 기선(汽船)을 타고 웅천군에 와서 경계 적선(赤線) 내의 이이동민(二二洞民)에게 일장효유(一場曉諭) 비진형(備陳形)하온즉 처음 의구(疑懼)다가 종내위안(終乃慰安)하여 거개(擧皆)가 환영(歡迎)’하였다 하며 그 효유(曉諭)의 요지인즉 다음과 같다.

 

1. 진해만은 일한 양국의 국방을 위하여 군항을 작()할 필요를 한국 정부의 인()한 바에 의하여 827일 관보에 공보하였음.

2. 한국은 국력이 아직 자위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방상 필요한 군비를 충실하기까지 일본 정부에서 제반 경영을 하여 차()군항을 사용할 사()로 협정하고 일본 정부는 필요한 설비를 하기로 승인하였음.

3. 관보에 기재한 군항 예정 지역은 확대하여도 인민의 재산급 생활상 등에는 하등 구애에 영향도 피함이 무()하고 단 해()구역 내 토지를 외국인의 소유에 귀()치 홀()할 뿐 사().

4. 군항 예정지역 내에 모도(毛島)로 행암리(行巖里)까지 급기(及其) 부근토지(附近土地)는 일본 정부에서 해군에 필요한 설비(設備)를 위하여 외국인은 물론하고 한일간에라도 매매(賣買)든지 기타 소유권의 이동에 관한 소위(所爲)를 금지할 의()로 이() 중앙정부로 훈령이 유()한바 상이승지(想已承知)하여야 함.

5. 토지수용에 관하여 상당한 가액(價額)을 차하(次下)하기로 가령 대가(代價)를 차하(次下)하여도 기()이 사용치 아니할 부분은 종전과 같이 거주급(居住及) 경작을 허()하되 그 부분이 다대(多大).

6. 가옥급(家屋及) 묘지이전비(墓地移轉費)는 전기(前期)하여 비득(費得)한 가격을 정치(定置)하였다가 이전함을 명할 시()에 차하(次下)할 사().

7. 여의(汝矣) 등은 이상 주의(注意)에 불편함이 무()케 수용법 집행에 상좌(相左)가 무()할 양()으로 수용 당사자는 명령을 종()할 사().

 

만약 우진(右陳)한 훈의(訓意)를 불수(不守)하고 부당함을 주장하거나 혹 교활한 수단을 구성하여 국가에 불충(不忠)한 사()가 유()할 시에는 중벌을 난면(難免)하고 본관도 상당한 책임 유()하니 만일 해득(解得)하여 무지위배(無至違背)케 함이 위가사(爲可事).

 

이리하여 광무 11113(감리보고 제2)에는 최종적으로 진해만 군항의 설정경역(設定境域)을 정하였으니 이에 대한 감리 보고를 보면

 

본월(本月) 13일에 진해만 군항정계사(軍港定界事)로 해군참모(海軍參謀) 삼 월태랑(森 越太郞)의 청요(請要)를 거()하와 본 부윤과 해() 참모(參謀) 삼급웅천군수(森及熊川郡守)로 회동(會同) 전주우(前住于) 본부(本府) 상남면 불모산리(佛母山里)(김해경金海境 3리허三里許 웅천경熊川境 7리허七里許)하여 군항(軍港) 요새지대(要塞地帶) 한계(限界)를 시자(始自) 해리(該里)로 역지(歷至) 우본부하남면월촌리(于本府下南面月村里)(남접웅천경南接熊川境)이 간간(間間) 착주(着株)하옵고 우어(郵於) 16일에 본 부윤과 해참모(該參謀) ()도 본항(本港) 아국(俄國) 거류지(居留地) 율구미(栗九味) 서남(西南) 지진해경(至鎭海境)이 간간착주(間間着株)하옵고 우자해착주처(又自該着株處)로 역진해서남(歷鎭海西南) 지고성군(至固城郡) 대울비기(大鬱飛崎)히 각해군(各該郡) 평대동(平帶同)하와 연락(連絡) 착주(着株)하옵고 해착주내(該着株內) 지형회도1(地形繪圖一本)을 제우본부(除于本府)하올 태()로 담청십해참모(談請十該參謀)하였사온즉, 대기도본부래(待其圖本付來)하와 갱위(更爲) 점보계료(粘報計料)하오며 자선(玆先) 보고하오니 사조(査照)하심을 복망(伏望).(광무 11120)

 

당시 군항 내 가입(加入)하온 지명 및 평수급(坪數及) 본도(本圖) () 기요새지대(其要塞地帶)의 전부도본(全部圖本)을 점부(粘付), 보고(광무 11521)를 보면 진해 군항이 일본국의 국방과 동남아 침략을 위한 그 근거로 삼으려는데 있다.

 

그리하여 종전 조계장정(租界章程) 조항을 보면 조계(租界) 10리 이내라는 규정은 사실상 유명무실하였다.

 

위와 같은 경위를 거쳐 일본국은 진해군항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1914년 준공한 진해요항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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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3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4. 매축권과 대일 투쟁

134. 매축권(埋築權)과 대일(對日) 투쟁

 

 

구마산포는 옛날부터 농수산물의 집산지로서 중부 경남의 인후(咽喉)에 해당되는 기능을 가진 요지로 발달해 온 곳이었다.

 

망국의 낌새가 스며들던 한말, 마산의 토지소유권을 비롯한 모든 이권이 노·일 양국의 각축과정에서 외인(外人)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가운데서도 구마산 항민(港民)들은 꾸준히 그들의 상권을 투쟁으로 수호 유지해 왔다.

 

이러한 투쟁의 현실적인 뒷받침은 물론 축적된 상업자본의 힘에서 온 것이지만, 이러한 것이 인()이 되고 과()가 되어 더욱 상업자본이 축적되어 갔고 그 결과 일본 상인들에 대해서도 투쟁의 현실적인 실력을 갖추어 가게 되었던 것이다.

 

외인(外人)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시작한 개항 이후 그들이 노리는 중요한 이권 가운데 하나가 창탄(漲灘, Water frontage)의 매축권이었다.

 

원래 우리나라의 창탄은 매매가 허락되지 않았고, 외국인이 소유할 수도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일 양국은 이 창탄의 탈취를 둘러싸고 무섭게 대립하였던 것이니, 이는 매축권과 밀접하게 결부되는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산의 본거지인 구마산의 해안지 즉 서성리, 중성리, 동성리, 오산리 지선(地先)의 창탄지는 구마산 항민들로 보아서는 그들의 상권, 어업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그들에게는 생존권과도 결부되는 중요한 터전이기도 했다.

 

구마산의 시장권을 빼앗으려다가 실패한 일본인들은 그 후 다시 이곳 창탄지 매축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이 낌새를 알게 된 구마산 항민들은 분연히 궐기, 꾸준한 항소 투쟁을 벌여 끝까지 이를 수호했던 것이니, 이 사실은 구마산 항민들의 근대적 투쟁으로서 높이 평가됨직한 것이었다.

 

마산포 개항 후 이를 둘러싼 노·일의 각축은 날로 치열해 가고 이에 따라 외국 선박의 마산항 출입도 빈번해 갈 무렵, 1899(광무3) 51, 구마산 동성리에 살던 김경덕은 만국의 통상이 성해지고 앞으로 구마산포에 있어서도 상여(商旅)의 집회와 화물의 풍비(豐備)가 예측되므로 구마산 서성리로부터 오산리에 이르는 창탄의 매축권을 창원감리서에 신청하여 감리의 인허를 받게 되었다.(189910)

 

 

<아래 그림은 김경덕이 매축청원서에 첨부한 도면. 이 도면을 현 도시공간에 표시한 것이 두번째 그림이다>

 

 

 

그 후 김경덕은 당시 일본육군성 자금으로 노국의 정책을 방해하기 위해 방간방태랑(부산을 거점으로 암약暗躍하던 일본인 식민재벌-편자주)과 같이 마산포 투지 매수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인 홍청삼(弘淸三, 오백정五百井 상점 마산 지배인)으로부터 15,000냥을 매삭 매양두 삼분식(每朔 每兩頭 參分式)의 이자로 광무 6(1902) 정월 회내(晦內)’를 기한으로 본전과 이자를 환부한다는 조건 밑에 매축 인허문권(認許文券)을 전집(典執)하고 빌렸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기한이 지날 때는 매축인허문권을 영원히 허급(許給)한다는 차용증을 작성해 주었던 것이다.(홍청삼 주장)

 

그 후 얼마 안 되어(1902년 정월 회일晦日 ) 김경덕이 사망하게 되자 홍청삼은 서성리로부터 오산리에 이르는 창탄지에 표목(標木)을 세우고 장차 이곳을 매축하려 하게 되자 비로소 일본인의 야망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감리서의 의정부 앞 보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주본항일본이사관(駐本港日本理事官) 삼증구미길조회(三增久米吉照會)를 접준(接准)하온즉 내개(內開)에 본방(本邦) 상인(商人) 홍청삼이가 별지(別紙)에 통()한 마산포서성(馬山浦西城)으로 오산(午山)에 지()하와 해면매축권리이전(海面埋築權利移轉)할 양() 인원서(認願書)를 제출하니 사실(事實)을 조사(調査)하여 정당(正當)하거든 별지원서(別紙願書)대로 인허(認許)하기로 부속(附屬) 서류첨부(書類添附) 차단(此段) 조회등인(照會等因)이옵기 거차사(據此査)하온즉 광무 310월에 본항(本港) 동성거(東城居) 김경덕(金敬悳) 위명인(爲名人)이 자본항서성리전(自本港西城里前)으로 오산리전지창탄(午山里前至漲灘)을 한오십파(限五十把) 퇴축(退築)하오면 무해어공(無害於公) 이위이어상민(而爲利於商民)이라 청원(請願)하자 승인허(承認許)하야 음력(陰曆) 경자(庚子) 2월 초삼일에 해() 인허장(認許狀)을 전집어일상인홍청삼(典執於日商人弘淸三)하옵고 득임(得賃) 일만오천양미보(壹萬五千兩未報)하옵고 급위신사(伋爲身死)하였사오며 해() 전집급채지홍청삼(典執給債之弘淸三)하옵고 칙척빙인허(則尺憑認許)하옵고 견립표목(堅立標木)에 장영직축(將營直築)이온바 당초(當初) 인허성급(認許成給)하온 우시감리(于時監理)는 수위상무지흥왕(雖爲商務之興旺)이오나 지금매축권리(至今埋築權利)가 이전우외(移轉于外)이온 고()로 해() 청원(請願)에 승인(承認)하옵고 김경덕(金敬悳) 청원서(請願書) () 전집표(典執票)를 등서(謄書)하와 병기매축처도회(倂其埋築處圖繪)를 자()에 첨부보고(添附報告)하오니 사조처분(査照處分)하심을 복망(伏望).

광무(光武) 10411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 주사(主事) 김병철(金炳哲)

 

의정부참정대신(議政府參政大臣) 각하(閣下)

 

 

그리고 위 보고서에 첨부된 김경덕의 청원서와 전집문기(典執文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청원서(請願書)

 

본항(本港) 동성거(東城居) 김경덕(金敬悳)

 

우청원단(右請願段)은 제자만국통상지회(際玆萬國通商之會)하야 초범오장(楚帆吳檣)이 차제래박(次第來泊)일세 본포(本浦)를 금기설항(今旣設港)즉 상여지회집(商旅之會集)과 물화지풍비(物貨之豐備)는 이소필연(理所必然)이라 자서성(自西城)으로 이지오산(以至午山)에 방축제창탄(防築際漲灘)을 한오십파퇴축성언(限五十把退築成堰)하와 주즙왕래(舟楫往來)에 무천착지려(無淺窄之慮)하고 시전포열(市廛布列)에 면분환지폐(免粉還之弊) 칙무해어공(則無害於公) 이위이어상민자성대의(而爲利於商民者誠大矣) ()로 회성형지(繪成形址)하와 자감점연앙청(玆敢粘連仰請)하오니 참상교시후(參商敎是後) 특위인허(特爲認許)하오셔 비위상판흥왕지지(俾爲商販興旺之地) 복망(伏望)

 

광무(光武) 310월 일

 

감리(監理) 각하(閣下)

 

指令

퇴축성언(退築成堰)이 상판(商販)에 여이(與利)함인즉 특념(特念) 인준(認准)할 사() 십월

대한(大韓) 광무(光武) 4년 경자(庚子) 2월 초삼일 홍공전표(弘公前票) 우표위사단(右票爲事段) 당차지시(當此之時) 긴유급용처(緊有急用處) 마산포양자서성(馬山浦洋自西城), 오산지방축제(午山至防築際) 창탄(漲灘) 한오십파퇴축성언차(限五十把退築成堰次) 감리서인준문기(監理署認准文記) 전집시유한전일만오천양우전출채(典執是遺韓錢壹萬五千兩右前出債) 이변칙매삭매양두(而邊則每朔每兩頭) 삼분식위정(參分式爲定) 이한칙광무(而限則光武) 6년 정월 회내(晦內) 구본이준보시의(俱本利準報是矣) 약과한불보(若過限不報) 칙우인허문기(則右認許文記) 영위허급(永爲許給) 이이차문기(而以此文記) 병위방매문기(倂爲放賣文記) 퇴축성언(退築成堰) 귀공자유(貴公自由) 임의(任意) 이일후약유잡담지폐(而日後若有雜談之弊) 칙이차표빙고사(則以此標憑考事).

 

標主 김경덕(金敬悳)

 

 

구마산 창탄을 일상인(日商人) 홍청삼(弘淸三)이 매축하려는 이 사실은 구마산 항민(港民)에게는 청천의 벽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중대사였다.

 

당시 마산의 형편을 보면 구마산포에서 각국 조계지(신마산-편자 주)에 이르는 해안 십리는 일본 철도감부(鐵道監部)입표정계(立標定界)’하여 매축 예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마산 서성리(西城里)로부터 오산리(午山里)에 이르는 매축권이 홍청삼(弘淸三)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되면 마산 창탄전역이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되는 셈이 된다.

 

구마산 서성리에서 오산리에 이르는 지선(地先) 해면(海面)은 넓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가(人家) 천호(千戶)가 나락일처(羅絡一處)’에 군집(群集)하여 있어 물화기사(物貨起卸)의 상전시사(商廛市肆)’를 설립코자 하여도 땅이 없으므로 이곳을 매축하면 상업이 크게 흥할 수 있는, 그야말로 상업발전의 최대 관건이 되는 곳이었다.

 

또 이때 구마산포의 배후 일대의 토지는 일본이 철도 부지로서 강제 점령하고 있었으므로 구마산 창탄 매축권을 일본인 홍청삼(弘淸三)이 차지하게 되면 구마산 항민들의 처지는 장차 목이 졸려 질식하게 되는 형편에 몰릴 것이 뻔했다.

 

따라서 구마산 항민들로서는 생존권에 관계되는 중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감리서는 상부의 명도 있고 해서 홍청삼을 불러 누누이 타일렀으나 그는 전집문기(典執文記)를 빙자하여 응하지 않았다.

 

또한 김경덕은 이미 사망하였고, 원근 친척도 없었으므로 문제의 증빙서류를 고증해 볼 수도 없었고, 따라서 그 진실을 캐어 보기가 실로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대한 감리의 보고를 보면 다음과 같다

 

향이본항해면(向以本港海面)에 일상(日商) 홍청삼(弘淸三)이 통위매축일사(統爲埋築一事)로 보명본부(報明本府)하였삽더니 시승지령내개(施承指令內開)에 차단사항(此段事項)이 관계비경(關係非輕)이거늘 초불보명(初不報明)하고 체선인허우외인(遞先認許于外人)이 수속가아(殊屬可訝)함도격소(函圖繳消)하야 비무자안(俾無滋案)케 할 사등인(事等因)이시온바 차()를 준사(遵査)하온즉 항해매축(港海埋築)이 원계중요(原係重要)이온바 개이본항형편(槪以本港形便)으로 언지(言之)하오면 자구마산포(自舊馬山浦)로 지마산각국거류지(至馬山各國居留地)하여 연해일대(沿海一帶)에 장근십리(長近十里)는 기자철도감부(己自鐵道監部)로 입표정계고(立標定界故)로 향여십사호(向旅十四號) 보고(報告)에 회도점상(繪圖粘上)이옵고 사차이외(捨此以外)에 사합매축자(司合埋築者)는 서자서성리(西自西城里)로 동지오산(東至午山)토록 전인어총청삼(全人於弘淸三) 영축지도(營築地圖)하였삽는데 관기지형(觀其地形) 칙수미수리(則首尾數里)에 해면(海面)이 초활(稍闊)하고 해수(海水)가 초천(稍淺)하여 불비거력(不費巨力)이라도 가득실효(可得實效)이옵고 논기지리(論其地利) 칙인가천호(則人家千戶)가 나락일처(羅絡一處) 이총잡착박(而叢雜窄迫)하와 선박출입(船舶出入)에 물화기각(物貨起却)의 급부상전시사(及夫商廛市肆)를 욕설무타(欲設無他)이온즉 차약증축(此若增築)이오면 상유흥왕(商裕興旺)에 최대관건(最大關鍵)이옵거늘 조속지외인(朝屬之外人)이 극계완석(極係惋惜)일뿐더러 황승엄절(況承嚴節)에 불용유홀(不容琉忽)이옵기 해홍청삼(該弘淸三)을 루경초유(屢經招諭)에 혹완혹준(或婉或峻)하야 명기불연(明其不然)하오되 업사신사(業巳身死)에 겸무원근족친(兼無遠近族親)이라 하오며 소유일절서류(所有一切書類)를 참 수제존당(漱諸存檔)에 역무가고(亦無可考)이오니 사심아감(事甚訝感)이오나 역난사핵(亦難査覈)이온바 기존거행(其存擧行)에 귀각시민(晷刻是悶)이옵기 자()에 보고하오니 사조(査照)하심을 복망(伏望).

 

광무(光武) 1062

 

창원감리(昌原監理) 이 기 (李 琦)

 

의정부(議政府) 대신(大臣) 각하(閣下)

 

 

당초에 구마산 창탄의 매축권을 감리로부터 인허 받은 김경덕이 이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으므로 일상인(日商人) 홍청삼(弘淸三)의 주장으로 보아 이 무렵 일본인들이 악랄한 갖은 수법을 상습적으로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전기(前記) 감리의 보고에서 사심아감(事甚訝感)이오나 역난사핵(亦難査覈)’이라 한 바와 같이 실로 허위 날조의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홍청삼은 현지 마산에서 구마산 항민들을 비롯한 감리의 반대로 자기의 뜻을 관철할 수 없게 되자 일본인 이권 옹호기관의 본산(本山)인 통감부로 하여금 조선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매축을 허가하도록 강요했다.

 

통감부의 통첩을 받은 당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창원부윤에게 다음과 같은 훈령을 통하여 창탄 매축예정기지(埋築豫定基址)의 장광평수(長廣坪數)와 인허시(認許時) 혹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보고케 하였다.

 

수사안당(漱査案檔)한 즉 광무 310월에 귀부동성거민(貴府東城居民) 김경덕이 자본항서성리전(自本港西城里前)으로 지오산리전(至午山里前) 창탄(漲灘)을 한오십파퇴축(限五十把退築)함을 이시감리(伊時監理)에게 승인(承認)한 후() 일인 홍청삼에게 이전(移轉)한 사()로 광무 104월에 전() 의정부(議政府)에서 전() 감리서(監理署), 김병철(金炳哲)의 보고를 거()하야 해인허(駭認許)함도격소(函圖繳消)할 사()로 지절재안(指節在案)인바 현접통감부내문(現接統監府來文)한즉 마산포(馬山浦) 재유홍청삼(在留弘淸三)으로부터 구마산포(舊馬山浦) 해면매축(海面埋築)할 사()로 청원(請願)하온바 우()는 통상무역(通商貿易)의 편리(便利)를 기()하기 위()하야 항구(港口)를 수축(修築)하야 신()히 선박격류장공동물화상륙소(船舶擊溜場共同物貨上陸所) ()을 설()하고 차매축지(且埋築地)는 창고및공동시장(倉庫及共同市場)에 소용(所用)할 목적(目的)으로써 차()에 기공(起工)할 계획(計劃)이오니 동지방산업(同地方産業)의 발전상(發展上) 유익(有益)한 사업(事業)뿐 부시(不是)라 기매축구역및설계(其埋築區域及設計) ()이 적당(適當)하므로 인()하오니 청원(請願)을 의()하야 허가등인(許可等因)이라 차()를 준사(准査)한즉 해() 창탄(漲灘)을 이시감리(伊時監理)가 불유상부(不由上部)하고 천행인허(擅行認許)가 실소아혹(實所訝惑)인지라 김씨(金氏)에게 인허(認許)한 기지(基址)의 장광평수(長廣坪數)와 해기지(該基址)를 인허(認許)함에 대하야 공동이익(共同利益)과 혹타인소유권(或他人所有權)에 구무방해(俱無妨害)인지 병상세보명(並詳細報明)할 사()로 자()에 훈령(訓令)하니 조량준변(照諒遵辨)함이 위가(爲可)

 

융희원년(隆熙元年) 105

 

內閣總理大臣 이 완 용(李 完 用)

 

창원부윤(昌原府尹) 이 기(李 琦)

 

 

이 훈령(訓令)에 대하여 창원부윤 이기(李琦)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현승제삼십호(現承第三十號) 훈령내개(訓令內開)에 수사안당(漱査案檔)한즉 광무 2310일에 귀부동성거민(貴府東城居民) 김경덕이 자본항서성리전(自本港西城里前)으로 지오산리전(至午山里前) 창탄(漲灘)을 한오십파퇴축(限五十把退築)함을 이시감리(伊時監理)에게 승인(承認)한 후() 일인 홍청삼에게 이전(移轉)한 사()로 광무 104월에 전의정부(前議政府)에서 전감리서(前監理署) 김병철(金炳哲)의 보고를 거()하야 인허(認許)를 함도격소(函圖繳消)할 사()로 지절재안(指節在案)인바 현접통감부내문(現接統監府來文)한 즉 마산포(馬山浦) 재유 홍청삼(在留弘淸三)으로부터 구마산포(舊馬山浦) 해면매축(海面埋築)할 사()로 청원(請願)하온바 우()는 통상무역(通商貿易)의 편리(便利)를 기()하기 위()하야 항구(港口)를 수축(修築)하야 신()히 선박격류장(船舶擊溜場) 공동물화(共同物貨) 상륙소(上陸所) ()을 설()하고 차매축지(且埋築地)는 창고및공동시장(倉庫及共同市場)에 소용(所用)할 목적(目的)으로써 차()에 기공(起工)할 계획(計劃)이오니 동지방산업(同地方産業)의 발전상(發展上) 유익(有益)한 사업(事業)뿐 부시(不是)라 기매축구역및설계등(其埋築區域及設計等)이 적당(適當)하므로 인()하오니 청원(請願)을 의()하야 허가등인(許可等因)이라 차()를 준사(准査)한즉 해() 창탄(漲灘)을 이시감리(伊時監理)가 불유상부(不由上部)하고 천행인허(擅行認許)가 실소아혹(實所訝惑)인지라 김씨(金氏)에게 인허(認許)한 기지(基址)의 장광평수(長廣坪數)와 해기지(該基址)를 인허(認許)함에 대하야 공동이익(共同利益)과 혹타인소유권(或他人所有權)에 구무방해(俱無妨害)인지 병상세보명(並詳細報明)할 사()로 자()에 훈령(訓令)하니 조량준변(照諒遵辨)함이 위가등인(爲可等因)이시온바 훈사(訓辭)를 늠준凜准하와 해안건(該案件)을 심사(審査)하온즉 김씨에게 인허(認許)한 사()가 초무존당(初無存檔)이오며 설유전질권(設有典質券)이라도 사재광무(事在光武) 삼년도(三年度)뿐 부시(不是)오라 광무(光武) 101016일 칙령(勅令) 62호 난내(欄內)에 각종인허(各種認許)에 대()하야 일개년내실시혹착수(一箇年內實施或着手)치 못한 시()는 해인허(該認許)를 무효(無效)로 함이라 하셨사오니 해인(該人)에 차이전권(此移轉權)은 자귀무효(自歸無效)이온지라 이무경론(理無更論)이옵고 해창탄매축(該漲灘埋築)할 기지(基址)로 논()하와도 상년(上年) 62일 의정부(議政府) 지령(指令)을 승준(承准)하와 보명(報明)하였사온즉 자가동촉(自可洞燭)이 살건바 해안일대(海岸一帶)에 공동이익(共同利益)과 타인소유권(他人所有權)에 방해(妨害) 유무(有無)에 대()하야 동서(東西) 굴강(掘江)은 포칠리거민소용지지(浦七里居民所用之地) 위기선박지피풍우(爲其船舶之避風雨)이 수축처야(修築處也), 동성어선(東城魚船) 창여(艙與) 오산선창(午山船艙)은 각어물판매설점소(各魚物販賣設店所)이온즉 해창탄지긴요(該漲灘之緊要)가 기어상민(其於商民)에 최유관계(最有關係)이옵기 해기지(該基址)의 장광파수(長廣把數)를 회성도본(繪成圖本)하와 점부상송(粘付上送)하오며 자()에 보고(報告)하오니 사조처분(査照處分)하심을 복망(伏望).

 

융희원년(隆熙元年) 1029

 

창원부윤(昌原府尹) 이 기(李 琦)

 

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 각하(閣下)

 

 

즉 이 안건을 심사한즉 김경덕에게 사실이 초무존당(初無存檔)’하고 설혹 전질권(典質券)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은 광무 3년도(1899)의 일로 광무 10(1906) 1016일 칙령 제62호에 의해 무효화된 것이며, 타인 소유권에 대한 방해 유무에 관하여는 동서굴강(東西掘江)’포칠리(浦七里)’에 거주하는 항민(港民)의 소용지로서 선박의 대피지로 수축한 곳이요, 동성어물(東城魚物)선창은 오산(午山)선창과 더불어 각 어물 판매를 위해 설점(設店)을 하고 있는 터이므로 이곳 창탄(漲灘)은 구마산 상민들에게는 가장 긴요한 곳이라 보고하였던 것이다.

 

일상인(日商人) 홍청삼(弘淸三)이 통감부에 청원한 결과 통감부가 조선내각에 압력을 가하여 그에게 매축의 인허(認許)를 주도록 획책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구마산 항민(商漁民)들은 분연히 궐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항민 박기수, 김하수 등은 서성 선창에 이르는 일대의 창탄을 합력투자(合力投資)하여 매축할 것을 결의한 후 조약(條約)을 준성(峻成)’하고 구마산 항민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청원서를 창원부윤에게 제출했다. 이 일은 구마산 항민들이 경제적으로 실력 대항하려는 거사로서 실로 주목할 만한 사실이었다.

 

본항(本港) 소재(所在) 자서성동선창(自西城洞船艙)으로 지오산선창(至午山船艙)은 즉() 포칠리수천호거민(浦七里數千戶居民) 영업자생지신지(營業資生之信地)이거늘 일인(日人) 홍청삼(弘淸三)이 해기지해안전면(該基地海岸前面)을 통위매축(統爲埋築)할 양()으로 통감부(統監府)에 청원(請願)하야 자내각(自內閣)으로 해기지매축(該基地埋築)에 대()하여 공동이익(共同利益)과 혹타인(或他人) 소유권(所有權)에 구무방해(俱無妨害)인지 상세보명(詳細報明)하라신 훈령(訓領)이 내도(來到)하오니 차()에 대()하와 항민(港民)에 정장(情壯)을 추구(推究)하온즉 여간전토(如干田土)는 진입어철도및군용지(盡入於鐵道及軍用地)하옵고 자생여지(資生餘地)가 지시(只是) 자서성선창(自西城船艙)으로 지오산선창(至午山船艙)까지 내유서굴강여선창(內有西掘江與船艙)이라 차약양어타인매축(此若讓於他人埋築) 하오면 편동한구지인후(便同寒口之咽喉)요 폐호지문비(閉戶之門扉)라 본항기천호거민(本港其千戶居民)은 세장실업비산내사(勢將失業俾散乃巳)옵기 민등순의동일(民等循議同一)하와 자서성선창(自西城船艙)으로 지오산선창(至午山船艙)까지 일대(一帶) 창탄(漲灘)을 합력(合力) 구재(鳩財)하와 매축(埋築) 영업(營業)할 차()준성조약(峻成條約)하옵고 자()에 청원(請願)하오니 보내각승인(報內閣承認)하시와 사차무고기만생영(使此無辜幾萬生靈)으로 비보천식(俾保喘息)케 하심을 복망(伏望).

 

이 청원서에는 당시 구마산이 놓여있는 어려운 형편이 실로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즉 당시 구마산 배후 일대의 전토(田土)가 모두 철도와 군용 부지로 일본에게 강제 수용을 당하고 구마산 항민이 자생(資生)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구마산 해안 일대 뿐인데, 이곳 매축을 일인(日人)이 하게 되면 목을 조르고 문을 닫게 하는 것과 같아 이곳에 사는 수천호거민(數千戶居民)’은 장차 실업으로 산산이 흩어질 뿐이라 하여 이곳 매축권은 구마산 항민들의 생존권에 관계된다는 것을 환기시키면서 항민의 자체 매축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이 청원서에 접한 부윤은 1907111일 내각총리대신 앞으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이본항매축사(以本港埋築事)로 낭승(曩承) 제삼십호(第三十號) 훈령(訓令)하와 축조보명(逐條報明)이삽던바, 현접항민(現接港民) 박기수(朴基洙), 김하수(金河守) 등 청원서(請願書) 내개(內開)에 본항(本港) 소재(所在) 자서성선창(自西城船艙)으로 지오산선창(至午山船艙)은 즉() 포칠리수천호거민(浦七里數千戶居民) 영업자생지신지(營業資生之信地)어늘 일인(日人) 홍청삼(弘淸三)이 해기지(該基地) 해안전면(海岸前面)을 통위매축(統爲埋築)할 양()으로 통감부(統監府)에 청원(請願)하야 자내각(自內閣)으로 해기지매축(該基地埋築)에 대()하여 공동이익(共同利益)과 혹타인(或他人) 소유권(所有權)에 구무방해(俱無妨害)인지 상세보명(詳細報明)하라신 훈령(訓領)이 내도(來到)하오니 차()에 대()하와 항민(港民)에 정장(情壯)을 추구(推究)하온즉 여간전토(如干田土)는 진입어철도및군용지(盡入於鐵道及軍用地)하옵고 자생여지(資生餘地)가 지시(只是) 자서성선창(自西城船艙)으로 지오산선창(至午山船艙)까지 내유서굴강여선창(內有西掘江與船艙)이라 차약양어타인매축(此若讓於他人埋築) 하오면 편동한구지인후(便同寒口之咽喉), 폐호지문비(閉戶之門扉)라 본항기천호거민(本港其千戶居民)은 세장실업비산내사(勢將失業俾散乃巳)옵기 민등순의동일(民等循議同一)하와 자서성선창(自西城船艙)으로 지오산선창(至午山船艙)까지 일대(一帶) 창탄(漲灘)을 합력(合力) 구재(鳩財)하와 매축영업(埋築營業)할 차()로 준성조약(峻成條約)하옵고 자()에 청원(請願)하오니 보내각승인(報內閣承認)하시와 사차무고기만생영(使此無辜幾萬生靈)으로 비보천식(俾保喘息)케 하심을 복망등인(伏望等因)이온바 차()를 사()하오니 해기지(該基址)가 항민(港民)에게 관계누중(關係累重)뿐 불시(不啻)오라 이항민공동소유지지(以港民共同所有之地)로 허항민매축업(許港民埋築業)이 식계여거(寔係與擧)옵기 자()에 보고(報告)하오니 사조(査照)하신 후 항민(港民)에 정장(情壯)을 특념(特念)하시와 의원매축(依願埋築)케 하심을 복망(伏望).

 

융희원년(隆熙元年) 111

 

창원부윤(昌原府尹) 이 기(李 琦)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 각하(閣下)

 

이 같은 부윤의 보고를 받은 내각에서는 매축할 평수와 자본액수와 매축기한 등을 세밀히 검토한 다음 일후(日後)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후에 인허(認許)하고 그것을 보고할 것을 창원부윤에게 훈령하였다.

 

이에 부윤은 항민들로부터 제출된 창원 마산항 탄지매축(灘址埋築) 명세서를 첨부하여 내각총리대신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현승제오십삼호(現承第五十三號) 훈령내개(訓令內開)에 내보거실(來報據悉)인바 해탄지(該灘址)를 항민등(港民等)이 매축영업(埋築營業)할 사()로 준성조약(峻成條約)이라 하였으니 매축(埋築)할 평수(坪數)는 기하(幾何)이며 소인자본(所人資本)은 기하(幾何)인데 하이변비(何以辨備)이며 매축필역(埋築畢役)할 기한(期限)은 이기허간약정(以幾許間約定)하였는지 차등각건(此等各件)을 일일확세정지(一一確細定之)하야 보무일후위오연후(保無日後違誤然後)에 내가준시(乃可准施)이니 축저보명사등인(築底報明事等因)이온바 차()를 늠준(凜准)하와 항민등(港民等)이 해탄지매축(該灘址埋築)할 사()로 예산(豫算)하온 명세서(明細書)를 수취(受取)하와 점부상송(粘付上送)하오며 자()에 보고(報告)하오니 사조(査照)하심을 복망(伏望).

 

융희원년(隆熙元年) 1229

 

창원부윤(昌原府尹) 이 기(李 琦)

 

태자소사내각총리대신(太子小師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 각하(閣下)

 

창원(昌原) 마산항(馬山港) 탄지매축(灘址埋築) 명세서(明細書)

 

1. 평수(坪數)는 자서성선창(自西城船艙)으로 지오산선창(至午山船艙)까지 통계일만일천오백십사평(統計壹萬壹千五百十四坪)

2. 필역기한(畢役期限)은 십이개월(十二個月)로 예정사(豫定事)

3. 소인자본(所人資本)은 사만환(四萬圜) 예산(豫算)인데 항민중(港民中) 자본가(資本家)에서 합력구취사(合力鳩聚事)

4. 자본인성명(資本人姓名)을 우개날장(右開捺章)하야 지방관청(地方官廳)에 보관사(保管事)

 

左開

이규철(李圭哲) 오천환 이상소(李相召) 오천환 손양손(孫梁損) 오천환

강홍규(姜洪奎) 오천환 김지관(金志觀) 오천환 권태창(權泰昌) 오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