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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4

김형윤의 <마산야화> - 마지막회, 저자를 회고하면서 2015년 3월 23일 시작해 이번 회까지 만 2년 동안 포스팅한 목발(目拔) 김형윤 선생의 「마산야화(馬山野話)」143꼭지가 이번 회로 끝납니다. 지나간 시절 마산사회와 마산 사람들을 추억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 연재될 포스팅은 신삼호 건축사가 준비합니다. (주)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 신삼호 건축사는 건축작품활동도 활발하지만 도시와 건축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부산대 대학원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논문 준비 중입니다. 블로그에 포스팅하게 될 내용은 논문 준비과정에서 접하게된 여러가지 자료들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형식이 될 것이며 분량은 약 20여 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 회, 저자를 회고하면서- 조병기(趙秉基) 김형윤 공은 1903년 마산시 서성동에서 김양수.. 2017. 3. 27.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2. 영불의 함대 입항 142. 영·불(英·佛) 함대 입항 1920년 여름, 안남(安南, 월남)에 있는 불함(佛艦)이 마산 저도 좌편 안쪽에 투묘(投錨)했다가 삼일 후에 출항한 뒤를 이어, 상해에 주둔하고 있는 영함(英艦) 호오킨스호가 동도(同島) 훨씬 뒤편 마산 바로 앞면에 정박했다. 이들 영·불 양 극동 함대가 진해 해군기지에 들르지 않고 마산만으로 들어온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과의 친선을 위한 단순한 의례적 순방이라 했지만, 그들이 일본 육해군의 중요한 요새지인 이곳에 온 근본 저의를 번연히 알고 있는 일본군 당국자들은, 과거 동맹국으로 국제 친선의 예방인 만큼 속으로는 앓고 있으면서도 표면상으로는 환대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 두 함대가 거제 수도(水道)에 나타나기 직전, 진해 해군기지에서는 연막을 쳐서 군항의 .. 2017. 3. 2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1. 개항과 각국 영사관 141. 개항과 각국 영사관 강화조약에 의해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된 후 다음과 같이 항구와 시장이 개방되었다. 부산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13년(1876) 10월 14일(일본에게) 고종 20년(1883) (다른 조약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한·일 수호 조규(條規)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고종 20년 11월 거류지 ; 일본 전관(專管) 거류지, 청국 전관(專管) 거류지 원산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17년(1880) 5월(일본에게) 고종 20년(1883) (다른 조약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한·일 수호 조규(條規)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고종 20년 11월 거류지 ; 일본 전관(專管) 거류지, 청국 전관(專管) 거류지 인천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2017. 3. 13.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0. 마산포와 열강 140. 마산포와 열강 1901년 노국은 북청(北淸)사건을 이용하여 만주에 군사적 관리권을 확립했다. 1902년에는 동청(東淸)철도도 개통되고 1903년에는 시베리아 철도의 본선도 완성되었다. 노국의 경제적 세력은 광산, 기타 사업에 융자하기 위한 노청(露淸)은행의 설립에 따라 더욱 강화되었다. 이 노청(露淸)은행 자본금 1천 5백만 루불은 1895년 말 대 중국 자본 수출을 목적하고 불국(佛國) 금융자본과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식민은행이었다. 청·일전쟁 후 노국이 대일 배상금 지불 제1회의 인수를 맡아 점차 상해를 비롯하여 일본의 장기(長崎)지점 수표로 조선정부에 납입되었고, 마산포 개항 후 이 거대한 투자는 노청은행의 전통적인 금융자본이었다. 그 뒤 이 노청은행의 자매 은행이 노국의 유류, 사탕 등을 .. 2017.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