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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4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4. - 칠원현 해동지도

칠원현 해동지도(1750)

 

칠원현의 범위는 현재의 함안군 칠원읍, 칠서면, 칠북면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지역에 해당된다.

칠원현이 현재의 창원시 지역과 연관이 있는 것은 구산면 때문이다.

구산면은 실제 현재의 칠원읍에서 20KM 이상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칠원현 행정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진해현에 인접한 곳임에도 내륙에 있는 칠원현에 포함된 특수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별도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칠원현 읍성은 현재 칠원초등학교 일대 및 주변에 있었던 성이다. 주변의 지형은 읍성 북측으로는 무릉산이 동측으로 청룡산과 천주산에 면해 있다.

행정구역은 읍성을 중심으로 남측에 상리면, 북면과 서면 동측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구산면을 포함해서 4개의 면으로 나누어져 있다.

 

읍성 내 건물은 전면에 衙舍, 후면에 客舍, 좌측에 擇勝亭 3동이 있으며, 출입문은 동문, 서문 2개가 있다.

 

공공건물은 읍성 북측에 향교와 흑사암이, 남측에 서원이 있다. 무릉산에는 장춘암 사찰이 있다.

 

지도 상단 영산에 면한 하천은 낙동강이며, 중앙에 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현재의 광려천에 해당되며, 읍성을 경계로 분기되는 상단의 하천은 운곡천, 하류의 하천은 칠원천에 해당된다.

 

구산면에는 구산진과 선소 그리고 해창이 배치되어 있다.

봉화는 안곡봉대가 있으며, 연원은 창인역이 있으며, 나루터는 구산면에 동전진이 낙동강 언저리에는 蔑蒲津과 金津의 나루터가 있으며, 서측 영산계 방향으로 上浦津이 있으며, 폭이 200보라고 기재되어 있다.

 

마을 수풀로 읍성 서문 근처에 식송과 금택지가 있으며, 낙동강 영산계 인근에는 숲에 해당하는 長藪가 두 곳, 藪가 한 곳에 있으며, 인근에 雙鳳亭과 景釀臺 정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낙동강과 수림에 의한 풍광이 좋았던 곳으로 보인다.

 

주요 교통로는 적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구산면과 창원으로 향하는 길은 葛峙와 栗田峙를 넘어서 가는 길이 있으며, 남측으로 함안으로 향하는 길은 여령치를 지나서 가는 길이 있으며, 창원부 북면으로 가는 길은 무릉산을 지나 牛項峙를 지나서 가는 길이 있다.

 

 지도상의 내용을 행정,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上里面, 西面, 北面, 龜山面

4

자연지리

산천

武陵山, 天柱山, 靑龍山,

3

고개

葛峙, 於嶺峙, 牛項峙, 栗田峙,

4

나루터

金津, 蔑蒲津, 上浦津, 東田津,

4

제방

金江池

1

인문지리

읍성

객사, 동문, 서문, 아사

4

교육

서원, 향교

2

사찰

長春庵, 黑寺庵

2

역원 등

선소, 창인역, 해창, 靈山竟

3

烽燧

봉대

1

고적

景釀臺, 雙鳳亭, 擇勝亭

3

 

칠원현 해동지도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지도에 표현되지 못한 부분을 추가로 보완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방리

 동면, 서면, 북면

3

호구

- 호구수 : 2,970호

- 인구 : 10,5?1명 (남자 5,1?0명, 여자 5,461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564명

- 監營屬 : 9명

- 統營續 : 541명

- 右兵營屬 : 282명

- 金海鎭軍 : 609명

= 합계 2,005명 

 5

지리

시설

산천

- 山 : 靑龍山(縣東 鎭山), 武陵山(縣北), 城山(縣北), 淸涼山(龜山), 船頭山, 大峙山, 紫宮山

- 고개 : 赤峴(龜山北), 甘界峙, 東田峙, 葛峙

- 川 : 大川, 西川

- 海 : 汝火串, 猪島, 金浦津, 麻田浦, 龜山浦, 与叱浦, 餘音浦, 葛浦

- 鎭 : 龜山鎭

4

 

기타

시설

- 書院 : 德淵, 邑倉 : 城內, 城周 : 768尺

- 古跡 :景釀臺, 여叱浦鄕, 釜谷部曲, 山城

- 烽燧 : 安谷烽燧,

- 樓亭 : 擇勝亭

- 佛宇 : 長春寺, 天溪寺(武陵山)

- 驛院 : 昌仁驛, 靈浦驛, 惠民院, 葛浦院

4

경제

元田沓

- 2,613結96負8束

 

案田沓

- 937속20부5속(案田966결23부2속, 案沓893결92부3속)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308석

- 各樣雜穀 : 2,321석

- 別餉米 : 514석

- 租 : 10석

- 監營勾管 各樣雜穀 : 8,359석

- 統營米 : 253석

- 雜穀 : 1,662석

- 帖價牟 : 326석

- 儲置米/저치미 : 782석

- 除留米 : 70석

- 各樣軍作米 : 119석

- 射軍作牟 : 59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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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00:00

한국 100명산이야기 22 : 부처님이 누워계시는 대륜산

3월 25일 토요일 아침  메트로시티 정문과 후문을 통과하여 학봉산악회 대원 5명이 새벽6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새벽녁에 출발한 터라 섬진강 휴게소에서 유부우동과 준비해 온 충무김밥으로 아침요기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두륜산에 도착하니 10시입니다.

비오는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 산행을 하려니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비옷 무게때문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내려와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비옷을 갈아입고

10시 반에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 출발인증샷 : 떨더름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 대흥사 일주문입니다. 생각외로 고찰이었습니다. 백제때에 세워진 사찰로 규모도 범어사나 통도사 몾지않게 큰 사찰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관계로 한적하였습니다.

대흥사 배경의 두륜산은 부처님이 누워계신 형상이라고 합니다. 우중이라 사진으로 닮을 수는 없었으나, 사진으로 본 설명은 그리보였습니다.

 

- 사찰의 역사를 상징하는 부도탑(스님의 사리탑)과 각종 기념비

 

 

- 사찰 아래를 내다보며 : 외부공간이 시원시원하게 넓었습니다.

 

 

- 요사채 전경 : 경사면을 적절하게 활용한 건물 배치가 자연스러웠습니다. 낮은 담장과 조경을 통해 프라이버시도 확보하는 배치기법이 돗보였습니다.

 

-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다보니 체력이 고갈되어~ 간식을 먹으며 처져있는 모습

 

- 9부능선 도착 : 12시에서야 경사면을 지나쳤습니다. 바둑이 바위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 두륜봉에서 인증샷 대열 : 우리의 원로 대장님

 

 

- 비장한 표정의 드론대장님 : 이번에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얼마전 연습중 추락하여 몹시 상심한 듯~~

 

- 둘레길 대장님 : 지난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삐친 발까락 때문에 아직 고생중이라서~~~

 

 

- 보급대장님 : 보급품 조달 및 운전까지 맡아서 고생을 표정이 역력~~

 

                                             - 난생첨 비옷입고 등산했음, 헉헉~~

 

 

- 저기가 고지인데 : 일기가 고르지 못한 관계로 하산을 결정하였습니다.

 

 

- 아쉬움을 달레며 : 인증샷 - 하산한다는 결정에 기분이 좋은 표정

 

- 비오는날 충무김밥 : 비를 맞으며 빗물, 땀물 섞인 된장국물과 충무김밥, 맛은~~

하산 후,  파전과 도토리묵으로 1되짜리 막걸리 한통을 비우고 완도로 급히 향하였습니다. 2시에 출발~!

 

- 3시에 도착해서 도선료를 지불하고 4시에 '청산아일랜드'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 청산도행 배는 카페리호입니다. 절반이 주차공간이고 나머지가 승객실입니다.

 

내려서 섬 북측을 아주 천천히 드라이브 하였습니다. 중간에 포구를 구경하다가 단체로 사진촬영온 팀들과 만났습니다. 사진을 찍어소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보내주겠지 하면서 기다려보니다.

우리의 숙소인 슬로시티여행자센터로 향하였습니다. 숙소는 별채로 된 방과 거실, 욕실이 있는 방가로였습니다. 여장을 풀고 식사하려 선창가로 나왔습니다.

인터넷에 소문난 집 *녀횟집으로 갔습니다.

이곳의 명물, 전복을 한접시 시켰습니다. 술이 술술들어갔습니다.

 

- 한접시당 가격을 달리하였습니다. 비싼게 큰놈을 골라서 준것 같았습니다.

 

 

청산도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것이 홈삼이라고 합니다. 붉은 해삼을 말합니다.

한마리가 1키로정도 됩니다. 키로당 2만5천원정도입니다. 먹을만 했습니다.

식사는 우럭매운탕으로 하였습니다. 가격이 조금 쎄긴 했지만 해산물과 쏘주에 쩐 속을 짝 풀어주었습니다.

잘 먹고 숙소에 도착해서 가지고 온, 개인 술을 풀었습니다. 와인과 30년산 발렌타인이 있었으나, 피곤해서 몇잔 하지 않고 쫙 뻣듯이 주무셨습니다.

 

● 3월26일 아침 7시에 기상하여, 마을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침밥은 일찍 준비해 달라고 앴으마,  8시 반쯤에야 된다고 합니다. 슬로시티라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1시간을 산책하고서야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는 스로시티 여행자센터에서 제공하는 아침정식입니다.

1인분에 1만원이며 사전에 예약해야 가능합니다.

 

- 생선과 전복찜 1마리, 섬에서 자라는 나물, 그리고 김국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별도로 말리지 않고 채취한 채로 국을 만들었답니다. 시원 짬쪼롬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 식사후 9시 쯤에 출발했습니다.

 

- 고인돌이 있는 산책로에서 본 노거수 입니다. 걷기 좋은 길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조금만 표식을 따라 가면 다양한 풍광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 청산도의 키워드는 '서편제'입니다. 이 동네에서 촬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초입에 들어서자 서편제의 노랫가락이 영화속으로 이끄는 듯합니다.

 

 

- 이곳은 수군이 진을 치고 왜적에 대항했던 수군기지였다고 합니다.

 

- 신발의 의미 : 바삐가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무거운 돌신을 신고 천천히 다니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는 예술작품입니다. 청산도에서 딱 어울리는 것 같네요~~

 

- 청산도의 해변 외곽에 쌓은 성벽들이, 지금은 걷기 좋은 길로 변신하였습니다.

 

- 동네 아주머니들이 만들어서 제공하는 쑥전, 막걸리와 더불어 입을 축였습니다. 마을기업에 일조를 한다는 의미로~~

 

- 선창에 12시에 도착해서 1시배를 기다리며 식사를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전복죽으로~~

전복죽의 맛은?, 비밀입니다.

 

- 대합실에 배를 기다리며~

대합실 옆에 마련된 특산품 판매매장에 마련된 선술집입니다. 3만원에 해산물을 한접시 담아 줍니다. 소주 한잔으로 청산도의 추억을 각인시켜 봅니다.

 

완도항에 도착하고도 바빳습니다.

해창주조장과 다산초당에 들르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창주조장은 지난날 일인이 경영한 청주공장인데, 막걸리 공장으로 현재까지 운영된다고 합니다.

100년전의 건물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볼만한 곳이었습니다.

막걸리 도수가 독특하게 일반적인 6도 외에 12도짜리가 있었습니다. 거의 소주도수에 가까웠습니다. 진한 맛은 좋치만, 한번에 쭉 들이키는 목넘김의 맛을 느낄 수 없어서 저는 6도짜리가 좋았습니다.

시음주를 종류별로 하다보니 어찔한 느낌이 왔습니다. 공짜 낮술에 어질 어질~~

 

 

● 해장주조장 옆의 근대기 건물들

주인장의 소개로 살펴본 주조장 옆의 창고건물입니다.

오랜 세월의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겉은 시뻘건 녹물이 끼어 있지만 속살은 신비로웠습니다.

 

-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창고 : 일찌기 대한통운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전에 일본인들이 지은 목조창고로 사용하다가, 해방이후 대한통운에서 사용한 듯 합니다.

 

- 실내전경 : 요즘 보기 드문 목제트러스 구조입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구조제의 성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듯 합니다. 근대목구조 전시장으로 사용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원형이 잘 남아있습니다.

 

- 트러스의 접합부는 중심에서 좌우 로 배치하였으며, 꺽쇠로 사용하여 대공과 빗대공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부재가 원형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 벽기둥과 트러스 접합부 : 트러스와 기둥사이 사선재를 사용하여 강성을 높혀주고 있습니다.

 

 

- 벽면부 상세 : 구조제와달리 벽면에 세로 및 가로 부재를 두고 흙벽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구법입니다.

 

- 출입문 디테일입니다. 견고하게 하려고 철판을 덧된 디자인이 정겹습니다.

 

해창주조장 창고를 보면서

해창주조장 건물은 원래의 형태에서 증축을 하면서 원형이 변형된 상태이긴 하나, 원형을 복구하는데는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창고건물은 원형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겉보기에 녹이 쓴 모습으로 인해 허접해 보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구조제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사하여 근대건축물로 등록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전국에 이만한 근대기 건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인근에 있는 대학교의 건축과 교수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다산초당을 향하여

해창주조장에서 각자 필요한 술을 주문하고 나서, 다산 초당으로 향하였습니다.

● 다산초당을 보면서

정약용선생님이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흠흠심서 등 그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만약 조정에 있어서 제대로 정치를 하였다면, 나라를 그 꼴로 만들이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암튼 유배지에서 보낼 암담한 시간에 저술로서 활용했다는 것이 대단한 발상인것 같습니다.

허대장님 왈, "만약 그 시대에 정약용이 영국의 옥스포드나 캠브릿지 대학에 다녔다면 더 훌륭한 세계적 위인으로 컷을 것이다"

충분히 동감이 가는 얘기 입니다.

우리 드론대장님도 동감을 하였습니다.

곧 저술에 들어가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이번 투어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내욜들을 소화하려다 보니, 소화불량이 걸리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적으로 뭔가 채위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음 산행 6월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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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동추 2017.04.21 09: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엄청난 여행을 하셨네요~ 몸을 잘 추스리세요. 다음을 위해서 ~

2017.04.17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3. - 진해현 해동지도

진해현 해동지도(1750)

 

진해현은 현재의 마산합포구 삼진(진동, 진전, 진북)지역에 해당된다.

지도의 중심에 진해현 읍성(현재 진동초등학교 일대)을 배치하고, 하천으로 구획된 지역을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읍성내에 아사와 객사 건물 2동이 있으며, 출입문은 동문, 서문, 남문 3개가 있다.

읍성을 중심으로 오측에 동면, 서측으로 북면과 서면으로 3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 태봉천에 해당되며, 좌측에 3개의 천은 진동천, 덕곡천 및 인곡천에 해당된다.

 

공공건물은 태봉천 상류에 문묘가 있으며 진동천과 덕곡천 사이에 사직단이 있으며, 현재 진동면 고현리 일대에 해당하는 해변에 정자(대변정)이 표기되어 있다.

 

 주변의 지형은 북서측 칠원방향으로 경산이 있으며, 진주방향으로 여항산이 있다.

해안가 섬은 구산면 일대에 봉수를 위한 연대가 표기되어 있으며 오른편에 주도, 남측에 석도와 양도가 있다.

 

 주요 교통로는 적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창원으로는 오른쪽 칠원계 방향 도로, 함안계 방향으로는 현재 마재고개 방향이며, 서측으로 고성을 향하는 도로에서 진전면으로 빠지는 진주 방향의 도로로 분기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창원, 웅천현에 비해 소략하게 표현하였다.

 

 

지도상 내용을 행정,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동면, 서면, 북면

3

자연지리

산천

餘航山, 鷲山

2

島嶼

羊島, 酒島, 虎島

3

인문지리

읍성

客舍, 衙舍, 동문, 서문, 남문

5

교육

文廟, 社稷

2

烽燧

烟臺

1

기타

待變亭

1

 

 

칠원현 해동지도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지도에 표현되지 못한 부분을 추가로 보완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방리

 동면, 서면, 북면

3

호구

- 호구수 : 2,970호

- 인구 : 10,5?1명 (남자 5,1?0명, 여자 5,461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564명

- 監營屬 : 9명

- 統營續 : 541명

- 右兵營屬 : 282명

- 金海鎭軍 : 609명

= 합계 2,005명 

 5

지리

시설

산천

- 山 : 靑龍山(縣東 鎭山), 武陵山(縣北), 城山(縣北), 淸涼山(龜山), 船頭山, 大峙山, 紫宮山

- 고개 : 赤峴(龜山北), 甘界峙, 東田峙, 葛峙

- 川 : 大川, 西川

- 海 : 汝火串, 猪島, 金浦津, 麻田浦, 龜山浦, 与叱浦, 餘音浦, 葛浦

- 鎭 : 龜山鎭

4

 

기타

시설

- 書院 : 德淵, 邑倉 : 城內, 城周 : 768尺

- 古跡 :景釀臺, 여叱浦鄕, 釜谷部曲, 山城

- 烽燧 : 安谷烽燧,

- 樓亭 : 擇勝亭

- 佛宇 : 長春寺, 天溪寺(武陵山)

- 驛院 : 昌仁驛, 靈浦驛, 惠民院, 葛浦院

4

경제

元田沓

- 2,613結96負8束

 

案田沓

- 937속20부5속(案田966결23부2속, 案沓893결92부3속)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308석

- 各樣雜穀 : 2,321석

- 別餉米 : 514석

- 租 : 10석

- 監營勾管 各樣雜穀 : 8,359석

- 統營米 : 253석

- 雜穀 : 1,662석

- 帖價牟 : 326석

- 儲置米 : 782석

- 除留米 : 70석

- 各樣軍作米 : 119석

- 射軍作牟 : 59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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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3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2

집만 제대로 지어도 전력난 극복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에너지 소비형태를 보면 건물 부문이 36%를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경우는 전체 에너지소비의 20%를 차지한다.

세계 평균보다는 낮지만 단위 면적당 에너지 소비는 다른 나라보다 엄청 높다.

 

2007년 산자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단독주택은 평방 미터당 연간 1,596 MJ(메가줄)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메가줄은 에너지 소비량을 계산하는 단위) 그러나 일본은 500 MJ, 독일은 250-420 MJ이다. 우리의 3분의1, 5분의 1 수준이다.

 

독일은 2009년부터 신축건물은 반드시 재생에너지 설비를 하여야 건축허가를 해주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2007년부터 건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패시브하우스로 지어야 하는 법을 제정했다. 패시브하우스 즉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주택을 말하는 것이다.

 

기존 건축비의 10% 정도 추가 비용으로 패시브하우스 건축이 가능하다고 한다. 패시브하우스는 에너지를 90% 이상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장기 저리 융자에다 보조금까자 지급하기 때문에 패시브 하우스 시장이 성장하고 건축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창원시와 창원건축사회가 패시브하우스를 장려하기 위해 공동으로 추진한 C제로하우스 - 창원 용지호수변에 있다. 매주 월요일 <고지도로 보는 창원>을 포스팅하는 신삼호 건축사가 설계>

 

 

EU 의회는 2019년부터 모든 신축 건물은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플러스 하우스를 지어야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영국은 EU 보다 한 벌 더 앞서 2016년부터 신축건물은 반드시 에너지 제로하우스로 짓도록 하였다. 2007년부터 주택을 매매할 때나 임대할 때는 에너지 성능 등급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영국은 한국보다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가 거의 절반수준이다.

 

일본은 2008년부터 15-25%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시설을 도입할 경우 비용의 3분의 1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열은 벽과 창문을 통하여 이동이 된다. 아파트의 경우 난방을 하면 에너지의 35%는 창문으로, 18%는 벽을 통해 빠져 나간다고 한다. 벽과 창문의 단열만 잘하면 90% 냉난방은 확실하게 되는 것이다.

 

주거용 에너지 사용중 난방비가 50%를 차지할만큼 난방이 중요하다. 시스템 창호는 단열이 잘되지만 가격이 비싸다.

건축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비싼 시스템 창호대신 이중창을 이중으로 사용하면 싼 가격으로 거의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벽은 단열효과가 높은 단열재를 사용한다. 요즘은 두껍지 않으면서 단열 효과가 높은 단열재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이 밖에도 햇빛이 잘 드는 남향으로 짓는다든지, 옥상녹화를 한다든지, 열교환기를 활용하여 환기를 하는 등 열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찾는다면 현재보다 에너지를 50-90% 절약할 수 있다.

 

우리 나라도 집을 지을 때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허가를 받을 수 없다. 공공기관을 신축할 때는 반드시 에너지효율 1등급으로 지어야 한다.

과거 유리 창문으로 건물 외벽을 치장, 에너지를 낭비하여 비난을 받았던 공공기관 건물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201391일부터 서울시내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매매할 경우에는 반드시 에너지효율 등급평가서를 첨부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아파트는 매매가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건축물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하여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 것이 확실하고 전력사용량 또한 줄어들 것이다.

전기는 전체 에너지의 20% 정도 차지한다. 핵발전소는 전체 전력소비의 30%를 차지한다.

따라서 전체 에너지의 6%를 핵발전소가 담당한다.

 

에너지 소비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핵발전소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의 기술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과 같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는 주장도 전문가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결코 기술 후진국이 아니다.

 

한국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하여 환경감시선 레이보우 워리어호를 타고 부산항에 입항한 그린피스 실무자말에 의하면 고리원전의 대형 사고 발생 확률이 50년만에 한 번이라고 한다.

고리원전이 35년 되었으니 15년 남았다. 확률이니까 1-2년뒤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세계적인 환경 단체가 한국의 원전 위험성을 파악하고 광안대교 90미터 꼭대기 케이블에 매달려 고리원전이 위험하다고 외치는 지경까지 왔다.

 

에너지 절약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모두 갖춘 우리나라는 정부의 의지와 국민들의 에너지절약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더 이상 위험한 원자력발전소 짓지 않아도 된다.

있는 원전 안전하게 관리하고 수명 다하면 폐기하자.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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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0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2. - 웅천현 해동지도

웅천현 해동지도(1750)  

 

 고지도상의 웅천현 지역은 구. 진해시 일대을 말하며, 웅천현의 명칭은 본래 신라의 웅지현으로 경덕왕이 이를 고쳐 웅신현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는 웅신현과 완포현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조선조에 경상도의 육군편재 개편시 김해진 관할의 편제에 소속되었으나 지방관이 파견되는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조선시대 군사조직 편제의 개편에 따라 육군편제에서 종6품의 지방관이 파견되는 웅천현으로 승격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수군의 병선이 주둔하는 정박지로 제포만호가 설치된 지역이다.

 

 

 웅천읍성(웅동 일대)을 중심으로 주변을 표기하였다. 읍성내에 ‘웅천현’라고 적혀있으며 2동의 건물이 있다. 좌측에 아사, 우측에 객사, 우측 아래에는 감옥(옥)이 있으며, 사방으로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배치되어 있다.

 

 읍성을 중심으로 읍성 아래측에 읍내면, 동면, 경화동 일대는 중면이 있으며 여좌천을 사이에 두고 우측이 상서면, 좌측이 하서면으로 5개의 행정구역이 표기되어 있다.

 읍성의 배치는 북측으로 웅산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장복산과 가리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웅산암에서 서측으로 향하는 망운산과 소현. 대현으로 어어지고 있으며, 남측은 왜성을 끼고 외남산과 내남산이 배치되어 있다.

 

읍성 밖의 공공건물로는 귀산동 해안에 강선대, 가덕진 인근에 3개의 선소가 있으며, 안골과 가덕진에 선소과 건물이 여러채 있다.

사찰은 가리산 아래 굴암과 성흥사와 용추정 우물이 있으며, 웅산암 아래 광석암이, 읍성 서북측에 향교가 있다.

 

 주요 교통로는 적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창원으로는 안민령을 지니고, 김해방향으로는 배응현을 지나게 된다. 나루터는 현재 귀산동쪽에 손도진이 있으며, 여좌천 하류에 창고(서창)이 있다.

 지금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해안에 풍덕진과 선소가 있으며, 읍성 남서측에 제포진과 제선소, 현선소가 있다.

 

 통신시설에 해당하는 봉수는 남측 천성에 있는 연대봉에서  서측에 있는 사화랑봉로 연결되어 칠원 여음포 및 봉화산봉대로 연결된다.

저수지로는 장복산 아래 소곡제, 망운산 아래 독점제가 그리고 향교 아래 주이제 저수지가 있다. 

 

읍내 도로는 적색으로 표현하였으며, 인접 마을간 거리는 육로 및 해로로 구분하여 별도의 주기로 나타내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창원지역에 비해 도서 및 군사관련시설의 정보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읍내면, 동면, 중면, 상서면, 하서면

5

자연

지리

산천

伽俐山, 高山峰,內南山, 德山, 望雲山, 屛山, 外南山, 熊山岩, 長福山, 胎峰,

10

고개

弓峴, 大峴, 馬也峴, 裵應峴, 小峴, 鞍嶺, 安民嶺, 栗峴, 旨峴

9

나루터

孫渡津

1

제방

獨店堤, 蔬谷堤, 住伊堤,

3

島嶼

鷗島, 金島, 大庫藏島, 對馬島, 大竹島, 馬島, 木島1. 木島2, 白山島, 蓑衣島, 鼠島, 小告藏島, 小竹島, 小蝦勿島, 里島(束古), 松島, 兟島, 椽島, 熊島, 陰地島, 二瑟島, 箭帽島, 竹島, 支待島, 草里島, 剽島, 華島, 黑山島

28

인문

지리

읍성

客舍, 아사, 옥, 동문, 서문, 남문, 북문

7

교육

鄕校

2

사찰

廣石庵, 窟庵, 聖興寺

3

역원 등

加德鎭舍, 保平驛, 夫人堂, 西倉, 船所1, 선소2, 선소3, 선소4, 新門, 齊船所, 淸川陳, 縣船所,

12

烽燧

沙火郎峰, 煙臺峯,

2

鎭堡

加德鎭, 安骨, 薺浦鎭, 天城, 豐德津,

5

고적

降仙臺, 末古望, 倭城, 龍湫井,

4

 

 

웅천현 해동지도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방리

 읍내면, 동면, 중면, 상서면 하서면

6

호구

- 호구수 : 3,680호

- 인구 : 16,666명 (남자 7,785명, 여자 8,881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395명

- 監營屬 : 101명

- 統營續 : 1,107명반

- 右兵營屬 : 442명

- 左水營屬 : 5명

= 합계 2,050명 

5

 

경제

元田沓

- 1,650結46負9束

 

案田沓

- 1,361속22부10속(案田574결10부4속, 案沓787결12부6속)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858석

- 各樣雜穀 : 2,826석

- 別餉米 : 4,453석

- 監營米 : 14석

- 監營自營 各樣雜穀 : 7,850석

- 統營米 : 1,193석

- 雜穀 : 3,289석

- 戰兵舡價 및 除留米 : 285석

- 諸置米 : 270석

- 各樣軍作米 : 80석

10

주요

시설

- 鹽場 : 16處, 漁場 : 31處, 箭場 : 90處

- 嶺阨兩處 : 안민봉, 율현봉

- 海島 : 15處

- 松田 : 8處, 竹田 : 兩處

- 鎭浦 : 7處

- 烽臺 3處, 望 1處

- 祠廟 : 熊山神堂

- 驛院 : 報平驛, 落水驛, 惠濟院, 八峴院

- 倉庫 : 邑倉(城內), 西倉, 海倉(船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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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1

 

오늘부터 시작해 매주 목요일은 핵발전소에 관한 글을 포스팅할 것입니다.

 

2014년 2월 17일 부산외국어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폭설로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사망 10명, 부상 100명에 이르는 큰 사고였습니다. 전 국민이 사업주인 코오롱 분노했던, 두번 다시 없어야할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습니다.

 

만에 하나 우리나라 핵발전소에 사고가 생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경주 리조트 사고와는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최근에 상영한 영화 <판도라>를 보신 분은 이해가 잘 되실 겁니다.

화려하게 세워올린 도시의 고층빌딩과 촘촘히 들어서있는 아파트들은 모두 어떻게 될까요?

우리 가족의 삶은 또 어떻게 될까요?

 

이번 연재는 이런 핵발전소가 우리에게 과연 필요한 시설인지, 핵발전소가 없으면 우리의 생활은 지금처럼 지속될 수 없는 것인지 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은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입니다.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한 박종권 대표는 탈핵운동에 온 몸을 던지고 있는 시민운동가입니다.

기업은행 마산지점장을 지낸 금융인이었는데 정년퇴직 후 탈핵운동가가 되었습니다.

인생 제3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답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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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남의 일 아니다

 

 

311일은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6년이 되는 날이다. 세월호를 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역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만에 하나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면 끔직한 대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6년이 지난 일본은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6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 주민 12만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임시 가설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한 학생이 왕따를 당하여 학교를 그만 두었고, 아이가 있는 주부는 남편을 두고 멀리 멀리 이사를 간다.

 

폭발한 원자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스코피온이라는 로봇을 개발하여 투입했으나 중심부에는 접근도 못하고 작동을 멈추고 말았다.

73시버트에 견디도록 제작된 이 로봇은 530 시버트의 엄청난 고농도 방사능에 멈추어 버린 것이다. 530 시버트는 일반인 연간 피폭허용치의 53만 배이다. 30초만 노출되어도 100% 사망하는 수치이다.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데는 수십 년이 더 소요될 것이고 그 비용은 최소 400조원을 넘길 것이다.

 

영국 언론은 향후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 국토의 70%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앞으로 300년 동안 방사능 오염 식품을 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수백만 명의 히바쿠샤(피폭자)는 결혼을 할 때 파혼을 걱정해야 할 것이고 아이를 출산할 때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파 장면과 폭파 후 일본의 방사능 오염 지도>

 

 

합천 원폭 피폭자들은 3세까지 고통 받고 있다. 2, 3세는 일본이나 우리 정부의 보상을 받지 못하지만 멀쩡한 다른 자녀의 장래를 위하여 드러내 놓고 항변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핵사고는 미래 세대까지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핵무기만 확산을 금지시킬 것이 아니라 핵발전소 역시 금지시켜야 할 대상이다. 일본의 극우 총리였던 고이즈미는 총리시절의 핵발전소 건설을 국민앞에 사과하고 지금은 핵발전소의 재가동 금지와 해외 수출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모두 25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 특히 부산, 울산, 경남지역, 특히 활성단층지대에 원전이 밀집되어 아주 위험하다.

지난 해 경주지진, 울산지진으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인 되었다.

 

활성단층에 대한 기초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원전이 건설되었다. 월성 원전은 지진 보강작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하고, 특히 35년 된 월성1호기는 안전성 보완이 미흡하고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여 법원에서 승인 취소판결이 난 바 있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반성은커녕 항소하겠다면서 가동을 계속하고 있다.

원안위는 안전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으면 일단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의 올바른 자세이다.

 

산자부는 전기가 남아돌아 고민이다. 2011년 정전사태 이후 민간업자로 하여금 가스발전소를 수십 기 건설하도록 하였지만 예상만큼 전기소비가 증가하지 않았다.

값싼 화력발전과 원전만으로 전력 공급이 가능하면 비싼 가스발전을 가동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민간 발전사들은 가동률이 떨어져 부도가 날 지경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위험한 노후 원전 10(781kw)는 즉시 가동을 멈추고 가스발전으로 대체할 수 있다.

가스 발전은 원전 단가보다 kwh60원 정도 비싸다. 전기요금 5.7% 인상하면(한 가정 한 달 3천원) 가능하다.

 

전기가 남아돌자 정부는 요금을 인하해서 전기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사용할 지경까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서 신규 원전 건설을 계속 추진하고 화력발전소 10기까지 더 짓고 있다.

 

전기가 남아돌고 앞으로도 전기소비가 늘 가능성이 없는데도 발전소를 계속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기업의 일감 주기이다.

 

태양광, 풍력산업은 고용효과가 원자력 산업의 30배이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당장 철회하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핵발전소 신규 건설반대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를 잘 골라 선택하자.

국민의 안전보다 더 귀한 가치는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니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2017. 3. 11 경남도민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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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1. - 창원부 해동지도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 포스팅될 주제는 조선후기 창원지역의 고지도를 소개하고 해제하는 것입니다. 준비는 신삼호 건축사가 합니다.

 

(주)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이면서 경남건축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신삼호 건축사는 건축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중견 건축가입니다.

 

자료는 신 건축사가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접하게된 것들이며 분량은 약 20 회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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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리하는 목적은 조선후기 창원시 지역의 도시경관을 파악하는데 있다. 조사방법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군현지도의 분석과 해제이다.

 

 고지도에는 풍부한 지리정보와 인문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현재의 도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 흔적을 추적하는 것도 지역도시사에 큰 밑거름이 되리라 본다.

 

 지도는 고지도와 근대지도로 구분되는데, 이 중 고지도는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지도가 제작되기 이전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조선시대 고지도(古地圖) 제작유형은 조정에서 통치 차원의 목적으로 제작된 ‘군현지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창원시 지역에 해당하는 군현은 창원부, 웅천현, 진해현, 칠원현 4개 지역의 군현지도를 파악해야 현재의 창원시 지역의 경관을 파악할 수 있다.

 

 고지도 자료의 수집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고지도 원문 자료를 통해 군현지도를 조사하였다. 

 

 4개 군현이 모두 포함된 지도를 찾아본 결과는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유형

지도명

제작연대

제작기법

군현 지도

해동지도

1750년초

필사본/ 회화식

비변사지도

1745~60

필사본/ 방안식

여지도

1767년

필사본/ 회화식

조선지도

1750~68

필사본/ 방안식

지승(地乘)

1776년 이후

필사본/ 회화식

광여도

19세기 전반

필사본/ 회화식

 

 

고지도상의 창원부 지역은 구. 마산.창원지역 일대를 말하며, 1425년 창원도호부 제정이후 1895년 창원군으로 행정개편 될 때까지 약 450여 년간 존재한 지역이다.

 

 웅천현은 구. 진해시 지역일대이며, 진해현 지역은 진동, 진전, 진북면 일대 삼진지역일대이며, 칠원지역은 현재의 함안군 칠원면 일대와 구산면을 포함한 지역이다.

 구산면이 현재 창원시 지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칠원현 지도도 조사대상에 포함하였다.

 

연재순서는 제작연대순이며, 연재는 다음과 같이 할 계획이다.

 

1. 창원부 해동지도 및 地志

2. 웅천현 해동지도 및 地志

3. 진해현 해동지도 및 地志

4. 칠원현 해동지도 및 地志

5. 창원부 비변사지도, 웅천현 비변사지도

6. 진해현 비변사지도, 칠원현 비변사지도

7. 창원부 여지도 및 地志

8. 웅천현 여지도 및 地志

9. 진해현 여지도 및 地志

10. 칠원현 여지도 및 地志

11. 창원부 조선지도, 웅천현 조선지도

12. 진해현 조선지도, 칠원현 조선지도

13. 창원부 地乘지도 및 地志

14. 웅천현 地乘지도 및 地志

15. 진해현 地乘지도 및 地志

16. 칠원현 地乘지도 및 地志

17. 창원부 광여도 및 地志

18. 웅천현 광여도 및 地志

19. 진해현 광여도 및 地志

20. 칠원현 광여도 및 地志

 

 

창원부 해동지도(1750) 및 지지

 

- 창원부 해동지도 (古大44709-41)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지도이다.

- 지도개요 : 제작시기: 1750년 (영조 26), 규격: 47.0×30.5cm, 구성: 8책

 

 지도의 제작은 자연 지형지물인 산계, 수계를 회화식으로 표현하고, 인공요소인 건물은 행정의 중심지인 읍치를 크게 확대하고 나머지 주변지역은 소축척으로 표현하였다.

 

 건물은 읍성과 읍성내 관아건물을 강조하고, 읍성 주변에 향교와 역원, 사찰 등을 표현하였다.

 

 다음으로 마을의 역사를 상징하는 고적지를 소개하고 읍내 도로는 적색으로 표현하였으며, 인접 마을간 거리는 별도의 주기로 표현하였다.

 

 

 

 

 창원읍성(도계동 일대)을 중심으로 주변을 표기하였다.

 읍성의 배치는 북면쪽의 무릉산과 백월산, 구룡산, 천주산을 끼고 있으며 서측에는 두척산, 동측에는 전단산이 남측에는 반룡산이, 동남측에는 웅산과 장백산이 두척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읍성을 중심으로 읍성 아래측에 부내면, 동면, 서면, 남면, 북면 5개의 행정구역이 표기되어 있다

 읍성내에 ‘창원부’라고 적혀있으며 5개의 건물이 있다. 중앙에 사미당, 좌측에 회산루, 우측에 연정, 후편 좌측에 객사, 우측에 아사라고 기재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읍성 밖에 공공건물들이 표기되어 있다. 읍성 서측방향에 지금의 합성동 일대에 있었던 우병마절도사가 있었던 성을 구병영으로 표기하고, 성내에 향교가, 두척산 아래에 서원이, 두척선 뒤편에는 광산사가, 월영동 해안에 월영대가, 남성동 일대에 船所, 북측으로는 무령산 아래에 심암사가, 백월산 아래에는 남백사가 표기되어 있으며, 동측으로 전단산 아래에는 봉림사와 자여관이 있으며, 남측 웅산 아래에는 성주사가 표기되어 있다.

 

 주요 교통로는 적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나루터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밀양계에 면한 주문연진과 손진이 표기되어 있다.

 통신시설에 해당하는 봉수는 두척산 아래 성황봉과 저도 서측에 있는 여포봉이 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부내면, 동면, 서면, 남면, 북면

5

자연지리

산천

구룡산, 백월산, 무릉산, 천주산, 두척산, 반룡(산),

전단산, 웅산, 장백산, 저도

10

고개

굴현, 객현, 노현, 안민현, 두척현, 이리현

6

나루터

주문연진, 손진

2

인문지리

읍성

객사, 아사, 사미당, 회산루, 연정

5

교육

향교, 서원

2

사찰

영암사, 남백사, 봉림사, 성주사, 광산사

5

역원 등

자여역, 안민관, 여포봉, 성황봉, 강소

5

고적

구병영, 월영대, 내포향, 고운대

4

 

창원부 해동지도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방리

부1면, 부2면, 하1면, 하1면, 상1면, 상2면, 상3면, 동1면, 동2면, 동3면, 북1면, 북2면, 북3면, 서1면, 서2면, 서3면

16

호구

- 호구수 : 7,386호

- 인구 : 27,739명 (남자 11,632명, 여자 16,107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1,213명

- 監營屬 ; 285명

- 統營續 : 1,627명

- 右兵營屬 : 837명

- 左水營屬 : 9명 반

- 金海鎭屬 : 1,088명

= 합계 5,059명

봉수

 성황봉수, 여음포봉수

 

경제

元田沓

- 6,293結11負9束, 과전1,611결90부7속

 

案田沓

- 4,724속88부13속(案田1,691결79부6속, 案沓3,034결9부7소)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92석

- 各樣雜穀 : 3,420석

- 別餉米 : 1,104석

- 監營米 : 44석

- 監營自營 各樣雜穀 : 27,598석

- 統營米 : 1,551석

- 雜穀 : 2,477석

- 戰兵舡價 및 除留米 : 174석

- 諸置米 : 486석

- 各樣軍作 및 射木作米 : 174석

- 作租 : 151석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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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7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마지막회, 저자를 회고하면서

 

2015323일 시작해 이번 회까지 만 2년 동안 포스팅한 목발(目拔) 김형윤 선생의 마산야화(馬山野話)」143꼭지가 이번 회로 끝납니다.

지나간 시절 마산사회와 마산 사람들을 추억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 연재될 포스팅은 신삼호 건축사가 준비합니다.

(주)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 신삼호 건축사는 건축작품활동도 활발하지만 도시와 건축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부산대 대학원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논문 준비 중입니다.

블로그에 포스팅하게 될 내용은 논문 준비과정에서 접하게된 여러가지 자료들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형식이 될 것이며 분량은 약 20여 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산야화> 마지막 회, 저자를 회고하면서-

 

조병기(趙秉基)

 

김형윤 공은 1903년 마산시 서성동에서 김양수 씨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공의 성장과 수학 과정에 대하여서는 소상하지 않으나, 일생을 통하여 소년기에 돈을 번 일이 꼭 두 번 있었다 하는데 18세 때 진영 대목장에서 조장수를 한 일이 있었고, 또 한 번은 창원산업조합에 가마니 검사원으로 취업을 하여 월봉 10원이란 대금을 벌어 쓴 일이 있었다고 자랑삼아 얘기하곤 하였었다.

 

20대에 손문기 씨가 경영하던 조선일보 기자를, 30대에 고교(高橋) 씨가 사장이던 남선일보 기자를, 40대에는 창산(蒼山) 이형재(李瀅宰) 씨가 경영하던 동아일보 기자를 역임하였으며, 1947년에는 김종신 씨가 경영하던 남조선민보를 인수하여 마산일보로 개제(改題)한 후 현 경남매일(경남신문)로 넘어가기까지 최근 20여 년간을 경영하였으니 공의 일생은 그야말로 언론에 모조리 몸을 바친 거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공의 진면목은 유우머와 해박한 풍자에 있는 것이며, 가지가지의 기행과 괴벽(怪癖)은 김립(金笠)이나 정수동(鄭壽銅)을 방불케 하였고, 특히 방랑벽이 있어 국내는 물론, 일본 만주 등지를 바람처럼 편력(遍歷)하다가 서울에 돌아와서 조국 해방을 맞았다.

 

해방 그 해 1230일 신탁통치 반대시위에 선봉으로 나섰다가 검거되어 1947년 봄에 석방, 마산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공의 모든 언행의 근원이 되는 인생관이나 사회관을 이해하려면 먼저 공의 사상적(무정부주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공은 끝까지 부정, 불의를 증오하였고,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였고, 권력에 굴하지 않았고, 부귀를 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많은 곤욕과 박해가 노상 뒤를 따랐으며 일정 때는 옥고도 수없이 치렀다. 3년 전 봄에 공은 필자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 미력이나마 마산 사회를 위하여 뭔가를 기여하고 가야 하지 않겠나?” 하면서 마산시사를 편찬하는 일을 시작하자고 하기에 쾌락(快諾)를 하고 발족하였던 것이나 오늘날까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을 오직 죄스럽게 생각할 뿐이다.

 

끝으로 공을 애칭 또는 별명으로 목발(目拔)’이라 부르게 된 일화를 여기 소개하면서 공의 약전(略傳) 겸 회고담을 공을 추모하는 유우머로써 맺을까 한다.

 

우금(于今) 50년 전 마산 앵정(櫻町)의 벚꽃이 만개(滿開)일 때 일인 요정에서는 가설무대를 지어놓고 일인 게이샤(기생)’들이 삼미선(악기)을 통기며 일남(日男)들과 어울려 가무가 한찬 무르녹고 있었다.

 

한 조선인 지게꾼이 흥에 겨워 관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일() 헌병이 민족적 모역을 주며 그를 끄집어 내었다. 이를 본 김 공은 의분을 참지 못하여 비호 같이 일() 헌병에게 달려들어 그의 한쪽 눈을 뽑아 버렸던 것이다. 공의 용기도 용기려니와 당시 힘이 또한 장사였었다.

 

목발(目拔)’이란 이 무용담에서 비롯한 것이나 유래를 모르는 사람들은 절름발이로 오단(誤斷)을 하여 빚어지는 희화(戲話)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끝

 

  <마산야화 초판본(1973)과 재판본(1996)>

 

 

-김형윤 선생을 회고한 조병기(趙秉基) 선생은 창원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였다.

 

창원공립보통학교 훈도였던 조병기 선생은 1928년 핵심회원 6명과 비밀결사체 흑우연맹(黑友聯盟)’을 조직하였다.

흑우연맹은 창원.마산의 열혈청년들로 구성되었다. 면면을 보면 창원공립보통학교 동료교원이었던 손조동(23), 창원 북동출신 박창오(朴昌午.20)와 박순오(朴順五.19), 창원 북면의 김두봉(金斗鳳.20), 창원 동면의 김상대(金相大.20), 창원 북동의 김두석(金斗錫.21)이었다.

이들은 나라사랑과 겨레번창의 유일한 길은 민중계몽과 혁명적 투쟁에 진력하는데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애국심도 강력한 정신적 기반이 없으면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입장에 따라 조병기 선생은 청년.학생들이 민족의식과 항일사상을 고취하는데는 오로지 민중계몽밖에 없다고 본 것이었다.

1927<청년에게 고함(크로포드킨 저)>이란 책자를 비밀리에 출판 보급하려다 일경에게 발각, 체포되었다. 이 때문에 출판법 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언도를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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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진섭 2017.03.29 13: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수고하셨습니다. 고향 마산의 숨은 역사를 이렇게 조감해 주시니 평범한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젠가는 많은 마산 시민들이 역사의 깊음을 음미하면서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날이 오겠지요. 지금은 일부 일급 교양인들만이 음미하는 듯합니다. 이상하게도 날이 갈수록 왜 물질적 풍요와는 정반대로 정신은 황폐해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2017.03.20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2. 영불의 함대 입항

 

142. ·(·) 함대 입항

 

 

1920년 여름, 안남(安南, 월남)에 있는 불함(佛艦)이 마산 저도 좌편 안쪽에 투묘(投錨)했다가 삼일 후에 출항한 뒤를 이어, 상해에 주둔하고 있는 영함(英艦) 호오킨스호가 동도(同島) 훨씬 뒤편 마산 바로 앞면에 정박했다.

 

 

<1926년 조선교통도 마산5호에 나타난 마산만 해안>

 

 

이들 영·불 양 극동 함대가 진해 해군기지에 들르지 않고 마산만으로 들어온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과의 친선을 위한 단순한 의례적 순방이라 했지만, 그들이 일본 육해군의 중요한 요새지인 이곳에 온 근본 저의를 번연히 알고 있는 일본군 당국자들은, 과거 동맹국으로 국제 친선의 예방인 만큼 속으로는 앓고 있으면서도 표면상으로는 환대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 두 함대가 거제 수도(水道)에 나타나기 직전, 진해 해군기지에서는 연막을 쳐서 군항의 일체 형태를 감추는 한편 육해군 장병들의 외출을 엄금해서 그들과의 불의의 교유나 충돌을 막는데 애썼던 것이다.

 

입항 2일째, 진해 통제부 사령관의 의례적 탐방이 있었으나 옹졸하고 괴팍한 일인인지라 내심 초조함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 함선 안에는 이미 이 지역의 상세한 지도와 사진 등 지리상의 기밀 재료가 이곳을 빈번히 내왕한 선교사의 손을 거쳐 입수돼 있는 것쯤 일본군 수뇌들이 알고 있었을 터인데, 그렇다면 아예 그들의 내방을 단순한 친선예방으로 대하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 아니었을까.

 

호오킨스 호가 들어올 때 갑판을 두들겨서 수심을 측량해가며, 만 톤이 넘는 배가 저도에서 백여 미터 거리의 마산 바로 앞면에 웅자(雄姿)를 나타낸 것은, 저도 앞에 투묘(投錨)한 불함(佛艦)보다 수심 측정 기술이 앞섰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인성 싶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함내(艦內)에서 성수(醒水)를 담수(淡水)로 만들어서 음료수로 쓴다면서 자랑도 대단했다.

 

영함(英艦)이나 불함(佛艦)에는 소저부와 쿡크가 중국인 아니면 안남인(安南人)인데 안남인 쿡크에게 , 차이나?”하고 물었더니 , 안난!”하면서 지나인(支那人)으로 보인 것이 불쾌했는지 노기 띤 대답으로 관함자(觀艦者)들을 실소케 한 일도 있었다.

 

오늘날과 같이 외국어가 널리 보급되어 구두닦기와 아이들까지 서투른 영어 조각이라도 할 수 있고, 그들 외인(外人)들이 가진 물건 이름이라도 알았던들 특수 외래품 단속법에 걸릴 염려 없이 귀한 물건들을 입수할 수 있었을는지 모르나, 일본말도 제대로 못하던 그때인지라 함내(艦內)에서 귀한 것이라고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 영·(·) 연초회사 발매의 칼표 담배가 고작이었고, 조선인들이 그들의 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 군함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급해 준 야채 값뿐이었다.

 

영함(英艦)이 발묘(拔錨)한 날은 불함(佛艦)의 천명한 날씨와는 달리 가랑비가 조용히 내리는 무더운 저녁 노을 때였다.<<<

 

 

<142회로 김형윤의 마산야화가 모두 끝났습니다. 다음 주, 저자 김형윤 선생을 소개를 하는 것으로 연재를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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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3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1. 개항과 각국 영사관

 

141. 개항과 각국 영사관

 

 

강화조약에 의해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된 후 다음과 같이 항구와 시장이 개방되었다.

 

<조선의 시장과 조약항>

 

부산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13(1876) 1014(일본에게)

고종 20(1883) (다른 조약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일 수호 조규(條規)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고종 2011

거류지 ; 일본 전관(專管) 거류지, 청국 전관(專管) 거류지

 

원산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17(1880) 5(일본에게)

고종 20(1883) (다른 조약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일 수호 조규(條規)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고종 2011

거류지 ; 일본 전관(專管) 거류지, 청국 전관(專管) 거류지

 

인천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20(1883) 11(일본에)

고종 20(1883) 5(다른 조약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일 수호 조규, ·미 수호통상조약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고종 2011

거류지 ; 일본 전관(專管) 거류지, 청국 전관(專管) 거류지, 각국거류지

 

 

서울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19(1882) 9(청국에)

고종 21(1884) (다른 조약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중조상민수륙(中朝商民水陸)무역장정, 한영수통상(韓英修通商)조약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융희 28

거류지 ; 잡거지

 

용산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21(1884) 10

인락(認諾)의 형식 ; ·일 양국간 양화진(楊花鎭)을 대신하여 용산을 개시(開示)하는 왕복서개시(往復書開始)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거류지 ; 잡거지(雜居地)

 

의주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19(1882) 9(청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중조상민수륙(中朝商民水陸)무역장정, 광무 83월 외부대신의 선언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융희 원년 4(감시서 監視書)

거류지 ;

 

회령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19(1882) 9(청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중조상민수륙(中朝商民水陸)무역장정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거류지 ;

비고 ;

 

경흥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25(1888) 8(노국에)

인락(認諾)의 형식 ; 조아로통상장정(朝俄路通商章程)

거류지 ;

 

목포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광무 원년(1897) 101

인락(認諾)의 형식 ; 외부대신의 조회(照會)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광무 원년 101

거류지 ;

 

진남포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광무 원년(1897) 101

인락(認諾)의 형식 ; 외부대신의 조회(照會)

거류지 ; 각국 거류지

 

군산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광무 3(1899) 51

인락(認諾)의 형식 ; 외부대신의 조회(照會)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광무 351

거류지 ; 각국거류지

 

마산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광무 3(1899) 51

인락(認諾)의 형식 ; 외부대신의 조회(照會)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광무 351

거류지 ; 각국거류지, 일본 전관 거류지

 

성진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광무 3(1899) 51

인락(認諾)의 형식 ; 외부대신의 조회(照會)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광무 351

거류지 ; 각국거류지

 

평양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광무 3(1899) 51

인락(認諾)의 형식 ; 외부대신 및 외부 사절의 조회(照會)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거류지 ; 잡거지

 

용암포

개항(開港개시일(開市日) ; 고종 광무 8(1904) 2

인락(認諾)의 형식 ; 외부대신의 조회(照會)

해관개설일(海關開設日) ; 광무 108

거류지 ;

 

 

이상 기록한 바와 같이 청일 전쟁 후인 1897101일에 목포·진남포 개항의 뒤를 이어 189951일에 군산, 성진항과 같이 마산포도 개항되었다.

 

<마산포 조계장정에 첨부된 조계지 도면>

 

 

 

이때는 조선에서 청의 세력이 후퇴하고 일본의 적극적인 조선 침략과 아울러 3국 간섭 후 제정 러시아 세력이 조선으로 제정 러시아의 남하 정책과 영국의 세력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대륙정책은 곳곳에서 충돌하였다. 즉 목포만의 고하도(孤下島), 부산의 복병산(伏兵山), 절영도(絶影島) 등의 토지 이권을 둘러싼 노·일간의 대립은 이러한 표현이었다.

 

이 경향은 189951일 마산포, 군산, 성진항 등 개항시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마산포의 개항 경위를 살펴보면 1898526일 열강의 요청에 의해 조선 외부대신은 마산포, 군산, 성진의 개항과 평양의 개시(開市)가 결정되었음을 주재 각국 공사에게 통고하였다.

 

이와 아울러 조선 정부는 창원항인 신마산포에 창원감리서를 설치하고 창원부윤 안길수로 하여금 감리서 서리겸섭(署理兼攝)케 하는 동시에 구조창전운사아문(舊漕倉轉運使衙門)으로 하여 안감리(安監理)1개년 이내에 개항을 감행하도록 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이 같은 외부의 명령을 받은 감리는 곧 창원군 외서면 내의 해안 신월, 월영 2동 지내(地內) 13888십여 평을 구획하여 각국 거류지를 정하고, 거류지 주권(周圈) 10여 리를 개방하고 그 권내 소유주에게는 대계(垈契), 지계(地契) 등을 발행하여 매매 양도를 자유롭게 하고 또 각국 거류지는 A호 즉 1등지, B호 즉 2등지로 대별하여 이를 189951일 각국 대표자인 부산 세관장 스가그리오(이태리인)에게 수여하였다.

 

한편 조계장정은 당시 총세무사 브라운 제이 메레아니(Brown J. Meleany ; 백탁안柏卓安, 영인英人)에 의해서 기초되고 이 초안으로 조선 외부대신과 각국 공사간에 절충이 이루어져 189952일에는 서울에서 3항의 조계장정이 조선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미 등 각국 대표(公使) 사이에 조인되었던 것이다.

 

이 조계장정은 각국 영사관 부지에 대한 제한 규정을 적용한 것으로 일본 침략자들이 목포, 진남포 개항 시()를 거울삼아 각국공동조계의 당사국 간에 세력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노국 세력의 침투를 막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즉 목포, 진남포의 조계장정에서는 조약국이 경매를 거치지 않고 영사관 부지를 토지 원가로서 수득(收得)할 수 있었으므로(동장정 제10) 그들에게 토지의 선취권(先取權)을 인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권리를 둘러싸고 노일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바 있었다.

 

당시 노국 정부는 상기(上記) 양항(兩港)에 대하여 토지 구매금으로 25천 루불을 지출하였고(목포에 1만 루불, 진남포에 15천 루불) 불국(佛國) 또한 15십만 프랑을 투자하여 1백만 입방미터의 영사관 부지를 구매코자 예정한 바 있었다.

 

특히 노국은 진남포에 있어서 해항(該港) 조계지 총면적 975천 평방미터(293천 평) 중 폭지(瀑地)를 제외하면 46만 평방미터(138천 평)를 노국 영사관 부지로 보류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이때 각국 공사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많았던 일본 공사는 해() 부지면적을 감소시키려고 갖은 힘을 다했고, 다른 공사들도 이에 호응하여 이 문제는 결국 4만 평방미터를 초과할 수 없다는 묵시적 의견으로 각국 공사간에 의견이 일치를 보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거울삼아 마산포, 군산, 성진항의 조계장정에는 이 규정을 명문화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마산포, 군산, 성진 조계장정에는 당시 조선을 둘러싼 노·일 관계가 그대로 첨예하게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189951, 조선 측과 각국 대표자들은 부산 세관장 스가그리오 사이에 마산 각국 조계지의 수수(授受)를 끝마친 후 부산 세관 곧 창원감리 별방(別房)에 부산세관 마산출장소를 설치하고 출장소 주임으로는 독일인 아노우스(Arnous), 보조 세관리로는 등본종태랑(藤本鍾太郞), 고교가길(高橋嘉吉)의 양 일인이 임명되어 조계지 획성(劃成) 사무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 부산세관 마산세관 출장소 설치 후인 522일 부산 일본 영사관 마산분관을 설치하고, 천상진일랑(川上辰一郞, 당시 일본 외무서기생外務書記生)으로 분관 주임 사무를 대행케 하였는데, 이에 앞서 부산 일본 영사관에서는 대로(對露) 감시와 아울러 일본 정책의 철저를 기하기 위해 순사부장과 1명의 순사까지 파견하여 일본 영사관 마산 분관사무에 간섭케 하였다.

 

한편 조선 외부에서는 마산 각국 공동 조계지 측량을 위해 개항 당초부터 조계지 측량에 종사하고 있던 세관리 기사 스타든(Staden)을 고용하였던 것이니, 이는 18995월말 마산포의 측량을 개시하여 8월 끝마치게 되었다.

 

이리하여 조계로서 구획된 토지의 위치는 대략 신월리(), 월영리()였는데 이 구역의 경계선에는 마산포 각국 조계라는 문자를 조각한 경계 석표(石標)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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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노·일(露·日) 전쟁과 율구미(栗九味) 노국의 조계지인 율구미는 1903년 1월 5일을 마지막으로 노국 수변 8명이 철수한 후에는 공지화되었다. 이를 그냥 둘 수 없어 노국 영사 카자코브는 치지코브라는 자에게 그곳을 ..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8. 신상회사와의 투쟁

138. 신상회사(紳商會社)와의 투쟁 신상회사(紳商會社) 혁파 투쟁은 국내 본건지배층에 대한 투쟁이지만 외세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고, 또 마산항민들의 저항심의 성장을 고찰하는데 의의를 가진 투쟁이기 때문에 여기 서론(叙論)코자..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7. 노·일(露·日) 마산포 경영

137. 노·일(露·日) 마산포 경영 노·일(露·日) 양국인의 마산포 경영에 대하여서는 일본 외교문서 제33권에 당시 마산 일본 영사 판전중차랑(坂田重次郞)이 일본 외무대신에게 한두 가지의 보고 즉 마산포에 있어서 노국간의 경..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6. 1900년대의 국제관계

136. 1900년대의 국제 관계 청일정쟁으로부터 노일전쟁에 이르는 시기는,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최고의 단계인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던 시기로 이 시기의 시대적 특징인 극동에 있어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의 심화와 그 확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