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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웅천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8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8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군제를 정비하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지방의 실정파악은 시급한 과제였고 이을 위해 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사업을, 이듬해인 1872년에는 전국적인 차원의 지도제작 사업을 추진하였다. 조선시대 관찬지도 제작사업의 마지막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아쉽게도 창원부의 지도는 없으며, 웅천현, 진해현, 칠원현의 지도만 소개하게 되었다.

 

 

지도의 구성은 중심이 되는 읍성을 지도 중심에 크게 배치하고, 주변에 도로망과 산세, 물길을 표현하고 있다.읍성을 중심으로 4대문을 관통하는 도로망에 의해 마을들이 나타나고 있다.

 

도로망의 구성을 살펴보면

북문을 통과한 도로는 北川을 지나 북산을 거쳐 八阪洞에 이르게 된다.

동문을 통과한 도로는 廣川橋를 馬川里를 거쳐 주막에 해당되는 洛水院店을 지나 김해계에 이르게 된다. 마천리에서 북측으로 이어지는 길은 大將洞을 거쳐 성흥사에 이르고 있다. 남측으로는 永吉里, 寶蓋山을 지나 主浦, 夫人堂場市에 이르고 있다. 다시 남하하는 길은 東面社倉과 安骨鎭에 이르고 있다.

남문을 통과한 도로는 講武亭을 거쳐 薺浦鎭을 지나 沙火郎烽燧와 禦邊亭에 이르고 있다.

서문을 통과한 도로는 邑內面社倉을 지나 完浦, 牧丹浦, 安谷里를 거쳐 飛鳳里, 飛巖洞을 거쳐서 西面社倉에 이르게 된다. 완포에서 북으로 향햐는 도로는 小峙를 거쳐 將軍里와 豐德里 場市 및 中面社倉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창원계로 향하는 두 갈레 길이 있다. 安民嶺으로 향하는 길과 馬也嶺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북쪽방향 창원부 경계면에 高山烽燧가 있으며 주변에 高山城이 표기되어 있다. 고산봉수가 있던 곳은 지금 현동에 해군기지내에 있는 山城山(해발 400M)이다.

동으로 長福山이 있으며, 좌우로 마야령과 안민령이 있다. 모두 창원으로 향하는 고개길이다. 장복산에 연이어 望雲臺과 천자봉(웅봉)이 동서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읍성 남측으로 內南山과 外南山이 있으며, 외남산은 古倭城이다.

 

읍성의 배치를 살펴보면

동서남북 방향으로 사대문이 설치되고, 건물로는 중앙에 동헌과 객사가 좌우로 배치되어 있으며, 읍성 내에는 場市라고 표기되어 있다.

읍성 주변 건물로는 읍성 서문 인근에 慮祭壇과 鄕校가 있으며, 남측 내남산 아래 城隍祠, 講武亭, 社稷壇이 있다.

그리고 晴川鎭과 新門鎭은 權罷(잠시 멈춘 상태)되었다.

가덕도에는 加德鎭과 天城堡가 설치되어 있다. 사찰은 窟庵과 聖興寺가 있다.

봉수는 가덕도에 煙臺烽燧, 沙火郎烽燧, 高山烽燧 등 3개소 설치되어 있다.

 

웅천현 내의 물길(하천)을 살펴보면

크게 읍성 우측면을 감아도는 북천(현재 하천명은 동천)으로 천자봉에서 발원하여 하류로 흐르고 있다. 저수지는 읍성 남서측에 堤堰이 크게 표기되어 있다.

 

주요 군사시설을 살펴보면

웅천현의 지형적 조건은 전형적인 배산임해 지형으로 볼 수 있다. 북쪽방향 창원부 경계면에 長福山에 연이어 웅암산과 망운산, 가리산이 동서방향으로 이어져 있는 지형이며, 중간 부분에 지금의 산지명으로 보면, 웅산에서 시루봉으로 다시 천자봉으로 연결되는 남북방향의 산세가 마산만을 향해 남북방향으로 가로지르는 형국이다.

이러한 지형적 여건에 의해 군사시설에 해당하는 鎭堡(陳)가 설치되었다.

가장 남덕에 위치한 가덕도에 天城鎭과 2개의 선소와 2개의 봉대가 설치되었으며, 안골포에는 安骨鎭과 新門陳, 晴川陳 그리고 加德津舍와 船所가 설치되었다.

읍성 남측에는 제포진과 2개의 선착장 (縣船所, 薺(浦)船所)과 사화랑 봉대가 있다.

내만인 하서면 일대에는 豐德領(鎭)과 西倉 그리고 高山烽臺가 설치되어 있다.

 

지승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동리명

八阪洞, 馬川里, 洛水院店, 大將洞, 永吉里, 主浦, 完浦, 將軍里, 豐德里.

9

자연지리

산천, 고개

고산성, 장복산,천자봉(웅봉), 내남산, 외남산

馬也峴, 小峴, 安民嶺

8

堤堰

堤堰

1

島嶼, 나루터

거제경도, 대마도, 만산도, 백산도, 병산도, 부도, 사리도, 수도, 연도, 이슬도, 전모도, 흑산도

12

인문지리

읍성

동헌, 객사, 4대문

6

교육

향교, 려제단, 성황사, 사직단

 

사찰

굴암, 聖興寺

2

鎭堡

제포진, 가덕진, 천성보, 권파청천진, 권파신문진

講武亭, 禦邊亭

7

역원, 烽燧

(가덕)연대봉수, 사화랑봉수, 고산봉수

3

고적

古右水營, 古倭星, 降仙臺,

3

기타

동면사창, 읍내면사창, 중면사창, 서면사창, 서창,

부인당장시, 읍내장시, 풍덕리장시

8

 

전체 지도의 구성의 특징은 타 지도에 비해 부내 소략하게 표현하였다. 읍성내 시설, 군사시설이나, 역원명, 도서명 등이 많이 생략되었다.

생략한 요인은 웅천현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군사시설에 해당되는 시설은 별도로 군사지도가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웅천현 내의 군사시설지도로는 가덕진도, 안골진지도, 제포진지도, 청성진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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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4. - 칠원현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4. - 칠원현 廣輿圖

 

漆原縣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비변사 지도와 유사하다. 영조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사라지게 된다. 기호식 지도집의 등장으로 국가가 합리적인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편찬에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관찬 군현지도집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비변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표현방식상 비변사지도는 방안 위에 그려져 축척에 의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방안식지도이다. 광여도의 경우 거의 배치형태가 동일하지만, 방안이 표기되지 않은 이유로 회화식으로 분류하였지만, 사실상 방안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전체 산의 배치와 읍면의 위치 등은 거의 같으나, 각 면을 연결하는 내방도로와 인접 군현으로 가는 외방도로가 생략된 것이 큰 차이다.

 

칠원현은 현재의 함안군 칠원읍, 칠서면, 칠북면 지역에 해당된다.

칠원현의 읍치는 현재 칠원초등학교 주변일대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표현하였다.

읍치을 중심으로 남측에 상리면, 북면과 서면 그리고 구산면으로 4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도 상단에 있는 수계는 영산계에 면한 낙동강으로 篾浦津, 金浦津, 亏叱浦津 3개의 나루터가 있다.

중앙에 남북방향으로 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현재의 광려천에 해당되며, 읍성을 경계로 분기되는 상단의 하천은 운곡천, 하류의 하천은 칠원천에 해당된다.

 

주변의 지형은 읍치 북측에 德山이 등장한다. 칠원현의 주산은 동측에 있는 청룡산이나 지도상 표기가 누락되어있는 반면 덕산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된다. 방안식 조선지도에는 청룡산과 城山이 나타나는데, 위치상으로 성산과 덕산은 같은 산일 가능성이 높다.

장춘암을 품은 산이 무릉산으로 창원부 북면에 면한 산이다.

서측에 있는 안곡산 봉대 주변의 산 이름은 생략하였으며, 남측 구산면에 청량산이 표기되어 있으며, 임해군방둔소 에 면하여 大峙山封山이 나타나고 있다.

대체적으로 주요 산세는 비변사 지도를 참조하여 그렸으나 대부분의 산지명은 생략하였다.

 

공공건물은 읍치 인근에 향교와 내원암, 묵사, 장춘사가 있으며, 상리면에는 덕연서원이 있다.

구산면에는 구산진과 선소와 해창 그리고 (수정포)稅所와 淑媛房屯所와 臨海君房屯所가 배치되어 있다.

봉화는 구산면의 창원봉대에서 안곡산 방대를 거쳐 영산계로 연결된다.

역원은 창인역이 있으며, 주요 교통로는 생략되었다.

인접 군현 길목의 고개를 살펴보면, 동측으로 내서면 감천으로 넘어가는 甘溪峙, 서측으로 함안으로 넘어가는 於嶺峙險阨, 구산면에서 서측 진해현으로 넘어가는 東田峙險阨 등이 있다.

 

구산면에서 해창의 위치는 현채 덕동 하수종말처리장 위치로 판단되며, 구산진이 설치된 곳은 현재 구산면 수정리 일대로 보이며, 선소의 위치는 STX에서 조선소를 설치하려고 했던 ‘수정 일반산업단지’ 위치에 해당된다.

지도 남측의 저도는 구복리 저도로, 최근 콰이강의 다리에 설치된 바닥투시경을 통해 인기를 끌고 있는 명소이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上里面, 西面, 北面, 龜山面

4

자연지리

산천

德山, (구산면) 淸凉山,大峙山

3

고개

於嶺峙險阨, 甘溪峙, 東田峙嶺阨

3

나루터

蔑蒲津, 金浦津, 亏叱浦津

3

기타

穴岩, 猪島

2

인문지리

공해

龜山鎭, 海倉, 船所, (水晶浦)稅所, 臨海君房屯所, 淑媛房屯所

6

교육

향교, 덕연서원

2

사찰

長春寺, 墨寺, 內院庵

3

역원 등

靈浦驛, 昌仁驛

2

烽燧

안곡산봉, 창원봉

2

 

 

칠원현 광여도 地志

 

- 별도의 地志에 수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2,970호

- 인구 : 10,551명 (남자 5,140명, 여자 5,411명)

2

군병

- 京各司諸色軍 : 564명

- 監營屬 : 90명

- 統營屬 : 541명

- 右兵營屬 : 282명

- 金海鎭屬 : 609명

= 합계 2,086명 

 5

지리

시설

기타

시설

- 구산진 : 官距 53리, 전선1척, 병선1척,

- 덕연서원 : 사액서원

- 昌仁驛 : 대마1필, 기마2필, 복마10필

- 靈浦驛 : 대마1필, 기마2필, 복마9필

- 船材封山 : 청량산, 선두산, 대치산, 시궁산, 저도주면

4

경제

量付

- 전 1,736결36부, 실결 966결 23부

- 답 877결60부, 실결 593결92부

 

곡물

- 別餉米 : 514석 9두, 租10석 13두

- 元會米 : 44석 7두, 잡곡 434석 9두

- 常賑米 : 264석 10두, 잡곡 1,887석 4두

- 監營米 : 5두, 잡곡 6,259석

- 統營米 : 253석 12두, 잡곡 1,662석 13두

- 浦項雜穀 : 469석 5두

- 私賑雜穀 : 1,077석 1두

- 帖價牟 : 326석 9두

- 備荒租 : 551석 3두

- 儲置米/저치미 : 782석 6두

- 除留米 : 70석 6두

- 各樣軍作米 : 119석 9두

- 射軍作牟 : 590석 14두

12

 

비변사지도에 수록된 지지내용과 동일하다. 1760년 제작된 비변사 지도와 19세기 초반사이에 약 40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인구 및 군사, 조세 및 경제 지표의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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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8.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가능한가?

이 글은 지난 달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대표가 오마이 뉴스와 대담한 기사입니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가능한가?

정부가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의 계속 진행 여부를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키로 하자 논란이 뜨겁다.

이런 가운데 <판도라 핵발전의 몰락>이란 제목의 '탈핵 안내서'를 펴낸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대표는 왜 '탈원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조하고 나섰다.

박 대표는 "원전은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안전 비용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단가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핵발전소는 이미 사양산업이 된 데다가,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하고 비용이 너무 매우 비싸다"고 지적했다. 보험회사는 원전사고에 대해 제대로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다. 원전사고의 피해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에서 원전 사고 보험료를 계산하니 kWh1달러 나왔고, 우리 돈으로 1000원이다. 현재 우리나라 원전 단가는 kWh68원인데, 독일식으로 보험료를 계산하면 1068원이 된다"라며 "가스 발전보다 8배 비싸다. 도저히 채산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종권 대표는 지난 21<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24가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탈원전''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건설 중인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

 

1.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왜 중단해야 하고 백지화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그리고 국민이 여러 공약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보여준 것이 국민 안전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탈원전정책'이다.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 신규 건설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당연히 공사를 중단하고 국민적 숙의 절차를 거쳐 백지화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2. '탈원전'은 왜 해야 하는가.

"체르노빌 사고,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많은 나라가 원자력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더구나 원전 사고는 다른 어떤 사고와는 다르다. 그 피해 규모가 수백만 명의 건강을 해치고 국가 경제를 파산에 이를 정도로 크다. 뿐만 아니라 체르노빌에서 보는 것처럼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땅과 물을 오염시켜 사람이 접근할 수 없게 하고 후손에게까지 그 피해를 유전시킨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3세까지 유전 질환으로 고통받게 한다. 원자력은 아직까지 인간이 다스리기 어려운 에너지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탈원전을 해야 하는데, 다행인 것은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3. '탈원전'의 대안이 무엇인가.

"재생에너지다."

 

4. 태양광, 풍력, 지열 같은 재생에너지는 원자력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잘못된 정보다. 5~6년 전 정보라고 할 수도 있다. 우선 원자력의 발전 단가를 제대로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전문가가 원자력의 발전단가에 많은 것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고 보험료, 사용 후 핵연료 처리비용, 지역주민의 보상, 안전비용 등을 제대로 포함하면 1kWh110원에서 371원까지 단가가 산출된다는 국립연구소의 보고서가 있다. 참고로 한전의 원전 구입단가는 2016년 말 현재 68원이었다. 2010년의 39원에서 거의 2배가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반영 안 된 요소들이 많다. 일본 역시 사고 이후 원전 단가 계산을 했더니 사고 전보다 2배가 됐다.

또 하나는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는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풍력은 이미 화력발전 보다 싸졌다. 결국 원전 단가는 계속 오르고 재생에너지는 계속 떨어진다."

 

5. 원전 단가는 왜 계속 오르는가. 

"위험성이 높아지니까 안전 비용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15년 이내로 태양광 발전단가 '제로'될 것"

 

6. 태양광 발전 단가는 어떤가?

"태양광 발전단가는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부 지원 부족으로 태양광산업이 침체돼 단가하락 속도가 늦지만, 아랍에미리트는 이미 태양광 발전단가가 kWh30원까지어졌다. 원전의 절반이다. 칠레는 2.9센트, 두바이는 2.4센트에 낙찰됐다 

태양광 연료비가 무료고 무한으로 공급할 수 있고 사고 대비 비용이 전무하다. 그래서 월마트 같은 회사에서는 앞으로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충전해 두었다가 고객에게 전기자동차를 무료로 충전해 준다고 발표했다. <에너지혁명2030>의 저자 토니 세바 교수는 15년 이내 태양광 발전단가는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7. 가스발전은 비싸지 않나? 

"다행히 미국의 셰일가스가 많이 생산돼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셰일가스 발전소를 경기도 파주에 지었다. 지난해 말 현재 가스발전단가는 kWh99원이다. 원전이 68원이니까 불과 31원 차이다.

 

8. 원자력, 석탄발전을 가스발전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전기요금이 한 가구당 1년에 314000원 인상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전력에서 잘못된 보도라고 밝혔다. 한 가구당이 아니라 산업체, 공공기관 상가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가구당은 1년에 62천 원, 5200원정도 인상되는 것이 맞다. 그것도 2030년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13년 후 20% 정도 인상되는 것이다. 보도내용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제목을 그렇게 뽑았다. 일종의 과장보도이다. 고의성이 보인다.

 

9. 노후원전 8기를 당장 폐기하고 가스발전으로 대체하면 한 달에 863원 전기요금 인상된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30년 가까이 된 노후원전이 모두 8기 정도 된다. 7028000kw인데 이것을 지금 당장 폐기하고 가스발전으로 대체하면 한 달에 863원 전기요금 더 내면 된다. 24시간 풀로 가동하고 1300일 가동하는 것으로 가정하면 연간 생산량이 506kWh 정도 된다. 

가스와 원전 단가 차이는 지난해 말 현재 31원이다(원전 68, 가스 99). 506kWh31원이면 총 15686억 원이 된다. 그 중에서 가정용 전기소비는 14%이므로, 15686억 원의 14%2196억 원이다. 2196억 원을 우리나라 전체 2120만 가구로 나누면 가구당 1359원이 되고,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월 863원이다.

 

10. 가스발전이 충당할 수 있나?

  "우리나라 가스발전소는 모두 220기에 3600kw 규모다. 2016년도 가스설비 가동률은 47%였다. 그러니까 절반 이상이 여유설비다. 2000kw 정도 되는데 노후원전 8기가 702kw이니까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

 

11. 우리나라 발전 설비현황은 어떤가? 

"가스 설비량이 3600kw, 석탄 설비량이 3300kw이고, 그 다음으로 원자력이 2300kw. 기타 태양광과 소수력 등 총설비량은 11100kw 정도 된다. 국민은 원자력이 가장 많은 줄 알지만 가스와 석탄발전 다음이 원자력이다."

 

12. 태양광과 풍력은 효율성이 낮아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다는데. 

"태양광은 비가 오거나 밤에는 발전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밤에도 발전하는 태양광발전소도 개발됐다. 그리고 낮에 발전한 전기를 계속 충전해두면 언제든지 필요할 때 전기를 쓸 수 있다. 효율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2012525·26일 태양광발전만으로 전체 수요의 50%를 충당한 일도 있었고, 올해 430일에는 태양광, 풍력발전만으로 전체수요의 85%를 충당한 일도 있었다. 인구가 800만인 중국 칭하이성은 지난 616일부터 23일까지 1주일간 수력, 풍력, 태양광만으로 100% 전기 공급을 한 적이 있다."

 

13.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유럽 국가 전체 평균이 30%이고, OECD 평균 24%. 노르웨이는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이 무려 98%. 오스트리아는 68%, 중공업이 발달한 독일의 경우도 33%에 이른다. 재생에너지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어렵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 원자력 보다 더 많은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한다."

 

14.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순수 재생에너지 발전은 1.9% 정도다. 철강회사에서 나오는 부생가스 발전까지 합하면 5~6% 정도 된다."

 

15. 우리나라는 주민 반대가 심해서 태양광, 풍력 발전소 설치가 어렵다는데. 

"풍력은 소음 때문에 지역주민들 반대가 심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해상풍력을 많이 설치하는 것이 좋다. 제주도에 풍력발전소를 많이 세우고 있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기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양광은 주민 반대가 심한 경우는 별로 없다. 

태양광은 고속도로변, 휴게소, 나들목 등 쓸모없는 땅에 설치하면 된다. 그리고 공장, 창고 건물 지붕, 학교 지붕, 저수지, 등등 설치할 곳은 너무나 많다. 요즘은 벼를 재배하면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고, 빛이 통과하는 태양광 패널이 개발돼 과수원에도 설치할 수 있다. 산림훼손, 국토 훼손을 전혀 하지 않고 태양광 발전설비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모든 주차장과 건축물 옥상에만 모두 설치하면 전력 100%를 공급할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승인부터 탈법"

 

16. 신고리 5·6호기는 이미 공사비용이 16000억 원 들어갔고, 공사 중단에 따른 배상금까지 하면 26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데.

"원래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승인부터 탈법적인 부분이 많았다. 위치제한 규정 위반, 다수호기 위험성 무시, 지진 대비 부족 등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원전이었다. 따라서 정부가 그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맞다. 만약에 나중에 사고라도 나면 그 피해는 지금의 손실의 수만 배가 될 수 있다."

 

17. 가스와 원전의 전기 생산 단가를 비교해 보면 어떤가. 

"지금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 단가는 원전이 가스보다 싸다. 하지만 앞으로는 원전과 가스발전의 단가가 역전된다는 연구가 있다. 가령 미국 에너지 정보국에서 낸 '한국수출입은행 보고서'를 보면, 2020년이 되면 가스 단가는 80(1kw)이 되고 원전 단가는 130(1kw)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했을 때 더 이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된다."

 

18.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지역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데. 

"참 안타까운 점이다. 지금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면 그러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 고향을 지키는 일이 된다. 일본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이 그런 경험을 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백지화 되면 재생에너지 단지 건설 등으로 보상해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제가 생각해낸 방식인데, 신고리 5,6호기 부지에 태양광단지를 주민참여형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100,000kw 규모이면 2천 가구에게 50kw 짜리 태양광 발전소를 하나씩 줄 수 있다.

땅값은 무시하고 수지계산을 해 보면 한 가구에 월 65만원씩 배당을 줄 수 있다. 계산은 다음과 같다. 

1인당 투자금: 8천만원( 100% 은행융자로 충당 가능 연3%)

월 수입 : 120만원

월 지출: 원금 균등 상환 월 30만원

이자 : 20만원

관리비: 5만원

월 지출합계: 55만원

월 순 수입: 65만원 

 

19. 다른 나라의 사례는 없나? 

"독일은 1991년 칼카 고속증식로 원전을 건설했는데 주 정부의 반대로 다 지은 원전을 페기하고 테마공원으로 변모해 연 6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대만은 98% 공정의 원전 2기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오스트리아는 1978년 우리 고리1호기 준공 때 2기를 준공했는데 주민들 반대로 폐기하고 재생에너지단지로 바꿔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20년이 지난 후에야 잘한 결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 지은 원전 2기를 폐기한 후 재생에너지 확대를 시작했고 지금은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이 68%에 이른다."

 

20. 울산시의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울산시민 60% 이상은 건설 반대를 주장한다는 말도 있다. 반대로 의회는 공사 중단을 반대하고, 동시에 원전해체센터를 유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를 백지화 하려면 원전해체센터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마치 협상용이라는 느낌이 든다."

 

21. 반면에 부산 지역 주민들과 부산시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반대한다. 

"자유한국당 소속 서병수 부산시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산시장은 원전해체센터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모두들 국민의 안전보다는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론화 과정 거쳐 찬성이든 반대든 결정 되면 따라야"

 

22. 신고리 5·6호기와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언론은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전력공사, 그리고 거대 기업의 광고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일부 언론은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지 않고 막연하게 '전기 요금이 올라가면 대기업이 어려워지고 경제가 나빠진다'고 하는데, 실제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면 탈원전으로 가는 게 더 낫다. 미국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앞으로 원전을 이용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쪽으로 가면 전기요금이 더 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선진 연구는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치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필름을 생산하던 '코닥'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과 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3.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나? 

"공론화위원을 8명 정도 선정한 뒤 3개월 간 시민참여단(350)을 선발하여 토론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하고 그 결과를 정부에 통보한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결정할 것으로 본다.

 

24.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이 되면 찬성·반대 양측이 결과를 수용할까. 

"논란은 있지만, 정부가 찬성이든 반대든 결정하게 되면 따라야 한다. 만약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면, 탈원전측에서는 노후원전 폐쇄를 강하게 제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수명 30년 이상 된 노후 원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한다.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한 것을 반대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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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3. - 진해현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3. - 진해현 廣輿圖

 

鎭海縣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비변사 지도와 유사하다. 영조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사라지게 된다. 기호식 지도집의 등장으로 국가가 합리적인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편찬에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관찬 군현지도집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비변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표현방식상 비변사지도는 방안 위에 그려져 축척에 의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방안식지도이다. 광여도의 경우 거의 배치형태가 동일하지만, 방안이 표기되지 않은 이유로 회화식으로 분류하였지만, 사실상 방안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전체 산의 배치와 읍면의 위치 등은 거의 같으나, 각 면을 연결하는 내방도로와 인접 군현으로 가는 외방도로가 생략된 것이 큰 차이다.

 

 

읍치를 중심으로 3개 면이 표기되어 있다. 동면, 북면, 서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건물로는 읍성 오른쪽 荒山川 건너 동면에 향교와 도만산에 가을포봉이 있으며, 하천 상류에 주산인 鷲山이 있다. 하천 상류에는 胎封庵이 있다.

읍치 좌측 夫山川 상령역이 있으며, 다시 상령천 건너 서면에는 海倉과 咸安海倉이 있으며, 다시 斤谷川 건너편에 統營都廳倉이 있다.

 

주변 자연지형은 고성계 방향으로 牛色山이 북측 방향으로 서면에 林谷山과 여항산, 綱谷山이 있으며, 칠원방향으로 취산 있으며, 남측 방향에 道萬山이 있다. 그리고 서면 내에는 牛山은 표기가 생략되었다.이 있다.

 

섬은 주도, 호도, 양도 3개가 표기되어 있다.

사찰은 (생동산 아래) 태봉암과 여항산 아래처 의림사가 있다.

주요 도로망은 표기하지 않았으며, 봉화는 가을포 봉대에서 함안계로 연결된다.

 

진해현을 흐르는 4개의 하천 이름이 현재 하천이름과 상이하다.

고성계에서 보면 斤谷川, 常令川, 夫山川, 하천명 생략된 곳과 荒山川 5개의 하천이 있다. 현재의 이름은 진전천, 인곡천, 덕곡천, 진동천, 태봉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동면, 서면, 북면

3

자연지리

산천

綱谷山, 道萬山, 餘航山, 牛色山, 林谷山, 鷲山

斤谷川, 夫山川, 常令川, 荒山川

10

島嶼

羊島, 酒島, 虎島

3

인문지리

읍성

읍치

1

교육

鄕校

1

사찰

의림사, 태봉암,

2

역원, 烽燧

가을포 봉대, 常令驛

2

기타

海倉, 咸安海倉, 統營都海倉

3

 

진해현 광여도 地志

 

- 별도의 地志에 수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2,302호

- 인구 : 8,887명 (남자 3,988명, 여자 4,899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214명

- 監營屬 : 92명

- 統營續 : 673명반

- 右兵營屬 : 188명

- 左水營屬 : 15명

= 합계 1,182명 

 5

지리

시설

기타

시설

- 창고 : 해창1고(함안해창), 해창1고 재선소, 전선1척, 병선1척 사복선 2척, 統營都廳倉 1庫,

3

경제

元田沓

- 1,171結51負3束

 

案田沓

- 937속20부5속(案田384결66부4속, 案沓552결54부1속)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87석

- 各樣雜穀 : 794석

- 別?米 : 1,153석

- 監營米 : 7석

- 監營自營 各樣雜穀 : 2,371석

- 統營米 : 319석

- 浦項租 : 476석

- 私賑雜穀 : 1,138석

- 帖價租 : 29석

- 儲置米 : 449석

- 戰兵舡價米 : 28석

- 除留米 : 81석, 太2석

- 各樣軍作米 : 111석

- 南倉錢作米 : 27석

14

 

비변사지도에 수록된 지지내용과 동일하다. 1760년 제작된 비변사 지도와 19세기 초반사이에 약 40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인구 및 군사, 조세 및 경제 지표의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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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00:00

조의문(弔倚文) : 의자를 보내며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건축사(建築士)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의자(倚子)에게 고(告)하노니, 사람의 몸을 편하게 받아주는 물건 가운데 중요로운 것이 의자로되,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나의 몸과 나를 찾아온 손님의 몸을 아낌없이 내어준지 우금(于今) 이 십 이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짐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 무슨 말쓴 인고 하니 ~   

 지난주에 오랫동안 사무실에서 사용해온 회의실 의자를 교체하게 되었다. 별 생각 버리려고  폐기물 처리를 위해 놓아두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복도에 지나치다가 버려진 의자를 보니 마음이 헐?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여년이 넘게 나와 같이한 물건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의자를 얼제 샀더라? 라는 생각과, 저 의자와 함께한 나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 하였다. 내가 언제 독립하였는지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무실 자료를 찾아보니 1995년 11월에 개업을 할 때 구입한 회의실 의자였다. 당시 소파를 구입하지 않고 회의용 테이블과 의자로 응접소파를 대신하여 구입하였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내가 개업 선물로 내가 해준 사무용 세트중 하나였던 것이 기억이 났다.

어지간하면 쓸려고 했는데, 저번 주에 않다가 "툭"하는 소리와 함께, 등받이 가죽이 낳아서 떨어진 것이었다. 4개 중에 벌써 2개도 등받이가 헤어져 떨어진 상태였고, 내가 않았던 의자 마저 등받이가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등받이 떨어진 의자가 4개중에 3개나 되고 보니 교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폐기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의자>

<등받이가 터져 나간 의자, 사실 다른 부분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의자의 내구연한은 어느정도 인지?, 20년 이상 사용했으니~ 용서하리라 생각 함>

< 새로 교체한 의자 : 원래 의자와 유사한 디자인을 찾고 찾아서 결정, 전에 비해 등받이가 조금 큼>

< 교체 전경 : 원래 테이블을 멀쩡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의자만 교체>

의자를 보내며 :

물건이지만 버리려니 아쉬은 마음은 금할길이 없었다. 그 때 생각난 것이 조침문이었다.  유씨 부인의 마음이 충분히 동감이 되었다.

조침문에 운자를 몇개 바꾸어서 아쉬운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였다.

弔針文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침자(針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人間婦女)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지 우금(于今) 이 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짐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연전(年前)에 우리 시삼촌(媤三村)께옵서 동지상사(冬至上使) 낙점(落點)을 무르와, 북경(北京)을 다녀 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親庭)과 원근 일가(遠近一家)에게 보내고, 비복(婢僕)들도 쌈쌈이 나눠 주고, 그 중에 너를 택(擇)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緣分)이 비상(非常)하여, 너희를 무수(無數)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保全)하니, 비록 무심(無心)한 물건(物件)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身世) 박명(薄命)하여 슬하(膝下)에 한 자녀(子女) 없고, 인명(人命)이 흉완(凶頑)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家産)이 빈궁(貧窮)하여 침선(針線)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생애(生涯)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永訣)하니,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猜忌)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자식(子息)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婢僕)이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릴 때 있나니, 너의 미묘(微妙)한 재질(才質)이 나의 전후(前後)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婢僕)에게 지나는지라. 천은(天銀)으로 집을 하고, 오색(五色)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婦女)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 밤에 등잔(燈盞)을 상대(相對)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다.이생에 백년 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戌時)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冠帶)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精神)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윽토록 기색 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 없고 하릴 없다. 편작(扁鵲)의 신술(神術)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손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 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오호 통재(嗚呼痛哉)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ㅎ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바늘이여

(위키피아,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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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2. - 웅천현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2. - 웅천현 廣輿圖

 

熊川縣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비변사 지도와 유사하다. 영조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사라지게 된다. 기호식 지도집의 등장으로 국가가 합리적인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편찬에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관찬 군현지도집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비변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표현방식상 비변사지도는 방안 위에 그려져 축척에 의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방안식지도이다. 광여도의 경우 거의 배치형태가 동일하지만, 방안이 표기되지 않은 이유로 회화식으로 분류하였지만, 사실상 방안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전체 산의 배치와 읍면의 위치 등은 거의 같으나, 각 면을 연결하는 내방도로와 인접 군현으로 가는 외방도로가 생략된 것이 큰 차이다.

 

 

읍치를 중심으로 5개 면이 표기되어 있다. 읍내면, 동면, 중면, 상서면, 하서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건물로는 읍성 주위에 향교, 려단과 사단, 향교가 있으며, 아래로 보평역, 제포진, 성황단, 남산 고왜성, 읍선소, 제선소가 있으며, 동면 방향으로 청천진, 안골진, 신문진과 진두원과 왜고첩이 있다. 남측 가덕도에는 가덕진과 천성진이 있으며, 가덕선소, 천성선소가 있으며, 왜고첩과 2기의 봉수대인 연대봉대와 말곶망(末串望)이 있다.

중면일대에는 풍덕진과 망운대, 안민령이 요충지이며, 하서면일대에는 서창과 옥정암, 고상봉대가 있으며, 적현산과 귀산이 봉산으로 정해져 있다.

사찰은 웅암 아래 광석암이 김해계 방향으로 굴암과 동암 성흥사가 있다.

주요 도로망은 김해방향 율현령길과 안민고개길은 대로이며, 양곡방향 마야 고개길은 중로이다.

통신시설에 해당되는 봉수의 남측 가덕도의 연대 봉대에서 김해계로 연결되며 하나는 읍내면에 있는 사화랑 봉대로 연결되어 다시 하서면에 있는 고산봉대로 연결되어 창원의 성황당 봉대로 연결된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읍내면, 동면, 중면, 상서면, 하서면

5

자연지리

산천

적연산封松山, 各槐山封松山, 貴山封松山, 熊巖, 望雲山, 屛山(선재봉산)

6

鎭堡

薺浦鎭, 豐德陣, 晴川鎭, 安骨陳, 新門陳, 加德鎭, 天城鎭

6

고개

馬也峴嶺, 安民嶺, 小峴,裵應乭峴, 弓峴, 鳴峴, 栗嶺峴阨

7

나루터,섬

孫渡津, 가덕도, 대고장도, 대목도, 대죽도, 대하도, 마도, 망어도, 벌질도, 병산도, 부도, 사의도, 소조장도, 소목도, 소죽도, 소하도, 송도, 수도, 웅도, 음지도, 이슬도, 전모도, 초립도, 표도, 호도, 화도

27

인문지리

읍성

읍치

1

교육

향교

1

사찰

窟庵, 東庵, 聖興寺, 廣石庵, 沃井庵

5

역원,봉수

보평역, 津頭院, 고산봉, 사화랑봉, 煙臺

5

공공시설

서창, 읍선소, 제선소, 천성선소, 가덕선소

5

고적

末串望, 天水臺, 古倭堞, 龍湫, 九川洞

5

 

 

웅천현 광여도 地志

- 웅천현의 지지도 누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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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00:00

러시아 탐방기 4. -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 도시 개요

- 인구 587,900명, 동시베리아의 사실상 수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다. 모스크바와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전 구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위치는 바이칼 호(湖)의 서쪽과 북쪽에 걸쳐 있다. 주로 중앙 시베리아 고원과 중앙 시베리아 고원의 동쪽 연장부인 파톰 고원의 낮은 구릉지대와 넓은 계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사얀 산맥의 동부 산등성이까지 뻗어 있다.

동시베리아의무역과 행정의 중심지였던 이르쿠츠크는 몽골과 티베트, 중국으로 시베리아 모피와 상아를 수출하고 그들 나라에서 비단과 차를 수입하였다.

1879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4분의 1이 전소되었다. 피해를 입은 대부분이 현지에서 생산된 목재로 만든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1880년대에 레나강 유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그 돈으로 도시의 주요 건물들 대부분을 벽돌과 돌을 사용하여 신속하게 재건하였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알려졌던 이르쿠츠크는 도시의 분위기와 건물들이 제법 유럽을 닮았다. 잘 꾸며진 공원과 바이칼을 끼고 있는 앙가라 강변의 넉넉한 풍경도 이르쿠츠크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이르쿠츠크는 개혁과 자유를 목 놓아 외쳤던 실패한 혁명가들을 위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1825년 12월,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청년 장교(데카브리스트 : 12월의 동지)들이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일찍이 유럽의 발전상을 목격한 젊은 엘리트 장교들은 혁명에 실패한 후, 강제 노동과 유배 생활을 마치고 이르쿠츠크에서 못다 한 꿈을 이루어 간 곳이다. 이것이 바로 이르쿠츠크가 가장 유럽을 닮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루크추크 도시전경 : 도시전체가 격자형 체계로 근대에 조성된 도시이다.>

 

여행 스케치

- 7월 24일 월요일,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시내를 자유투어 하기로 작정하였다. 가이드북을 숙지하고 신발끈을 야무지게 메고 출발하였다.

<시티 가이드맵 : 용도별로 잘 분류하여 표기되어 있었다. 굳~~ >

- 우선 트랩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일행들에게 각자 동전을 내면서 승차하는 소소한 체험을 하기로 했다. 개인당 20루불씩 쥐어주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내릴때 계산하는 관계로 총무가 단체로 지불하고 말았다. 

<트랩 : 낡고 오래된 디자인이 정겹게 다가왔다. 우리네 60년대 전철이 생각이~~ > 

< 트램 안에서 : 우리는 즐겁고, 러시아 아저씨는 왕 심각!! >

  - 시내에는 트램뿐만 아니라 트롤리 버스(Trolley Bus : 무궤도 버스로 외부에서 전기를 받아 운행하는 버스)도 있었다. 트램과 트롤리 버스가 도심교통을 커버하고 있었다.

 

- 가로 풍경 : 고전주의 양식의 상업건물(백화점)이 오래된 근대식 건물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상업지역 : 대개 2층 미만의 저층 건물로, 외양은 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다.> 

- 종교시설들

<카쟌교회(Kazan Church) : 러시아 정교회>

- 외관의 형태적인 측면에서 이스탐불에 있는 성 비잔틴 성당과 유사하다. 동로마 제국의 전성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이후에 동방정교회로 분리된 후, 다시 러시아 정교회의 건축형태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중첩되는 돔의 조합에 의한 기하학적 형태미를 과시하고 있다.

 

< 회교사원(Mosque)> : 1897년 목조로 지어진 회교사원이다. 교회의 첨탑에 해당되는 광탑(Minaret)은 통상 박스형태로 높이 솟아 있는 형태인데 반하여, 이 사원에서는 교회의 첨탑형식으로 지어진 것이 독특하다.

 

 

< 유대교회(Synagogue)> : 외관상 큰 특징은 드러나지 않으나, 중앙부분에 돔 형태의 지붕은 아래 부분에 성전을 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실내 평면에서 중앙부분에 독서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성전부분에는 사회자 공간만 있을 뿐이다.

- 가로 풍경 : 아직도 근대기에 지어진 목구조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마치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건물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발코니 창에 놓인 화분이 사람이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 러시아 마지막 오찬 : 몽골리안 바베큐(허르헉), 맛난 음식을 먹고 모든걸 용서

- 대륙횡단열차의 길이만큼이나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느낌이다.

이르쿠츠쿠!!! 언제 다시 올 날이 있을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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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1. - 창원부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1. - 창원부 廣輿圖

 

昌原府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비변사 지도와 유사하다. 영조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사라지게 된다. 기호식 지도집의 등장으로 국가가 합리적인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편찬에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관찬 군현지도집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비변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표현방식상 비변사지도는 방안 위에 그려져 축척에 의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방안식지도이다. 광여도의 경우 거의 배치형태가 동일하지만, 방안이 표기되지 않은 이유로 회화식으로 분류하였지만, 사실상 방안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전체 산의 배치와 읍면의 위치 등은 거의 같으나, 각 면을 연결하는 내방도로와 인접 군현으로 가는 외방도로가 생략된 것이 큰 차이다.

 

< 창원부 비변사지도>

 

- 지도 해제

읍치를 중심으로 16개 면이 표기되어 있다. 북1,2,3면, 서1,2,3면, 동1,2,3면, 부1,2면,상1,2,3면, 하1,2면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요건물 표기는 읍성 근처 향교, 남측 아래 향현사, 동측 방향으로 봉림사, 자여역 원해, 우곡사가 있으며 동남측 방향으로 불모산 아래 웅신사와 안민역의 원해가 있다.

북측방향으로 백월산 아래 남백암, 무릉산 아래 영천암, 서측 방향으로 두척 봉산 아래 회원서원과 해창 그리고 전선소가 표기되어 있으며, 밤밭고개(율치) 아래 월영대가, 광려산 아래 광산사가 그려져 있다.

 

주요 나루터로는 북측으로 낙동강 변에는 밀양계에 신촌진, 영산계에 주문진이 있으며 남측 반룡산봉산 아래 孫島津(孫渡津의 오기로 보임)이 웅천계에 면해 있다.

 

통신시설에 해당되는 봉수의 연결망은 웅천계 사현에서 두척산 아래 성황당 봉대와 하단에 餘浦熢 2개소가 나타나 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부1,2면, 상1,2,3면, 하1,2면, 동1,2,3면, 서1,2,3면, 북1,2,3면

16

자연지리

산천 및 고개

광려산, 만월산, 두척봉산, 청룡산, 천주산, 무릉산, 백월산, 구룡산, 첨산, 염산, 전단산, 반룡산 봉산, 불모산

율현, 굴현, 송현, 안민령

18

海,도서

낙동강, 저도,

2

나루터

孫島津, 主勿津, 新村津,

3

인문지리

읍성

읍치

1

교육

향교, 향현사, 회원서원

3

사찰

광산사, 靈泉庵,남백암, 봉림사, 牛谷庵, 熊神寺,

6

역원 등

근주역, 안민역, 자여역, 院廨1,2,

성황당봉대, 여포봉대, 해창,

8

고적

월영대

1

 

 

창원부 광여도 地志

- 별도의 地志에 수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7,486호

- 인구 : 27,739명 (남자 11,632명, 여자 16,107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1,213명

- 監營屬 ; 285명

- 統營續 : 1,627명

- 右兵營屬 : 837명

- 左水營屬 : 9명 반

- 金海鎭屬 : 1,088명

= 합계 5,059명

6

기타시설

- 船材封山 : 斗尺封山, 滿月封山, 社亦封山, 靑龍封山, 盤龍封山

  5

경제

量付

- 6,293結11負9束,

(전2,670결11부3속, 답3,622결60부6속)

 

實結

- 4,724속88부13속

(案田1,691결79부6속, 案沓3,034결9부7속)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38석 54석,

- 各樣雜穀 : 3,420석 (잡곡 : 1,101석, 2,319석)

- 別餉米 : 1,104석

- 監營米 : 44석, 잡곡 16,984석

- 統營米 : 1,551석, 잡곡 2,477석

- 私賑雜穀 : 3,309석

- 帖價雜穀 : 601석

- 備荒租 : 463석

- 浦項雜穀 : 1,791석

- 華山劃付雜穀 : 3,100석

- 戰兵舡價 : 65석

- 除留米 : 169석, 잡곡 1석8부

- 各樣軍作米 : 217석

- 射木作米 : 27석

- 作租 : 151석

15 

 

비변사지도에 수록된 지지내용과 동일하다. 1760년 제작된 비변사 지도와 19세기 초반사이에 약 40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인구 및 군사, 조세 및 경제 지표의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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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7 00:00

러시아 탐방기 3. -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러시아 탐방기 3. -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 개요

- 시베리아의 진주 : 바이칼호는 수정처럼 맑고 푸르다. 바이칼 호수의 형성과정은 지각판이 융기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남북의 길이가 636Km에 폭이 60Km에 정도인 이 호수는 바나나처럼 생겼다. 거의 8Km에 이르는 균열된 틈에 퇴적물이 쌍여 있지만 지각판은 아직도 벌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호수도 점점더 깊이지고 있다고 한다. 호수의 깊이는 서쪽 호반 근처의 수심은 1637m이며 세계에서 얼지 않은 담수의 5분의 1정도가 바이칼 호수에 담겨있다고 한다.

- 올흔섬(Olkhon Island) : 인구 1500명, 바이칼 호수의 서쪽 중간 즈음에 있는 섬이다. 길이 72Km의 올흔 섬의 중심가는 후지르(Khuzhir)마을이다. 이곳에서 미니밴을 타고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아름다운 호보이 곶을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인 투어코스이다. 섬의 남측은 수림대로, 북측은 연안에 면하여 바이칼 호를 관람하기 좋은 사구로 되어있다.

< 뭍에서 살짝 떨어진 형태의 올흔 섬>

● 여행 스케치

- 이르쿠츠크 종착역에서 : 7월 20일 금요일 새벽 4시경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돌리고, 승합차로 5시간 정도를 달려 올흔섬에 들어가는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케페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와서 다시 1시간 정도를 달려서 올흔섬의 중심가인 후지르(Khuzhir) 마을에 도착하였다. 후지르(Khuzhir)마을은 섬의 중앙부분에 위치한 중심지이다.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 및 관광지이다.

- 후지르 마을 : 이곳은 풍경은 도시기반시설로는 전기가 들어오는 정도이며, 도로 포장이나 신호등은 물론 상하수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하는 것 같았다. 신작로만 뻥 뚤려 있고, 먼지만 폴폴 날리는 그런 풍경이었다.

<후지르 중심가 : 대문을 경계로 필지의 경계만 뚜렷하고, 이외 구간은 도로이다>

<신작로 풍경>

 

<주거지 및 숙박시설 일대 풍경>

<대부분의 건물은 단층 혹은 2층 목구조가 대부분이다.>

<올흔섬 선착장 : 파란하늘과 구름이 빛은 청백의 구성>

- 올흔섬에서 : 숙소에 와서 여장을 풀고, 모두 골아 떨어졌다. 오후녘에 수변을 산책하였다. 이곳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샤먼바위(Shaman Rocks)일대를 산책하는 것으로 올흔섬의 정취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샤먼바위 : 샤머니즘의 모태가 되는 거대한 암석, 이름하여 샤먼바위>

<샤먼바위 근처의 만장기, 주술의 염원을 형형색색 깃발에 담아서~>

 - 이튼날 아침 바이칼 둘러보기 : 미니밴을 타고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아름다운 호보이 곶을 둘러보러 갔다. 가는 중간 중간쯤에 경관이 좋은 몇 곳을 둘러 보았다.

<올흔섬에서 투어를 시작하며 : 길잡이 러시아 꼬마 2명과 함께> 

<풍경 1 : 물과 구름, 구름이 없다면 이 넓은 호수는 너무 심심할 것 같다.>

 

<풍경 2. 사자바위 악어바위가 있는 풍경> 

<풍경3. 땅과 호수의 경계, 호수에 두발을 담군 듯한 형국>

 - 올흔섬의 건축물들

< 민박집, 우리가 묶었던 ~ 단층 및 2층 목구조로 되어있다.> 

< 공공건물/우체국? : 머리/지붕부터 발끝까지 목조로 되어있다.>

< 호텔 : 2층 목구조로 지붕은 강판으로 마감, 약간 개량된 형태로 보임> 

<주택들 : 단층 목구조의 박공지붕, 혹한기에 대비한 외벽 창의 덧문이 특징>

<오프로드에 적합한 미니밴 : 사막길을 달리는 내내, 골통과 내장을 뒤 흔들었던 체험의 현장을 지금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7월 22일 아침 일찍 섬을 나섰다. 섬 외곽에서 바이칼을 보기 위해, 옛날 바이칼 연안에서 유람선을 타고 섬을 보기 위해서였다. 호수를 내외부에서 다른 시선으로 제대로 보기 위해서이다. 이번 바이칼 기획 엄청 대단하다!!!

  - 바이칼 역사에서 : 암튼 배를 타고 얼마정도 가다가 기차역에 도착헸다. 옛날 호수를 끼고 달렸던 노선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폐선이 된 곳) 당시의 역사와 주변건물들이 남아있었다.

< 구. 역사 주변에서 기념 촬영 >

<역사 주변건물 : 독특한 외벽마감, 비늘판벽과 널판벽 같이 ~> 

< 역사 주변건물2 : 콘크리트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3 : PC판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4 : PC판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5 : 목조+조적조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6 : 2층 목구조에 목구조 지붕>

-  바이칼 역사 주변 건물들 : 20세기 초중반 러시아의 건축기술력을 나타내는 다양한 구조의 건물들이 역 주변건물에서 나타났다.

지역적인 전통을 살린 목구조 뿐만 아니라, 공장제작해서 현장 조립하는 PC(Precast)구조(공장에서 구조용 외벽을 제작한 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구조)가 당시에 성행하였다는 사실이 다소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근대기 건축물들의 외벽디자인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 산책이 되었다. 

- 유람선에서 본 바이칼 전경

<수심 1637m 깊이의 심연함과 너비 60Km스케일의 심연함이 드러나는 바이칼 호수> 

 

- 바이칼의 추억 : 만 사흘간 물 밖에서, 물 안 섬에서, 배타고 다양한 시야에서 바이칼을 보게 되었다. 우리 보다 열심히 바이칼 호를 본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햬!

바이칼에 대한 인상 : 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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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0. - 칠원현 지승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0. - 칠원현 地乘地圖

 

漆原縣 지승지도(奎15423)/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지승은 군사요지인 일부의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책으로 각 책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7.0*19.0cm이다.

1책에는 경기도, 2책에는 충청도, 3책에는 경상도, 4책에는 전라도, 5책에는 평안도와 황해도, 6책에는 함경도와 강원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전반적인 구도와 내용은 해동지도, 광여도, 여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도제작 시기는 빨라도 1776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지도배치를 살펴보면

읍치를 중심으로 상리면, 북면, 서면 구산면 4개면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의 배치 방향을 동서방향을 수직으로 배치하고, 읍성내의 건물은 남북방향을 고려하여 건물명을 기재하고 있다. 구산면을 포함하게 되면 동서 방향으로 긴 지형의 특성을 고려한 배치로 보인다. 읍성을 중심으로 주변 시설물을 표기하였다.

 

읍성 내부의 건물 배치를 살펴보면,

성문은 동문과 서문 2개로 구성되어 있으며(대문에 해당하는 남문이 없는 독특한 경우에 해당된다.), 동문으로 들어서면, 아사와 동헌이 자리하고 있으며, 북측에 창고가 2동, 서측에 객사 2동과 澤勝亭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 동문 오른편에 향교가, 남측에 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무릉산 자락에 長春庵, 천주산 아래 墨寺庵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동쪽방향 칠원 읍성의 진산에 해당하는 청룡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천주산과 무릉산이 창원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무릉산(556M)은 지금도 무릉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무릉산에서 서측으로 돌출된 城山(해동지도)은 작대산(649M)으로, 다시 남측의 청룡산은 지금의 천주산(638M)로 변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계를 살펴보면 북측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을 경계로 영산현과 구분이 된다.

낙동강 지류로 남측으로 향하는 큰 하천은 현재의 광려천에 해당된다.

광려천에서 다시 동측으로 지류가 형성된 두 개의 하천은 지금의 하천명으로 운곡천과 칠원천에 해당된다.

두 하천 사이에 읍성이 있는 읍치가 위치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광려천과 칠원천 사이에 상당히 많은 자연 및 인공경관요소들이 많다.

먼저 자연수림대를 형성하고 있는 金江池, 植松, 藪, 長藪(늪지), 雙鳳亭藪와 인공시설물인 雙鳳亭, 景陽臺(해동지도상에는 景漢臺) 등이 있다.

구산면에는 군사시설인 龜山鎭과 海倉, 船所가 해안가에 배치되어 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上里面, 北面, 西面, 龜山面

3

자연지리

산천, 고개

무릉산, 천주산, 청룡산

牛項峙, 葛峙, 栗田峙, 東田峙, 於岺峙

9

島嶼

-

-

인문지리

읍성

동문, 서문, 아사2, 동헌, 창고2, 택승정, 객사2

10

교육

서원2, 향교2

4

사찰

장춘암, 묵사암

2

역원, 烽燧

昌仁驛

安谷烽臺

3

鎭堡

龜山鎭

1

기타

海倉, 船所, 景陽臺, 雙鳳亭,

4

 

 

칠원현 地承地圖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해동지도 - 비변사지도 - 지승지도)

: 2,970호 - 3,333호 - 3,009호

- 인구 : 10,601명 - 13,247명 - 10,869명

(남자 5,191명, 여자 5,678명)

2

군병

- 京各司諸色軍 : 564명

- 監營屬 : 90명

- 統營屬 : 514명

- 右兵營屬 : 282명

- 金海鎭屬 : 609명

- 烽軍 : 27명

= 합계 2,086명

6

지리

시설

기타

시설

- 城郭周面 766척

- 烽臺 1處, 驛 1, 寺 2, 倉 2庫, 書院 2處, 山城 1處

2

경제

元田沓

- 전 1,736결36부, 실결 953결 1부

- 답 877결60부, 실결 497결 29부

 

곡물

- 別餉米 : 514석 9두, 租 10석 13두

- 元會米 : 44석 7두, 잡곡 434석 9두

- 常賑米 : 264석 10두, 잡곡 1,887석 4두

- 監營米 : 5두

- 統營米 : 253석 12두, 잡곡 1,662석 13두

- 浦項雜穀 : 469석 5두

- 私賑雜穀 : 1,077석 1두

- 帖價牟 : 326석 9두

- 備荒租 : 551석 3두

- 儲置米 : 782석 6두

- 除留米 : 70석 6두

- 各樣軍作米 : 119석 9두

- 射軍作牟 : 590석 14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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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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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달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대표가 오마이 뉴스와 대담한 기사입니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가능한가? 정부가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의 계속 진행 여부를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키로 하자 논란이 뜨겁다..

고지도로 보는 창원 23. - 진해현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3. - 진해현 廣輿圖 ● 鎭海縣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조의문(弔倚文) : 의자를 보내며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건축사(建築士)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의자(倚子)에게 고(告)하노니, 사람의 몸을 편하게 받아주는 물건 가운데 중요로운 것이 의자로되,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2. - 웅천현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2. - 웅천현 廣輿圖 ● 熊川縣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러시아 탐방기 4. -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 이르쿠츠크 도시 개요 - 인구 587,900명, 동시베리아의 사실상 수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다. 모스크바와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전 구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위치는 바이칼 호(湖)의 서쪽..

고지도로 보는 창원 21. - 창원부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1. - 창원부 廣輿圖 ● 昌原府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러시아 탐방기 3. -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러시아 탐방기 3. -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 바이칼 호수 개요 - 시베리아의 진주 : 바이칼호는 수정처럼 맑고 푸르다. 바이칼 호수의 형성과정은 지각판이 융기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남북의 길이가 636Km에 폭이 6..

고지도로 보는 창원 20. - 칠원현 지승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0. - 칠원현 地乘地圖 <?xml:namespace prefix = "v" /> <?xml:namespace prefix = "o" /> <?xml:namespace prefix = "w" /> ● ..

러시아 탐방기 2. - '체험 삶의 현장'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

러시아 탐방기 2. - '체험 삶의 현장'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 ● 시베리아 횡단철도 개요 -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구간을 전통구간이라고 말한다. 추가로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추가하여 ..

고지도로 보는 창원 19. - 진해현 지승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19. - 진해현 地乘地圖 ● 鎭海縣 지승지도(奎15423)/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지승은 군사요지인 일부의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책으로 각 책의 크기는..

러시아 탐방기 1. - 러시아의 征東行省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러시아 탐방기 1. - 러시아의 征東行省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 여행 개요 지난 7월 15일부터 25일까지 창원지역에서 도시건축에 관계하는 분들과 러시아 동부권을 여행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은 세부일정..

고지도로 보는 창원 18. - 웅천현 地乘地圖

▮ 고지도로 보는 창원18. - 웅천현 地乘地圖 ● 熊川縣 지승지도(奎15423)/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지승은 군사요지인 일부의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책으로 각 책의 크기는 ..

고지도로 보는 창원 17. - 창원부 地乘地圖

▮ 고지도로 보는 창원17. - 창원부 地乘地圖 ● 昌原府 지승지도(奎15423)/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지승은 군사요지인 일부의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책으로 각 책의 크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