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47건
- 2012/02/08 선거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 2012/01/01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 2011/10/19 가을, 디자인 아이디어 제품으로 느낄수 있다?
- 2011/09/14 단돈 3천원에 소원을 들어준다니... (2)
- 2011/07/06 김은숙의 추억
- 2011/06/10 주차에도 위아래가 있다? (4)
- 2011/06/07 끊어진 다리
- 2011/05/25 수요일 밤은 아름다운 공연과 함께...
- 2011/05/11 그래,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 2011/03/23 한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각해 본 집의 의미 (3)
그들도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뽑은 지도자는 생쥐가 아니라 매번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가 생쥐를 위해 일할리가 없죠. 삶이 힘들어져도 생쥐들은 여전히 색깔만 다른 고양이를 뽑았습니다.
어느날 이런상황이 불합리하다고 여긴 생쥐한마리가 용기를 내여 이제부터는 생쥐 중에서 지도자를 뽑자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같은 생쥐들이 동조하기는 커녕 그 생쥐를 '빨갱이'라며 오히려 감옥에 가두고맙니다.
이 이야기는 1962년 캐나다의회에서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연설한 내용입니다.
서민들이 뽑아준 권력이 대다수 서민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를 빗대어 한 이야기입니다.
반세기 전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마우스랜드'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모두 치뤄지는 중요한 해입니다.
'나꼼수'열풍 등으로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층도 전과 다르게 제법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양이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또다시 고양이를 뽑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단, 본인이 고양이인 분들은 고양이를 뽑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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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소망하신 일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도시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겠습니다.
미력이지만 이 도시가 가야할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팀 블로거 - 허정도, 신삼호, 류창현, Urban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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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정취를 언뜻 느낄때, 색색의 변화가 먼저 눈에 듭니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색깔(색색)과 함께 모양(형형)이 다양합니다.
물론 먼저 진 나뭇잎이 가을색의 배경이 되어 더욱 돋보이기 합니다.
하지만 한해의 마무리와 내년에 준비로 바쁜 업무로
가벼이 단풍구경 다녀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을 구경 한번 하시지요...
진품은 아니지만, 제대로(?)된 가을 컨셉의 디자인제품을 총망라해봤습니다.
단풍하면 제일먼저 떠오는 나라, 캐나다의 동전입니다.
일반 기념품들
시계와 다이어리
단풍모양으로 만들어진 쿠키커터
단풍모양의 전등(조명)입니다.
조명의 위치를 맘껏 휘어서 움직일수도 있고 조합하여 조형물로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단풍잎을 디자인모티브로 한 단추(버튼)입니다.
양초.
비누
시계
아래 제품은 쟁반입니다. 그릇을 나르는 쟁반이라기 보다는 예술품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웹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가을 아이디어 상품' 인 포스터잇입니다.
어떻습니까? 가을 정취를 한껏 느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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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에서 풍기는 편안한 분위기가 저와 잘 맞아 정서적으로 선호하는 종교입니다.
대웅전을 포함해 대여섯채 정도의 아담한 절인데도 많은 이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반적으로 느끼는 사찰의 고요함이나 엄숙함은 간데없고, 요란한 장삿집 같은 느낌만 가득했습니다. 비단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만 생긴 분위기가 아님은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시야에 확들어오는 기와불사 안내는 한켠에 좀 비켜나 있어도 충분히 잘 보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절의 가장 중심인 탑 앞에 자리잡은 '복밭'이라는 불전함도 생뚱맞긴 여전합니다.
특히, 꼭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안내 배너까지 내건 3천원짜리 소원초는 이곳이 절인지 부적 써주는 점집인지 의아해지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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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처럼 가냘프면서도 강철처럼 강했던 여인 김은숙이 지난 5월 24일 아침, 쉰 셋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딸에게 “사랑해”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합니다.
김은숙,,,
1982년 암흑 같은 세상을 뚫고 부산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러 광주항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여인입니다.
스물 넷 앳된 그녀가 부산미국문화원의 경비를 뚫고 들어가 플라스틱통에 든 인화물질을 복도에 붓고 공범 문부식이 불을 당겨 발발한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은, 그때까지 아름답게만 포장되어 있던 미국의 실체를 만천하에 폭로함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가 반미를 해도,,,'라고 자신했던 한국에서마저 반미 운동을 일게 한 우리 현대사의 대전환점이었습니다.
<1982년 3월 18일 불타는 부산미국문화원>
제가 그녀를 만난 건 1988년이었습니다. 그녀가 부미방사건으로 5년 8개월간의 수형생활을 마친 직후였습니다.
마산 합성동에 있는 '성공회 마산교회'의 이교승 신부님이 연락해 성당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그녀는 마산에 와서 노동운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교승 신부가 말하기 전까지 그녀가 마산에 은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저렇게 여린 아가씨가 그 엄청난 일을 해내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른의 김은숙은 가는 어깨에 긴 머리와 깊은 눈을 가진 미인이었습니다.
이런 외모와 달리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녀의 내공이 강철같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김은숙의 대화는 깊고 넓었습니다.
분명한 발음에 말투가 차분했습니다.
저보다 다섯 살 아래였지만 그녀는 이미 세상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큰 사건을 경험해서 저런가? 참 대단한 아가씨네,,, 놀랍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제가 가졌던 생각입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화재는 주로 민주화운동과 지역의 노동운동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김은숙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해서 심중에서 나오는 진정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그녀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앞으로 마창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할 계획인데 그 일에 필요하니 컴퓨터를 한 대 지원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지금은 흔한 게 컴퓨터이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그때 컴퓨터가 없었으니까요.
그 시절 퍼스널컴퓨터 한 대 가격은 120만원 정도였습니다.
곤란하다고 혹은 생각해보겠다고 답할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즉각 그러겠다 약속하고는 전달방법을 의논하다 현품보다 현금을 택했습니다.
돈이 전해지면 정보기관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제3의 사람이 컴퓨터를 구매하기로 했죠.
그 때부터는 돈 전달방법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저는 설계사무소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하여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고있는 반국가사범 김은숙에게 공작자금(?) 120만원을 전달하는 일이 만만찮았습니다.
나중에 알려지면 크게 문제될 일이었거든요.
소위 ‘○○○사건의 자금책’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까마득한 추억이지만 그 때는 그랬습니다.
고인이 된 벗 황주석 선생이 '운동권에 돈 안전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제게 가르쳐주기도 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답은 제 아내에게서 찾았습니다.
같은 여자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만나 주고받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아내 정미라는 담이 약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정이야기를 듣더니 “같은 여자니 내가 만나는 게 남의 눈을 피하기 좋겠다”고 쿨하게 답하더군요.
며칠 후,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아내가 나가 돈을 전했고 일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제가 가진 ‘김은숙의 추억’은 여기까지입니다.
그 후 이교승 신부를 통해 가끔 그녀의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직접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봄 김은숙이 죽던 날,
아내가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와 그때 너무너무 겁나더라,
무슨 간첩 접선하는 것도 아니고,,,
떨려서 혼났네,,,
장소는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지하다방이었지?
누가 훔쳐보는 것 같고,,,
너무 겁이나 이야기를 길게 나누지는 못했고,,,
신문지에 싼 돈 전하고 조금 앉았다가 나왔지 그만,,,”
웃으면서 23년 전 기억을 되살리더군요.
한국 반미운동의 효시가 됐던 부산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내년이면 30주년입니다.
엄혹했던 독재의 사슬을 끊고 온몸으로 민족의 아픔을 세상에 알린 김은숙,,,
그 영혼이 평안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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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주차할곳이 없는것도 아닌데 왜 이런 표지판을 세웠나 맘에 걸리던 차에,
얼마전 부터 교직원주차증이 없는 차량은 단속하겠다는 안내가 붙었고, 실제로 앞유리에 경고장을 붙이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를 거론하기 전에 교직원의 특권의식이 불편합니다.
교직원은 학교에서 계속 근무하고, 학생은 졸업을 하면 떠나기 때문에?
'군사부일체'의 유교사상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학생이 공부나 열심히 하지 무슨차를 끌고다녀?
어떤 이유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한 교직원전용주차장을 설명하기에 궁색해 보입니다.
창원대는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국가가 주인입니다.
그리고 교수,직원,학생이 구성원이 되어 학교가 유지됩니다.
어느 하나 덜 중요한 요소는 없습니다.
그곳에 주차하는 사람이 몸이불편한 학생일수도, 나이지긋한 손님일수도 있습니다.
창원시청은 직원이 청사내 주차하는것을 막기위해 직원이 주차하면 비싼 주차료를 물립니다. 민원인 전용주차장은 있어도 직원전용은 없습니다. 시청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배려이겠지요.
창원대도 교직원의 편의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장애인이나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을 우선 배려하는 것은 어떨까요?
*다음주 금요일 부터 중국 상해, 소주, 항주를 답사한 내용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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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압록강 하류에 있는 중국 단동에 다녀왔습니다.
중국 요령성 단동은 북한의 평안복도 신의주와 철교로 이어지는 곳, 북한과 가장 가까운 중국 땅입니다.
한반도와 중국 땅을 오가기 좋은 곳이라 예부터 조공로(租貢路)로 사용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육이오 때 미공군 폭격으로 부서져 있는 철교며, 이성계가 회군했던 위화도며,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의 도도한 자부심이 넘치는 중국정부의 기념물들과 여진족을 막기 위한 명(明)의 장성(長城, 虎山山城)이며, 고금을 넘나드는 시대의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이곳이 소용돌이쳤던 역사의 한복판이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하여 압록강 철교의 밤풍경부터 보았습니다.
6.25 때 잘려나간 철교가 어두운 압록강 위에 걸쳐 있었습니다.
철교의 중앙부는 철로로 사용되었고 양쪽에 보도로 사용되었는데 1932년 통계에 의하면 그 해 보도통행자가 26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식민지 말기 쯤, 이 철교가 노후되자 일제는 강 상류 쪽 100m 지점에 새로운 다리를 놓기 시작해 1943년 4월 개통하였습니다.
이 철교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데 기차통행용 철도와 일반차량용 차도가 동시에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1990년 북한과 중국의 합의에 따라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 중국에서는 중차오유이차오[中朝友誼橋]라 부름)라 명명하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방중 때도 이 다리를 건넜습니다.
통한도 60년 전의 일, 지금은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흐르는지 멈췄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캄캄한 강물 위에 덩그러니 떠있는 네온불빛이 여기가 끊어진 철교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질흙 같은 밤이라 강 건너 저기가 북한 땅이려니 상상만하고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9시 경, 어젯밤에 보았던 철교에 다시 나가 이번에는 유람선을 탔습니다. 5-6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유람선 서너 대가 교대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용자는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강 건너 북한 쪽에서 색다른 장면이 보였습니다.
철교 아래에 갖가지 색의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 1-200명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소풍을 나왔는지 현장교육을 나왔는지, 무채색 배경에 짙은 원색의 움직임이 분주했습니다.
선상에서 관광기념품을 파는 중국여인의 시끄러운 고음이 십여 분 나오더니 유람선이 출발하였습니다.
배는 철교 밑을 지나 위화도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래 사진이 위화도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중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이성계가 위화도회군 때 주장한 ‘4불가론(四不可論)’을 판서로 깨끗이 적어 놓고 설명하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그 중 ‘장마철이라 전염병 때문에 불가’ 하나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일행 중 한 분이 “첫째, 약소국이 강대국과 싸우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둘째, 여름철에 전쟁을 벌이면 농사를 망쳐 농민의 호응을 받기가 어렵다. 셋째, 주력군이 이쪽으로 몰리면 그 틈을 타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다. 넷째, 당시 장마철이라 전투가 불편하고 전염병으로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4불가론’이다” 면서 유창한 역사실력을 과시해 한 수 배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조선’을 있게 했던 역사적인 섬이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지만 사정이 다른 중국 사람들은 이 섬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위화도에 인접한 배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북한 쪽으로 다가가더니 강물의 흐름에 맞춰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2006년 11월 한국YMCA가 북한에 자전거 6천대를 보낸 후 조선기독교총연맹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북한 땅과 북한사람들의 생활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강변에는 작은 배들이 여러 대 정박해 있었고 해안에는 배에 짐을 싣고 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활기 없는 해안가 건물 벽에 붙어 있는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붉은 글이 생경스러웠습니다.
유람선에 탄 사람들 중 몇 분이 반갑다고 고함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지만 북한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반가운지 모르지만 북한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보는 유람선이라 그러겠지 하고 이해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한 항미원조(抗美援朝)기념관과 호산산성(虎山山城)을 관광한 후 오후에 다시 철교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끊어진 철교 위를 걸었습니다. 전쟁 때 폭격으로 끊어진 아픈 역사의 흔적을 직접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제국이 대륙 침략을 꿈꾸며 놓았던 거대한 이 다리는 당시 최첨단 공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큰 배가 지날 때를 대비해 교량 중간부분을 회전시킬 수 있는 개폐식(開閉式)으로, 열면 십자(十字)가 되고 닫으면 일자(一字)가 되도록 설계된 다리였습니다.
사용 않은지 오래지만 철교를 여닫던 거대한 톱니바퀴는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철교 끝에서 강가에서 마주보고 있는 북한과 중국 두 지역을 보았습니다.
빈부격차가 가시화되고 있는 중국의 도시문제가 눈에 들어왔고, 이런 중국에 비해 북한 땅은 너무 썰렁했습니다.
단동의 막개발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쳐져있는 북한 땅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운 건 북한 뿐만 아니었습니다.
남의 땅 중국에서 배를 타고 우리 땅을 관광(?)하고 있는 제 모습도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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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집이 지척이라 가끔 가족과 함께 산책나와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곤 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부터 국악, 무용 등 장르도 다양하고 꽤 수준있는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대뒤 도로의 차량들과 행인들로 인해 좀 산만한 면이 없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공연의 딱딱함을 풀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창원시립무용단의 "5월의 춤나들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요. 한시간 가량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
휴대전화로 촬영해 화질은 별로지만 공연의 감흥은 어느정도 느낄 수 있을겁니다.
흔히 서울에 비해 지역에서 문화, 예술을 접할 기회가 드물다고 푸념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이런 열린공연에도 객석의 태반이 빈 것을 보면 좀 아이러니 하기도 합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수요일밤 가족과 함께 문화공연 나들이 어떠세요?
출처:성산아트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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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았습니다.
‘써니’라는 코믹인생드라마입니다.
24년 전에 지은 집을 고치느라 요즈음 제가 좀 부산합니다만 시간을 내어 지난 일요일 아내와 함께 보았습니다.
시나리오가 괜찮았습니다.
40대 초반 여성들의 여고시절추억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랑이나 상처 등의 진부하거나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라 ‘써니’라는 여고생서클 출신들의 쾌활한 이야기였습니다.
‘고교생서클’하면 영화 ‘친구’가 떠올라 으레 남학생들의 폭력서클 이야기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써니’는 여학생들 이야기라 조금 색달랐습니다.
성공하였지만 사람사는 재미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인공 나미,
만년 꼴지 보험설계사 장미,
싸구려 술집 접대부 복희,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방문교사 금옥,
돈은 많지만 바람피우는 남편을 둔 진희,
독신으로 살다가 암으로 죽는 ‘써니’의 짱 춘화,
춘화의 장례식장에 딱 한 장면 나타나는 수지.
이렇게 일곱 여인들이 여고시절 조직한 준폭력서클(?) ‘써니’의 25년 후 이야기입니다.
‘써니’는 유명 DJ 이종환 씨가 MBC FM ‘밤의 디스크쇼’에서 이들 칠공주가 찬란하고 눈부시다고 지어준 이름입니다, 영화에서.
구성도 탄탄하고 진행도 빨라 시간가는 줄 몰랐고, 과거와 현재의 교차수법이 자연스러워 좋았습니다. 오버하는 부분도 짧게 있었지만 톡 쏘는 겨자 맛이라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십대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엄혹했지만 아름답게 남아있는 80년대의 기억을 되살리는 '향수'가 영화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눈에 익은 배경과 귀에 익은 노래가 오래되어 희미해진 추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압권은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라는 주인공의 말이었습니다. 정확한지 모르지만 두 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감독(강형철)이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 말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도 감독 의도에 걸려 지나간 인생을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일 저일 이경험 저경험 겪은 내 인생도 하나의 역사였습니다.
어디 나 뿐이겠습니까?
너나없이 숨 쉬는 이라면 역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영화 끝난 후 걸어 나오며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래,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그래서 내가 말했죠.
“그래, 당신도 역사가 있는 당신 인생의 주인공이지”
가정의 달이라는데 가족영화로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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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오전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축계에서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 모르는 분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하지만 진해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의 설계자라고 하면 '아~' 하실겁니다.
역시 건축가는 이름도 얼굴도 아닌 그가 남긴 건축물로 기억되는가 봅니다.
'기적의 도서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건물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보면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이나,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공간은 아무곳에나 철퍼덕 앉아 책을 펼치고 싶은 맘이 절로 들게 합니다.
도서관을 사용할 아이들의 입장에서 모든 시설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사저를 비롯해,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설계를 맡았고, 부산 민주공원 등 굵직한 공공시설들을 설계하였으며, 생태건축이라는 용어도 낯선 시절부터 자연과 건축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근래에 진행된 '무주 프로젝트'는 정기용 선생의 철학이 잘 녹아있습니다.
전북 무주군과 함께 군청, 도서관, 운동장 등 공공건물을 '주민의 쓸모'를 원칙으로 사용할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지었습니다.
마을회관에는 노인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을 짓고, 무주공설운동장의 관람석은 등나무로 덮어 경기가 없더라도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었습니다.
그는 공공건축가로 불릴 정도로 많은 공공건물을 설계하고, 대형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늘 가난한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설계를 필요로 하는 많은 공적인 시설을(이를테면 지역에 있는 이름없는 사회단체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계약관계'없이 흔쾌히 그려주었던것이 한 이유입니다.
그는 생전에,
"사유지 안에 세워지는 건축은 동시에 지구 위에 구축되는 건축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태생이 공공적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건물의 공공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건물이 태생적으로 공공적이라면 그 쓰임도 공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족과 정을 나누는 따뜻한 보금자리?
그저 재산증식의 수단?
집 한칸 없는 사람이 태반인데, 한사람이 수십채의 집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100주 연속으로 전세값이 올라 전세대란이 와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10평짜리 집을 싹밀어내고 4,50평 아파트를 지어도,
10평짜리 내집에 살던 사람이 변두리 셋방으로 쫓겨나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현재진행형이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연예인 한명 군대가는것 보다 이슈가 되지 못합니다.
이 모든것이 집을 공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사유재산으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인식에서 나옵니다.
적어도 생존과 관련된'의식주'문제 만큼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쌀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원가 보다 훨씬 싸게 수입할 수 있습니다.
시장논리 대로라면 국내에서는 모두 쌀농사를 그만두고 수입해서 사먹는게 더 이익입니다.
하지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쌀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식량은 바로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수입이 불가능해졌을때 대체할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생존과 관련된 집 문제는 왜 시장논리에만 맡기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집을 공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세우지 않는이상, 수백만채의 아파트를 지어도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가진사람이 더 가질뿐, 없는사람은 더욱 힘들어질 뿐입니다.
흠모하던 건축선배의 죽음앞에 건축을 대하는 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두서없는 넋두리를 하였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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