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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오늘부터는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앙마산’이란, 20세기 초에 존재했던 마산의 두 도시, 즉 옛 부터 자연발생적 취락으로 발전해온 '원마산(마산포)'과 일본인들이 건설한 조계지 '신마산'의 중간 지역을 말합니다.
두 도시 사이에는 약 2㎞ 정도의 이격공간(離隔空間)이 있었는데, 이 범위 안에 조성된 혹은 조성될 도시공간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대략 마산합포구청(구 마산시청)에서 부터 3.15의거탑까지를 말합니다.
사실 마산포(원마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신마산(조계지)은 태생 때부터 이미 마산포와의 도시연담화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각국공동조계지의 위치를 결정할 때부터 연담도시를 의도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항 직후부터 원마산 방향으로 서서히 도시영역을 확장해간 일본인들은 합방 때인 1910년경에 이미 조계지의 북쪽 경계인 신월천을 훨씬 넘어서 장군천까지 진출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1920년대의 마산도시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를 보면 1920년대 초기까지 일본인이 개설한 신설도로는 장군천의 장군다리까지였습니다.
건물도 마산 역에서 장군천으로 이어지는 사선형(斜線形) 도로 위쪽에만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이 되면서 서서히 건축물들이 장군천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선형 도로는 다음의 도로입니다.
원마산과 신마산 두 도시가 이렇게 나누어지게 되었던 원인은 보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설명이 가능합니다.
러일전쟁기에 맺어진 치욕적인 한일의정서에 의해 강탈당한 철도용지, 즉 신마산과 원마산 사이에 있는 지금의 완월동․장군동․중앙동 일대인 중앙마산지역을 일본 군부가 군사용 철도용지에 편입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때 결정된 철도용지는 강점기 후 변화하는 두 도시의 연결을 차단했으며 이로 인한 주민들의 불편도 컸습니다.
이런 상황이 1920년대 중반 이후에 와서야 변하기 시작합니다.
철도용지가 해제되고 중앙마산이 관공서 건물이 군집(群集)하는 공공업무지역 성격의 도시로 형성되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나누어져 있던 두 도시가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러한 중앙마산변화의 전(全) 과정을 다음 포스팅부터 설명하려 합니다.
당시 나온 각종 지도와 문헌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 판단할 것입니다.
중앙마산변화의 핵심은 이 지역을 철도용지로 묶는 과정과 그것을 푸는 과정입니다.
철도용지로 묶는 과정은 이런저런 자료가 있어서 비교적 쉽게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해제과정은 자료가 많지 않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정황을 참고해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글쓰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주부터 싣겠습니다.
1)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된 원인
2)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강점되는 과정
3)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철도용지
4) 문헌을 통해본 당시상황과 중앙마산의 도시계획
5) 중앙마산의 형성과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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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의 1928년 편을 보면 「學校建築號」라는 주제의 특집기사가 있습니다.
당시의 학교건축물 현황의 일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잡지 편집진에서 국내의 중요한 학무당국자와 전국 각 학교 교장들에게 당시의 학교시설에 관해 세 가지의 질문지를 보낸 후 이에 응답한 학교관리자의 의견을 게재한 것입니다.
마산에서는 일본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와 한국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의 교장이 이 질문에 응답하였고, 그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마산공립소학교(월영초, 위)와 마산공립보통학교(성호초, 아래)>
책에 실린 질문과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질문
1) 재래학교의 건축에 대한 감상
2) 장래 지을 학교 건축에서 개선해야할 점
3) 기타 학교 건축에서 눈에 띄는 점
■ 마산공립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 교장 田坂松太郞(전판송태랑)의 답
1) 복도의 넓이는 적절하지만 통풍과 채광에 결함이 적지 않으며 水害를 입지 않는 장소를 선정하여 건축해야 될 것임.
2) 위 1)의 결함을 제거할 것.
3) 외관보다는 위생 및 내구성을 고려하여 건축할 것.
■ 경남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 교장 上原榮(상원영)의 답
1)
① 종래의 교사(校舍)는 복도를 6척(1.8m)으로 하여 좁으니 가능하다면 9척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함.
② 단층건물 복도 또는 2층 건물 복도는 흙 복도로 하고, 교실마다 출입구를 설치한다면 비상시에 매우 편리할 것임. (9척 중 안쪽 7척은 흙 복도로 하고, 2척은 높이 5寸 내지 7寸의 테두리로 함.)
③ 신발장은 복도와 교실 경계를 이루는 창 아래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임.
④ 창의 유리를 끼우는 방식은 나무포테(木ポテ, putty)는 쓸모가 없음. 아이들이 유리를 쉽게 빼낼 수 있어서 관리가 곤란함.
2) 근래 교사(校舍) 건축에서 일본이나 조선에서 다 함께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 쓸데없이 건축미를 다투는 경향이 있는데 현재의 재정을 감안하여 매우 주의할 점이라고 생각함.
나의 교사건축에 관한 이상 안은 아연즙(亞鉛葺)구조가 적절하며 1평에 70원으로 충분할 것이고 내구적이라고 봄.
3) 교사를 증축할 경우에는 도부군(道府郡)에서 먼저 당사자인 학교장의 의견을 청취한 후 설계에 착수해야 함. 지금까지 가끔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고 설계하여 건축했기 때문에 사용상 불만스러운 점이 적지 않음.
교사건축에 관한 이상과 희망이 더 있지만, 지금은 단지 그 일부분만 답함.
두 답을 놓고 보면,
현 월영초등학교 교장에 비해 성호초등학교 교장이 훨씬 상세하게 학교시설의 상황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질문과 답 만으로 당시 학교건축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좀 어렵다고 봐야겠죠?
아무튼 이 기사를 통해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을 편찬하는 건축학자나 전문가 등 건축계 인사들이 당시 변해가는 근대건축사조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이 많았던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성호초등학교 교장의 2)번 답에서 "근래 교사(校舍) 건축에서 일본이나 조선에서 다 함께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 쓸데없이 건축미를 다투는 경향이 있는데....."라는 대목을 통해, 당시 변해가는 건축계의 상황을 잘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이 간단한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 건물의 사용과 관리의 책임을 진 학교장은 건물 기능과 관리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2. 형태 위주의 건물이 비경제적이고 관리에도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3. 설계자가 사용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조선 소학교의 모든 교장들도 마산의 두 교장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건축물의 구조․기능․공사비․관리의 편리함 등의 측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떻습니까?
84년 전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보통교육을 담당했던 일본인 교장들의 생각말입니다.
아쉽다는 생각도 드네요.
두 학교건물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당시 교육환경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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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대식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한일병합 이전까지는 주로 목조로 지은 공공기관이 주류였습니다만 1910년경부터는 벽돌조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20년 후반 경에는 철근콘크리트조의 근대식 건물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 지은 건물들은 용도도 다양했습니다.
회사령 폐지와 3․1운동에 의한 문화정책 때문이겠지만 주조공장과 장유공장을 비롯한 산업시설은 물론,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시설도 이때 많이 지었습니다.
아래 그림의 원동무역주식회사는 1927년 8월에 철근콘크리트 2층 현대식 건물로 사옥을 착공하여 1928년 4월 준공식을 가진 한국인 최초의 오피스전용건물입니다.
세련된 근대미가 물씬 풍깁니다. 밑은 현재 모습입니다.
다음 표는 1920년대에 건축된 마산의 건물들인데 이 중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되어있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몇년 전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건물명
현위치
건축연대
유무
구조 및 양식
비고
마산경찰서
중앙동2가
1921
무
목조1층 일식
조계지에서 이전
마산상업학교
산호동432
1923
무
벽돌조2층 양식
마산상고
호신학교
회원동
1924
무
벽돌조2층 양식
창신학교
마산조면공장
1924
무
북마산역사
상남동
1924
무
목조1층 양식
1924년 철도개통
마산헌병분견대
월남동4가
1926
유
벽돌조1층 양식
도립마산병원
중앙동
1927
무
벽돌조1층 양식
공립보통학교
성호동
1927
무
벽돌조2층 양식
한국인학교
太田麻糸공장
1927
무
대자유치원
추산동65
1928
무
목조1층 일식
마산포교당
원동무역(주)
남성동
1928
무
Conc2층모더니즘
마산우편국
중앙동
1930
무
당시 원마산의 가옥은 좁은 골목 변에 지은 초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1910년대에 개설되었던 신설도로변에는 함석지붕(亞鉛葺) 또는 기와지붕(瓦葺)으로 초가(稿葺)를 금하는 건축 제한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원마산의 점포는 대부분 잡화점․양품모자재봉판매점․미술장신구점․귀금속안경점․재봉틀점․제화점․양말제조판매업․납품업․미곡점․운송점․여관․인쇄조각사․활판인쇄소․사진업․요리업․우육점․주막․전당포․공장 등이었습니다.
1920년대 마산지역에서 일어난 각종건설공사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합니다.
조선건축회 (朝鮮建築會)에서 간행한『朝鮮と建築(조선과건축)』에 게재된 1920년대 마산지역에서 시행되었던 각종공사를 종합 정리해보았습니다.
「조선건축회」는 현재의「대한건축학회」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입니다.
『朝鮮と建築(조선과건축)』은 조선건축회가 1922년부터 1942년까지 간행한 월간 학회지 성격의 간행물로, 당시 한국의 건축과 관련한 내용을 다양하게 싣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하는 마산관련 기사는『朝鮮と建築』중 ‘최근조선건축계’ 혹은 ‘조선건축잡보’ 등 전국 각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건축 관련 소식을 다루는 부분에 실려 있는 것으로서 일종의 기사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표에 게재된 내용들은 준공된 건물이거나 시설이 아니고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통해서 1920년대 마산지역의 대표적인 건축공사들이 어떠했는가는 대략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개항기 때 이미 건축해 놓은 각종 공공시설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한 사회적 수준의 상승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변화는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건축적 요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에 따라 각 공공건물들은 시설확충과 건물수준 상승의 일환으로 증개축공사가 많이 전개되었는데 그 실상을 이 표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강점 제2시기 말에 추진된 마산부청과 마산우편국 이전 기사를 통해 과거 조계지에 지었던 관공서 건물의 위치적 편향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과 그에 대한 해소책으로서 중앙 마산으로 이전하게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산상업학교와 경남선철도 및 북마산 역사(驛舍) 등의 공공시설과 원동무역과 같은 민간시설 등 이 시기에 축조된 많은 시설들이 게재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마산고녀(高女)는 현 마산여고의 전신입니다.<<<
| 연도 | 기사제목 | 발주처 | 비고 |
| 1923 | 마산고녀(高女)공사계약 | 학교조합 | 橫山太十郞계약 |
| 1923 | 마산고녀증축 | 학교조합 | 교정확장, 교사증축 |
| 1926 | 마산병원개축결정 | 경상남도 | |
| 1926 | 마산고녀증축결정 | 학교조합 | 부윤이 경성가서 기채 |
| 1926 | 도립마산의원개축 | 경상남도 | 현 의료원위치로 이전계획 |
| 1926 | 마산만매립공사기공 |
目加田平三郞 |
현 경은신마산지점앞 |
| 1926 | 마산도립의원개축 | 경상남도 | |
| 1927 | 공립보통학교증축착수 | 취학아동증가 협소 | |
| 1928 | 마산공회당 기념건축 | 상업회의소 | 모금 |
| 1928 | 마산상수도공사 준성 | 마산부 | 연장1800m |
| 1929 | 마산공회당, 기타 계획 | 마산부 | 공회당, 도서관, 청년회관 |
| 1929 | 마산부청 신축 | 마산부 | 주민들의 요구, 국고보조 |
| 1929 | 마산우편국개축 착수 | 체신국 | 주민불편해소, 철도용지 |
| 1930 | 마산우편국상량식 | 체신국 | 시공 ; 江波俎(강파조) |
| 1930 | 마산우편국신축공사 | 체신국 | 본관 마무리 |
| 1930 | 마산고녀기숙사신축 | 학교조합 | 러시아영사관사용 |
| 1930 | 마산에 방직공장신축 |
木浦南北綿業 |
산호리 매축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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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년경에는 단발에 양장(洋裝)차림을 한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서 1920년대 중반에는 전체 한국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상투머리를 한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막일하는 사람과 농민이었으며 그 외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짚신도 이 시기에는 많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무신을 신었는데 마산에는 주로 오사카와 고베의 고무신이 공급되었습니다. 개중에는 구두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무신 사용자가 많아지니 상대적으로 짚신은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고무신 대신 짚신신기 운동'까지 일어난 지역도 있었습니다.
짚신이 당시 농촌의 중요 수입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점기에 이용되던 고무신광고입니다.
이런 정황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은 점점 근대화되어 갔습니다만,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일본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대정 8년(1919년) 중춘(仲春) 각지에 배일선전의 만세소요(3․1독립운동)가 일어나면서부터 배일사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좁은 길에서 일본인을 만나면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심하게는 일본인 교사에 대하여 선생이라 부르던 것이 이때부터 모군(某君)이라고 고쳐 부를 정도로 악화되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때 수많은 한국인이 무고하게 죽었다는 소문이 나자 일본인에 대한 적의는 더욱 커져 마산포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불태워 죽이지나 않을까, 혹은 지금 마시고 있는 샘물에 독약을 넣지 않을까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여 헌병․경찰․소방조까지 임시 야경을 실시하기도 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관동대지진 참상입니다.
교통사정도 약간 바뀌었습니다.
1910년대에 이미 시외버스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시내 전용의 자동차는 없었습니다.
마산에 시내용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1922년부터 시작된 원마산의 도로개설 및 확장공사가 시행된 이후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에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 시내버스회사는 1928년까지 부림동에 있는 오오노(大野)자동차부와 중앙동2가에 있는 마산자동차조합 둘이었습니다.
버스의 운행은 마산 역(현 중부경찰서 앞)에서 구마산 역(현 육호광장)과 북마산 역(현 회산다리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부근)까지를 3개 구간으로 나누어 다녔습니다.
동아일보 1928년 8월 27일자 4면에 보면 마산부에서 이 시기에 부가 직영하는 부영(府營)버스를 운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외로 연결되는 교통은 진주를 시작으로 통영․창녕․함안으로 가지 연결되고 있었으며 1928년에는 택시도 3-4대 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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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마산향우회 송년회용으로 마산도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툰 작품이지만 나쁜 평은 하지 않아 공개합니다.
곧 설입니다.
마산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마산에 얽힌 추억이라도 나누어보시죠.
분량은 13분 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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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상공회>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공인 모임이 있긴 했지만 두드러진 활동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6년 7월 22일 마산공립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에서 개최된 마구(馬邱/마산대구)철도촉진기성회를 조직하기 위한 부민대회에서 지역의 상공인 모임이 필요하다고 제안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들이 1929년 4월 24일「마산상공회」가 창립되었고, 이후 마산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1938년「조선상공회의소령」에 의한 마산상공회의소의 설립인가가 나던 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최근 마산상공회의소가 펴낸 '사진으로 본 마산상의 111년의 흐름'이라는 책에도 마산상공회의소라는 이름으로 마산의 상공인들이 단체를 만든 때가 1938년 7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회장으로 표기된 서전목총시(西田木惣市, 西田嘉惣市로 기록된 곳도 있습니다)는 1907년 홍문동에 설립한 서전주조장의 창업자입니다.
「마산상공회」의 회칙에 기록된 사업내용을 통해 당시의 마산상황과 주요현안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馬邱철도 부설 촉진
2) 長尾半兵衛氏 계획의 통영선 실현 촉진
3) 마산상업학교의 학년연장, 학급증가 건
4) 경전남부선 중 순천 경유를 하동, 화개, 구례 경유로 변경 청원
5) 마산-부산간 직통열차 운행 증발 건
6) 일본과의 직통항로선 운임 인하 건
7) 마산중학교 설립 촉진
8) 남지교의 架橋等背面 교통 확충 건
9) 마산항 선차(船車)연결시설 확충 건
10) 상업은행지점 설치 건
11) 일본 북구주(北九州)와의 선로 개설 건
12) 마산세관 출장소 승격 건
13) 합천 직통통로 개설 건
14) 전력요금 인하 건
15) 창원 추도(墜道) 촉진 건
16) 마산-거제도 연안 연결 항로 개설 건
17) 마산-삼랑진간 기동차 운행 건
18) 된장, 간장 운임 할인 건
19) 청주 운임 할인 청원
20) 석발미(石拔米) 증산 건의
21) 상업창고 설치 건의
이미 식민지배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다음 세대의 교육에 관한 내용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마산의 경제역량을 외부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된 후 세 도시의 상공회의소도 ‘창원상공회의소’ 간판을 달았는데 마산상공회의소는 ‘마산상공회’로 이름을 바꾸어 마산지역을 커버한다고 합니다.
우연의 결과겠지만 1929년부터 사용했던 그 명칭이 되살아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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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치가 시작되다>
3․1운동을 정점으로 시작된 문화정치가 마산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마산에서도 소위「문화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문화운동이란 실업과 교육 장려를 맨 앞자리에 내 세워 회사와 학교의 설립과 확충을 통하여 대중을 조직화하고 강연회․토론회 등을 통해 민족의식과 서구적 근대의식을 계몽한다는 사회운동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20년 6월경, 마산지역 문화운동의 구심점을 표방한 마산구락부가 300여 명의 회원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참여자 중 간부들의 상당수가 원마산 어시장의 객주를 비롯한 상업자본가였습니다.
이들은 세대와 이념 전력 등의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교육․체육․계몽․교류활동 등에 많은 힘을 쏟아 그야말로 문화운동을 실감케 했습니다.
이 문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마산의 경제인들은 학교설립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사업이 1922년에 수학연한 3년제 실업계학교로 설립한 마산공립상업학교의 설립을 지원한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마산학원(마산구락부에서 1920년 설립), 배달학원(불교진흥회에서 1921년 설립), 월영노동야학교(신마산청년회에서 1921년 설립)도 들어섰습니다.
이 밖의 교육시설로 1924년에는 의신유치원이 개원되었고, 1915년 개교했던 마산공립실과여학교는 1921년 마산고등여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마산고등여학교는 현 마산여자고등학교의 전신입니다.
<1922년 설립된 마산공립상업학교 / 전 마산상업고등학교, 현 용마고등학교>
<1921년 개교한 마산고등여학교 / 현 마산여자고등학교>
교육운동 뿐만 아닙니다.
19세기 말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일본에서도 전개된 폐창(廢娼)운동도 마산에서 전개되었습니다. 1
1924년 마산청년회에서 미신타파 및 공창폐지운동을 한 것이 그것입니다.
마산청년회는 일본인 송본다장(松本多藏)이 설립한 민간단체로, 회원 수가 많았고 회원간의 친밀도도 높았다고 합니다. 명치절에 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벚꽃이 필 무렵에는 마산시내에 벚꽃 장식을 하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사회봉사 단체였습니다.
동아일보 1924년 7월 20일자 3면 7단에 「마산청년회, 미신타파․공창폐지 결의」라는 제목으로 마산청년회의 활동이 기사로 나와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세계적 추세였던 사회주의자운동과 노동운동 및 청년운동이 마산에 그 첫 선을 보인 것도 이 때였습니다.
개항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일본인의 포교에 힘입어 1920년대에는 상당한 규모와 종류의 일본 종교가 마산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마산신사(1909년 3월)를 필두로 조동종 무학산복수사, 서본원사파 승원사, 마산정토종 포교소, 일련종 묘국사, 환주산 홍법사, 일련정종 등이 그것입니다.
<일본 사찰 복수사>
이처럼 문화운동이 활발했지만 1922년 후반부터 마산학원의 경영난과 기독교회의 보수화, 특히 1920년경부터 시작된 전후 불황이 지역경제계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마산지역의 문화운동도 조금씩 침체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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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마산의 시장(市場)>
1920년대 마산의 대표적인 시장(市場)에 대해서 조선총독부서무부조사과에서 간행한『朝鮮の市場』의 내용과『마산상공회의소백년사』의 내용을 복합하여 인용해 보겠습니다.
① 우선 1924년에 개설된 부정공설시장(현 부림시장)이 가장 큰 시장으로서 제일 붐볐습니다.
특히 마산장날인 매 5일과 10일에는 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건물은 연와조(煉瓦造)의 장가(長家) 점포 3채였고 그 밖에 아연지붕의 바라크식 건물 여러 동이 있었는데 수많은 노점 상인들이 어울려서 저녁 시장 시간이면 더 크게 붐볐다고 합니다.
『朝鮮の市場』에 나타나는 「구마산 시장」은 부림동․수성동․남성동․동성동 창동의 도로(등외도로)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면적과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도로연장으로 200칸(360m)내외라고 했습니다. 노상(路上)시장이었기 때문에 시장과 관련한 설비는 없었으며 개시일은 음력 5․10일로 월 6회 열렸습니다.
주요 취급품은 곡류․면류․마류․면사류․어류․기타 일용잡화였으며 상인 수는 소매상 약 300여 명으로 5-7리에서 까지 장사하기 위해 나왔다고 합니다. 시장 이용자도 부근 3 리 내외에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이「구마산 시장」이「부정공설시장」이란 이름으로 상설화되면서 건물도 갖춘 것으로 보이는데 아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건물을 갖춘 시장과 노상 시장의 경계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부지 2,281평에 81평과 25평의 건물 두 동을 지었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로 적당한 크기의 도로를 내었습니다. 상설시장이었으며 주요 취급품은 야채․곡류․어류였고 상인은 소매상 28명이 있었습니다.
점포주는 모두 신마산의 일본인이었으며 이용자도 신마산에서만 오고 원마산의 한국인들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개설초기에는 전화 주문까지 받으면서 배달도하는 등의 친절전략을 구사했지만 개설 1년도 못되어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③ 합방 이전, 일본인들이 주식회사 체제로 발족시킨 마산수산(주)를 1920년 재편성하여 창포동 3가에 경매시장인「마산수산시장」을 개설하였습니다.
사설(私設)이었으며 시설은 해면에 접한 96평 규모의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양․음력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영업하였고 해산물만 취급했습니다. 중매인 11명이 있었으며 모든 거래는 경매로 이루어졌습니다.
출품하는 사람은 진해와 거제에서 주로 왔으며 구입자는 마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원마산 남성동에 출장소를 두고 영업했습니다.
④「마산 우시장(牛市場)」도 있었습니다.
사설(私設)이었고 1924년 오동동에서 마산축합조합에서 운영해 오다가 1926년부터 마산부 직영으로 바뀌어 운영되었습니다.
면적은 1,044평이었으며 주위에 목책(木柵)이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개시일은 음력 5․10일로 월 6회였으며 생우(生牛)거래만 하였습니다. 중개자 15명이 활동하고 있었고 인근 5리 이내의 사람들이 소를 매매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⑤ 중앙동 1가에 1925년 1월 사설「마산청물시장」이 개설․인가되었습니다.
89평의 부지와 64평의 건물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장사를 하였습니다.
취급품은 야채 및 과일류였으며 중매인 11명이 종사하고 있었고, 출품자는 시모노세키와 모지 및 마산부근 일대의 과수원 경영자였고 구매자는 마산부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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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마산항의 물동량은 일본 국내의 불황과는 달리 오히려 더 늘어만 갔습니다. 주요 수출품은 여전히 미곡이었으며 전체 수․이출액의 80%를 차지했습니다.
1925년 마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미곡은 약 15만석이었는데 1928년에는 65%가 증가한 25만석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미곡 수․이출의 증가는 수치상으로는 무역의 증대였지만 사실은 일제에 의한 미곡의 약탈적 반출이 점점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미업은 1911년 하목철삼(夏目哲三)에 의해 전기모터를 설치한 것이 기계화된 정미소의 시작인데 그 후 많이 늘어나 1924년 현재 25개소였습니다.
그 중 한국인의 것이 12개소, 일본인의 것은 13개소였습니다.
섬유공업은 회사령 폐지 이후부터 마산에 유치되기 시작한 업종입니다.
특히 1923년 6월 일본 오사카의 본전안오랑(本田安五郞)이 전 조선면화 마산공장을 매수하여 그 해 10월부터 작업을 시작한 주식회사 마산조면공장이 1924년 1,300평의 부지에 280평의 공장과 50평의 하치장을 신축하여 운영하였습니다.
그 후 1927년에는 태전성일(太田誠一)에 의해 창립된 태전마사(太田麻糸) 공장이 부지 5,000평에 건평 1,000평의 공장을 세우고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1920년대는 마산-진주 간 철도가 개설됨으로써 서부 경남과의 교역이 활발해지자 북마산 역 주변에 역세권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제법 규모 있는 점포들이 원마산에 들어서게 되면서 상가지역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마산은 창동․남성동․중성동․동성동 일부 지역에 걸쳐 상가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부정공설시장(현 부림시장)부근과 남성동 해안 매축지에서 곡물상․해산물상․식료품상․포목상․잡화상들의 점포와 노점상이 즐비했습니다.
제조업 분야에 손을 뻗지 못한 한국 상인들은 주로 이 지역 상가에서 도․소매업을 경영했던 것입니다.
신마산의 상가는 京町(두월동) 거리의 양쪽에 형성되었지만 일본인조차도 값이 싼 원마산에서 구매를 하였으니 상거래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상인들은 판매업보다는 여관․요식업․대금업 등으로 업종을 바꾸거나 대상(大商) 중에는 원마산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도 있었습니다.
금융기관으로는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지방 농공은행이 통합하여 창설되어 전 경상농공은행이 있던 자리에 1918년 10월 개설되었다)이 현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으며 이 외에 마산금융조합이 신마산에, 구마산 금융조합이 척산천 이동(以東)으로 구역을 분할하여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밖에 농민을 대상으로 한 내서금융조합과 사금융(私金融)인 마산금융회사 등도 있었다.
1910년 신설된 구마산 역은 도시 범역의 확산과 함께 이 지역의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구마산 역 부근 시장통에는 상업조사자가 4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승객의 숫자도 마산 역보다 많아 부산 대구에 이어 번성했던 역이었습니다.
화물은 경부선․호남선․경의선․진해선 등과 연결되었으며 1년간의 승차인원이 176,104명, 하차인원은 153,495명이었습니다.
부근에는 상업학교․형무소지소․보통학교․식은지점․내서와 구마산 양 금융조합․금융회사․기업전습소․조면공장․정미소 2개․양조장 4개 등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 구마산 역에는 신마산과 다니는 승합차가 27대 있었으며 부외(府外)와 연결되는 자동차가 준행되고 있었다.
마산의 대표산업이었던 양조산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산전 장유양조장 / 현 몽고간장 / 1950년대 촬영>
<마산의 일본인 양조장 / 1920년대>
1926년에는 약 7,450석을 생산했으나 역시 부산의 생산량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28년에는 당시의 조합원 12개 공장에서 세운 계획량 9,853석 보다도 1,200석이 더 많은 11,000석을 생산하여 10,000여석을 생산한 부산업계를 제치고 한국의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제1위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마산의 청주업계는 호황을 지속했고 생산량은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산의 청주는 국내 시장에 이어 만주와 중국 대륙까지 팔려 나갔습니다.
1920년대에 설립된 마산의 양조회사는 합자회사淸水양조장(1921년), 濱田주조장(1923년), 村崎주조장(1923년), 千島園주조장(1925년), 山邑주조주식회사마산공장(1929년), 昭和주류주식회사(1929년, 현 무학주조) 등입니다.
이 중 천도원주조장이 최근 철거된 삼광청주의 전신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일제는 1928년부터 개인의 자유 양조를 금지하고 양조를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면허를 발급했습니다.
한 예로 1928년 마산의 탁주 생산량은 불과 1,500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편, 마산에서 생산된 장유는 그 품질이 우수하여 경남 일원뿐만 아니라 멀리 원산과 청진에 까지 판매되었습니다.
장유업은 일본인들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마산의 장유 생산량은 1928년 기준으로 평균 5,000석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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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진 두장은 1944년 마산의 奥村亮氏가 경영한다는 통조림 공장의 모습입니다.
앳띤 학생들까지 동원시켜 만드는 저 통조림이 군수품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일본사이트에서 발견했는데 사진속의 인물 중에 지금 누군가의 부모나 조부모님이 아니실런지...
写真1 奥村亮氏経営の馬山市の缶詰工場(昭和19年12月撮影)
写っているのは学徒動員の男子学生
写真2 馬山工場で缶詰製造に従事する学徒動員の女子学生(昭和19年12月)
아래의 사진은 1908년 마산각국거류지에 위치한 소학교의 전경과 마산심상고등소학교의 전경을 담은 엽서입니다. 국내의 한 경매사이트에 올라왔던데 시작가가 10만원이더군요.
울타리밖에서 신기한듯 학교안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1950년 여름 마산의 서쪽전선이라고 소개된 사진입니다.
미국전차의 모습이 보이는걸로 봐서 미군이 촬영한것으로 보입니다.
산의 지형만으로 사진속의 장소를 알아내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래의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미 25보병사단이 馬山지구 전투중에
식사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양산을 쓴 병사의 모습에서 의외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호주의 Newcastle대학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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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 2011/12/14 19:04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입니다. 오는 15일 '갱상도 블로그' 송년 모임 장소를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만초집(관련기사 참조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040)으로 정했습니다. 기왕에 하는 모임, 창동·오동동에서 하면 조금이나마 지역 상권 살리기에 힘을 보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술과 음식 준비 때문에 14일까지 참석 여부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연락 드리기 앞서 아래에 댓글 달아주시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죄송하지만, 이날 모임은 갱상도 블로그의 한 해 활동을 돌아보고, 내년을 내다보는 자리인 만큼 구성원이 아닌 분들은 모시지 못합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15일 저녁 7시 만초집에서 뵙겠습니다.
제목: '가는 해 안 잡는다, 오는 해도 막지 말자!'
언제: 2011년 12월 15일 저녁 7시
모이는 곳: 만초집
참가비: 1만 원.
문의: 민병욱 019-559-9102 블로그 http://min.idomin.com 이메일 min@idomin.com 만초집 246-3432
<진행순서>
-진행(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장)
-7시~7시 40분 즐겁게 밥 먹고, 마시기
-7시 40분~8시 간단한 참가자 소개
-8시~10시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
예) 올해 블로그 생태계에서는 어떤 일이…. 올 한해 갱블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 (기뻤던 일, 고쳤으면 하는 것들)…. 내년에 갱블 차원에서 해볼 만한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올해 갱블 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 세 분을 뽑아서 선물도 드릴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갱블' 공동 취재 추진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한 번 해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만초집 연락처>
-주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105번지
-연락처: 055-246-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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