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마산세관의 발자취를 따라서

사진과 지도를 통해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유장근교수의 도시탐방대에서는 신마산의 조계지에 설치된 신작로를 따라서 유서 있는 건물들을 찾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 건물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건물사진과 지도를 통해서 시간속의 여행을 체험하는 색다른 의미가 있을것 같았다.

특히 조계지내에 설치된 세관은 개항과 함께 설치된 시설로서 그 위치가 변천하는 과정과  건축의 이력을  알아보는 것을 통해서, 땅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추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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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지 지도 : 중앙하단부가 해관부지임(1907)

남성동 해관업무개시

해관은 110년 전 구한말인 1899년 5월 1일 마산항이 개항장으로 발족됨과 동시에 마산해관지서로로 창설되었다..
해관세무사는 조선말기 관세의 징수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개항장에 창설하였던 해관의 제반업무를 관정한 기관이다. 이후 해관이란 명칭은 1907.12.16부터 세관으로 개칭되었다.

마산해관지서가 처음으로 그 업무를 개시한 곳은 현재 남성동 제일은행 2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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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창원감리서가 있던 곳,조선식산은행(이후 제일은행, 1918)

마산항 개항에 앞서 1898년 5월에 외부대신 박제순을 통해 마산포 개항사실을 조선 주재 각국공사에게 통고하고 마산포에 있는 유정당에 창원감리서를 설치하였다.
  창원부윤 안길수가 개항을 위한 감리업무를 담당하였으며, 그 별방에 마산해관지서가 남성동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

창포동 세관 이야기

이후 조계지내 가로가 형성됨에 따라 창포동 2가-31에서 1901년부터 업무를 보다가 1910년에 마산세관지서 건물을 지어 1946년까지 업무를 본 곳이다.

현재 수협이 있는 자리이며, 접안시설로 목조 잔교가 설치된 위치는 현재 창포경남맨션과 한백아파트 사이 길에 해당되는 곳이다. 당시 조계지 지도를 보면 이 두아파트는 바닷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해관이 있는 창포동은 조계지내에서 당시 영사관(현 경남대 평생교육원)에서 해안으로 향하는 길에 접하는 위치로 맞은편에 우체국(1902년 설립)과 함께 영사관과 업무연락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입지를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06년에 정부는세관의 해륙설비공사를 하기로 의결하고 08년에 추진하게 된다. 당시 공사예산액은 1만 천원으로 부두의 길이84.5M 돌제부 길이10M를 보완하여 등대를 설치하고 여기에 폭이 3.4M 길이9M의 목조잔교를 가설하고 해안의 세관구내를 간조면 위로 3.79M 와 5.76 높이로 땅을 정리하여  창고 1동을 세웠다. 해관 주위는 철조망을 두르고 세관지서장 관사 1동도 신축했다. 마산항 최초의 항만시설이 완성된 것이다.


목조 잔교가 있는 해안 구내의 좌측에 목조 단층건물로서 아연도칠을 한 골함석을 지붕의 50평규모의 창고 한동이 있으며, 건평23평의 2층 목조건물인 세관지서장 관사 1동이 사진 우측에 나타나고 있다. 부두에 전신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은 1911년 이후에 촬영한 듯 하다.            
(마산에는 한일와사전기회사에 의해 1911년에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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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해관 목조잔교(1908-1910)

창포동에 소재했던 세관지서는 러시아식 단층 목조건물로서 외벽은 목제 비늘판벽으로 되어 있다. 정면은 포치(현관부분)를 두어서 박공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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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해관 마산지서전경(1910)

현재의 건물은 영생아파트와 1층에 수협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영사관에서 바로 보이는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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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동 해관위치의 현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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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관에서 영사관(경남대 평생교육원)을 바라본 모습

당시 세관과 영사관은 상당히 힘있는 사람들이 지나치던 길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이 거리를 지나건만 그 때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런지-----

월남동 부두국 이야기

세관은 1943.12.18 폐청되고 조선총독부 교통국 산하에 부두국 소속됨에 따라 월남동에 월남동 46-4번지에 소재하는 부두국을 설치하였다.
그런데 창포동 세관이 이 곳으로 이전한 기록이 없다.
세관은 폐쇄되어도 마산항을 출입하는 모든 외항선들은 입출항은 일본인 마산세관장의 출입을 받아야 했던 것으로 보아, 양측에서 업무를 나누어서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월남동 부두국 건물은 목조2층 구조로, 외벽은 목제 비늘판벽으로 되어 있으며 90년대까지 사용되었으나 해안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철거되었다.
 현재 타이어상점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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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동 부두국,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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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국 위치의 현재의 모습

해안도로의 확장에 의해 필지가 짤려지고 일부에 건물이 남은 모습이다.
이마저도 주변 아파트 재개발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땅의 흔적도 없어질 지경이다.

월남동 세관이야기

해방이후 1946.08.19 세관은 월남동2가 47번지(현재 마산식당)로 이전하였다. 여기로 세관을 옮긴 이유는 해방까지 해안의 매립에 부두가 현재의 해안도로변까지 확장됨에 따라 업무기능상 동선의 편의를 고려하여 옮긴 것으로 판단된다.
월남동 마산식당 청사는 해방후 마산교회로 사용하던 것을 미군정청과 마산세관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여 사용하였고 한다.
그리고 원래의 창포동 해관자리가 59년에 마산교회의 자리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마산교회와 임대차 계약이후 창포동 건물과 교환하였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산식당의 건물은 다행히 당시의 구조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이력을 알아본 바 [근대문화유산 목록화사업] 경상남도, 2004에 의하면 건축물 관리대장상은 1939년 등재되어 있으나 건물은 1905년에 지어진 것을 추정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일본인 개인영업(1939년 기준)에서 이 건물은 일이삼식당이란 상호로 古本露라는 사람이 요리집을 경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상공회의소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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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마산식당 모습

당시 두월동에 여관이 유명한 곳으로서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여관은 요리와 숙박을 같이하는 지금의 호텔같은 기능을 하였기에 지어질 당시는 세관과 같은 업무기능은 아니었지만, 부두가 있는 해안으로 접근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건물은 원형이 잘보존 된 상태라서 누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주변개발에 포함되어 곧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안타까울 뿐이다.


월포동 세관이야기

55년 8월 현재의 세관자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당시 1부두, 2부두, 중앙부두가 확장된 상태이었으며, 현 청사 부지는 당시에 보세지역으로 1951년 3월 2일 고시되었으나, 보세구역 및 창고는 조국해방에 따른 귀환동포 임시거처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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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세관으로 사용된 월포공립초등학교(1955)



당시 임시청사로 사용된 건물은 월포공립국민학교로 사용중이던 건물을 미군이 보급창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955년 4월 19일 징발한 것을 임시청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건물을 보수해 사용하다 57년 사라호 태풍으로 넘어지자 1958.4.1.에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을 신축했다. 지금의 청사는 1995년 1월에 신축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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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건축한 벽돌조 2층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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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신축한 현재의 마산세관

그나마 현재의 청사마저도 지방합동청사 추진계획에 의해 옮겨질 신세에 놓여 있다.

신포동 2만㎡ 부지 이달 입찰 공고·내년 6월 착공
2012년 완공…세관·검역소 등 6개 정부기관 입주
마산 서항 지구 해양신도시 조성 예정지에 산재해 있는 6개 정부 기관을 한 곳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지방합동청사가 신포동 1가 78 일대 2만6155㎡에 2012년까지 들어선다. 마산시는 3일 국비 482억원을 투입해 건물 연면적 2만4600㎡ 규모의 지방합동청사를 내년 6월 착공, 오는 2012년 3월 준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물은 가만히 있으려 하나, 사람이 가만히 두지 않는 꼴이다.
 
건물과 땅의 흔적들을 생각하며

한 건축물의 110년간의 이동과정을 추적해 보았다.

사람과 같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동을 하게 되고 다양한 건물의 형식을 통해 변모하는 것을 보았다.
세관건물은 물리적인 위치의 변경을 가지게 된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한 장소에서 지어지는 건물의 수많은 흔적들도 누군가는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화산재에 묻혀있던 폼페이라는 도시를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 독일의 요한 빙켈만 같은 고고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Posted by 신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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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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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나고 그 발자취들이 희미해지는것을 보니 왠지 마음이 허 하네요.
    • 삼식이
      2009/11/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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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내 친구 용팔인지요?
      우리 지역에서 사라져간 것들을 하나씩 챙겨 놓으면, 다음에 허전함이 덜하겠지요!
  2. 2009/11/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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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따라 신종플루도 아닌 것이 몸살기운이 심해 참석하지 못했네요. 아쉽군요. 그래도 이렇게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삼식이
      2009/11/1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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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관리 잘하시죠, 이번주는 이승기 선생을 섭외중입니다. 아마 창동, 오동동의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도 기대가 됩니다.
  3. 2009/11/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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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탐방대 카페에도 올려주세요.
  4. 임민규
    2009/11/23 18: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내용 감사합니다.퍼갑니다

먼 곳에서 10여 명의 손님이 왔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현직 교수와 젊은 대학원생들이었는데 모두 마산이 초행이었다.

오후 3시 경 버스 편으로 양덕동 터미널에 도착한 이들의 마산 여행은 이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멀게는 여몽연합군의 정동행성으로부터 조창과 개항, 식민지 시대를 거쳐 가깝게는 3·15의거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년을 넘나드는 마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녁식사는 신마산 두월동에 나가 해결했다.

‘통술거리’라 명명된 두월동 거리는 개항 직후인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차지한 조계지에서 최고 번화가로 쿄마찌(京町)라 불렀던 곳. 거리의 내력을 안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100년 전 조계지 한 가운데 앉았다는 것만으로 매우 즐거워했다.

통술집 특유의 신선한 해물과 풍성한 양 때문에 모두들 낯선 도시의 밤을 한껏 즐겼다.


▲ 마산 통술거리와 통술집의 기본차림상

숙박은 돝섬에서 했다.
세련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았지만 정성들여 꾸며 놓은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고, 섬에 왔다기보다 마치 큰 유람선을 탄 듯해서 항구도시의 소박한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섬에서 도시전체야경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본인들이 조성한 개항장 거리를 걸어 마산이사청과 신동공사 터를 찾았다. 합방 직전 융희황제(순종)가 마산에 왔던 이야기와 개항 직 후 이 도시를 농단한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역사의 흔적을 더듬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의미만 되새겼을 뿐, 어느 것 하나 눈과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마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담하게 사라져 버린 문화유산들에 대한 질책을 그들로부터 받았고, 현존하는 일본헌병대 건물만이라도 보존하라는 당부에는 책임 못질 약속을 했다.

100년 도시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둘러보고 남성동으로 이동했다.
조창이 있던 남성동 네거리와 창동·동성동의 수백 년 된 골목길은 여행자들에게 지나간 시간의 신비한 체험이었지만 이곳 역시 매 마른 설명 외에 달리 보여줄 게 없었다.

다음은 어시장. 퍼덕이는 것은 도다리와 볼락만이 아니었다. 생선과 뒤섞인 사람에게도 생명이 퍼덕이고 있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항구시민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 마산 어시장. 싱싱한 해산물 만큼 언제나 활기가 넘쳐난다.


점심은 중성동 생선국 집을 찾았다. 장사를 시작한지 무려 40년 가까운 이 식당은 고객의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오래된 단골손님이 많다.

특이하게 생긴 생선 모양을 보고 웃고, ‘탱수’니 ‘아구’니 하는 이름 때문에도 웃었지만,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에는 모두들 신기한 듯 놀랐다. 그들에게는 생선국 한 그릇도 새로운 문화체험이었다.

떠나면서, 시간을 가지고 다시 찾겠다는 약속도 하고, 뭐니 뭐니 해도 엊저녁 ‘통술집’이 제일 좋았다는 평가까지 있었지만, 모두들 한결같이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은 처음이었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이 행사는 기왕 마산을 찾는 분들에게 이 도시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시켜주자는 친구의 제의로 만든 작은 이벤트였다. 개항장, 조창지, 수백 년 된 골목길, 돝섬과 바다와 어시장, 그리고 통술집과 생선국.

오직 마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들 문화 컨텐츠의 위력은 예상했던 대로 놀라웠다. 24시간 동안 벌어진 이 작은 이벤트를 통해 그 동안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던 이 도시의 가능성도 찾을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마산 도시 발전을 원한다면, 그래서 사람 살만한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면, 24시간 마산 여행이 성공한 까닭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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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은진
    2009/09/0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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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없는 것은 사람들이 없는 것이지,
    땅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선조들을 잘 모르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모르니 이야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허정도 선생님 알려주신 코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전에 저도 돝섬에서 숙박하는 것을 고려해 보았는데
    배가 일찍 끊어진다고 하던데
    통술 먹고, 내 짐작에는 배가 없을 텐데
    의문이 드는 군요.

    돝섬의 숙박시설만 잘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허정도
      2009/09/07 16: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당시에는 늦은 시간까지 배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행이 별겁니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체험을 하는 것이 최고의 여행아니겠습니까?
      소박했기 때문에 더 좋았던 추억입니다.
      감사합니다.
  2. 2009/09/07 23: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블로그도 운영하십니까?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마산기행, 저가 이곳저곳 디다본 느낌이군요.
    마산에 살면서 마산을 이야기하지만
    이 글을 읽고 정말 저는 아는 것이 없구나를 느꼈습니다.
    우리 고장의 좋은 역사공부 잘 했습니다.
    기회되시면 중성동 생선국집 한번만 안내해 주십시요.
    그 댓가로 저가 쏘겠습니다.
    이 글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으니 말입니다. 하하~
    • 2009/09/08 08:21
      댓글 주소 수정/삭제
      환영합니다.
      ‘林馬’라고 하니 괜찮은데 ‘임마’라 하니 조금 미안하네요.
      어쩔 수가 없네요, ‘임마’를 ‘임마’라 하니,,,


      별 것도 아닌 글을 좋게 봐주어 고맙습니다.
      소박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늘려있는 역사와 문화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철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마산 같은 올드시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언제 기회 되면 함께 둘러보시죠.
      제가 아는 대로 안내해 보겠습니다.
      저보다 아는 게 훨씬 많은 친구들도 있으니,
      제가 모르는 부분은 친구들에게 물어서라도 해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임마’가 누굴까????
    • 2009/09/08 15:1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임마'를 모르신다고요???
      위 林馬를 함 눌러보시면 금방 알 수있을텐데요?
      울 대표님을 넘 존경하는 소박한 마산시민입니다 하하~
  3. 2009/11/13 10:2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마산 토박이면서 정말 마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요?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
    다시 돌아왔지만
    추억은 떠올릴뿐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공부 많이해서 친구들 마산오면 이야기 해주고 싶네요
    • 허정도
      2009/11/13 11: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방문감사합니다.
      다음 카페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에 가셔서 마산도시탐방에 참여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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