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몽고군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작년 11월 9일 포스팅했던 글인데 연재라서 또 올립니다 '마산' 지명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 정립된 주장은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마산지명 기원설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구전으로 전해내려온 이야기에서부터 고려시대 여원연합군 일본원정 때 이곳에 몽고군들이 주둔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먼저, 일본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의 주장입니다. 그는 1926년에 간행한『마산항지』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라고 전제하며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각 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창원 소재 오산진(현 산호동 용마고 부근)에도 매일 시체가 산을 이루어 50구, 30구 혹은 20구의 시체가 동시에 묻히는 등 참혹한 상황이 되었다. 살아남은 이 지역의 고로(古.. 2010. 6. 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두 번의 전쟁 후, 조정에서는 마산지역의 지명이었던 의안(義安)을 의창(義昌)으로, 합포(合浦)는 회원(會原)으로 개칭하고 금주(金州, 지금의 김해) 수령이 통할하던 이곳에 현령을 직접 파견하여 행정지위를 승격시켰습니다. 일본 정벌기간에 보여준 마산지역 민관의 노고를 치하해 내린 조치로, 소위 민심수습책이었습니다. '합포'와 '회원'은 최근 통합창원시 출범으로 두 개의 구청이 들어서는 마산에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행정구 명칭이 되었고 '의창'은 현 창원시의 두개 구 중 하나의 명칭인 '의창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의 배려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힘 없는 백성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고난을 겪은 백성들에게 다시 내린 충격은 왜구의 침입이었습니다. 고려시.. 2010.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