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해당되는 글 4건
- 2010/04/05 재개발 아파트도 언젠가는 낡는다 (6)
- 2010/03/02 어린이집 생활기록부에 사는집의 방갯수를 왜 적을까? (4)
- 2010/01/07 섬유왕국 '한일합섬'이 남긴 교훈 (30)
- 2009/09/18 ‘현대아이파크’의 추억. (6)
최근 몇 년간 전국적으로 아파트 재개발사업이 유행처럼 번졌다. (여기서 사용하는 재개발이란 용어는 주거환경이 나빠서 기존의 건물을 헐고 고층아파트로 다시 짓는 일체의 개발공사를 통칭한다)
대 도시 를 중심으로 불붙은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마치 낡고 좁은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깨끗하고 넓은 아파트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나 권리처럼 인식되었다.
본래 재건축은 기존에 사용하던 건물의 시설이 노후하거나 혹은 구조적으로 위험하여 도저히 더 이상 건물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 이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주거 환경 을 바꾸자는 근본적인 목적보다 경제적인 이득을 보자는 실질적인 목적이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용적률이 낮은 저층 아파트를 철거하고 거기에 고밀도의 고층아파트를 건립함으로써 발생하는 잉여금으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자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재건축을 하면 가장 이익이 많을 가능성이 있는 아파트, 즉 공지가 많은 저층 아파트가 그렇지 못한 아파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보자는 것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 재건축 대상 기한인 20년이 되지도 않은 멀쩡한 아파트까지도 소위 전문가의 손에 의해 시설이 노후한 것처럼 혹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고서를 무리하게 만들어 사업을 시행한 사례까지 있었다.
경제적인 이익을 전제로 한 재건축사업은 아파트의 밀도가 개발 이전보다 높아야 된다는 것이 절대조건이다.
밀도가 높아지지 않으면 잉여금이 없어지고 잉여금이 없어지면 재개발해야할 중요한 목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고밀도라는 절대조건을 가진 재개발 사업에서 주위의 환경과 도시 공간을 고려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환경보존과 개발이익의 충돌 때문이다.
지금을 보지 말고 미래를 한번 바라보자.
재개발한 아파트도 언젠가는 낡는다.
우리가 지금 낡았다고, 그래서 헐고 다시 짓는 아파트도 언젠가는 지금 아파트처럼 낡을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기준만으로 도시의 미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없어져도 도시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도시의 생명은 길다.
건축물도 우리보다 수명이 긴 것이 많다.
재건축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고밀도 고층아파트들은 그것을 있게 한 우리들이 떠나고 난 뒤에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건물의 구조재로 사용되는 콘크리트의 수명은 대략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20년 주기로 콘크리트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너무 심한 자원 낭비다.
언제까지 뜯고 짓고를 반복할 것인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주거지는 이미 생활방식이 변했기 때문에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멀쩡한 저층아파트 20년 되었다고 철거해도 된다는 생각은 바꿔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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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2010/04/06 10:51
재개발 아파트가 다시 낡을 즈음엔 자신들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요.
실제로도 그럴가능성이 높구요.
제가 사는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타산이 안나오니...30년 되어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
최정건 2010/04/08 02:21
도시는 남녀노소 빈부의 구별 없이 같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재건축과 재개발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지역에서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시스템입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그래도 내 집이 있어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데, 이 재건축 재개발로 인하여 인근 변두리를 떠돌아 다니는
인공위성의 삶이 됩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아제 아파트는 임대아파트 위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
후배유림 2010/04/09 09:10
아침 신문에 난 기사가 눈에 확~
한옥에 30년을 산 외국인이 그랬다더군요
한국인을 돌대가리다...
지역민이 개발을 하고 정부는 보존을 하는 시스템인 외국과는 달리
유독 우리나라와 중국만이 싹 쓸고 콘트리트 숲을 만든다면서..
그리고 외국은 건물과 땅의 가치와 가격이 시간이 갈수록 오른다고 하더군요
의미있는 한마디에 아침에 잠깐 생각을 했습니다.
가격에만 너무 매달리는 지금의 모습이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어린이집에 제출해야 하는 생활기록부 ▲2009년 개정된 유치원생활기록부 ▲1996년 제정된 유치원생활기록부
올 해 네살이 된 딸아이가 집 근처의 시립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새학기라 이것저것 제출할것이 있었는데 그 중에 '생활기록부'라는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간단한 인적사항이나 신체발달상황 등이 기재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어야 하는 내용이 많았다.
무심코 적다가 부모학력을 적는 란이 나왔다.
아직도 이런것을 적어내나 조금 의아해 하며 나머지 문항들을 보니 눈을 의심할 질문들이 연이어 나왔다.
생활정도를 상,중,하,영세 중에 선택하고,
보육료 감면여부를 면제,경감,유료로 구분하고,
주거상태를 월세,전세,친척집,자택으로 구분하고,
자택은 다시 단독주택인지 아파트인지를 적도록 되어있었다.
여기에 방갯수까지 적으라니......
긴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런것들이 아이를 잘 돌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 생각과 함께 나처럼 언짢아 할 부모와 혹시라도 이로인해 상처받는 아이가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은 네댓살이면 글을 깨치는 아이들이 태반이라 직접 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별 의미없지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수있는 문항들로 채워놓은 어린이집의 무심함이 마음을 아프게했다.
이런 마음이 드는것은 아이들의 인권이나 인격이 별로 중시되지 않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나의 경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5공화국 출범과 함께 마산의 한'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학년이 바뀔 때 마다 이뤄지는 가정환경 조사가 늘 달갑지 않았다.
교실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선생님이 부모의 학력을 '무학(無學)'부터 '대졸'까지 호명하며 손을 들게 했는데 어머니가 '국민학교' 밖에 안나와서 '국졸'에 손을 들어야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 부끄러워 눈치만 보다가 '중졸'에 슬며시 손을 들곤 했다. 거짓말을 했다는 자책감에 얼굴이 붉어졌고, 부모 마저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그 순간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있을 정도이니 예민한 아동에 대한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생활기록부의 출처가 어딘지 궁금해 관련 법규을 찾아보았다.
어린이집은 아니지만 '유치원의 생활기록부 관리지침'이 유아교육법에 고시로 지정되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어디에도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 생활수준을 묻는 란이 없었다.
2009년에 개정된 법이라 혹시 큰 변화가 있었는지 1996년 제정당시의 지침을 찾아보았다.
부모의 직업을 적는 란이 있을 뿐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생활기록부에서 부모의 직업란을 없애는데 13년이 걸린셈이다.
결국 지침도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내용이 아무 고민없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고 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도록 돕는것은 교육자의 몫이자 권리이다.
하물며 아이들이 태어나서 최초로 만나는 보육 및 교육자인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역할은 부모에 버금 갈 정도로 중요하다.
사소한 일이라 여기지말고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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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 2010/03/02 10:34
그 참?
방 갯수로 집규모를 가늠하겠다는 의도겠지요.
얘들은 선입견 없이 똑 같이 가르쳐야 하는데----
네살부터,
부모님의 이력이 따라 다니는 사회라 생각하니
씁쓸하군요
ㅊㅊㅊ-
류창현 2010/03/03 14:05
아마도 편견을 가지고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은 거의 없을겁니다. 문제는 아이를 돌보는것과 별 상관없는 정보를 습관적으로 가지려는데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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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여섯 번째 길에 나섰다.
날씨는 차가웠지만 바람이 없었고 맑아서 걸을 만 했다.
회원도서관에서 만났는데 추운 날씨에도 참석자가 20여명이나 되었다.
봉화산과 이산미산 그리고 지금의 석전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근주 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탐방을 시작하였다.
마산방직→한일합섬→한일전산여고→양덕성당→가톨릭여성회관→합포성지→하이트맥주→국립3·15민주묘지로 이르는 코스였다.
가는 곳곳마다 이야기할 것도 공부할 것도 많았지만 나는 한일합섬의 태동과 성장 그리고 몰락의 과정에 눈길이 많이 갔다.
거대기업 한일합섬의 흔적이 양덕동 일대 온갖 곳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유 교수의 도시탐방대 작은 제목이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인데 이 글은 「걸어서 만나는 한일합섬이야기」인 셈이다.
<1970-80년대 마산은 한일합섬의 시대>
1964년 자본금 1,500만원으로 일본기술과 제휴하여 아크릴 섬유를 생산하면서 시작된 한일합섬은 1967년 1월 박정희 대통령까지 참석하여 기공식을 했다.
이른바 섬유왕국의 시작이었고, 마산이 산업도시가 되는 신호탄이었다.
1986년에 펴낸 『한일합섬20년사』에는 ‘양덕동 허허벌판에 기공의 삽을 힘차게 꽂은 지 만 1년, 마침내 준공 테이프를 끊게 된 아크릴 섬유공장은 ․․․․․․’ 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곳은 허허벌판이 아니라 양덕동 석전동 산호동 일대에 살던 마산시민들의 곡창이었고 삼호천과 산호천 사이의 기름진 논밭이었다.
아크릴 섬유로 시작한 한일합섬은 후에 종합섬유회사로 발전하였다.
1967년에 방추(紡錘)가 22,400개였던 것이 1979년에는 무려 344,000 추로 세계 최대 규모까지 성장했다.
고용효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1967년에 4,300명으로 시작했던 사원 수가 1976년경에는 27,000명까지 늘었다. 사원 수가 이랬으니 이 거대기업을 둘러싼 2차고용 3차고용 효과까지 계산하면 그 수가 얼마였겠는가.
‘수출입국’을 지향하던 정부시책에 맞춰 국가경제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1967년 68만 불이던 수출액이 71년에 2,286만 불까지 급성장을 이루었고, 1973년 드디어 국내 최초로 수출 1억불을 달성했다.
창립 후 불과 5-6년 만에 수출액 15,000% 성장이라는 기적의 기록을 가진, 그 시절 최고최대의 기업이었다.
소위 '전국 7대도시 마산'도 이의 결과다.
한일전산여고에 얽힌 일화도 많다.
나이 어린 여공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큰 공이었지만 그 유명한 ‘팔도잔디’는 전 국민의 심정을 녹아내리게 했다.
1974년에 설립한 한일전산여고는 첫 해에는 28학급 1,680명 규모였는데 1980년에는 120학급 7,200명까지 되었다. 학급 수가 120, 한 학년에 40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규모다.
이른바 1970년대와 1980년대 마산은 ‘한일합섬의 시대’ 였다.
나는 탐방대원들과 함께 양덕동 찬바람을 맞으며 한일합섬의 옛 영화를 되새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 한 쪽에 솟아오르는 물음이 있었다.
국내 최고 최고최대의 화학섬유회사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몰락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잘나가는 SK나 CJ나 코오롱도 비슷한 업종이었는데 왜 한일합섬만 이렇게 몰락하였을까?
답을 찾지 못한채 길을 걷던 중, 눈 앞에 한가닥 실마리가 보였다.
어쩌면 나의 물음에 작은 답이 될수도 있는 '사라진 한일합섬'의 흔적이었다.
그것은 .....
………그것은 아파트였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수는 없겠지만, 한일합섬이 몰락하게된 원인 중 한조각은 짐작할 수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한일합섬은 본 공장 외에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소규모 혹은 짜투리 땅들을 대부분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어 분양 처분했다.
규모가 작은 땅들이라 한 채 혹은 두어 채 정도였고 저층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도 양덕동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은 건물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모두 ‘한일’이나 ‘한효’가 들어간 이름이었다.
'한일'이야 회사명이지만, ‘한효(翰曉)’는 한일합섬의 설립자인 김한수 회장의 호다.
<섬유로 시작해 아파트로 끝난 한일합섬>
집을 짓기만 하면 재미를 보았던 시절이었다.
이 거대기업도 집 장사로 그 시절 재미를 좀 보았고, 사주(社主)는 쉽게 돈버는 달콤한 유혹에 빠졌다.
자신을 있게 한 기존의 섬유산업은 수명이 다해, 저 멀리 퇴조의 징후가 보였지만 미래를 위한 진지한 모색도 과감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연구와 개발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업의 탈출구를 찾는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 장사의 단 맛에 빠져 본격적으로 공장규모를 줄이며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건설규모도 크게 늘려 그 때까지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했다.
제품창고 헐고 아파트 지어 ‘1차’
기숙사 헐고 아파트 지어 ‘2차’
모노마 탱크 헐고 아파트 지어 ‘3차’
서쪽 편 공장 헐고 아파트 지어 드디어 ‘4차’까지.
아파트 단지의 차수가 늘어날수록 '한일합섬'은 왜소해졌고, 차수가 늘어날수록 사원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비례해서 마산경제도 점점 쇠락해 갔다.
사람들은 이 아파트 단지들을 통칭 ‘한일 1차’ ‘한일 4차’ 등으로 부른다.
만약 '한일합섬'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면 최근 태영과 한림에서 지은 대규모 아파트단지 '메트로시티'는 ‘한일 5차’, 바로 그 옆에 마지막 남은 터는 ‘한일 6차’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4차 만에 ‘한일’은 이름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모든 상황이 끝난 지금, 긴 시간을 한눈에 보면,
논밭이던 땅에 공장이 들어섰고 다시 그 모든 땅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양덕동 일대 주민들 땀이 밴 기름진 양덕 들이 30여 년 만에 아파트 터로 변한 셈이다.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거대기업의 몰락,
섬유왕국 한일합섬의 몰락을 떠올리니 새로운 물음이 생겼다.
‘섬유로 시작해 아파트로 끝난 한일합섬’의 참혹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온갖 곳 보이는 땅마다 ‘아파트와 아파트’로 채우고 있는 이 도시 마산이 한일합섬 몰락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새로 탄생하는 통합시는 이 사라져버린 거대기업에서 얻어야할 교훈은 없는 것일까?
석양의 역광에 검게 물든 한일아파트의 수십층 높은 벽이 마치 몰락한 '섬유왕국 한일합섬'의 잔영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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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가실 2010/01/07 13:35
찬바람 맞으며, 도시탐방을 한 값을 많이 찾을 수 있군요^^
저렇듯이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었다는 건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로 마산시민들이 한일의 몰락에서 교훈을 많이 얻었으면 합니다.
수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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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 2010/01/07 22:43
마산에서 몰락한 기업들의 리스트를 만들면 어떻런지요? 유원산업, 경남건설 등등 많을것 같읍니다. 물론 몰락의 이유를 잘 분석해야겠지요!
실패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수 있지 않을까요 -
최정건 2010/01/08 01:43
제가 지금까지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대학가지 나오고 직장을 다니는지라
관심이 많습니다. 유장근 교수님, 김주완 기자님 블로그도 자주 갑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삭막해진 것 같습니다, 신마산 댓거리도 그렇고,예전에
고등학교를 창원까지 다녔는데 지금의 밤거리는 사뭇 다른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아쉬운 것은 강남극장, 중앙극장은 몰라도 연흥극장이 아깝습니다.
지금도 쓸만한 건물인데 마산시에서 적극적으로 매입하여 시민들을 위한
소규모 공연장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예전에는 세림상가에 극단마산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보기가 힘듭니다.
지금의 롯데시네마와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이 이전의 극장체계보다 영화가 다양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일합섬이 아쉽습니다. 제가 한일유치원을 나오지라 저 팔도잔디에서도
많이 놀았는데 최소한 양덕동 로타리 쪽으로 공장 한 동이라도 남겨두어 예를들어
마산 근현대박물관이라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저는 마산이 한국근현대사의 산업화시대의 긍정적인 면 보다 슬픔, 아픔, 모순이 내재된
도시라고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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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신 2010/01/08 11:34
많은 교훈을 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토목*건설로 단기수익만 바라보다가는 근간이 무너진다는걸 현 정부도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자꾸 어디를 파낸다, 어디를 매운다 이런소리만 하고 있으니 걱정됩니다. -
말뫼 2010/01/08 13:27
죽은 애 고추 만지기이지만,
오래 전 한일합섬 철거.이전이 논의 될 때, 그 터는 마산의 공공업무지역+지역금융통상업무 중심지구로 개발해 마창진의 금융통상허브로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도, 그 전에도 마창진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지리적으로도 그 중심지로는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선생님의 다른 포스팅 '통합시의 성패는 우리 손에...'에서 통합시의 행정구역도를 보고 그것이 다시 생각 났습니다. 그 구역도로 보면 그야말로 딱인 중심지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더 깊은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돌이킬 수가 없으니...
한일합섬이 야금야금 집장사로 팔아 먹은 것도 그렇지만, 이후 본공장 터를 마산시가 집장사치들에게 팔아 치운 것은 겨우 숨줄만 붙어 있는 사람의 숨통을 짓눌러 버리는 것과 같은 폭력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역의 역사에 씼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도시 살리기가 아니라 도시 죽이기 였습니다. 그게 무슨 영화를 볼 일이라고 그랬을까 싶습니다. 대규모아파트가 들어서면 인구가 늘어날 것 이라는 무지막지한 사기를 쳤던 자들의 뇌구조를 파헤쳐 보고 싶은 지경이었습니다. -
말뫼 2010/01/08 13:22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마산이 진짜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탄식만하고 앉아서는 막연한 바라기나 하고, 행정당국은 땅장사나 하고서는 그게 무슨 대단한 치적인 양 도취하고, 힘께나 쓸 듯 폼 잡는 지역국회의원들은 생색내기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사람들로만 살펴 봐도 두루두루 퇴락하고 망할 조건들만 갖추고 있었지요. 거기에 올바른 전문가들의 역할이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 합니다. 도시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할 기회나 주어졌던가요? 도시재생위원회가 기능을 하긴 했던가요?
마산의 꼴은 '장'자리 차지했다고 거들먹거리기나하고, 방귀개나 낀다는 무식방창한 무리들이 제 세상인 양 마구 휘젓는 깡촌구석동네 분위기, 딱 그 수준 입니다. 제대로 뭘 하자는 사람들은 아무 역할 못하고...
십여년 전인 듯 한데, 마산의 도시계획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허선생님도 전문가로서 그 가운데 계셨었는데, 그 때 논의 됐던 것들 중 기본적인 것들만이라도 실행 되었더라면 마산이 이토록 죽을 지경으로 나자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도시.지역문제에 정획한 문제인식과 진심으로 살리려는 노력이 없는 한 마산은 마창진통합에서도 뿌시래기나 빌어묵는 변두리 찌끼미 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마창진 모두 지차체장 부터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껏 그들의 같쟎은 자기도취적 치적 만들기는 이제 '신물징'이 납니다. 매립땅장사, 알짜배기 도시 중심중심지 팔아 치우기, 같쟎기 짝이 없는 생태도시, 복마전 같은 변두리 소도시... 그들이 만든것은 그런 것들 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도시도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신주의가 상식적 태도 처럼 만연한 대한민국, 사람과 자원의 반이 몰려있고 국가권력도 좌지우지한다는 서울공화국,수도권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지방'도시의 문제는 '지방'스스로의 혁명적 각성과 노력 없이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역공동체의 본떼있는 '실력'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한 지방도시의 환경은 변화조차 무망 하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다면, 돈만 많으면, 부자동네만 되면.... 그 딴 생각으로는 절대로 서울공회국,수도권공화국의 지배를 벗어 나지 못할 것입니다. 인구.면적규모로 최대지방도시? 그 따위로 어디에 견줄 생각을 한다는 것 부터가 '촌 것들'이라고 멸시 당하기를 자청하는 생각 일 것입니다.
그게 이 나라 '지방도시'의 처절한 현실이며 지방도시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선생님과 같이 진정성을 지니신 전문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때 입니다. 장차 지역도시문제에 큰 역할 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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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호 2010/01/11 23:26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우리마산이 않고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 마산의 그림을 잘 그려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마산이 되었으면 하는 마산시민 한사람의 소망입니다.
회장님께서 변화의 물고를 터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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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앞바다 신포동 매립지에 현대아이파크 고층아파트가 우뚝 섰다.
짓기 전에는 몰랐지만 다 올라가고 난 지금, 많은 시민들이 혀를 찬다.
‘도시를 막았다’
‘추산공원에서 돝섬이 보이지 않는다’
말들이 많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돌이킬 수도 옮길 수도 없다. 도시와 건축은 그런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저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를 기억해 보자.
오래된 일이 아니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시민들의 반대서명, 토론장에서의 날선 소리, TV공개토론 등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인데 왜 다시 짚어봐야 하는가?
두 번 다시 이런 식의 행정을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기왕 지어진 건물, 옮길 수도 없으니 반면교사로라도 삼기 위해서이다.
현대아이파크 고층 아파트는 마산시가 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멋지게 바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이런 마산시의 주장에 시의회가 부응, 자신들 손으로 만든 조례를 불과 열 달 만에 스스로 뒤집어 고층아파트 건립을 가능케 했다.
납득할만한 설명도 별로 없었다. 모두 마산 시민을 위하고, 마산발전을 위한 결정이라고만 했다.
이런 흐름에 반대한 시민도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애당초 이 매립지가 항만관련시설로 허가받았다는 원론적인 지적 외에, 이 고층건물이 도시의 자연환경과 조망권, 나아가 경관의 소수독점이라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까지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반대의사에 동의하는 1만여 명의 시민 서명까지 받아 시의회가 다시 한 번 재고하도록 청원까지 했다.
시의회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결정하고 난 뒤에도 계속 의견을 개진했다.
당시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다.
첫째, 시민의 혈세로 수백억을 책임져야한다는 마산시의 주장은 적절치 않다.
애당초 현대산업개발과 해양수산부가 계획했던 것은 항만이었지만 그 기능이 없어졌다. 아니 애초부터 아파트가 목적이었고 항만은 서류상 필요한 수단이었다는 것도 알만한 시민은 다 안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항만이 쓸모없어졌다면, 그래서 건설회사에 비용보전을 해주어야 한다면, 그 고민은 순전히 건설회사와 해양수산부(당시 명칭)의 몫이다. 매립허가 과정에서 마산시가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필요도 없는 항만 만든답시고 결국 아파트 부지만 조성한 저 매립을 마산시민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책과 기업을 두고 투자비 보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중앙정부가 실패한 정책을 추궁하는 것이 시의원의 권리요 의무다.
둘째, 고층아파트 건립을 찬성한 시의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기 바란다.
이 터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개정한 조례는 마산시의원 총 서른 명 중 열여섯 명이 찬성함으로써 결정되었다. 그 분들은 자신이 찬성한 이유를 시민들에게 알려, 설득시킬 것은 설득시키고 양해구할 것은 구하기 바란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마산시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고 이 도시는 무엇이 좋아지는지 이해시켜주기 바란다.
이는 신뢰받아야할 공인의 마땅한 의무며 유권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건립반대서명을 받으면서, 의회가 왜 저곳에 고층아파트를 짓게 했는지 대다수 시민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셋째, 최종 결정은 시민들의 뜻을 물은 후 내리기 바란다.
제도상으로 보면 의회가 시민의 대의기구인 만큼 의원 각자의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처럼 중요한 사안일 경우, 본인을 뽑아준 시민의 뜻을 확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형 건물은 한번 들어서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철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만약 다수 시민이 고층아파트 건립을 찬성한다면 시민의사가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값진 일이며 설령 건축 후 도시환경이 나빠지더라도 의원들에게 돌아가는 부담도 준다. 역으로 고층아파트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이 많아 조례를 다시 고친다면 그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의회가 시민들의 뜻을 묻는 여론조사가 아무 부담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주장에 시의회는 묵묵부답,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2004년 추산공원에서 바라본 돝섬 풍경(좌)과 당시 아이파크 건립후를 예상한 시물레이션(우)
▲2009년 추산공원에서 바라본 돝섬 풍경
시야를 가로막은 아이파크로 인해 섬의 온전한 형태를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도시발전을 위한 중요한 판단은 일부 소수의 결정권자에게 독점되어 있다. 제도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도시사용자인 시민들과 충분한 교감을 얻지 못한 도시정책은 결국 실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실패한 도시정책은 회복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부담은 미래의 도시사용자까지 져야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현재와 미래의 두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의원들은 말했다.
‘마산시민을 위하여, 마산의 미래를 위하여’
유권자이자 시민인 우리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가?
이 고층 아파트가 마산을 살려줄 것이라 했던 시의원들께 묻는다.
정말 그런가라고, 저 고층 아파트가 정말 마산을 살렸느냐고.
TV토론에서 마산시 담당 국장은,
‘저 아파트를 지으면 문신미술관에서 돝섬이 보이지 않는데 어쩔 거냐' 고 하자
‘돝섬이 보이지 않으면 어떠냐’ 고 공개적으로 답했다.
'저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획기적으로 발전될 것'
이라고도 했다.
그 분께도 다시 묻는다.
지금도 마산 앞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조망이고 뭐고 여기저기 건물만 올라가면 도시가 좋아진다고 믿는지?
5년 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버스 지나간 뒤 손드는 짓 두 번 다시없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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