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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으로 끝난 수산시장과 군용지 매립구상>
1) 신마산 수산시장 매립계획
1905년 7월 29일 창원감리 현학표는 외부대신 이하영에게 매립신청을 했습니다.
위치는 마산포의 각국공동조계지 밖 남쪽 해안이었고, 그 절차로 신동공사에 청원을 심의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창원감리 보고 제50호’로 제출되었으며 도면까지 첨부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이 당시에 첨부되었던 도면입니다.
위 도면의 좌하부 삼각형 부분이 매립신청지인데 '수산회사축정지, 5천㎡정계(定界)'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그림의 삼각형 매립계획지를 현재 위성지도에 표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두색 삼각형이 수산시장 매립계획지, 노란색은 각국공동조계지, 파란색은 당시의 간조시 해안선입니다)
이 매립은 일본인 10여 명이 수산회사를 설립하여 신마산에 수산시장을 건립하겠다는 목적이었으며 위치는 조계지 최남단이었고 규모는 5,000㎡(1,500평)이었습니다.
관련 기록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매립허가와 시행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1905년 이후 제작된 문헌자료와 지도 등 아무 곳에도 이곳에 매립된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 구상은 계획만으로 끝났을 뿐 시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철도용지 앞 매립계획
1906년(광무10년) 5월 7일 창원감리가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보낸 ‘창원감리 보고 제14호’에 일본군부의 매축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매립계획은 바로 그 일본군부의 매립계획을 말하며,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그림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매립계획이었습니다.
다음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현재의 경남대학교 정문 쯤에서 시작하여 마산역과 장군천을 지나 마산포 어시장까지의 규모입니다.
(파란색은 간조시 해안선, 주황색이 매립계획부분)
이 보고서의 내용에는「일본군부가 철도용지 앞 해안을 매축할 계획을 세우고 각국공동조계지에서 구마산포에 이르는 해안 약 10리를 군항지로 매축코자 하오나 이미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지금에 와서 온당치 못한 일」이라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전쟁은 1년 전에 끝난 러일전쟁을 두고한 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5월 16일 지령 20호로 창원감리에게「이미 평화가 찾아온 마당에 군용지도 물러나 주어야 할 것이니 매축공사는 교섭하여 정지(停止)하게 하라」라는 내용의 매축계획중지를 지시하는 훈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앞의 매립계획과 마찬가지로 이 매립에 관한 기록도 여기서 끝나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진척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도 1906년 이후 제작된 지도 및 각종 자료에 이런 식의 매립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실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을사조약으로 한반도를 손에 쥔 일본의 야욕이 마산포에 드러났던 두 번의 매립계획은 이렇게 계획으로만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계획만으로 끝난 그들의 마산포 매립시도는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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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으로 건너온 일본인>
일본군이 이 땅에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직후였습니다만 일본 민간인이 공식적으로 서울에 들어온 것은 1884년에 착수한 그들의 공사관(公使館) 신축 때 들어 온 직공(職工) 70여명이 최초입니다.
그 전에는 비공식적으로 상인 약간 명이 잠주(潛住)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남산 밑에 일본인 거류구역이 설정된 1885년 후였습니다.
이로부터 10여 년 후인 1894년, 일본 정부는 한반도 지배를 위해서 일본인의 한국 이주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다음과 같이 입장을 정리합니다.
일본인으로 하여금 되도록 속히 한국 땅에 이식시키는 일, 이것은 참으로 영원한 계책이다. 한국 땅 이식 사업은 한반도를 개척하는 데 무엇보다도 장기적 대책이다. 한국 땅으로의 이식은 국부의 증진 도모에 크게 족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이권을 차지하는 데도 또한 이 보다 나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조선도항자편리(朝鮮渡航者便利) 22편-
이러한 정책에 따라 한국 땅에 이주한 일본인들과 그들로 구성된 일본인 거류지가 장차 어떠한 성격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평정빈부(平井斌夫)와 구관정이(九貫政二)가 함께 1911년에 펴낸『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마산에 거주한 일본인은 개항하던 해에 33호 103명이었으며 이들은 생업 때문에 대부분 원마산(마산포)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01년이 되어서야 부산 등지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마산으로 이주하면서 인구도 80호에 259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아래의 표가 개항이후 12년 간 마산에 거주한 일본인 들의 수 입니다.
|
년도별 |
1899 |
1900 |
1901 |
1902 |
1903 |
1904 |
1905 |
1906 |
1907 |
1908 |
1909 |
1910 | |
|
호수 |
33 |
70 |
80 |
99 |
95 |
154 |
340 |
677 |
868 |
989 |
1,132 |
1,548 | |
|
인구 |
남자 |
87 |
189 |
160 |
203 |
191 |
359 |
717 |
1,233 |
1,826 |
2,009 |
2,360 |
3,163 |
|
여자 |
16 |
61 |
99 |
130 |
136 |
270 |
531 |
937 |
1,393 |
1,678 |
1,961 |
2,778 | |
|
합계 |
103 |
250 |
259 |
333 |
327 |
629 |
1,248 |
2,170 |
3,219 |
3,687 |
4,321 |
5,941 | |
이 통계를 보면 1900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인은 불과 77명밖에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03년에 327명이던 일본인의 수가 1904년에는 629명으로 302명이 증가하였고 이어서 1905년에는 619명, 1906년은 922명, 1907년은 1,049명, 1908년은 468명, 1909년은 634명, 1910년은 1,620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 결과 개항 당시 103명이던 마산의 일본인이 1910년에 무려 5,941명으로 급증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1905년경부터 시작된 급격한 일본인 증가현상은 1905년 10월 노일전쟁 승리와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을사조약으로 통감정치가 시작되자 1906년 2월 1일 마산에도 이사청이 설치되어 종래 창원감리가 행사하던 지방통치권이 일본인에게 넘어갔습니다.
그 해 9월 1일「일본거류민단법」이 실시되어 마산의 일본거류민회는 「마산일본인거류민단」으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
마산일본인거류민단이 발족할 당시의 일본인 거류민 수는 660호에 2,433(남자 1,452명, 여자 981명)명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미곡상을 주업으로 하는 송원조장(松原早藏), 구중감작(久重勘作), 산본호장(山本好藏) 등을 비롯하여 216호 700명이 원마산에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개항 다음해인 1900년 마산에 이주해온 일본인 송원조장 씨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그가 이주해온지 29년 뒤인 1929년 발간된 '마산현세록'에 실린 것입니다. 나이는 나와있지 않지만 사진으로보아 꽤 젊은 나이에 마산으로 건너온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이 마산포(원마산)에 거주했던 까닭은 그들의 주업종인 잡화상과 미곡상 등의 영업 활동 때문에도 개항 이전부터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었던 마산포를 근거지로 삼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미있는 통계를 하나 소개합니다. ( ) 안은 겸직입니다.
|
무역상 1 |
중매상 6(4) |
약종상 5 |
잡화 27(6) |
술소매 2(1) |
도기 (5) |
|
일상잡화 (1) |
주물상 (1) |
옷가게 3(2) |
부엌잡화(1) |
양주(2) |
담배 (4) |
|
과자상 3(2) |
설탕상(2) |
석유상(1) |
장유상(2) |
의사 2 |
문옥(問屋)1(1) |
|
회사 2 |
여인숙(1) |
야채상 1 |
두부 1 |
요리점 1 |
떡집 2 |
|
푸줏간 1 |
세탁업 1 |
일고(日雇) 5 |
예기 1 |
선원 (1) |
목수 15 |
|
석공 6 |
미장 2(1) |
철력세공 1 |
대장간 2 |
이발관 1 |
미용실 1 |
|
된장 (2) |
일용노동 22 |
토목청부 1 |
정미상 (1) |
식빵 1 |
대궁(大弓)(1) |
|
페인트칠 1 |
작부 3 |
선두(船頭) 3 |
광업 2 |
| |
|
러시아 : 호텔업1, 잡화상1 |
중국 : 잡화상7,잡화행상3 |
독일인 : 선교사 | |||
이 표는 1902년 당시 마산에 거주한 일본인과 그 외 외국인들의 직업입니다. 이들의 직업은 표에서 보는 것처럼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그 중 건설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이가 50여명이나 되어 새롭게 조성되는 조계지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겸직이 많았다는 사실과 직업의 내용을 보면 일본인의 이주가 극히 초기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직업도 있습니다.
알아보려고 노력해보았습니다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짐작하기로는 문옥(問屋)은 건설관련, 일고(日雇)는 일용노동, 대궁(大弓)은 조선목공, 선두(船頭)는 선박업 정도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한편, 1904년에는 뒷날 봉암동 수원지를 건설한 본전추오랑(本田搥五郞), 경찰서와 일본인 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 등을 건축한 천해신시(淺海新市) 등의 토목․건축 청부업자들이 이주해 왔습니다. 이들은 거류지 내에서 일기 시작한 각종 건설사업에 손을 댔습니다.
아래 사진이 본전추오랑 씨와 천해신시 씨입니다.
이런 일본인들이 개항된 마산을 휘어잡았습니다.
당시 마산에 살았던 한국인 수에 대한 통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자료에 나타나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이 시기 마산에 살았던 한국인 인구와 일본인 인구를 나타낸 것이 다음 표입니다.
|
년도 |
총인구 |
일본인 |
기타 |
한국인(추정) |
출처 |
|
1899년 |
|
103 |
|
호수 : 2,000여호 |
香月源太郞, 韓國案內 |
|
1907년 |
11,881 |
3,219 |
80 |
8,582명 |
손정목, 도시사회경제사연구 |
|
1909년 |
11,022 |
4,321 |
|
6-7000여명 |
홍경희, 한국도시연구 |
|
1910년 |
16,657 |
5,941 |
52 |
10000-11000여명 |
홍경희, 한국도시연구 |
당시 마산에 거주했던 한국인은 을사조약 전후에 6,000-8,000여명이었다가 1910년 경에 10,000여 명을 조금 넘긴 정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합친 총 16,000여 명의 마산 인구는 1910년대에 내내 14,000명에서 16,000명 정도로 큰 변화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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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덕의 매축청원도>
1900년 / 김경덕 / / / 매축청원서 첨부, 창원항안Ⅰ / 규장각
1900년에 마산포 해안을 매립하기 위해 김경덕이 정부에 제출한 매축청원서에 첨부되어 있는 지도입니다.
(1907년 창원감리 이기(李琦)가 일본인 홍청삼(弘淸三)의 매립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에 보낸 보고서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지형만 알아 볼 수 있도록 붓으로 대략 그려놓은 지도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매립 전 마산포 선창과 굴강의 위치, 그리고 해안 주변의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붉은 글씨는 당시 마산포 사람들이 사용했던 선창과 굴강의 명칭과 위치를 제가 표시한 것입니다.
이 지도에는 오산리․동성리․중성리․서성리로 기록된 당시의 리(里)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서, 일제에 의한 행정구획 이전의 마산포 6개리 경계에 대한 자료로 가치가 있습니다.
윗부분의「매축차정계(埋築次定界)」라는 표시로 그어 놓은 ⊓ 모양의 선이 김경덕이 매축을 계획한 범위입니다.
이 경계를 측정해 보면 도면에 나타나 있는 계획매립지의 길이는 서성선창에서 오산선창까지를 망라하여 원마산이 접하고 있는 전(全) 해안으로, 현재의 지도를 이용해 확인한 결과 약 750m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매축의 폭이 58파(把, 두 팔을 잔뜩 벌린 길이)라고 했는데 1파를 1.8m로 보면 104.4m로 추정이 가능합니다.
이런 가정으로 매립부지의 면적을 계산해 보면 78,300㎡(약 23,700평)나 되는 대규모입니다.
건설장비는 꿈도 못 꿨던 110년 전,
마산포 동성리(현 동성동)에 살았던 김경덕이란 사람의 포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아래 그림은 실제로 존재했던 마산포 해안을 정밀하게 복원하여 현재 인공위성 사진 위에 오버랩시킨 겁니다.
(옛 마산포 해안의 복원과정과 복원 결과에 대해서는 차후 포스팅할 계획입니다)
위 아래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김경덕의 그림이 정확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기본형태는 충분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도시 한복판이 되어버린 옛날 마산포의 저 해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사연을 안고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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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교장들의 학교건물에 대한 생각> 직전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의 1928년 편을 보면 「學校建築號」라는 주제의 특집기사가 있습니다. 당시의 학교건축물 현황의 일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
● 어는날 갑자기! 사는 곳이 해안도로 근처라 아침마다매 창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시설물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시멘트를 담아두는 창고와도 같은 곳으로 '싸이로(Silo)'라는 놈이다. 그런데 몇일 전부터 이 싸..
<1920년대 마산의 건축물과 각종공사> 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대식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한일병합 이전까지는 주로 목조로 지은 공공기관이 주류였습니다만 1910년경부터는 벽돌조도 많이 지었습니다...
측창채광은 천창채광과는 달리, 말그대로 벽면에 위치한 개구부(창문 등)를 통해 자연채광을 실내로 들여오는 방법입니다. 창문외에도 유리블럭, 낮은 고창, 채광뜰(Sunken)이나 안뜰로난 수직 개구부 등을 통해 측창채광으로 얻는..
‘진해’ 지명에 대한 글입니다. ‘진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옛 마산시 진동면 일대’의 ‘진해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한제국시대에는 ‘통합 이전 창원시(옛 의창군)와 옛 마산시 진동면·진전면·진북면 일원’을 ‘진해군’이라..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 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
자연채광 부분에서 잠시 거론되었지만, 파사드(전면) 개구부(측면 창문)를 통해 유입되는 자연채광이 닿지 않는 공간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천창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측면에 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천정에 창을..
1년동안 벽에 걸어두고, 또는 책상위에 놓게 되는 달력들은 1월에는 넘쳐납니다. 여기 저기서 받아둔 달력중에서 어떤 달력을 놓을까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절에서 나온 달력이며, 근사한 미술작품을 곁들인 은행달력, 자사의 실적홍..
지난 연말, 재경마산향우회 송년회용으로 마산도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툰 작품이지만 나쁜 평은 하지 않아 공개합니다. 곧 설입니다. 마산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마산에 얽힌 추억이라도 나누어보시죠. 분량은 1..
자연채광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물내 다양한 공간들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하는 통합적 설계방법입니다. 자연채광을 위한 설계에 있어서는 방(실)별로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빛 환경을 필요로 하는 방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
최근 창원호텔 맞은편에 현장이 생겼습니다. 두 달 남짓 사무실이 있는 정우상가쯤에서 중앙동 민원센터까지 하루에 두세번씩 걸어갔다 옵니다. 분명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길임에도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도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몇차..
<마산상공회>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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