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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에 뚫린 최초의 신작로>
통감부 시절인 1907년경에 이미 마산포의 도로 폭을 조금 넓히거나 형태를 곧게 하는 가로개수 공사가 마산경찰서 주관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식 도로가 건설된 것은 1912년부터 1915년까지였습니다.
이 때 개설된 도로들을 사정토지대장에서 확인해 보면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시기는 다양합니다. 도로의 개설 시기가 토지대장에 기록된 시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3-4년 사이에 공사가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업으로 자연발생적인 좁은 골목길뿐이었던 마산포에 폭8m, 10m의 쭉 뻗은 새 도로가 신설되었습니다.
다음 도면은 도로가 개설되기 전의 마산포와 개설 후 모습, 그리고 도로개설 후인 1916년 지도에 나타나는 마산포 모습입니다.
두 번째 도면에서 직선으로 뻗은 넓은 길이 신설된 계획도로입니다.
박간(迫間, 하사마)에 의한 매립공사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시행된 것을 감안하면 이 도로개설공사는 매립공사와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진행되었을뿐만 아니라 마산포 전체의 도로망 구성을 볼 때 매립지의 도로망과 신설된 도로망은 마산포 전체도로계획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마산의 계획도로 개설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1912년 10월 7일에 조선총독부관보 제56호로 각도 장관에게 보낸 훈령 제9호로부터 시작된 전국적 규모의 「시구개정사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구개정사업」이란 도시의 도로․교량․하천 등을 근대적으로 정비하고, 구획별로 건축물의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도시계획의 성격입니다.
총독부 훈령 내용은「지방에 있어서 추요(樞要)한 시가지의 시구개정 또는 확장을 하려고 할 때에는 그 계획설명서 및 도면을 첨부하여 미리 인가를 받을 것. 다만 일부의 경이(輕易)한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입니다.
이 시구개정사업에 관한 훈령에는 그 구체적인 목적과 비용부담 등에 관한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훈령이 그로부터 20년 이상이나 한국 땅 안의 시가지를 개조하고 규제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마산의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이 도로개설사업에 대하여「마산포의 시구개정문제(馬山浦ノ市區改正問題)」와 「제4회 민회의원선거」라는 항목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마산의 민회의원 16명 중 마산포에 거주한 의원이 7명이었다. 그런데 마산포와 신마산에 거주하는 의원들끼리 서로 마산포에 개설될 도로의 노선(路線)에 관한 이해관계 때문에 다툼이 많아 회의가 계속 공전되면서 결론을 얻지 못했다. 결국 당국에 일임하게 되었지만 시행하지 못하다가 1912년 제4회 민회의원들에 의해 마산포의 도로개설사업이 비로소 최종 확정되었다. 모두 13호선까지 계획했으나 높은 지가(地價) 때문에 1호에서 5호까지만 공사를 하고 6호부터 13호까지는 시행하지 못했다」
계획도로의 노선 때문에 민회가 공전되고, 민회의원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싸웠으며, 높은 지가 때문에 계획한 것만큼 공사를 시행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실은 당시 마산포가 얼마나 상업중심지로서 가치가 높았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기야 당시 나온 자료를 보면 마산포가 신마산에 비해 훨씬 거래량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신마산의 일본인들도 마산포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니 세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마 앞의 두번째 그림에 표기된 신설도로가 위 기록에 나오는 1호에서 5호까지의 도로일 것입니다. 그러나 6호부터 13호는 시행하지 못했다니, 그곳이 어딘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신설된 도로의 위치는 가능한 한 기존의 골목길을 확장하여 도로를 개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① 기존 도로의 체계를 유지하고
②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며
③ 토지 보상비용의 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1912년 토지이용도와 1920년 토지이용도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도로가 기존의 골목길을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항지』에「도시계획에 저촉되는 대지의 보상비가 너무 고가였다」라는 내용을 보아도 기존 골목길을 도로로 활용하여 비용절감효과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때 뜷린 도로는 마산포 최초의 근대식 도로로서 신마산에서 시작된 장군로와 이어졌으며 매립지의 도로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원마산에 최초로 격자형의 근대적 도로망을 갖추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최초로 나타난 정형의 부지와 근대적 도로는 이미 원마산 상권의 중심지였던 이 일대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에 걸쳐 살펴 본 바와 같이 ‘남성동 매립’ ‘마산창 철거’ ‘근대식도로개설’ 등 1910년대에 나타난 마산포의 세 가지 변화는 1760년 조창 설립 이래 지속되어온 원마산 도시공간형태를 대폭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변화가 1910년대 전반기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매립 1911-1914, 마산창 철거 1913, 도로개설 1912-1915) 이미 통감부 시대부터 시작된 식민지배 기반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파악됩니다.
즉 신마산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이 이동에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최고의 시장'이라고 여겼던 마산포를 적극적으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효율적이고 근대적인 도시시설을 준비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식민도시정책의 적극적인 준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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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썼던 편지 한 통을 소개합니다.
가포신항과 해양신도시 때문에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의 담당사무관에게 보낸 8년 전 편지입니다. 편지를 나눈 분은 이후 고위공직자가 되었습니다.
*( ) 안은 원본에 없는 글입니다.
○○○ 사무관님께 드립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전화로 시간을 뺏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글까지 보내게 된 것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마산항(가포신항)의 건설과 서항매립(해양신도시)이 제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이고, 개발의 결과는 현재와 미래의 마산시민들 삶의 질을 결정할 중요한 사안이기에 이렇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사무관님께서는 전화 통화에서 ‘서항 매립은 항만 건설과 별개(해양신도시와 가포신항은 별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형식은 별개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별개의 사업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항이 아닌 다른 지역, 예를 들어 덕동만에 준설토 투기를 한다 할 때 항만건설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관께서는 수자원보존과 군사지역 등의 이유로 그곳은 곤란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사유가 없다하더라도 덕동 지역은 매립한 후 예상되는 낮은 토지분양가 때문에 필요한 비용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항만건설과 서항매립이 구별될 수 없는 사업이라는 저의 주장을 쉽게 납득하실 것입니다.
만약 저의 생각과 달리, 덕동만이라도 준설토만 버릴 수 있으면 마산항 건설이 가능하다면, 다수 시민들이 수자원지역문제와 군사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마산 신항만(가포신항)의 경제성 평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막연하게 항만을 만들어 놓으면 선박이 오지 않겠느냐, 차후 손실이 있다면 정부가 15년간 보전한다는 등의 답은 합리적인 설명이 못될 뿐만 아니라, 항만건설이 환경 훼손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개발의 직접적인 효용가치가 확실히 보장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책사업도 아닌 마산항 항만건설이 차후에 적자가 되어 국가가 손실을 보전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서 국가적 손실이기도 합니다.
2. 이 사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에는 시민의 입장을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공개적으로 처리하고, 해당사안에 대해서 시민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3. 위의 두 의견이 반영되어 사업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서항매립지(해양신도시)의 공간구성에 대해서는 기본설계 수준은 지금 단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지난 토론회에서 설명된 개발(해양신도시 개발)의 내용은 정말 참담할 수준이었습니다. 공공용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논의하면 된다, 혹은 나중에 시민단체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겠다는 식으로 답해서는 안 됩니다. 필요비용과 토지분양가를 예측하여 매립지의 도시설계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은 확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산시가 공영개발하기 때문에 민간업자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사결정을 사실상 임의로 할 수 있는 자치단체의 공영개발이 관리와 감독을 거치는 민간업자보다 내용이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영행정이란 슬로건이 동원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 보내십시오.
2003년 12월 30일
마산에서 허정도 드림
이 편지를 통해 세 가지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1. 국토해양부는 가포항만 경제성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2. 공감할만한 정보를 주지 않아 시민들이 사업 타당성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다.
3. 해양신도시 용도에 대해서 “나중에 의논해서 결정하겠다”고 한 점입니다.
편지쓴지 8년이 지난 지금, 마산은 이름마저 잃고 통합창원시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만 해양신도시사업은 여전히 마산에서 가장 말 많고 탈 많은 도시문제입니다.
이 사업에 대한 국토해양부의 최근 입장을 보면,
마산해양신도시사업은 가포신항만의 항로준설 깊이를 13m에서 12.5m로 줄여, 신도시의 규모 34만 평을 19만 평으로 축소 시행한다고 합니다.
매립지 19만 평의 형태와 용도는 창원시가 결정하되 주거나 상업용도보다는 공익적 용도를 지향하겠다면서 최종 결정은 연말로 미루었습니다. 다만 사업규모 축소로 발생하는 민간사업자의 손실을 고려한다니 일부 이윤목적의 토지이용도 생길 것 같습니다. 매립 후 서항부두나 마산항 1부두 등 기존 부두는 정부가 친수공간으로 개발하고, 연말까지 준공해야 되는 가포신항은 내년 말까지 기한을 연장하였습니다. 신항의 부두형식은 계획대로 컨테이너부두+잡화부두로 한다지만 창원시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 결정을 두고 마산상공회의소는 “이것으로 논의를 종결하자”고 했고, 물생명시민연대는 “충분한 논의가 모자랐다”면서 갈등을 예고했습니다.
8년 전 편지가 생각난 것은 이 보도 때문입니다. 34만평이 19만 평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전체 상황은 8년 전과 비슷하다 싶어서 말입니다.
① 해양신도시 용도결정을 나중으로 미룬 점, ② 컨테이너 2선석이 포함된 가포신항의 경제성에 대한 애매한 입장, ③ 이 사업에 대해 시민들이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 점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월이 흐르고 조건도 달라졌지만 사업의 큰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사업자와 국토해양부가 주도하는 이 사업의 보이지 않는 메카니즘 때문입니다.
'최종결정'이라는 보도 때문에 이제는 끝난 일처럼 보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으니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이 사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과거 마산시는 왜 이 사업을 추진했으며, 이 사업을 통해 이 도시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어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내일 오후에 시민단체와 마산상공회의소가 이 문제를 놓고 회의를 하는데 참석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가겠다고 했습니다. 가서 다른 방법이 없는지 궁리해볼 겁니다.
다 끝난 마당에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이 사업 끝나면, 공직자와 사업자 전부 떠나고 이 도시에는 좁아진 합포만과 매립지, 그리고 마산사람들만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립의 결과가 좋아도 열매는 마산사람들의 것이요, 결과가 나빠도 마산사람들이 감내해야하는, 마치 마산사람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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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011/07/06 17:30
아직도 마산은 인구가 줄어들므로 아파트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해와 진해와 창원은 인구가 늘어나므로 아파트가 많이 필요하구요?
마산인구가 줄어드는 이유가 뭔지 조금도 사색하지 않는군요.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이외엔 바라보길 거부하십니다. 마산인구..그나마 내서신시가지가 건설되었기에 40만 인구유지 가능했습니다. 최근엔 메트로시티와 아이파크 덕분에 그나마 마산주거환경 이미지가 선방하는 것입니다. 해양신도시가 축소개발되겠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안없이 밥과 죽을 거부하니 밥도 죽도 아닌...마산에선 이제 지양되어야 합니다. 마산을 자신만의 우물단지 안에 가두어 놓지 마시길~
초가집 기운다고 기와집 짓지말고 기와집 무너진다고 아파트 짓지마라는 그런식의 퇴보적 사고방식에 마산시민들을 가두어 놓지 마시길~
<조선시대 마산포를 복원하다>
지금부터 소개할 마산포 복원도는 1905년-1910년 시기의 마산포 도시상황입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보아 이때 상황이 19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어서 이 복원을 ‘조선후기의 마산포 복원도’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복원도 작성 범위-
복원작업의 범위는 토지의 지목과 형상을 분석하여 주거용지로 사용되었을법한 토지들이 일정한 형태로 집합되어있는 영역으로 결정하였으며, 외곽경계는 가급적 도로로 하였습니다.
설정된 범위는 다른 자료에 나타나는 당시 원마산의 주거용지 경계와 비교하면서 조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적도에서 복원한 당시 주거지 영역과 다른 자료에 나타나는 주거지 영역이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복원도 작성 방법-
복원방법은 제가 임의로 착안하였습니다.
사정지적도 복사본을 만들어 이미 분할과 합병으로 변형된 지적도의 원형을 추적 복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모번(母番)과 자번(子番)의 관계를 이용하여 가능했던 작업입니다.
최초의 사정지적도는 모번(母番) 밖에 없었고, 모번 만 있던 땅이 분할되면 자번(子番)이 생기게 됩니다.
이 점을 착안하여 사정지적도 상에 모번으로 구획되어진 원래의 경계선을 모두 찾아내어 복원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1과 1-2와 1-3번지가 있으면 이 세 필지를 합한 외곽선을 이어서 원래의 1번지를 찾는 방법입니다.
복원된 사정지적도는 컴퓨터(AUTO-CAD)를 이용해 모사(模寫)한 후, 각 필지의 사정토지대장(査定土地臺帳)과 비교 확인하여 사정(査定) 당시에 존재했던 최초의 지적도를 복원했습니다.
이렇게 작성된 사정지적도를 관련문헌자료 등을 이용하여 보정(補正)하여 복원도의 정확성을 기했습니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최종 작성한 1910년 경의 마산포 복원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정지적도에 나타나지 않았던 서굴강 방파제-
복원도를 작성하고 난 뒤 사정지적도에서 나타난 도면과 그 외의 다른 자료에서 나타나는 형태가 다른 부분이 한군데 있었습니다. 서굴강 앞의 방파제였습니다.
서굴강 앞 방파제는 사정지적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토지이용도의 작성과정 중 별도의 판단을 요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옆 그림은 이미 소개한 김경덕의 매축청원도(2010/09/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4) - 개항기)를 활용하여
그림의 오산동은 지금의 오동동입니다.
이 도면은 이른바 변현되기 전의 마산포 해안선 원형을 가장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이 그림과 사정지적도를 비교해본 결과 해안형태가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서굴강을 막아주는 방파제 부분만이 서로 다를 뿐이었습니다. 김경덕의 도면 등에는 서굴강을 감싸고 있는 방파제가 있었지만 사정지적도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백일세선창 부분도 이와 유사하게 돌출된 형태이지만 김경덕과 사정지적도 두 도면에 모두 나타나 있었습니다.
김경덕의 도면과 사정지적도 중 어느 것이 당시의 사실과 동일한가 하는 문제는 단정적으로 밝힐 수가 없습니다만 김경덕의 도면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서굴강의 방파제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가정(假定)하면서 다음과 같이 추정하였습니다.
① 옆의 다른 지도(2010/08/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에 나타나는 원마산 부분에도 김경덕과 창원부윤이 그
② 굴강(掘江)이라는 명칭을 통해서도 방파시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굴강이란 개천․도랑못․ 해자(垓字) 등의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인위적으로 만든 포구를 의미합니다.
③ 조창과 서굴강의 위치를 볼 때 서굴강은 조운선 전용 굴강이었을 것이라고 가정(假定)이 가능합니다. 서굴강이 조운선 전용굴강이었다고 가정하는 이유는 (가) 조창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이라는 것과 (나) 굴강의 형태가 규모 있게 의도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으며 (다) 그림3-36에서 보면 서굴강이 선창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김경덕의 도면 등에는 선창이란 이름을 갖고 있지 않고 (라) 당시 오산진(현, 산호동)에서 많이 사용했던 오산선창을 제외하면 세 개의 선창이 서굴강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는 점 등입니다.
④ 위 ③의 가정 하에서 보면 사정지적도 작성을 위한 측량이 시행될 시점에는 이미 조운이 폐지된 지 십 수 년이 지난 뒤라서 조운 전용이던 서굴강은 그 기능이 약화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곳의 방파시설은 관리 소홀로 인해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근대적 토목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방파제가 유지보수를 하지 않으니 빠른 속도로 훼손되었을 것이고 훼손이 심한 방파제를 측량에서 제외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⑤ 만약에 방파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일본인에 의해 매축이 곧 시행될 시점이었거나 이미 매축공사가 시행되고 있었던 시점에서 도로나 대지도 아닌 보잘 것 없는 시설물이었던 방파제를 측량에서 제외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마산포 항만매축공사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월일미상) 착공되어 총공사비 13,700원을 들여 1914년 7월 14일 준공을 보았습니다.
⑥ 방파제가 시작되는 부분을 확대하여 그린 오른쪽 그림에서
이상과 같은 여섯 가지의 이유를 근거로 서굴강을 감싸고 있는 방파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다른 자료를 통하여 추정되는 위치와 형태를 결정한 후 복원도에 추가 삽입하였습니다.
이 외에 사정지적도 만으로 1910년 당시의 토지이용도를 정확하게 작성할 수 없었던 다른 한 가지는 1905년 개통되면서 이미 형태조차 없어진 마산선 철도부지 내의 도로와 대지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료로도 정확한 복원이 불가능합니다.
복원도에 그려진 이 부분의 형태는 주위에 형성되어 있는 도로 및 대지의 모양을 참고하여 추정 복원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복원도를 현재의 도시 도면과 오버랩(over-lap)시킨 것과 항공사진에 비교시킨 그림입니다. 항공사진은 1999년에 촬영한 것인데 해안의 원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길고 복잡한 작업을 통해 얻은 이 복원도를 통해 20세기 초, 더 멀리 조선시대 마산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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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덕의 매축청원도>
1900년 / 김경덕 / / / 매축청원서 첨부, 창원항안Ⅰ / 규장각
1900년에 마산포 해안을 매립하기 위해 김경덕이 정부에 제출한 매축청원서에 첨부되어 있는 지도입니다.
(1907년 창원감리 이기(李琦)가 일본인 홍청삼(弘淸三)의 매립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에 보낸 보고서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지형만 알아 볼 수 있도록 붓으로 대략 그려놓은 지도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매립 전 마산포 선창과 굴강의 위치, 그리고 해안 주변의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붉은 글씨는 당시 마산포 사람들이 사용했던 선창과 굴강의 명칭과 위치를 제가 표시한 것입니다.
이 지도에는 오산리․동성리․중성리․서성리로 기록된 당시의 리(里)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서, 일제에 의한 행정구획 이전의 마산포 6개리 경계에 대한 자료로 가치가 있습니다.
윗부분의「매축차정계(埋築次定界)」라는 표시로 그어 놓은 ⊓ 모양의 선이 김경덕이 매축을 계획한 범위입니다.
이 경계를 측정해 보면 도면에 나타나 있는 계획매립지의 길이는 서성선창에서 오산선창까지를 망라하여 원마산이 접하고 있는 전(全) 해안으로, 현재의 지도를 이용해 확인한 결과 약 750m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매축의 폭이 58파(把, 두 팔을 잔뜩 벌린 길이)라고 했는데 1파를 1.8m로 보면 104.4m로 추정이 가능합니다.
이런 가정으로 매립부지의 면적을 계산해 보면 78,300㎡(약 23,700평)나 되는 대규모입니다.
건설장비는 꿈도 못 꿨던 110년 전,
마산포 동성리(현 동성동)에 살았던 김경덕이란 사람의 포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아래 그림은 실제로 존재했던 마산포 해안을 정밀하게 복원하여 현재 인공위성 사진 위에 오버랩시킨 겁니다.
(옛 마산포 해안의 복원과정과 복원 결과에 대해서는 차후 포스팅할 계획입니다)
위 아래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김경덕의 그림이 정확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기본형태는 충분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도시 한복판이 되어버린 옛날 마산포의 저 해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사연을 안고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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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채광 부분에서 잠시 거론되었지만, 파사드(전면) 개구부(측면 창문)를 통해 유입되는 자연채광이 닿지 않는 공간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천창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측면에 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천정에 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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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채광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물내 다양한 공간들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하는 통합적 설계방법입니다. 자연채광을 위한 설계에 있어서는 방(실)별로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빛 환경을 필요로 하는 방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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