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통합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들만의 일도 아니다. 유익하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합칠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는 것이 도시다.
마창진 통합은 당위성도 있다. 역사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그리고 도시경쟁력의 측면에서 통합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통합통해 세 도시의 약점은 보완시키고 강점은 키울 것이다. 나아가 100만 도시의 위상에 맞는 새로운 발전 가능성도 제시될 것이다.
오래 기다려온 만큼 통합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비전이 크다.



                                                 <마산 전경>

하지만 창원 진해시민과 달리 마산시민들은 통합에 앞서 짚어 봐야할 것이 있다.
진해 창원과 달리 90%에 달했던 마산시민의 통합 찬성률에 대해서이다.

마산은 수백 년의 역사가 있는 도시다.
3·15의거, 부마항쟁 등 현대사의 격랑을 몸소 겪은 만큼 어느 도시보다 애환의 농도가 짙은 도시다. 따라서 통합에 대한 기대도 크겠지만 서운한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90%라는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

왜 인가?
도대체 왜 이 오래된 도시가 인근 도시와 통합되기를 이렇게 바랐는가?
전국 어떤 도시에도 없었던 90% 찬성률을 두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100만 통합도시’의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이라, 진실한 눈으로 이 도시의 현실을 바라보고 싶다.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그만큼 이 도시의 사정이 어렵다는 말이었다.
통합 외에 다른 희망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었고, 도시경영의 실패를 시민다수가 인정한 결과였다.
이 도시에 희망만 준다면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 는 절박함의 표출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따라서 마산시민은 통합시 출발에 앞서 물어야 한다, 왜 통합 외에는 이 도시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순서다.

반성 없는 역사는 반복한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그렇다. 도시 또한 마찬가지다.
잘못 가버린 도시를 잘못 가게 된 원인도 찾지 않고 다시 새 길을 가게 하면, 그 잘못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 전통 있는 도시가 스스로는 희망을 갖지 못하게 되었는가.
무엇 때문인가? 책임이 있다면 누구인가?
말없이 살아왔던 시민들인가?
시정을 비판했던 시민단체인가?
7대 도시를 꿈꾸었던 경제인인가?
3․15 민주 성지를 자랑했던 정치인과 지도층인가?

돌이켜보자.

이 도시의 쇠락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산업구조가 개편되었고,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한 창원공단의 기계 산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기업들이 하나둘 마산을 떠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천천히 짐을 꾸렸다.
마치 옅은 안개에 옷 젖듯이 조금씩 다가왔지만 눈으로 확연히 볼 수 있었던 변화였다.

하지만 마산은 멀건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니, 구경만 하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부추겼다.
떠날 날만 기다리던 한국철강의 공장 터를 주거지역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 뿐 아니다.
한일합섬 터는 아예 상업지역까지 끼워 주었다.
공장 그만하고 땅 비싸게 팔아 챙기고 떠나라’고 부치긴 셈이다.
그 서류에 시장이 관인을 찍었다. 이 도시 쇠락의 신호탄이었다.
기업의 이전이야 자유로운 것이지만, 있는 공장을 마산처럼 내보낸 도시는 일찍이 없었다.

앞 바다를 매립했다.
사업권을 가진 건설회사는 매립한 토지를 잘게잘게 토막 내 팔고 돈만 챙겨 떠났다. 공공(公共)은 외면하고 쓸 만한 땅은 모조리 팔아 챙겼다.
그 서류에도 시장의 관인이 찍혔다. 이 도시는 그렇게 허물어져 갔다.

역전의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일합섬 터에도 한국철강 터에도 기회가 있었고 새로 매립한 신포동 해변에 좋은 터를 잡을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기회를 기회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위기를 결정지우고 말았다.
쇠락해가는 도시를 빤히 바라보면서도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2-30년 전의 방식을 새로운 비전이라고, 거기에 미래를 걸어도 좋다고 믿었다. 이미 오래된 낡은 방식의 도시개발과 레드오션의 카드만 들고 있었다.
바다가 있었지만 이용하지 않았고 천혜의 자연도 방치하고 말았다.
관심은 그저 ‘뚫고 짓고 메우고 넓히는 것’ 뿐이었다.
90%의 찬성률은 이에 대한 정직한 평가였다.

통합 기뻐하기 전에 마산시민은 물어야 한다, 이 도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신에게도 묻고 상대에게도 물어야 한다.
실패를 반복 않기 위해서 물어야 하고, 통합시의 앞날을 위해서도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
통합이 되어도 희망이 없고, 100만 도시가 되어도 길이 어둡다.

희망은 오직 이 질문의 답 속에 있다.
'오늘 마산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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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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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한치 앞도
    10년, 100년 뒤 도시미래를 계산하지 않고
    지도자 주머니와
    커넥션으로 연결된 건설사 몫만 챙겨준
    어리석은 지난날의 행태가
    오늘 우리의 마산의 현재와 미래를 망친 결과입니다.
    아울러 감시를 소홀히 한 시민의 몫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 허정도
      2010/02/08 13: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꾸면 앞날이 밝지 않겠습니까.
  2. 허원도
    2010/02/08 13: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창원시민으로서 참으로 공감가는 글입니다..바로 이문제들 때문에 창원에서 반대하는겁니다..마산자체의 변화없이 통합으로 묻어가 거기에 주도권까지 잡을려고하니 창원쪽에선 열받을만하죠..

    마산시정수뇌부들이 주도권을 잡아 통합시이끌면 창원,진해는 과거마산으로 회귀하는게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이렇게 옆에있는도시와 생각의 차이가 왜이렇게 큰지..

    허정도님같은분이 마산에 계셨다니..참으로 다행입니다..
    • 허정도
      2010/02/0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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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저와 이름 끝자가 같은 걸 보니 '도'자가 항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글로 공개한 이유는 마산이 통합도시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마인드를 바꾼 후 시작해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뜻에서 올린 글입니다.
  3. 허원도
    2010/02/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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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글을 공개하신이유를 잘알고있습니다..
    시정수뇌부들이 허정도님의 뜻을 깊이 잘새겨 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창원시민이지만 편을 가를려고 하는건 아니고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없이 너무 밀고나가는 모습이 웃음만 나오게 하기 때문입니다..도와가면서 더불어 잘사는게 가장좋은 방법이죠..

    하지만 근본적인 생각을 고치지 않고서는 아무리 겉멋만 멀쩡하게 들어도 제자리걸음입니다..님의 말씀 더 공감되고도 남습니다

    같은 '도'돌림자인데 저는 도시공학과 재학중인 대학생입니다..앞으로 지역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되고싶은일을 하고싶네요..
    • 허정도
      2010/02/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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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공학을 공부하신다니 더 반갑습니다.
      앞으로 좋은 생각있으면 글을 좀 올려주십시오.
      비록 작은 블로그에 지나지 않지만 도시발전의 한모퉁이는 담당하고 싶습니다.
  4. 백은석
    2010/02/0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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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없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도시가 쇠락하니 교육도 무너지네요
    • 허정도
      2010/02/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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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감사.
      옛날에는 마산이 교육도시로 이름이 드높았는데 참 안타깝소.
  5. 창원부 지명회복시도 100년
    2010/02/14 12:2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창원광역시==창원부지명 100년만에 회복!
    각 5개구~7개구지명
    .........................

    합포구(합포구 마산시에 바닷가지역.옛지명//마산구 사용가능성 있지만)
    회원구(창원지명유래-의창,회원)
    진해구(진해시와 진동 원래 가포진해현청 소재. 고성까지 관할역사. 고성통합 염두 )
    의창구(함안 통합을 전제.창원소답동.팔용동.마산내서.함안칠서.의창구사용)
    웅천구(창원 팔용동 밑으로 동읍,가음정,대방동,사림동,신촌,양곡,성주동,적현동 대부분)

    그외-
    함안통합시에 함안구 신설,
    고성통합시에 고성구 신설
    .........................
    .........................
    마산구 지명은 ,
    현재 마산지역이 두척산(지금 무학산이라 부르지만, 쌀을 재량한 산이름)과 조창(쌀 세금)이 있던, 원래는 농산물이 아주 풍부한 지역유래를=> 일제때 , 쌀과 농산물을 없애는 말(馬)산(山)지명으로 풍수지리로 해한 지명으로 창원지명을 대체하고, 쌀을 측량하는 두척산(斗尺) 의미를 쌀을 먹어치우는 새가 활개치는 이름으로 확대 무학산으로 일인들이 부른것으로 ,,,마산 지명은 결코 좋지 않아 보인다는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일곱 번째 길에 나섰다.
1월 9일 토요일 오후 1시 반, 코아 양과점 앞, 30여명이었다.
바람은 없었지만 짙게 흐렸고 기온이 낮았다.
코스는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에서 시작하여→구 마산형무소 터→오동동 일대→오동동 아케이드→용마고등학교→지하련 거주지→산호동 효자각→용마산→구강포구까지였다.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에서는 특별손님으로 3.15의거기념사업회 백한기 회장님이 직접 나와 의거에 대해 설명해주어 의미가 더했다.
한때 화려했던 오동동의 밤 문화에 대한 설명은 이승기 선생님께서 맡았는데 두 분은 마산상고 동기생이시다.

가는 곳곳마다 새로운 걸 느꼈고 배웠지만, 여기서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구(舊) 마산형무소 터’에 관한 글을 올린다.

                                    <일곱번째 탐방 코스>

     <3.15의거 발원지 표시동판과 의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백한기 회장님>


8년 전 2002년 벽두,
이 터를 공원으로 만들자는 시민운동을 벌였다.
마산YMCA를 주축으로 ‘한국은행터 공원만들기 마산시민행동’을 조직하고 상임대표를 맡아 운동의 중심에 섰다.
달포 만에 무려 10만 여명의 서명을 받았고, 그것을 마산시의회에 제출 청원하였다.
하지만 부결되었다.

우리들이 이 터를 공원으로 만들려했던 까닭은 ‘도시환경’이라는 측면과 ‘터의 역사성’ 때문이었다.

             <공원만들기 운동의 발대식과 거리서명 캠페인 장면, 2002년>

돌이켜 보자.
마산은 1899년 개항이후 일제 강점기의 무차별한 개발과 매립, 해방 후 귀환동포 정착, 6.25 피난민 정착, 60년대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에 의한 산업화 등 다른 도시가 경험하지 못한 격랑의 세월을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언제 한 번도 도시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하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이 있었지만 활용하지도 않았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임기응변으로만 해결했다.

도시의 질이 급격히 낮아졌고, 시민들도 도시환경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구(舊) 마산형무소 터’를 공원으로 만들자고 나선 것이다.
공원으로 하기에 충분한 땅은 아니었지만, 도심에 나온 시민들에게 짧은 여유라도 즐기게 해주고 싶었던 하나의 작은 몸짓이었다.

이야기를 먼 곳으로 돌려보자.
건강한 사회는 시민 스스로 생활의 제반 문제를 대응한데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런던의 하이드파크는 원래 왕이 사냥을 즐기던 숲이었다. 하지만 도심공원이 없었던 런던시민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세계최고의 공원이 되었다.
협상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런던시민들이 울타리를 헐어버렸던 것이다.
이른바 오픈스페이스운동, 하이드파크는 이런 격동의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트러스트운동’도 바로 이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하였다.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자연적 문화적 유산을 시민 스스로 보존하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영국 전 국토의 1.5%, 해안의 17% 가량을 소유하여 공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런던 하이드 파크>

이야기 하나가 더 있다.
사람살기 가장 좋다는 밴쿠버 이야기이다.

1886년 5월 12일 오후 7시 30분, 밴쿠버 최초의 시의회가 열렸다.
당시 밴쿠버 시민은 2,600명이었다.
이  첫 회의에서 의원들은 영국해군기지였던 땅 120만 평을 공원부지로 결정하였다. 민간에 매각되어 주택지나 산업단지로 개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공원이 밴쿠버가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스탠리파크’다.
124년 전, 인구 2,600명 도시에 120만 평의 공원을 만든 밴쿠버의 결정.
이 결정과 이 비전이 오늘날 밴쿠버를 세계최고의 도시로 만든 주춧돌이었다.

                                         <밴쿠버 스탠리 파크>

밴쿠버 시의회 최초의 결정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깊고도 넓다.
몇년 전, 인구 42만 도시의 마산시장은 1,500평 한국은행 터에 1/3은 건물을 짓고 나머지 천 평만 공원으로 하자는 계획을 발표한바있다.
40만 인구에 1,500평과 2천6백명 인구에 1,200,000평.
왜 마산은 날로 쇠락해가고 밴쿠버는 왜 오늘날 세계최고의 도시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리자.
마산형무소 터의 지난 세월은 질곡의 역사 그 자체였다.
일제통감정치시절이었던 1909년에 부산감옥소 마산분감으로 사용된 후 무려 60여 년 간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자리다.
일제 때는 독립 운동가들이, 해방 후에는 좌우이념갈등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갇혔던 곳이다.
3.1운동 때에는 유명한 삼진의거를 비롯하여 마산, 함안, 창원, 웅동 등 인근지역에서 만세를 불렀던 모든 선조들이 이곳에 갇혔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여성 정치인 박순천도 갇혔던 곳이다.


           <일제기 마산 형무소>            <'마산형무소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


정부가 수립되었던 1948년,
마산의 시인 월초 정진업은 이 형무소에 갇힌 친구를 생각하며 갇히지 않았던 시인의 아픔을 토했다. 「골목길」이라는 시(詩)다.

가치운 몸은 달라도
창살 틈으로 보내는 눈초리는
오직 한마음이라                     

네 손발의 사슬이 풀렸기로
오히려 억압은
첩으로 쌓이는데
아직도 무릎 꿇고
무료히 앉아 있을
벗의 닫혀진 억울한 세월을
너는 어이 잠시라도
잊어보는 것이냐?

고문에 항시 못 이겨        
이를 갈던
공포와 저주는
그래도 잊혀지지 않아                         


총을 멘 보초들 서있는
돌문 앞을 지날 때마다
죄 없이 조라드는
겁 많은 마음이

나무 가지 사이로
철창을 노리고
이룩할 민주의 나라                        
이리 더딤을 한탄하면서                              
밖에서 내 다만 참답게
일 하겠노라
인욕(忍辱)의 벗에게
머리 숙이며 가는
밤마다 정이 드는
나의 골목길이 있다.

식민지시대의 감옥은 단지 신체를 속박시킨다는 의미 외에 폭력적인 통치권력의 상징이다. 공원은 근대 시민들이 공유하는 도시의 열린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 터가 공원으로 변한다는 것은 「폭력적인 통치권력의 상징」이 「근대시민의 자유공간」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여기에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제시했던 자료 / 왼쪽은 당시 현장상황, 오른쪽은 공원조감도>

이제 세 도시가 통합되면 도시의 큰 그림은 다시 그려질 것이다.
따라서 이 터를 공원으로 하는 문제를 두고 ‘옳다 혹은 그르다’ 식의 논의는 뒤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터를 보니 마산의 도심공원 문제가 다시 떠올라 몇 자 적는다.

공원문제가 이 도시의 쟁점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터 외에도 신포동 매립지를 아파트만 지을 게 아니라 일부를 공원으로 하자는 운동도 있었다.
모두 실패하였다. 마산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지정된 마산시의 공원의 면적은 자그마치 240여만 평이다. 이 면적은 마산 인구 일인당 약 6평 가까이 되는 규모다.
도쿄와 오사카의 공원 면적이 1인당 고작 1평 내외, 세계적인 도시 파리가 3평 반, 몬트리올이 4평, 뉴욕이 5평반인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 큰 규모다.
1인당 9평이나 되는 런던보다는 작지만 어쨌든 통계상으로 마산은 공원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건 말 그대로 통계일 뿐, 현실은 전혀 아니다.
이미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던 산과 계곡을 공원이라 이름 붙여 통계로 잡은 것이다.

이 도시에는 시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 제대로 없다.
해변공원은 아예 없고 만날재 공원은 주로 행사용으로 쓰인다. 양덕동 삼각공원은 접근성이 나쁘다.
서항매립이다, 구항매립이다 하면서 20여 만 평의 해면을 매립하고서도 그럴듯한 도심공원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민들과 바다를 단절시켰고 수변공간계획은커녕 해안 전부를 자동차가 씽씽 다니는 길과 수입 원목들이 차지해 버렸다.

지금 계획되고 있는 ‘마산비전 2020’에 중앙공원, 산호공원, 추산공원 개발을 비롯하여 돝섬유원지개발, 구산해양관광단지개발, 팔용유원지개발 등 공원개발 계획이 다양하게 세워져 있지만 어디 한군데 도심공원은 없다.
엄청난 시설비를 요하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산을 공원화하는 것뿐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토록 철저하게 도심공원이 없는 도시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생활 속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원계획이 시급하다.
화려한 언어로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도심 속에서 생활 속에서 쉬기도 하고 걷기도 할 수 있는 공원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시민 1인당 공원 6평이라는 허구를 현실화시켜야 한다.

해안도시라면,
적어도 바닷가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30분 정도는 편안히 걸을 수 있는 공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키 큰 나무 아래 잔디 깔린 바닷가에,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가 달리고 벤치에서 연인의 속삭임이 들려야 해안도시 아닌가?

도심공원이 전무한 도시,
바다가 있지만 바다와 차단된 도시,
역사의 가치에 관심 없는 도시,
그리하여 성장 동력조차 상실한 채 인근도시와의 통합 외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하게 된 도시......

이 도시의 '희망찾기'는 어떻게? <<<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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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림
    2010/01/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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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저도 찬성입니다.
    그 곳이 공원이 되면 아마도 오동동 창동 거리도 조금 북적이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창동에서의 추억이 많은 세대로서 늘 아쉬운 부분이지요
    어차피 구 상권일바에야 추억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만드는 것도
    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황량한 그 곳의 모습은 지날때만다 늘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통합 새도시에선 ...잘~ 되길 바랍니다.

    가포탐방때 뵐께요 ^^
    • 허정도
      2010/01/25 16: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도심공원이 없는 게 마산의 걱정인데 딱히 이곳이 아니더라도 도심에 좋은 공원하나 들어서면 참 좋겠습니다.
  2. 조원문
    2010/01/27 11: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허정도 회장님 정말좋은 마산의 역사를 배우고갑니다
    저도 마산 토박이인데,,,,죄송 합니다,,너무 모르고 있었읍니다,

    지속적인 마산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많은 자료보도록 하겠읍니다.
    정말 수고 많이 했읍니다...
    • 허정도
      2010/01/27 16: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소.
      마산과 관련해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여섯 번째 길에 나섰다.

날씨는 차가웠지만 바람이 없었고 맑아서 걸을 만 했다.
회원도서관에서 만났는데 추운 날씨에도 참석자가 20여명이나 되었다.
봉화산과 이산미산 그리고 지금의 석전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근주 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탐방을 시작하였다.
마산방직→한일합섬→한일전산여고→양덕성당→가톨릭여성회관→합포성지→하이트맥주→국립3·15민주묘지로 이르는 코스였다.

가는 곳곳마다 이야기할 것도 공부할 것도 많았지만 나는 한일합섬의 태동과 성장 그리고 몰락의 과정에 눈길이 많이 갔다.
거대기업 한일합섬의 흔적이 양덕동 일대 온갖 곳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유 교수의 도시탐방대 작은 제목이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인데 이 글은 「걸어서 만나는 한일합섬이야기」인 셈이다.



<1970-80년대 마산은 한일합섬의 시대>

1964년 자본금 1,500만원으로 일본기술과 제휴하여 아크릴 섬유를 생산하면서 시작된 한일합섬은 1967년 1월 박정희 대통령까지 참석하여 기공식을 했다.
이른바 섬유왕국의 시작이었고, 마산이 산업도시가 되는 신호탄이었다.

1986년에 펴낸 『한일합섬20년사』에는 ‘양덕동 허허벌판에 기공의 삽을 힘차게 꽂은 지 만 1년, 마침내 준공 테이프를 끊게 된 아크릴 섬유공장은 ․․․․․․’ 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곳은 허허벌판이 아니라 양덕동 석전동 산호동 일대에 살던 마산시민들의 곡창이었고 삼호천과 산호천 사이의 기름진 논밭이었다.

아크릴 섬유로 시작한 한일합섬은 후에 종합섬유회사로 발전하였다.
1967년에 방추(紡錘)가 22,400개였던 것이 1979년에는 무려 344,000 추로 세계 최대 규모까지 성장했다.

고용효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1967년에 4,300명으로 시작했던 사원 수가 1976년경에는 27,000명까지 늘었다. 사원 수가 이랬으니 이 거대기업을 둘러싼 2차고용 3차고용 효과까지 계산하면 그 수가 얼마였겠는가.

‘수출입국’을 지향하던 정부시책에 맞춰 국가경제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1967년 68만 불이던 수출액이 71년에 2,286만 불까지 급성장을 이루었고, 1973년 드디어 국내 최초로 수출 1억불을 달성했다.
창립 후 불과 5-6년 만에 수출액 15,000% 성장이라는 기적의 기록을 가진, 그 시절 최고최대의 기업이었다.
소위 '전국 7대도시 마산'도 이의 결과다.

한일전산여고에 얽힌 일화도 많다.

나이 어린 여공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큰 공이었지만 그 유명한 ‘팔도잔디’는 전 국민의 심정을 녹아내리게 했다.
1974년에 설립한 한일전산여고는 첫 해에는 28학급 1,680명 규모였는데 1980년에는 120학급 7,200명까지 되었다. 학급 수가 120, 한 학년에 40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규모다.

이른바 1970년대와 1980년대 마산은 ‘한일합섬의 시대’ 였다.

나는 탐방대원들과 함께 양덕동 찬바람을 맞으며 한일합섬의 옛 영화를 되새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 한 쪽에 솟아오르는 물음이 있었다.

국내 최고 최고최대의 화학섬유회사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몰락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잘나가는 SK나 CJ나 코오롱도 비슷한 업종이었는데 왜 한일합섬만 이렇게 몰락하였을까?

답을 찾지 못한채 길을 걷던 중, 눈 앞에 한가닥 실마리가 보였다.
어쩌면 나의 물음에 작은 답이 될수도 있는 '사라진 한일합섬'의 흔적이었다.

그것은 .....

                          <한일합섬이 들어서기 전의 양덕들판>

                                           <건설 초기 모습>

                                           <확장 또 확장>

                   <고향에서 가져운 팔도잔디를 가꾸는 한일여고생들>


         <최고 전성기 때의 한일합섬, 오른쪽 운동장이 한일여고 팔도잔디>


………그것은 아파트였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수는 없겠지만, 한일합섬이 몰락하게된 원인 중 한조각은 짐작할 수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한일합섬은 본 공장 외에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소규모 혹은 짜투리 땅들을 대부분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어 분양 처분했다.
규모가 작은 땅들이라 한 채 혹은 두어 채 정도였고 저층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도 양덕동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은 건물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모두 ‘한일’이나 ‘한효’가 들어간 이름이었다.
'한일'이야 회사명이지만, ‘한효(翰曉)’는 한일합섬의 설립자인 김한수 회장의 호다.



<섬유로 시작해 아파트로 끝난 한일합섬>

집을 짓기만 하면 재미를 보았던 시절이었다.
이 거대기업도 집 장사로 그 시절 재미를 좀 보았고, 사주(社主)는 쉽게 돈버는 달콤한 유혹에 빠졌다.

자신을 있게 한 기존의 섬유산업은 수명이 다해, 저 멀리 퇴조의 징후가 보였지만 미래를 위한 진지한 모색도 과감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연구와 개발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업의 탈출구를 찾는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 장사의 단 맛에 빠져 본격적으로 공장규모를 줄이며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건설규모도 크게 늘려 그 때까지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했다.

제품창고 헐고 아파트 지어  ‘1차’
기숙사 헐고 아파트 지어  ‘2차’
모노마 탱크 헐고 아파트 지어  ‘3차’
서쪽 편 공장 헐고 아파트 지어 드디어  ‘4차’까지.



아파트 단지의
차수가 늘어날수록 '한일합섬'은 왜소해졌고, 차수가 늘어날수록 사원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비례해서 마산경제도 점점 쇠락해 갔다.

사람들은 이 아파트 단지들을 통칭 ‘한일 1차’ ‘한일 4차’ 등으로 부른다.
만약 '한일합섬'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면 최근 태영과 한림에서 지은 대규모 아파트단지 '메트로시티'는 ‘한일 5차’, 바로 그 옆에 마지막 남은 터는 ‘한일 6차’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4차 만에 ‘한일’은 이름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모든 상황이 끝난 지금, 긴 시간을 한눈에 보면,
논밭이던 땅에 공장이 들어섰고 다시 그 모든 땅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양덕동 일대 주민들 땀이 밴 기름진 양덕 들이 30여 년 만에 아파트 터로 변한 셈이다.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거대기업의 몰락,
섬유왕국 한일합섬의 몰락을 떠올리니 새로운 물음이 생겼다.

‘섬유로 시작해 아파트로 끝난 한일합섬’의 참혹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온갖 곳 보이는 땅마다 ‘아파트와 아파트’로 채우고 있는 이 도시 마산이 한일합섬 몰락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새로 탄생하는 통합시는 이 사라져버린 거대기업에서 얻어야할 교훈은 없는 것일까?

석양의 역광에 검게 물든 한일아파트의 수십층 높은 벽이 마치 몰락한 '섬유왕국 한일합섬'의 잔영처럼 보였다.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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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규
    2010/01/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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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을 대표하던 한일합섭의 시작과 끝을 잘 알게되었습니다. 한일합섬 터 위에 제가 살고 있었네요^^
    • 허정도
      2010/01/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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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가 신접살림 차린 곳이 한일2차죠?
      옛날 한일합섬 여사원들 기숙사가 있던 자리.
  2. 2010/01/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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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 맞으며, 도시탐방을 한 값을 많이 찾을 수 있군요^^
    저렇듯이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었다는 건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로 마산시민들이 한일의 몰락에서 교훈을 많이 얻었으면 합니다.

    수고했습니다.
    • 허정도
      2010/01/0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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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토요일 또 나가야죠?
    • 2010/01/0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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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문요!
      지금 그거 준비하느라 등골이 휘청^^
  3. 미경
    2010/01/0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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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신마산에 살고 있습니다.
    마산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아름다운 바다를 막아서 계속 늘어나는 아파트들을 볼때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 허정도
      2010/01/0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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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 감사합니다.
      사실, 한 도시를 디자인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실태파악입니다.
      마산에 과연 그렇게도 많은 아파트가 필요한지 어떤지를 정확히 알고 계획을 해야 되는데 아쉬운 게 참 많습니다.
  4. 유림
    2010/01/0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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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덕동 일대를 잠시 누비고 다녔던 몇년전 기억이 새롭네요

    조금 더 멀리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더라면...좋았을텐데..
    • 허정도
      2010/01/0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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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말입니다.
      아무튼, 마산의 자랑이었던 한일합섬이 지금은 마산의 상처로 남았습니다.
  5. 삼식
    2010/01/0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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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에서 몰락한 기업들의 리스트를 만들면 어떻런지요? 유원산업, 경남건설 등등 많을것 같읍니다. 물론 몰락의 이유를 잘 분석해야겠지요!
    실패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수 있지 않을까요
    • 허정도
      2010/01/0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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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서.
      가능한 일이라면 유익한 자료가 되겠네요.
  6. 최정건
    2010/01/08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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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지금까지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대학가지 나오고 직장을 다니는지라
    관심이 많습니다. 유장근 교수님, 김주완 기자님 블로그도 자주 갑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삭막해진 것 같습니다, 신마산 댓거리도 그렇고,예전에
    고등학교를 창원까지 다녔는데 지금의 밤거리는 사뭇 다른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아쉬운 것은 강남극장, 중앙극장은 몰라도 연흥극장이 아깝습니다.
    지금도 쓸만한 건물인데 마산시에서 적극적으로 매입하여 시민들을 위한
    소규모 공연장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예전에는 세림상가에 극단마산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보기가 힘듭니다.
    지금의 롯데시네마와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이 이전의 극장체계보다 영화가 다양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일합섬이 아쉽습니다. 제가 한일유치원을 나오지라 저 팔도잔디에서도
    많이 놀았는데 최소한 양덕동 로타리 쪽으로 공장 한 동이라도 남겨두어 예를들어
    마산 근현대박물관이라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저는 마산이 한국근현대사의 산업화시대의 긍정적인 면 보다 슬픔, 아픔, 모순이 내재된
    도시라고 생각됩니다.
    • 허정도
      2010/01/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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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마산에 대한 애정이 많으시군요.
      저 역시 고향이라 그런지 마산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창원진해와 합쳐질 것인데 이것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위기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산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7. 최정건
    2010/01/08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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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신마산매립지 아파트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 수출자유지역을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공원에 있는 듯한 산업단지.......
    • 허정도
      2010/01/0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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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볼만한 말씀입니다.
      실제로 선진도시에서는 공원과 산업단지를 복합적으로 구성하기도 합니다.
      자유지역이 좁아서 가능할지는 몰라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의지만 있다면.
  8. 개구신
    2010/01/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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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교훈을 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토목*건설로 단기수익만 바라보다가는 근간이 무너진다는걸 현 정부도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자꾸 어디를 파낸다, 어디를 매운다 이런소리만 하고 있으니 걱정됩니다.
    • 허정도
      2010/01/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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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국가의 전 산업 중 건설산업 포션을 줄여나가는 것이 선진국대세인데 우리는 계속이렇게 갈건지,,, 걱정입니다.
  9. 말뫼
    2010/01/0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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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애 고추 만지기이지만,
    오래 전 한일합섬 철거.이전이 논의 될 때, 그 터는 마산의 공공업무지역+지역금융통상업무 중심지구로 개발해 마창진의 금융통상허브로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도, 그 전에도 마창진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지리적으로도 그 중심지로는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선생님의 다른 포스팅 '통합시의 성패는 우리 손에...'에서 통합시의 행정구역도를 보고 그것이 다시 생각 났습니다. 그 구역도로 보면 그야말로 딱인 중심지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더 깊은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돌이킬 수가 없으니...

    한일합섬이 야금야금 집장사로 팔아 먹은 것도 그렇지만, 이후 본공장 터를 마산시가 집장사치들에게 팔아 치운 것은 겨우 숨줄만 붙어 있는 사람의 숨통을 짓눌러 버리는 것과 같은 폭력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역의 역사에 씼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도시 살리기가 아니라 도시 죽이기 였습니다. 그게 무슨 영화를 볼 일이라고 그랬을까 싶습니다. 대규모아파트가 들어서면 인구가 늘어날 것 이라는 무지막지한 사기를 쳤던 자들의 뇌구조를 파헤쳐 보고 싶은 지경이었습니다.
  10. 말뫼
    2010/01/0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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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마산이 진짜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탄식만하고 앉아서는 막연한 바라기나 하고, 행정당국은 땅장사나 하고서는 그게 무슨 대단한 치적인 양 도취하고, 힘께나 쓸 듯 폼 잡는 지역국회의원들은 생색내기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사람들로만 살펴 봐도 두루두루 퇴락하고 망할 조건들만 갖추고 있었지요. 거기에 올바른 전문가들의 역할이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 합니다. 도시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할 기회나 주어졌던가요? 도시재생위원회가 기능을 하긴 했던가요?
    마산의 꼴은 '장'자리 차지했다고 거들먹거리기나하고, 방귀개나 낀다는 무식방창한 무리들이 제 세상인 양 마구 휘젓는 깡촌구석동네 분위기, 딱 그 수준 입니다. 제대로 뭘 하자는 사람들은 아무 역할 못하고...

    십여년 전인 듯 한데, 마산의 도시계획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허선생님도 전문가로서 그 가운데 계셨었는데, 그 때 논의 됐던 것들 중 기본적인 것들만이라도 실행 되었더라면 마산이 이토록 죽을 지경으로 나자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도시.지역문제에 정획한 문제인식과 진심으로 살리려는 노력이 없는 한 마산은 마창진통합에서도 뿌시래기나 빌어묵는 변두리 찌끼미 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마창진 모두 지차체장 부터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껏 그들의 같쟎은 자기도취적 치적 만들기는 이제 '신물징'이 납니다. 매립땅장사, 알짜배기 도시 중심중심지 팔아 치우기, 같쟎기 짝이 없는 생태도시, 복마전 같은 변두리 소도시... 그들이 만든것은 그런 것들 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도시도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신주의가 상식적 태도 처럼 만연한 대한민국, 사람과 자원의 반이 몰려있고 국가권력도 좌지우지한다는 서울공화국,수도권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지방'도시의 문제는 '지방'스스로의 혁명적 각성과 노력 없이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역공동체의 본떼있는 '실력'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한 지방도시의 환경은 변화조차 무망 하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다면, 돈만 많으면, 부자동네만 되면.... 그 딴 생각으로는 절대로 서울공회국,수도권공화국의 지배를 벗어 나지 못할 것입니다. 인구.면적규모로 최대지방도시? 그 따위로 어디에 견줄 생각을 한다는 것 부터가 '촌 것들'이라고 멸시 당하기를 자청하는 생각 일 것입니다.
    그게 이 나라 '지방도시'의 처절한 현실이며 지방도시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선생님과 같이 진정성을 지니신 전문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때 입니다. 장차 지역도시문제에 큰 역할 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 허정도
      2010/01/0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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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감사합니다.
      저 역시 도시를 바라보는 눈은 말뫼님과 비슷합니다.
      도시가 나아가야할 길은 처음도 삶의 질이요, 마지막도 시민들 삶의 질 상승입니다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도 없는 것이 또한 도시문제입니다.
      우리가 몸이 담겨 있는 그릇이니까.
      함께 걱정하고 함께 노력하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11. 조원문
    2010/01/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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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고 갑니다
    • 허정도
      2010/01/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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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해주어 고맙소
  12. 2010/01/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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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보고 잘읽어보고 나갑니다.
    • 허정도
      2010/01/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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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13. 윤종호
    2010/01/1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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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우리마산이 않고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 마산의 그림을 잘 그려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마산이 되었으면 하는 마산시민 한사람의 소망입니다.
    회장님께서 변화의 물고를 터 주시기 바랍니다.
    • 허정도
      2010/01/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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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소.
      도시의 발전은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생활의 그릇인 도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집시다.
      그러면 도시도 좋아질겁니다. ^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산을 염려하는 분들이 늘 하시는 말입니다.

‘한 때 전국 7대 도시였던 우리 마산이 이제는 경남 7대 도시가 될 판이다’

‘전국 7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

슴 아픈 호소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산을 고향으로 둔 내 마음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마산뿐 아닙니다.
한 때 잘나갔던 도시라면 어디 할 것 없이 이런 식의 한탄 한마디는 다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목포시의회 부의장에게 들은 말인데, 목포 사람들은 지금도 ‘전국 6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 한답니다.

전국 7대 도시 마산········.
어릴 때부터 많이도 들었던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인구가 전국에서 일곱 번째였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이 도시에 어떤 조건과 결과를 주었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어른들로부터 ‘전국 7대 도시’란 말을 들으면서 어린 기분에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가 든 후,
건축가로서, 대학에서 도시학을 강의하면서, 언론사 대표로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면서, 내 고향 마산이 ‘전국 7대 도시’였다는 사실에 대해 자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세월 동안 이 도시가 겪었던 영광과 좌절의 부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미래를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 7대 도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성찰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마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으로서 내가 던지는 ‘전국 7대 도시 마산’에 대한 질문과 답입니다.
행정구역을 통합하는 마당에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통합이 되던 안 되던 마산의 문제는 마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마산도시 한복판을 관통하는 임항선 / 남루하게 방치되어 있다>

 
       <남성동 해안 / 시민들의 접근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회원천 / 부패된 물이 도시 복판을 흐르고 있다>


-마산이 '전국 7대 도시'가 된 까닭-


마산은 근대기라 일컫는 지난 백여 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개항이라는 외세의 파도가 이 도시를 뒤덮으면서 시작된 변화였습니다.
우리나라 근대도시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굵직굵직한 궤적들이 이 도시를 관통했으며, 그 흔적들은 지금도 도시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도시변화의 주역은 물론 일본인들이었습니다.
이 도시의 변화는 일본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그들만의 잔치였습니다. 따라서 오직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했을 뿐 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든 단 한 번도 공익적 관점에서 이 도시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바라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도시는 단지 그들에게 이익을 퍼주는 식민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떠났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동포들이 대거 밀려들었습니다.
부산 목포와 더불어 귀환동포들이 이 도시에 넘쳤습니다.
갑자기 도시가 커진 겁니다. 
내 부모님께서도 그 때 마산부두에 내려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시에 들이닥친 '귀환동포'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야기했던지 이를 패러디하여 '우환동포'라고도 불렀습니다.

해방 5년 후 전쟁이 나자 피난 내려 온 동포들이 또 한 번 대거 밀려들었습니다. 부산과 더불어 피난민들이 이 도시에 넘쳤고, 도시가 또 한 번 커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때 피난민들을 상대로 행상을 하며 호구를 연명했습니다.
나는 일본군이 군용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회원동 500번지에서 전쟁이 끝나갈 즈음 태어났습니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두 번의 격랑을 거치면서 마산에 사람이 들끓었습니다.
내 노라 하는 문화예술인들도 마산거리에 허다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 덕분에 얻은 도시 이미지 중 하나가 ‘문화예술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사람만 많았을 뿐 사람들을 받아드릴 도시기반시설은 전무했습니다. 단지 생존에 대한 욕구와 열정으로만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도시의 결정적인 변화는 60년대 후반부터 생겼습니다.
한일합섬, 수출자유지역, 한국철강 등 굵직한 산업시설들이 다투어 이 도시에 들어왔습니다.
전국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마산으로 마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도시에 사람들이 넘실거렸습니다.
도시가 젊어졌고, 또 한 번 커졌습니다.

동마산이라는 새로운 지역이 생겼으며 버스가 다닐 수 있는 간선도로가 여기저기 뚫렸습니다. 전세방 달세방이 동이 나자 너도나도 집을 지었습니다.
온 도시가 공사판처럼 되었습니다.
그 때 나는 조그만 설계사무소 직원이었습니다. 제도판 위에서 밤늦게까지 쉬지않고 설계도를 생산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도시의 팽창으로 남성동 창동 오동동 일대에만 모여 있던 중심상권이 분화되어 월영동과 합성동에 두 부심이 생겼습니다.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을 중심상권이 모두 받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의 규모와 소비수준이 일약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게 되었습니다.

‘전국 7대 도시’는 지금까지 말한, 해방이후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과 성장의 과정에서 나온 마산의 압축된 표현입니다.


     <마산이 번성했던 7-80년대 당시 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


-다시 생각해야될 전국 7대 도시-


나는 생각합니다,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7대 도시’가 무엇을 남겨 놓았는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7대 도시’의 영광과 저력이 이 도시에 어떤 의미였는지.

뚜렷한 것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7대였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켰더라면, 비록 사람 수는 수십대로 밀렸지만 자부심은 있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이 도시를 생각합니다.
지금은 도시수준이 경제력과 도시발전을 이끄는 시대입니다.
생활의 질을 따지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시절에는 밥공기의 크기를 보지만 배가 불러지면 쌀밥 보리밥을 따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계의 여러 도시들이 도시를 확장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오두막에서 맑은 물만 바라보고 살자는 말이 아니라 맑은 물이 돈이 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마산에 생산시설이 적어 인근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었다고 합니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산시설만으로 마산사람들이 떠났다고만 보면 정확한 진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2만 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이해 못한 탓입니다.
미국의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의 쇠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도시적 상황은 방치한 채 생산시설만 있으면 발전된다는 주장은 한국사회에서 적어도 80년대 쯤 주장해야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산업시설과 도시환경이 동반되어야하는 시대입니다.

도시환경에 대한 대책 없이 생산시설만 유치하면, 그것 때문에 인구 100명 늘어날 때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110명이 될 수 있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산업이 도시를 만드는 시대에서 도시가 산업을 만드는 시대라는 사실을 입증한 일본의 가나자와를 비롯해 영국의 밀턴케인스, 브라질의 꾸리찌바, 이태리 볼로냐와 라벤나,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등 세계의 유수한 도시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도시를 다시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도시가 다시 ‘전국 7대 도시’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만 되면 한없이 기쁘겠지만 그러기에는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린 것 같고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심해진 것 같습니다.


-제안, 신(新) 7대 도시 마산-


그래서, 이 글을 빌어 ‘신(新) 7대 도시’를 감히 제안합니다.

양이 아니라 질적인 ‘7대 도시’로 가자는 제안입니다.

사람 수가 ‘전국 7대’가 되기는 불가능하지만 도시수준을 ‘전국 7대’로 높이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교육, 문화, 예술, 환경은 물론이고 공기, 인심, 물맛, 거리와 가로수, 공원, 경치 등 사람 사는데 정작 필요한 ‘도시수준이 7대’가 되도록 만들자는 말입니다.

임항선을 그린웨이로 만들어 키 큰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걷고,
파란 물 바닷가 잔디 위에 벤치가 놓이고 자전거가 달리고,
유모차를 밀고 나갈 꽃 가득한 공원이 도시 곳곳에 들어서고,
곧 추진될 생태하천으로 시내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른다면········.
첨단의 로봇랜드가 머지않아 들어온다니 금상첨화일 테지요.

이렇게만 된다면 이 도시를 떠난 사람 중 다시 돌아 올 분도 적지 않을 겁니다. 좋은 도시에 좋은 산업이 들어온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도시에서 입증된 사실이니까요.


               <해안도시의 특성을 잘 살려 개발한 벤쿠버>


‘도시수준 전국 7대’
얼마나 행복하고 희망 가득한 미래입니까.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못해낼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가슴아파말고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찾아야합니다.
해낼 수 있는 일을 목표로 삼으면 흩어진 힘도 모을 수 있습니다.

‘전국 7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는 뼈아픈 호소가,
‘양의 7대 도시에서 질의 7대 도시로 가자’라는 희망찬 외침으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이 도시에 살았던 선인들이 양적인 ‘7대 도시’를 물려주었으니, 우리는 질적인 ‘7대 도시’를 후손에게 물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도시수준 7대’는 ‘경제수준 7대’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행복수준 7대’로 이어집니다.
구호 속의 일류도시가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일류도시로 이어질 것입니다.

소년 시절, 청년시절,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 도시에서 수 없이 들었던 ‘전국 7대 도시’라는 말이 우리 다음 세대에게 똑 같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드리는 간절한 제안입니다.

인구는 ‘7대 도시’가 불가능하지만,
도시수준은 ‘7대 도시’만이 아니라 힘을 모아 ‘1대 도시’까지 갈 수 있는 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마산사랑모임’에서 낸 『마산의 희망 마산의 꿈』에도 실렸습니다)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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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0 11: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합니다.
    그런 새로운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수고하십시오.
    • 허정도
      2009/10/20 14:44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2. 박력
    2009/10/21 13: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허정도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지금은 수원에 살고 있지만 바다를 보고 살았던 그때의 감동이 살아지지 않는군요..
    • 허정도
      2009/10/21 14:3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좋은 계절, 즐겁게 보내십시오.
  3. 2009/11/17 19: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의 글을 따라 왔지만..
    마산을 생각했던 저의 마음 같습니다.

    너무 이상하게 변하고 있는...
    마산을 지켜낼 방법은 없을까...생각만 했는데..

    정겨운 도시 마산을 꿈꿉니다.
    • 허정도
      2009/11/18 08:3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리더의 생각과 판단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각성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민 참여 없이 좋아진 도시는 없거든요

며칠 전에 ‘청산’이라는 분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름의 이미지가 강해서 당연히 무슨 공적인 편지이겠거니 생각하며 열었더니, 뜻밖에 제 책을 읽은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순임(가명)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50을 막 넘겼다고 하니 저보다 몇 살 아래인 것 같습니다.

책이 출판되고 난 뒤 독자로부터 여러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만, 이번 편지는 여느 것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 전국 곳곳에서 학생들이 가져와 심은 한일여고의 팔도잔디



편지 중,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여기 경기도에서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라는 한 줄의 글이 제 눈을 확 끌어 당겼습니다.

34년 전이면 1975년인데,

그 때는 저도 이 도시 마산에서 살고 있을 때였거든요.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잘 아는 분도 있겠지만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한 마디는,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했던 저 또래의 아이들이 제 시간과 제 몸을 갉아가면서 정상교육을 받았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화-악 떠올려주었습니다. 그 유명한 팔도잔디도 생각났습니다.

지금이야 대학 빼고는 하기 싫어서 안하지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그 때만 해도 돈 때문에 공부 못한 아이들이 지천이었습니다.

제 처지도 비슷했거든요.

아련하지만 뚜렷한 그 시절 그 추억을 이 한 통의 편지가 생생히 되살려주었습니다.

스무 살 순수를 되찾은 기분이었습니다.

 

편지를 보여주자 아내는,

‘저는 산을 무척 좋아하고 남편은 산에 오르기를 힘들어 합니다.’

라는 마지막 구절을 재미있어 하며 호호 웃었습니다.

제 책에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라는 대목을 빗댄 글이거든요.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경기도 의정부 이순임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힘겨웠던 자신의 조건을 당당하게 극복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당찬 대한민국 아줌마 일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나누어주는 분이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순임 씨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남편과 함께 들린 서점 에서 책을 만났습니다.

지금 반 정도 읽어 나가는데 끝내기가 아쉬운 마음입니다.

1편 2편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말이지요.

책속에 나오는 마산의 지명이 더 반갑기도 하고요.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여기 경기도에서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그 3년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있네요.

그곳을 떠나온 지 31년만인 올해, 마산을 하루 다녀왔습니다.

많이 변한 모습이었지만 반가웠어요.

혼자 다녀오는 바람에 그 유명한 아구찜을 못 먹고 온 것이 아쉬움입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선생님의 책이 제게 왔습니다.

 

책속에 소개되는 책을 몇 권 쯤은 읽었지만

저도 책속에 있는 책은 다 읽어보려고요.

그리고 남편에게 제안을 했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보자고.....

선생님 말씀처럼,

내 아이들이 다 커버리고 나서는

내 목소리를 들어 본 것이 노래방이나 말 할 때 외에는 없어서 혼자 소리 내어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었지요.

그런데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의미가 없다는 걸 느끼고 친구들에게 제안을 했답니다.

우리도 방송에서 하는 것처럼 낭독의 시간을 만나보자고....

물론 친구들이 다 웃었지요.

이제 50을 막 넘기는 중년입니다

아주 좋은 시간을 갖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 올리고 싶어서 보내드리는 건데

실례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산을 무척 좋아하고 남편은 산에 오르기를 힘들어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경기도 의정부에서 이순임 올림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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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털도사
    2009/10/12 21:2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청산 글귀가 눈에 보여 염치불구하고 실례하게 됏슴을 우애 용서를 빌꼬합니다만 ,,
    제도 글쓴이 의정부 님의 상황 충분이해 하고 남슴니다..제역시 그런 사연이 잇었음을 허엿턴 좋은팬들이 있었다는 주인공에 감사를 드리면서 ,,,옛 이몸 추억을 회상하면서 고마웟음을 남기고 갑니다 .

2006년 11월 어느날.
마산 옛 한일합섬터
에 분양하는 아파트의 청약을 위해 담요는 물론 난로와 텐트까지 준비한 수 천명의 사람들이 밤새 줄을 서 있었다.
이 모습은 저녁 9시뉴스의 메인 소식으로 전파을 타 전국에 소개 되었고, 지역에서도 한참 화젯거리였다.
이러한 현상은 분양가 프리미엄을 노린 투기꾼과 수도권 아파트값 폭등을 지켜보면서 투기심리를 자극받은 지역민이 가세해  빚은 촌극으로, 웃돈이 예상 만큼 되지 않자 당첨자 3명중 1명꼴로 계약을 포기해 청약광풍이 사실상 거품임이 증명되었다. 

한일합섬 부지에 들어설 아파트단지 조감도 (출처:태영건설 홈페이지)



집이 주거의 목적이 아닌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면서, 우리나라의 주거정책이 의도했건, 안했건 집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공급 되어야하는 삶의 본질과 많이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인해 아파트는 계속 짓지만,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미분양은 넘쳐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현재 마산은 노후한 주거지역 대부분이 재개발,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으나, 줄어드는 인구는 고려하지 않은채 예외없이 세대수와 용적율에만 집착하여 공급과잉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렇다면,
국내 섬유산업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확장이 제한적인 소도시의 중심에 자리잡은 소중한 터에 굳이 아파트를 지어야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일합섬은 1966년 당시 논밭이었던 양덕동 일대에 국내최초로 아크릴섬유 제조공장을 가동한 이후, 1973년 단일기업으로는 국내최초로 1억불 수출을 달성하였고, 2004년 부지가 매각될때 까지 국내 섬유산업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투영하는 섬유산업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섬유산업이 전체 수출액의 30%이상을 차지했음을 감안하면 산업화시대의 상징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산업건축물로서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마산 한일합섬 옛 전경 (출처:마산시청 홈페이지)



물론 부지가 기업이 소유한 사유지이고 (부지를 취득할 당시의 특혜와 수십년간 굴뚝연기를 참으며 살아온 시민을 생각하면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그 회사가 사경을 헤메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건물이 한번 지어지면 최소한 30년을 간다고 봤을때 현실에 급급해 더 큰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 근시안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때늦은 가정이지만, 만일에 한일합섬터에 아파트가 아닌 문화시설과 공원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과거 산업화시대의 상징과 앞으로 다가올 문화시대의 교량역할을 하는 매개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사방을 둘러봐도 마땅히 쉴 곳 없는 쇠락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산소같은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만 보던 성공사례라며 각지에서 방문객이 찾아오는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현실적으로 부지전체가 어렵다면, 무공해산업을 유치하고 공원과 공존하는 형태도 가능할 것이다. 


10여년전 대학 졸업설계를 하면서 한일합섬부지의 일부만이라도 그 땅이 가진 역사성과 장소성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에 기존 유류탱크를 리노베이션해 섬유박물관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이후 여행을 하거나 책을 통하여 한일합섬과 유사한 사례임에도 시장, 전문가, 기업, 때로는 국가의 수장까지 나서 훌륭한 문화, 관광자원으로 변모시킨 경우가 해외의 사례가 더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경우 수명을 다해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외형을 거의 유지한채 현대미술관으로 변모시켜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영국미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테이트모던 미술관 (2004년 유럽여행)


비단, 한일합섬 터 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의 근, 현대 유산들을 생각하며 해외의 성공적인 사례를 통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계속...

지금은 사라진 마산화력발전소와 구마산역 (출처:마산시청 홈페이지)











  
저작자 표시
Posted by 류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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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0 12:4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도시의 이전적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되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논의에 그쳐, 현재 주거지로 개발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외국의 경우, 경관에 대한 지침이 굉장히 까다롭게 되어 있으며, 도시기본계획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계획의 틀이 완성되지 않음으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이미 성장위주의 도시개발을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2009/06/11 09:16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개발과 성장이 가치였던 구시대적 행태가 여전히 유효하고, 거시적 안목으로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할 행정이 오히려 이를 주도하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2. 달팽이
    2009/06/13 00: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네요.
    그래요, 정말 그래요.
    사방을 꽉 매운 아파트를 보고난 뒤에 '아차' 해 보아야...
    이미 저지러진 일... 어쩔 수가 없네요.
    두번 다시 이런 오류가 없어야 할텐데...
    참..........
  3. 바람
    2009/06/15 09:5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런 일이 한 두 건이 아니지요, 지난 10여년 동안, 혹은 민선 지방자치 이후에 마산에서 이루어진 도시계획과 관련된 주요한 결정에 대하여 10 ~ 15년이 지난 지금 관점에서, 혹은 막상 도시계획이 실행 된 후에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조사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2009/06/16 22: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렇습니다.
      주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도 이권과 관련한 집단이기주의 또는 님비 정도로 여전히 인식되는것 같습니다.
  4. 허정도
    2009/06/17 23:1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멀쩡한 공장용지를 주거지역 상업지역으로 바꿔준 행정당국의 판단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값이 싼 공장용지를 주거지역 상업지역으로 바꾸어주는 것은 '빨리 공장 그만두고 택지 혹은 상업용지로 개발하여 돈 벌어라'고 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면서도 '산업시설이 없어서 이 도시가 쇠락해 진다'고 되뇌이고 있으니 할말이 없습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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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시는 나름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항만, 산악, 내륙 등 자연조건뿐 아니라 교육, 문화, 역사 등 사회적 조건도 도시마다 다르다. 도시의 고유한 특성은 그 도시의 성격을 규정짓고 발전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최근..

‘구(舊) 마산형무소 터’ 의 추억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일곱 번째 길에 나섰다. 1월 9일 토요일 오후 1시 반, 코아 양과점 앞, 30여명이었다. 바람은 없었지만 짙게 흐렸고 기온이 낮았다. 코스는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에서..

잊혀진 마산의 청주공장을 찾아서 (2)

잊혀진 마산의 청주공장을 찾아서 (2) 청주는 일제강점기때 지금의 양주못지 않은 고급술로서 주당들의 사랑을 받았던 술이다. 최근들어 젊은층에서 일본수입산 청주, 본토말로 사케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새단장한 구름다리가 달갑지 않은 이유

옛 북마산역 자리의 구름다리가 새단장을 하고 있다. 계단과 육교상판에 합성목재를 덧대고, 기존 철재난간도 모두 잘라내어 합성목재로 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래보다 한결 깔끔해졌다. 하지만 나는 새단장한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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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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