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동6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5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8) "여기가 제2의 고향이지요" ------------------------- 이○○ 1937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70-3 날짜 : 2015년 1월 9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옛날 동네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이 동네 사신 지도 오래되었지요? = 나는 별 이야기거리가 없는데... 본 고향은 의령인데 거기서 면서기 하다가 막살하고 부산에 내려가 있다가 마산으로 왔어요. 내가 서른일곱 살 때 여기로 왔어요. 자유수출에 있는 일본 사람 회사인데 고모 아버지가 동업한다고 회사 차릴 때 왔거든요. 그러니까 사십년 전에 이리 왔지요. - 예. 수출자유지역에 어느 회사였습니까? = 마산강관이라고 파이프 만드는 회사였지요. 일본 회사인데 고모부가 사장을 잘 알아서 나를 넣어.. 2021. 2. 1.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1 ● 회원동(檜原洞) 회원동의 회원(檜原)은 의창현(義昌縣)의 별호(別號)였던 회산(檜山)의 회(檜) 자와 회원현(檜原縣)의 원(原) 자를 합성해 만든 지명이다. ● 교방동(校坊洞) 회원현의 향교(鄕校)가 있었기 때문에 교방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회원현은 고려 충렬왕 8년인 1282년에 의안(義安)이 의창(義昌), 합포(合浦)가 회원(會原)으로 개칭되고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조선 태종 8년인 1408년에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을 합해 창원부(昌原府)를 만들면서 독자적인 행정단위로서의 회원현은 사라졌다. 회원현으로 발족한지 126년만의 일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존속했던 회원현의.. 2020. 8. 31.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 2 순조 말기인 1832년경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따르면, 창원도호부는 부내면(府內面), 동면(東面), 북면(北面), 남면(南面), 서면(西面) 등 5개 면을 두었다. 면(面)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6개의 운을 두었다. 부내면(府內面)에는 일운(一運)과 이운(二運)을 두었고, 남면(南面)은 도하일운(道下一運), 도하이운(道下二運), 도상일운(道上一運), 도상이운(道上二運), 도상삼운(道上三運) 등 5개의 운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동면(東面), 북면(北面), 서면(西面)은 각각 일운(一運), 이운(二運), 삼운(三運) 등 3개의 운으로 되어 있었다. 한편 남면 관할의 운에 나타나는 '도상(.. 2020. 8. 24.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 오늘부터 포스팅하는 자료는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본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위치는 다음과 같다. 재개발사업의 명칭은 회원1지구이지만 이곳은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 등 3개 동에 걸쳐있다. 포스팅할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3. 주민 아홉 분의 이야기 1) "새로운 희망의 터전을 꿈꾸며" --.. 2020. 8. 17.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한평 없어 어차피 얻은 구장집 머슴자리 지켜 새경 모은 것으로 동네 가난한 처자와 눈맞추어 토백이처럼 산 김씨 같은 사람도 있었다. 또, 부두노동으로 돈 모아 논밭 사둔 것이 나중에 개발되어 알부자 소리를 들은 천씨 같은 사람도 있고, 개울가 움막 같은 초가에 살았던 박씨처럼 어설픈 재인 노릇하다 결국 좀도둑으로 전락하여 비참한 삶을 마감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가며 난민생활을 하는 일은 196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 2018. 3. 26.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바닥을 보았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민얼굴이기도 했다. 내내 참담했고 암울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도시개발로 버림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과 눈물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성남시가 된 광주대단지 철거민의 실상(1971)이 가장 먼저 터진 사건이었다. 압권은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6)’이었다. 영희의 다섯 가족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개발독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었다. ‘난쏘공’이라 부르며 숨어서 읽었던 불온서적(?)이기도 .. 2018.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