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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원창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조선은 태조 재위 중 고려 때 실시하였던 조창제도를 거의 복구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전국 아홉 개 조창에서 세곡을 수납했습니다. 내륙 수로로 연결되는 조창이 충주의 사흥창(司興倉)․원주의 흥원창(興原倉)․춘천의 소양강창(昭陽江倉)․황해도 백천(白川)의 금곡포창(金谷浦倉)․강음(江陰)의 조읍포창(助邑浦倉)의 다섯 개였고, 바닷길이 연결되는 조창은 충청도 아산(牙山)의 공세관창(貢稅串倉)․전라도 용안의 덕성창(德成倉)․영광의 법성창(法聖倉)․나주의 영산창(榮山倉) 네 개였습니다. 경상도의 세곡은 충주의 사흥창에서 수납하였습니다. 조선중기를 지나면서 조운제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조선(漕船)의 빈번한 침몰사고와 민간인에게 운임을 지불하고 운송하는 임운(賃運)이 생기면서 조창의 기능은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이에.. 2010. 6. 2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조운제가 ‘국가지중최중자야(國家之中最重者也)’라고 표현될 정도로 중요한 제도였습니다. 조운제의 성립시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만, 고려 제6대 성종(982-997년)기에 전국 여러 포구에 조운기지를 설치하였다가 이후 정종(1035년-1046년)대에 이르러서 이를 개경 남부 12조창으로 개편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12조창은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서해의, 하양창(충청도 아산), 영풍창(충청도 부성), 진성창(전라도 임파), 안흥창(전라도 보안), 부용창(전라도 영광), 해릉창(전라도 나주), 장흥창(전라도 영암). 내륙의, 흥원창(강원도 원주), 덕흥창(충청도 충주). 남해의, 해룡창(전라도 순천), 통양창(경상도 사천), 석두창(경상도 합포, 마산)이었습니다. 12.. 2010.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