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마도2

김형윤의 <마산야화> - 95. 엄원도의 일본 의인 95. 엄원도(嚴原島)의 일본 의인(義人)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동경 고학생 중 거의가 무등산치(武藤山治)라면 기억할 것이다. 그는 종연방적회사(鐘淵紡績會社) 경영주인데 사회에 불행한 인물만 있으면 반드시 몇 푼을 등기 우송해 주던 사람이다. 중야(中野)인가 황천약사(荒川藥師)인가 문인(이름은 밝히지 않음) 2, 3인이 백구사(白鷗舍)라는 곳에서 자취생활을 한 일이 있었는데, 여름 폭우가 지난 뒤에 백구사(白鷗舍)의 사람들은 한 묘안을 냈다. 즉 조선인 노동자의 합숙소인데 저번 수해로 노동할 길이 없어 앉아 굶어 죽는 것보다는 무슨 범죄라도 해야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띄웠다. 인심 잘 쓰는 무등(武藤)은 긴급히 관할 경찰서를 통해 우선 50원을 가지고 임시 구조를 하라고 했다. 현금을 전달하려고 고.. 2016. 6.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왜? 원 세조 쿠빌라이와 고려 충렬왕은 대일본 원정기지로 남도의 작은 포구 합포를 택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당시 이 도시가 가졌던 자연적 사회적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학계에서 정리된 내용은 대략 다음의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위치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합포가 해로(海路)상 일본과의 최단거리에 있는 항구입니다. 그리고 거제도와 쓰시마 사이를 지나는 쓰시마 난류를 타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쓰시마를 거쳐 일본 본토로 갈 수 있는 첩경(합포-거제도-대마도-이키-일본본토)이라는 점입니다. 해로 뿐 아니라 육로도 수도 개경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에 위치한 항구가 합포였습니다. 둘째는 항구시설입니다. 합포에는 이미 조창이었던 석두창이 설치되어 상대적으로 다른 포구보다 양호한 항구시설을 가지고 .. 2010.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