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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초등학교5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6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하상칠의 증언에서 품게 되는 두 번째 의문은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시위 참가 사실을 비밀로 유지해왔는지 그리고 5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증언을 하고 공로자 심사 신청을 하기로 맘먹게 되었는가라는 것이다. 먼저 철저한 비밀 유지의 이유를 살펴본 후 증언 결심의 동기를 알아보자. 1) 보복 공포와 빨갱이 트라우마 하상칠이 3․15의거 당일 시위에 참가한 이후 무려 50년 동안 침묵해왔다는 사실을 설명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기는 ‘공포’라는 감정과 ‘빨갱이’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이것들은 개인의 성격보다는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하상칠의 사례는 이것들이 개인의 의식에 어떻게 각인되었는가를 알.. 2018. 11. 5.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발간한 『3 15의거 증언록』(474~478쪽)에 실린 것을 그대로 전재한 것이다. 부정선거 개표를 막기 위해 시청 앞에서 싸워 하상칠(당시 35세, 녹취/2010년 10월 7일) 나는 1960년 3월 15일 자유당이 장기집권을 꾀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하자이에 항의하기 위해 오수 6시경 부정선거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마산시청으로 가는 중이었다. 내가 가는 길에 오동동빠가 있었고, 조금 앞서 거기에서 당시 도의원이며 민주당 마산시당 위원장인 정남규 씨를 경찰이 체포해 가는 광경을.. 2018. 10. 15.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마치는 행사였으며, 선수 수는 30명, 경기 시간은 30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술한 바처럼, 청수(淸水)들판 오른쪽 동네(봉덕동, 봉암2동)와 봉암다리쪽 동네(봉암동, 봉암1동)를 시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는 통에, 한 팀이 되었다 분리되었다 했지만, 성적은 분리되었을 때의 성적이 훨씬 좋았다. 여러 번 우승한 것도 그때였다. 그때 우리 동네는 비록 떨어졌어도 한동네라는 의식이 강했기에 함께 모여 응원도 하고 밥과 술도 같이했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장 군데군데에 각 동의 선수와 응.. 2018. 3. 12.
기억을 찾아가다 - 16 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 우리들의 선망대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특히 뛰어난 기량을 보였거나 남다른 재능이나 인기 끌 요소까지 겸비한 선수는 우리들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우리들 의식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기도 했다. 매년 8월 15일이 되면 방학 중인데도 모든 학생들은 등교하여 기념식에 참석해야 했다. 식이 끝나면 바로 시가행진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마산 인구는 전쟁 피난민이 보태져 10만 명이 조금 넘었을 정도였는데도 도로가의 시민들 참여도도 높고 하여 지금 세태로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장관을 연출했던 것.. 2018. 2. 5.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였던 기억은 없다. 아마 선생님의 설명을 통하여 상황인식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정부에선 백두산까지 밀고 올라가 통일하자고 했는데 유엔이 정전을 강행했다는 것만 알았다. 혼자서 수류탄을 들고 적 탱크 밑으로 들어가 산화한 전쟁영웅 열 명의 사진에 간단한 설명을 붙인 소의 ‘육탄 십 용사’포스터가 교실 벽마다 붙었고, 그들은 한동안 ‘반공웅변대회’의 중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각 학교에서 ‘반공강연회’가 수시로 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2017.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