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전쟁2

기억을 찾아가다 -7 7.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Ⅰ - 떠돌이 수업 피난 갔다 와서 학교에 나가보니, 들은 대로 학교는 이미 군용병원이 되어 있었다. 이웃 마산상업중학교(용마고의 전신인 마산상고와 마산동중이 분리되기 전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우리들의 떠돌이 학교생활은 2년 남짓 계속되었다. 처음엔 용마산 남쪽 비탈 중하단 정도 되는 곳으로 등교했다. 거기엔 전쟁에 대비하여 파놓은 ‘ㄷ’자형의 참호가 많이 있었고, 거기서 우리 반뿐만 아니라 여러 반이 이웃하여 학습생활을 했다. 가운데에 작대기를 세워 칠판을 걸고 우리들은 호 안에 기대거나 서고, 바깥 풀 위에도 앉고 하여 진행하는 수업형태였다. 그때 우리들 각자가 선생님 지시에 따라 마련한 책상 대용 필수품이 ‘화판’이라 불린 물건이었다. 판자들을 덧대어 만든 넓.. 2017. 11. 27.
기억을 찾아가다 - 3 3.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Ⅰ- 좌익과 피난 내 초등학교 일이학년 때 팔룡산 상사바위 근처나 불암사 근처 산먼뎅이들에 봉홧불이 올라 있는 광경을 종종 보았다. 그리고 새벽에 한길에서 붉고 푸른 삐라들도 주워보았다. 주로 어미니, 형, 누나들과 같이 보았는데, 나는 잘 몰랐지만 다들 걱정 섞인 말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동네 누구누구도 저기에 있을 것이란 말들도 들은 것 같다. 또 수원지 들머리 계곡들에서 좌익수 처형이 몇 번 있었고 계곡 물이 벌겋게 흘러내리는 걸 보았다는 어른들의 수군거림도 형들의 수군거림을 통해 들었다. 그리고 수원지길쪽과 봉덕동쪽을 가르는 산등성이 일대에 백여 기 가까운 무덤들이 있었는데(그래서 우린 공동묘지라 부르기도 했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과 연고 있는 무덤은 없었기네.. 2017.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