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난1 마산창원 역사 읽기 (30) - 네온사인에 가려진 월영대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4-5 네온사인에 가려진 월영대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 김춘추 즉 태종 무열왕계의 왕권을 중심으로 전제 왕권을 수립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이념의 도구로 유학이 도입되고 6두품 계열의 지식인들은 국왕의 조력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강수, 설총 등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혜공왕 말기부터 시작된 정치적 분규는 진골 귀족들 간의 왕위쟁탈전으로 신라 하대(下代)의 혼란을 가져왔고, 골품제도로 인한 6두품들의 정치 참여 또한 한계를 가지고 있어 이들은 정치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중앙의 진골 귀족들이 권력의 요직을 독점하였고, 지방의 유력자들이나 6두품의 정치적 진출은 차단되었다. 신라 사회에 불만을 품은 6두품 계열의 지식인들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심.. 2014. 12.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