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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8

시간은 피라미드를 두려워한다 이야기 하나,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지금 그 곳에 없다. 이십여 년 전 봉암동 골짜기로 이전한 후 그곳에는 덩치 큰 판상형 아파트만 덩그러니 몇 채 있을 뿐이다. 교복을 입은 채 까까머리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운동장도 없어졌고 여름에는 그늘, 가을에는 낙엽청소를 시켰던 그 큰 활엽수와 그 아래 나무벤치도 사라졌다. 봉암동에 새로 지은 학교에서 지금의 아이들이 40년 전 나보다 얼마나 좋은 교육을 받는지 모르지만 나의 추억이 녹아있는 공간이 없어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의 고등학교는 생각 속에만 있고 찾아가볼 장소는 없다. 새로 지은 학교에 갈 일이 더러 있지만 행사만 있지 추억은 없어 여느 학교를 찾았을 때와 감흥이 다르지 않다. 이야기 둘, 어릴 때 살던 집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다. 나는 좁은.. 2010. 2. 27.
바람재에서 만난 사이클리스트 '하늘에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 암울했던 일제기에 자전거 한 대로 민족의 울분을 삭히고 자존심까지 살려주었던 전설적인 자전거 레이서 엄복동(1892∼1951). 1913년 3월, 한·일 선수들이 함께 참가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를 우승하면서 민족의 스타로 떠오른 엄복동은 그후 계속되었던 한·일 사이클대회에서 일본을 눌러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주었다. 10년 후인 1923년에는 마산에서도 엄복동의 자전거가 달렸다. 4월 29일∼30일 이틀에 걸쳐 마산체육회가 주최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였다. 그 때 엄복동이 달렸던 코스가 지금 마산의 어디였는지 알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87년 전 마산에서 전국규모의 사이클 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주는 도시적 의미는 크다. 지난 일요일 오후, 만날재와 대산.. 2010. 2. 23.
인도위의 지뢰 '볼라드', 개선이 시급하다.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⑤ 볼라드는 인도 차도사이에 설치하는 차량진입 억제용 말뚝으로 차량으로 부터 상대적으로 약자인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하지만 규정에 맞지 않게 설치되어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보행자, 특히 시각장애인에게 불편을 주고, 크고작은 안전사고를 유발하며, 도시미관도 저해시키고 있다. 2006년 1월 28일 시행된 '교통약자의 이용편의 증진법'을 보면 볼라드는 보행자가 부딪쳤을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로 만들도록 규정되어 있다. 길을 다녀보면 알겠지만 이규정에 맞는 볼라드를 보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 탄성을 가진 재료의 볼라드가 간혹 설치되기도 하지만 아직 대부분이 철재나 석재로 만들어져 있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보다 유지관리의 편리성이 먼저 반영되었다.. 2010. 2. 20.
도강언(都江堰)에 올라 이빙(李冰)을 흠모하다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십 수차례 드나든 중국이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유수한 역사를 가진 나라와 민족이 많지만 중국만큼 볼거리가 많은 나라도 없다. 기기형형한 자연은 물론이고 추측하기 조차 힘든 거석과 미금의 조형품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천하제일이라는 만리장성도,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 넘었다는 병마용도, 사천성 여행의 도강언처럼 가슴 요동치는 감동을 내게 주지는 못했다. 근대의 힘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위대한 수리시설 도강언이 역사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년대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수백 년 전,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수십 년 전의 일이다. 황무지였던 성도평원을.. 2010. 2. 16.
이런 식이면 통합의 미래는 어둡다 어이없는 주장이 마산시내 간선도로 한복판에 걸렸다. ‘통합시 명칭은 마산시, 청사는 (마산)종합운동장으로’ 마창진 통합이 눈앞에 왔고, 출범 전에 결정해야할 것도 많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통합시의 명칭과 청사의 위치 문젠데 그 결정을 여론조사로 한다는 소문을 듣고 내건 현수막이다. 현수막을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했다. 마산사람인 내가 봐도 너무 염치없다 싶었다. 시내 여기저기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걸렸다. 현수막을 내건 단체명은 달랐지만 문구나 제작방법을 보니 어딘가에서 한꺼번에 의도적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여론조사용이니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창원와 진해도 마산과 같은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세 도시가 전부 이런 식이.. 2010. 2. 11.
통합 앞서 마산시민이 해야 할 일 도시의 통합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들만의 일도 아니다. 유익하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합칠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는 것이 도시다. 마창진 통합은 당위성도 있다. 역사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그리고 도시경쟁력의 측면에서 통합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통합을 통해 세 도시의 약점은 보완시키고 강점은 키울 것이다. 나아가 100만 도시의 위상에 맞는 새로운 발전 가능성도 제시될 것이다. 오래 기다려온 만큼 통합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비전이 크다. 하지만 창원 진해시민과 달리 마산시민들은 통합에 앞서 짚어 봐야할 것이 있다. 진해 창원과 달리 90%에 달했던 마산시민의 통합 찬성률에 대해서이다. 마산은 수백 년의 역사가 있는 도시다. 3·15의거, 부마항쟁 등 현대사의 격랑을 몸소 겪은 만큼 .. 2010. 2. 8.
나도향, 김지하 그리고 '산장의 여인' '마산도시탐방대' 여덟 번째 길이다. 1월 30일 오후 1시 반, 걷기 좋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다. 우리는 가포로 가기 위해 비움고개를 넘었다. 마산도시의 끝자락인 가포(자복포, 율구미 포함)는 한 많은 땅이다. 110년 전,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을 때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먹겠다고 각축을 벌인 ‘마산포 사건’의 현장이다. 잊혀져가는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겨울 오후 바닷가를 4시간 쯤 걸었다. 나라 뺏긴 설움만 있는 곳이 아니다. 가포에는 마지막 꺼져가는 심지처럼 생명이 사그라진 가슴 아픈 현장도 있다. 바로 국립마산결핵병원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에 상이군인요양소라는 이름으로 세운 결핵전문병원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최대의 국립특수의료기관이다. 우리는 병원 건너편 .. 2010. 2. 3.
'지하도'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이 사진 어떻습니까? 어릴적 지하도를 오르내릴적에 거의 대부분 마주쳐 왔던 모습입니다. 오로지 경제성장에 주력해오던 시절, 소외되어왔던 분들입니다. 잠시 멈칫하다 동전하나쯤은 던져준 기억은 있으실 겁니다. IMF이후, 99년도에 서울역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지하도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종이박스들. 칸칸이 마다,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뒹구는 소주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지하도를 벗어나 밖으로 나와보면, 언제 그랬냐는듯, 번듯한 건물이 우뚝서 있고, 잘 차려입는 사람들이 오갑니다. 그렇게 우리 도시의 지하도는 소외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소외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윈스턴 처칠의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도시의 환경을 이리 방치해 두어서는 안된다는 생.. 2010.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