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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6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단위주거 조합방식이 나타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편복도형식과 계단실형식으로 양분되어 정착하였다.

박노학의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의 단위주거 평면계획 변화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편복도형은 아파트 주거동 형식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85규모 중심으로 계단실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1990년대부터는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시기부터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설비가 보편화되었고 무엇보다 땅값과 건축비가 급등하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고 거주자들의 선호경향도 편복도형에 비해 거주성이 양호한 계단실형으로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각 아파트 위치 및 구분>

 

면적에 따라 변화의 시기 차이가 있었다. 전용면적 60규모의 경우 1990년 이전까지 대부분 편복도 형식이었다가 90년대 이후 계단실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원2구역 아파트 역시 이런 대세의 흐름과 일치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약간 이른 시기에 계단실형을 선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층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원2구역의 경우 계획도시 창원이 도시경관 관리를 위해 적용한 고도제한에 의해 5층으로 층수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내부공간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했다. 여기서는 아파트 내부공간의 일반적인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의 변화를 살펴본다.

설명 시 구분이 용이하도록 7개로 나누어진 단지 내 아파트 군을 <그림 7>처럼 번호화(numbering)하였다. 번호 순서는 편의상 북단의 현대사원아파트부터 시작하여 최남단의 대원경남아파트를 마지막으로 ~로 정하였다.

같은 동 내에도 단위세대의 규모와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단위세대 별로 정리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각 동에서 기본이 되는 한 세대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 ) 내는 그림에서 표기된 명칭이다.

현대사원아파트(2) ; 가동 108(현대아파트) / 1984년 준공

새경남아파트(6) ; 3101/ 1986년 준공

대원아파트(2) ; 나동 105(대원맨션) / 1984년 준공

쌍용아파트(14) ; 5106/ 1982~2001년까지 수 차례 준공

동양상가아파트(3) ; B111(동양아파트) / 1981년 준공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3) ; C114/ 1984년 준공

경남아파트(4) ; 2101/ 1985년 준공

 

1) 전면 폭

전면 폭은 단위주거의 전체적인 평면구성 그리고 거주생활의 쾌적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향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주거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박노학의 연구에 의하면 대원2지역과 같은 판상형의 경우 전용면적 60의 경우 2000년대까지 평균 6.80m에서 7.24m 사이의 길이를 보이고 있다가 2000년대 이후부터 현격히 넓어졌다.

또한 전용면적 85규모의 전면 폭은 2000년대 이전까지 평균 9.00m에서 9.49m 정도의 범위를 보였다. 단위주거 평면의 전면 폭/깊이(W/D)의 비율은 전용면적 60규모의 경우 2000년대 이전까지 0.7이하였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전면 폭은 다음과 같다. 표기된 폭은 거실이 배치된 남쪽이며 ( )안의 치수는 북쪽 치수이다. 당시 일반적으로 적용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전면 폭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원아파트 ; 7.2m (8.4m)

새경남아파트 ; 6.6m (5.4m)

대원아파트 ; 6.0m (7.6m)

쌍용아파트 ; 6.0m (7.3m)

동양상가아파트 ; 7.8m (6.5m)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6.6m (5.2m)

경남아파트 ; 6.6m (5.2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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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5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1

 

아파트의 기원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집중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후반 시작된 도시로의 인구집중과 그에 따른 주택난이 토지의 입체적 이용, 즉 공동주거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파트였다.

형식은 집단주거였지만 이념적으로는 19세기 서구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공동체라는 이상주의의 산물이었다.

 

<한국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서울 마포아파트(1962~1964)>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당시의 아파트는 전쟁 때 가족과 함께 들어온 주한미군을 위한 것이거나 그 외의 것은 극히 소규모였다.

따라서 국내 최초의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60년대 초에 건설된 위 그림의 서울 마포아파트를 든다. 13평 내외의 저소득층을 위한 서민용 주택이었다.

196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도시의 주거수요에 비해 택지와 주택이 턱 없이 부족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아파트이다.

60년대 말, 대한주택공사가 한강변에 중대형(25-55)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맨션아파트라는 신종어가 생겼다.

대한주택공사는 이 아파트를 공급한 후 국영기업이 부자를 위한 주택을 짓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구조는 칸막이벽의 이동이 가능한 라멘 구조였고 난방시설은 중앙집중식이었다. 프로판가스가 들어갔으며 옥상에는 TV 안테나가 설치되었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의 반포지구와 잠실지구 대단지였다.

핵가족 시대 이전이어서 각 방의 넓이보다 방의 개수가 많아야 했던 시절이어서 최하 3.5방까지 있었다. 아파트 공급 초기였기 때문에 특정한 유형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시도들이 나타난 시기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 경남에서도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영리를 목적한 민간기업의 아파트 개발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형 단지개발 보다는 기존 택지와 산업용지에 재개발 형식으로 지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1980년대 들어 아파트는 질적인 변화를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유형들이 나타났지만 방의 수를 늘이기 위한 좁은 방이 사라지고 평면구조는 거실을 중심으로 각 실들이 둘러싸는 유형이 대종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의 평면구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면적은 1980년대 들어 대부분 국민주택 규모인 85가 대종을 이루었다.

외부에서 볼 때 아파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거동 형식이다. 아파트는 단위주거들이 모여서 하나의 주거 집합을 이루기 때문에 각 세대들이 결합방식이 전체 집합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단위주거가 조합되는 방식에 따라 주거동 내부에서의 상호관계가 성립되면, 주거동이 모이는 방식에 따라 단지의 특성이 규정되어 진다. 주거동의 구성은 각각의 단위세대가 모여 하나의 집합을 이루며 가장 기본적인 상호관계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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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4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3

 

앞에서 본 것처럼 창원신도시의 계획과정에서 제시되었던 원칙들은 어디 내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최초의 의도는 건설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건설 후 관리과정에서 더 손상되었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백년대계가 되어야할 도시정책이 갈지()자 걸음을 걸은 탓이다.

대원2구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간대자본 투입이 용이치 못해 단지를 소규모로 나눈 것이 대원2구역의 가장 큰 문제였다.

소규모로 분절된 부지로서는 도시계획에서 내세웠던 아파트 단지 계획의 여섯 가지 원칙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계획 당시 창원 신도시 조감도>

 

창원공단 조성 2년이 경과한 1976년 말에는 공단에 58개 업체가 입주하였고 그중 18개 업체가 가동에 들어가 6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기타 건설관련자 등 인구 유입이 확대일로에 있었다.

이런 여건을 배경으로 주거지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77년 말경이었다. 택지개발을 착수 시기별로 나누어보면 197717개 지구, 197811개 지구, 19791개 지구, 19871개 지구 등이며 91년까지 39개 지구가 완료되었다.

대원2구역이 속한 두대지역은 이중 가장 먼저 시행되었으며 면적은 56.73였다. 두대지역의 택지조성은 773월에 시작해 819월에 완공하였으며 주용도는 단독주택 및 아파트 단지였다.

공단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과 공단에 입주한 기업체 직원들을 위한 주거용지였다.

개발방식은 전면매수에 의한 공영개발 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저렴한 가격의 안정적인 택지공급에 역점을 두었다. 철거 원주민과 이주민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택지는 조성원가로 공급하였다.

택지조성이 가장 빨랐던 두대지역의 대원2구역 아파트들은 대부분 80년대 초중반에 지어졌다. 시범주택으로 77년 지어진 세플러 사원아파트도 있지만(법적 사용승인은 8493) 나머지 모든 아파트의 건축시기가 80년대 초중반이다. 택지조성이 가장 앞섰듯이 건축공사 시기도 빨랐다.

아파트가 주거문화로 정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부터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의 홍수는 198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주택 2백만 호 건설공약 때문이었다. 대원2구역 아파트 건설이 대부분 끝난 뒤였다.

2백만 호라는 애당초 무리한 주택건설정책은 노태우 정권 내내 시행되었고 창원지역에도 영향이 크게 미쳤다.

비민주적인 권력의 행태가 언제나 그렇듯이 중앙정부가 결정한 정책은 일선 행정기관으로 하달되었고 그에 따라 경남도청 및 각 시군의 담당국과에서는 매일 주택건설 독려에 혼신을 다했다.

자연히 도에서 한 해 지어야할 주택의 량이 할당되었고 그렇게 할당된 양은 각 시군으로 재할당되어 시군 주택건설 목표치가 되었다.

주택 2백만 호 건설로 열린 아파트 시대는 민간건설업체에 의한 브랜드아파트를 등장시켰고 이에 따라 각 건설사의 아파트들이 내용에서 약간씩 차별화되었다.

대량공급이 시작되면서 아파트들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건설에 효율적인 획일화된 블록배치가 대부분이었다.

주택 2백만 호 건설로 인해 아파트건설이 규모와 내용에서 많이 달라졌지만 대원2지역의 아파트가 80년대 초중반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직접 관련은 크게 없다.

  새롭게 사람들 앞에 나타난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미래에 어떤 가치를 가질 것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아파트가 우리 주택양식의 주류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전문가마다 의견이 달랐다.

아파트가 미래 한국사회의 주류 주거양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었고, 아파트는 단지 전환기의 주거수단일 뿐 장기적으로는 단독주택의 대체수단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대원2구역의 아파트들은 창원신도시 주거양식의 선도적 역할을 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윤장섭은 아파트를 주택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평면적으로 교외로 확장됨에 다라서 도시주변의 농경지가 침해될 뿐 아니라 도시의 급속한 확장에 다른 교통문제, ·하수도, 전기, 기타 각종 공공시설들의 해결안 등의 불합리한 점을 막기 위해서 주택을 고밀화 시킨 것 이라고 정의했다.

이 견해에 따른다면 신도시 창원이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원2구역 일대를 시작으로 대량의 아파트를 공급한 정책은 시간과 공간적 측면에서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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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0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2

 

창원 신도시에 주거용 건물이 본격적으로 건설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대부분 단독주택으로 민간사업자들이 주도한 조적조 2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였으며 한층 혹은 심지어 한층 반 씩 세를 놓을 수 있는 평면구조가 대부분이었다.

임대와 매매를 염두에 두고 지었기 때문에 공간구조나 외형에서 차별성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역시 초기에 공공주택으로 건설한 반송동 주공아파트를 비롯하여 대기업이 참여해 지은 평범한 것들이었다.

이는 창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택이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한국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197691일 마산시가 설치한 창원지구출장소는 1977년 인구 30만 수용(1986년 기준)의 창원 신도시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197691일 창원지구 출장소 개소식 장면 /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산업도시로서의 창원신도시 기본계획의 목표에는 여섯 가지의 전제조건이 담겨있었으며 그 내용은 국내 및 국제사회와의 상호교류, 지속될 경제성장, 신도시와 기계공업단지와의 긴밀한 연계, 기계관련 공업의 타 도시 파급, 기계공업 육성 및 국내외 교역증진, 시민소득상승과 지방재정확대 등이었다.

1979년 완성된 도시계획은 이 여섯 가지를 토대로 성립되었으며 그 중 주거지역은 저밀도주거지역(단독주택), 중밀도주거지역(아파트+연립주택), 고밀도주거지역(아파트) 등으로 배분하고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하였다.

단독주택의 배치는 남향과 동향을 원칙으로 하고 건폐율은 50%, 건축선은 3m, 주변건물과 조화롭게 함

연립주택은 복합형식의 배치를 원칙으로 다양한 형식의 배치를 통해 아늑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도록 함

아파트 단지 계획

. 병렬형은 가능한 지양하고 유기적인 경합방법으로 배치

. 단지 내 통과교통을 배제하고 보차 동선을 분리

. 학교 및 공원 등 주요시설과는 보행자 도로로 연결되도록 계획

. 충분한 오픈스페이스로 일조, 채광, 통풍 등이 양호하도록 계획

. 차음 및 주거환경보호를 위해 도로변에서 건축선을 6m 후퇴

. 적절한 규모의 공공주차장 설치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하여 개발하기 시작한 주거지역 중 대원2구역은 전체 도시계획에서 제시된 5개의 중생활권(상북, 중앙, 상남, 가음, 기타) 가운데 중앙 중생활권에 속하고 있다.

중앙 중생활권에는 6개 지역의 소생활권(반지, 두대, 중앙, 반림, 용지, 사림)이 포함되어 있다. 대원2구역은 이 6개 소생활권 중 두대지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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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1

 

수혈주거로 시작된 인간의 거주양식이 드디어 아파트라는 형식에까지 도달했다. 생활에 필요한 내외조건의 변화에 따라 인간은 달라졌고 인간의 삶을 담았던 주거시설의 형식도 변했다.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자연조건과 생산의 수단 및 관계 변화였지만 때로는 정치 사회의 변화가 요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주거형식이 가장 비약적으로 변한 시기는 소위 근대적 건축술이 등장한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시작된 개항은 외국의 여러 문물을 직접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과 서구의 건축술도 들어왔다.

개항장에 건설된 일본인 주택들은 당연히 일본 자본에 의해 일본인의 설계와 시공으로 시행되었다. 대부분이 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주택과 점포를 겸한 단층 혹은 이층의 주상(住商) 복합건물이 주종을 이루었다.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은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 등으로 나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등장한 주택으로 대개 전통주택에 일식(日式) 혹은 서양식을 일부 채용한 형식이다.

하지만 토막민(土幕民)이라 불린 도시 빈민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토막(土幕)이란 땅을 파서 주거공간(움집)을 만든 뒤 짚이나 거적을 덮어 지붕과 출입구를 만든 집으로 가장 열악한 주거형태였다.

1945,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해방 후 이어진 전쟁은 주거상황을 더욱 깊은 질곡에 빠뜨리고 말았다.

1961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수출중심 경제정책을 택했고 그 결과 발생한 이농현상은 도시의 주택난을 심화시켰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수많은 가구들은 집을 마련할 경제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도심지에 세()를 얻을 형편에도 미치지 못한 가구가 많아 이들 중 상당수는 도시 변두리의 산이나 하천 등 국·공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했다. 무허가 판잣집과 달동네의 출현이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3공화국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66)에 주택 정책을 도입했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를 설립하였고 같은 해 도시계획법 및 건축법, 1963년에 토지수용법과 주택자금운용법 및 국토건설종합계획법 등을 제정하여 민간부분의 주택 건설을 촉진하였다. 1969년에는 주택은행도 설립하였다.

후의 일이지만 1979년에는 토지금고(한국토지개발공사)를, 1981년에는 국민 주택기금을 창설하였다. 하지만 이 모두는 국가의 공공 재정이 아닌 민간재정을 투입하는 주택정책이었다.

우리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년대 말 이후 마산수출자유지역, 한일합섬, 창원기계공단 건설 등으로 인구가 급증하였고 이로 인해 주택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마산의 석전·양덕·합성동 일대를 아우르는 동마산 개발도 이 때문에 시작된 사업이었다.

이 시기의 주거는 대부분 단독주택이었다.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미된 개량형 주택으로 취사 및 난방연료는 주로 연탄이었다.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급속히 커진 주택시장은 공공 또는 민간 주도의 아파트, 집장사가 지은 주택, 건축가가 설계한 일부 고급주택, 무허가 주택 등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주택시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는 집만 지어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심리 때문이었다.

수요급증으로 폭등한 집값으로 무주택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되자 1977년 정부는 주택 청약제도와 함께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오히려 고소득층에게는 아파트를 싸게 구입해 이윤을 붙여 되팔 수 있는 기회로 둔갑되어 투기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분양가 상한제의 또 다른 부작용은 획일화된 아파트 공급이었다. 분양가격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창의적인 건축보다는 정해진 값으로 똑같은 아파트 짓기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실시 1년 후인 1978, 공동주택을 시공 단계에서 분양할 수 있는 선분양 제도를 도입하였다. 건설업자들의 재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조감도 밖에 없는 그림 속의 아파트를 사고팔았고, 그림 속 아파트 분양 당첨을 위해 가족들이 교대해가며 밤새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선분양 제도가 기업의 재투자를 촉진하고 그로 인해 주택시장 활성화에 기여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토지확보만으로 거액의 분양수익이 창출되었던 기형적인 시스템이 기업주의 과도한 이윤욕을 부추겨 유수한 주택건설업자들이 도산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조성 중인 창원공단 제1단지. 창원대로와 남천이 뚜렷하다. 사진의 왼쪽하단 일대가 대원1구역 / 1976년 항공촬영, 국가기록원 소장>

 

신도시 창원은 이러한 상황과 함께 탄생하였다. 하지만 창원 신도시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시기에 정부가 바뀌었다.

국가중공업산업의 중흥을 꿈꾸며 창원벌판에 신도시 계획을 세웠던 유신정권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고 그 뒤를 이어 제5공화국이 등장하였다. 유신정권은 끝났지만 또 다른 형태의 유신체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달라진 것은 경제였다. 때맞춰 불어든 3(저유가, 저환율, 저금리)현상으로 좋아진 경제사정 때문에 국내건설업계에도 봄바람이 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없었다.

따라서 건설업의 국민총생산 차지비율이 높았고 타산업과의 연계효과와 고용효과도 높았다. 거기다가 사회간접자본도 현저히 부족했던 때였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인식, 경기부양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건설경기부양책을 폈다.

60년대부터 산업화되기 시작한 마산은 물론, 1980년 독립 시()로 분리된 창원지역의 건설경기가 상대적으로 더 활발하였다. 그 중심에 선 것이 아파트의 대중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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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3 - 한빛 원전1호기는 폐쇄가 답이다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한빛 원전1호기는 33년 된 원전으로 95만kw 짜리 원전입니다. 한빛 원자력발전소에는 비슷한 규모의 원전이 6기가 있습니다. 전남 영광에 있죠. 한빛 1호기는 격납건..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2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5월 9일 제1야당 대표는 &ldquo;교통사고 때문에 자동차를 폐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비 없는 에너지 정책 정말 무책임하다.&rdquo;라고 원전사고를 교..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1 - 우리나라의 잦은 지진, 불안하다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 속초의 산불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19일과 4월 22일 사흘 간격으로 발생한 지진은 강원도 지역 주민..

쓰레기 대란, 이제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곳곳이 쓰레기 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최근 필리핀으로 쓰레기를 불법 수출했다가 국가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쓰레기 대란은 2017년 중국이 플라스틱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수출이 막힌..

London and Quadrant / L & Q

"No one should be denied the opportunity to achieve their potential because of where they live." &ldquo;어느 누구도 그들이 사는 곳 때문에 그들..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 보존을 위한 환경단체 입장문

이 글은 지난 4월 11일 부터 17일까지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을 지키기 위해 결행된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이보경 사무국장의 단식에 대한 환경단체의 입장문입니다. ▮ 왕버들군락의 온전성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1등급 습지 대봉늪 지..

미세먼지 줄이는 쉬운 방법

요즘 많은 사람들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고 있다. 노인들은 미세먼지가 심한 때 돌아가시기도 한다. 특히 호흡기 질환이 있는 노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교통사고보다 미세먼지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을 만큼 미세먼지는 우리들의 건강에..

아이 먼저 생각하자 - GMO에 대하여

박순희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이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토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의 건강을 위해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였다. 조금은 비싸지만 하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0 -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이 글은 2017년 10월 12일 포스팅한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9편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기후조건, 에너지 자원, 산업구조, 원전의 발전 비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

YMCA 연원을 찾다 - 2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 국제담당국장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라는 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3월 6일 오전 11시 15분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

YMCA 연원을 찾다 - 1

오랫동안 회원으로 활동한 YMCA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 업무 차 런던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약속이 오후로 잡혀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의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 국제..

무등산 산행기-3

무등산 산행기-3 장불재를 내려다보며 하산하다. 장불재는 무학산 서마지기보다 훨씬 더 평평하고 너르다. 마산 같으면 만날재 같은 역할을 했다. 한쪽에는 방송중계탑들이 모여 있다. 하산길은 일방적인 내리막이 아니다. 중봉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