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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8.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0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3) "삼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콩나물을 길렀다" ------------------------- 권○○

1949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지하 수정식품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수정식품

 

- 이 콩나물 공장이 이 동네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이 콩나물 공장 하신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 그러니까 원래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서 하던 거를 내가 인수 받았어요. 그때가 80년도인가 81년도인가? 그러니까 벌써 삼십 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나도 돈을 못벌었으니까 못나가고 이래 있는 거지요. 벌써 나가야 되는데... 허허. 내 앞에 하던 분도 벌써 돌아가셨고요.

- 예. 그럼 이 아파트 들어서고 난 뒤에 공장을 하셨네요?

= 그 이전에 여기가 어떤 자리였냐 하면, 논이었습니다. 이 아파트 짓기 전에는 논인데, 어떤 논이냐 하면, 농사도 지어 먹을 수 없는 구렁논, 구렁논 안있습니까? 구렁텅이, 그러니까 늪처럼 그랬어요. 그래 거기를 메워가지고 지었어요.

70년대 이전에는 이 뒤로는 전부 미나리꽝이었어요. 여기는 논이 워낙 물컹물컹 하고 해서 집을 지을 수 없으니까 유일하게 여기만 논이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아파트 맨 저쪽으로 옹벽이 있을 겁니다. 거기가 논이 끝나는 데거든요. 그쪽에 보면 지금도 탱자나무가 있을 겁니다. 그쪽에 옛날에 기와집 몇집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쪽에 집이 하나 있는데 육십 년 됐나? 그 집에 가면 나보다 더 잘 압니다.

왜 잘 아느냐 하면 내가 여기 왔을 적에 그 분이 시집 와 가지고 시집살이를 하고 살고 있었어요. 그분이 여기 동네에 대해서는 더 잘 알겠네요. 다른 집들은 사는 사람이 전부 바뀌고 그랬는데 그 집은 사람이 안바뀌고 집만 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앞에 다리가 옛날에는 돌다리였는데 팔십 몇년도고? 그때 홍수가 나서 돌다리가 싹 떠내려가고 나서 새로 다리 지었거든요.

 

미나리 꽝 / 참고자료

 

- 그 홍수 났을 때 피해가 많았습니까?

= 우리는 별 피해가 없었어요. 이 공장 옹벽까지 돌이 치고 들어와서 다 깍여 나갔지요. 이 옹벽이 워낙 두꺼워서 그걸 차고는 못들어왔지 안그랬으면 여기도 피해가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앞에 다리 있던 밑으로는 싹 쓸어버렸어요. 그때가 내가 여기 인수하고 난 뒤일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 아파트 짓고 난 뒤로 내가 공장에 들어왔는데 그때 인수받을 적에는 이 상가가 또 뭐였냐 하면 방공대피소였어요. 대피소...

- 민방위훈련?

= 그렇지요. 민방위 대피소로 지정이 된 겁니다. 지역주민을 위해서 쓴 거죠. 상가에 지하가 있으니까요.

- 그 당시에 여기 상가에는 어떤 가게가 들어왔습니까? 작은 공장은 주변에 없었습니까?

= 주로 잡화점이고 또 고무신, 어물전, 그런 게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상가가 형성이 잘 됐는데 나중에는 잘안된 것 같습니다. 거기 대해서는 이 위에 쌀집에서 잘 알 겁니다. 바로 이 밑에 고물상 앞에 보면 주차장이 있는데 그 일대가 옛날에는 돼지털 공장이었고 가발공장도 하고 그랬어요.

요꼬 공장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요. 또 이 밑에 내려가다가 도랑 이쪽에 철공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 그럼 사장님은 원래 이 동네 출신이십니까?

= 내가 원래 이 동네 출신이 아니고, 고향이 진주 산청입니다. 산청 오부면인데 뭐 먹고 살 게 없으니까 부모 뿌리치고 친구 따라서 나온 거지요.

그때가 열여섯, 열일곱 살 때지요. 내가 육십여섯이니까 약 오십 년 됐네요. 대략 65년도쯤 되는 것 같습니다. 마산에 왔다가 부산에 갔다가 서울도 갔다가 그랬죠.

여기 뒤에 보면 월남집이라고 있었습니다. 왜 월남집이냐 하면 월남 갔다 온 사람이 집을 지어 가지고 살았다고 해서 월남집이라 했어요. 그때 당시 파병으로 많이 갔다 아닙니까? 그때 돈도 벌어 와가지고 그 집을 지어 살다가 우리 숙모 한테 팔았던 겁니다.

그래 나는 숙모님 집에 와서 덤으로 들락날락 하다가 나중에 여기에 눌러 앉았어요. 그 당시는 이 근처도 그렇고 저 위에 벽산아파트 쪽에도 다 밭이었어요.

그리고 이 뒤로는 미나리꽝인데 겨울 되면 다 얼었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얼마나 추웠습니까? 그때 나도 어릴 때니까 동네 애들 하고 앉은뱅이 스케이트 만들어 놀았죠.

나무로 앉는 판을 만들고 그 밑에 철사 대고 이렇게 만들었는데, 내 사촌형이 있어서 그 사촌형하고 스케이트 타고 놀고 그랬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여기 석교가 지금처럼 만들어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앞에 이 도랑이 참 좁았어요. 여기 도랑이 다른 이름이 없고 그냥 회원천이라 했는데 물이 맑았죠.

옛날에는 정자나무 그 위쪽으로 가면 가재도 나왔습니다. 여기서 빨래도 할 정도로 억수로 맑았습니다.

- 콩나물 키우기는 여기가 조건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 그렇죠. 원래 여기가 구렁논이다 보니까 물은 억수로 많습니다. 그러니까 콩나물 기르는데는 큰 지장이 없지요. 지하수니까 아무래도 여름에는 물이 좀 찹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그래요.

- 요새는 하루에 콩나물을 몇통이나 생산하십니까? 많이 하실 때는 언제 많이 하셨습니까?

= 아주 영세하죠. 콩나물 많이 해 봐야 열댓 통 하니까 많이 하는 거 아니고 그냥 겨우 생계나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처음 인수 맡아 가지고 할 때는 주로 어시장에 배달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여기서 어시장까지 뭘로 배달 했느냐 하면 자전차로 운반했어요. 이런 플라스틱 통이 아니고 나무통이었어요. 그때는 스물댓 통, 서른 통 정도 했어요.

큰 통으로... 그때는 큰 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참 미련스러웠지요. 그 나무통만 해도 물 먹어서 무거운데 거기다가 콩나물까지 들어 있으니까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 무거운 걸 두 통 세 통이나 자전차에 싣고 선창에 갖다 주고...

-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 그렇죠. 그때 볼 것 같으면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 뒤에 조금 있다가 오토바이가 나왔고 그리고 조금 있다가 차가 나와 차로 운반을 했지요. 그러니까 시기 따라 세상 따라서 그래 산 거죠.

내가 살아나온 거는... 아직까지 나는 회사 회 자도 모르고 남의 집 밥 얻어 먹고 그러지는 안했어요. 처음에 와가지고 몇 년은 점원 생활 했지만 그 뒤로는 내 스스로 살았으니까요.

이 동네 없어진다고 역사를 알아야 된다고 하는데 내 이런 것도 뭐 역사가 되겠습니까?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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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1.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9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2) "동네 지킴이칠원쌀상회" ------------------------- 이○○

1948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1층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지금 조합원 중에서 이 동네에 아주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 예. 이 자리에만 거의 40년을 살았네요. 하여튼 요 동네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이 아파트 들어서기 전인데 내나 같은 동네입니다. 여기가 3-5번지인데 거기가 교원동 3-6번지이네요.

내가 여기 이사올 때는 단층 슬라브집 지어놓은 데 바로 들어 왔거든요. 주인이 진해에 있었는데 우리가 먼저 들어 왔어요. 방 큰 거 한 칸에 부엌 있고 다락방 있고 조그만 했어요.

지금도 내나 그대로 있거든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병원에 가 계시고 안계실 겁니다.

그리고 이 무학상가 자리에는 옷짜는 요꼬공장이 있었거든요. 지금 앞에 주차해 놓은 데가 공중화장실 자리고요. 그리고 바로 앞에는 옛날에 영일공업사라고 쇠를 가지고 뭐 만들던 공장이었어요. 그런데 요꼬공장은 이름을 모르겠네요.

그때만 해도 밭은 별로 없었어요. 집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요. 초가집은 없었고 전부다 쓰레트나 기와집이고 슬라브 집은 몇집 있었어요.

교방동 쪽에는 논이 많이 있었는데 여기는 전부 집이었어요. 지금도 그때하고 집은 변동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 당시에 동네 주변은 어땠습니까? 동네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요꼬공장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다른 공장은 없었습니까?

= 건너편 회원동 쪽에도 기와집도 있고 쓰레트집도 있고 공터도 있고 그랬는데 내가 오고나서 집을 새로 많이 지었어요.

그때 동네 이름 뚜렷하게 부르는 것은 없었어요. 사람들이 집 위치를 물으면 옛날 요꼬공장이라고 그랬거든요. 우리가 뭐 부탁할 거 있으면 옛날 요꼬공장 옆으로 오라 그랬거든요. 그때 요꼬공장이 컸습니다.

하여튼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전체였거든요. 그 요꼬공장을 뜯고 짓고 하는데 한 일년반이나 이년 가까이 걸렸을 겁니다. 요꼬공장 했던 사람 성은 모르겠네요.

그리고 상가 지하에 콩나물 공장이 있는데 지금 현재도 하고 있습니다. 그 콩나물 공장이 81년인가 82년인가 모르겠는데 그때부터 계속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 사람은... 하도 오래돼서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성은 정씨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은 권씨이고요. 여기 콩나물 공장 이름이 수정식품인데 여기 지하수가 참 좋아요. 지하가 다 콩나물 공장입니다. 이 가게 여덟 개 하고 반 정도로 큽니다.

콩나물 공장 말고는 지금 현재로 바로 밑에 고물상이 있습니다. 그 집이 고물상 한 지가 한 칠팔 년 됐나 그럴 겁니다.

- 이 무학상가가 오래된 상가라고 들었는데 그 얘기를 좀 해 주십시오. 상가를 불하 받으신 겁니까?

= 예. 이 상가를 먼저 짓고 그 다음에 아파트를 지었거든요. 상가를 다 짓고 불하를 했는데 그때 가게 하나에 여덟 평 몇 홉인가 그럴 깁니다.

그때 가게가 총 39개였어요. 불하받을 때 평당에 얼마나 주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가게 하나에 2백만 원인가 주고 샀어요. 그래가지고 쌀집을 낸 거지요.

여기에 처음 상가가 형성이 될 때에는 생선장사, 식육점, 참기름집도 있었고 철물점도 있었고 잡화가게도 있었고 연쇄점도 있었고요. 이 무학상가를 지어서 분양한 업체는 개인이 했는데 그 사람도 세상 버리고 없고... 오래되니까 이름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여기 상가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다 가버리고 지금은 내 혼자 뿐이라예. 연쇄점이 있었는데 그 뒤에 받아서 한 사람이 감천슈퍼라고 있었거든요. 앞에 한 사람은 모르겠고요.

상가는 형성이 됐는데 장사가 잘 안됐어예. 밑에 시장이 가깝고 하니까 상가가 잘 안됐어요. 하나씩 하나씩 문을 닫았는데 한 이삼년간에 다 없어졌어예. 지금은 다 빈 가게만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파트는 상가 들어서고 난 뒤에 같은 업자가 올린 건데 2층 3층을 증축을 했지예. 처음에 모두 16가구가 들어왔는데 지금은 15가구만 살고 있어요. 한 집만 비어 있고 주인은 다 있고예. 지금 건물이 그냥 낡은 정도가 아닙니다.

- 이쪽 교원동으로 이사 오시게 된 거는 직장 때문이었습니까? 또 쌀가게도 오래 하셨지 않습니까?

= 그때 여기로 온 것은 남의 집이라도 새 집에 살아보자 해서 이사 온 겁니다. 직장은 우리 아저씨가 자유수출에 다녔어요.

나는 고향이 의령인데 회사 다닌다고 대구에 가 있다가 결혼해서 마산으로 왔어요. 우리 아저씨는 총각 때부터 여기에 있었고요.

아저씨 하고는 같은 동네는 아니고 나는 이병철이 생가 있는 정곡면이고 거기는 지정면이고 그래요. 그래 여기로 이사와 가지고 수출에 다니다가 거기 경기가 좀 안좋아가지고 해서 그만두고 가게를 사서 장사를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여기서 쌀집을 했습니다. 이름이 칠원쌀상회인데 태풍에 간판이 날아가버리고 나서는 그냥 간판을 안달았어요. 칠원쌀상회라고 한 거는 다른 사람이 하던 가게 허가를 우리가 받았기 때문이지요. 칠원쌀상회는 원래 다른 데 있었어예. 거기도 교원동인데 옛날 북마산역 밑에 그 안골목에 있었어예. 하도 오래 되어서 그 사람 성도 모르겠어예.

그래도 쌀집 냈을 때는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개업한 날이 78년 4월 10일입니다.

그때 개업잔치도 하고 떡도 하고 그랬어요. 십몇년 지나고 우리 아저씨가 기술을 배워서 도배를 했거든요. 옆에 가게를 세 얻어서 도배도 하고 장판도 팔고 하는 가게를 했어예. 그 가게 이름이 무학장식인데 지금은 안합니다. 안한 지가 육 년 정도 됐나 그렇습니다.

쌀가게는 그대로 하고 그때 장사는 잘 됐어요. 그때 쌀은 주로 함안 대산장에서 사왔어요. 의령하고 경계선이고 고향이 가깝다보니까요.

또 촌에서 누가 방아 찧어놨다고 연락오면 거기 가서 사오고 그랬어요. 그때 장날 쌀을 사놓으면 쌀집마다 배달해 주는 트럭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장날마다 배달하는 장차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정부미 취급을 많이 했는데, 조합에 신청을 하고 한 이삼일 있으면 배달이 됩니다. 또 쌀집은 보통 소금을 다 취급하는데 우리도 소금도 하고 잡곡도 하고 그랬어요.

- 한때는 쌀가게를 크게 하셨네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 할 때는 많이 했어요. 그때는 일반 쌀은 그렇지만 떡집에 들어가는 정부미가 억수로 많았어요. 정부미 한 창고 들여 놓으면 일주일만에 다 나가고 그랬거든요.

이 칠원쌀상회가 제일 잘 될 때는 이십년 전쯤 되겠네요. 우리가 78년도에 했으니까 85년부터 95년 그 사이에 최고 잘 되었을 때라고 봐야 되겠네요.

쌀이 많이 나가는 데는 떡집인데 우리가 주로 거래한 데는 어시장 지금 농협 있는 맞은편 골목에 서울떡방앗간 부산떡방앗간 그런 데 였어요. 이 근처에는 삼양떡방앗간이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회원1동 파출소 있는 데로 이사를 갔어요.

우리가 취급한 쌀도 옛날에는 통일벼, 밀양3호... 또 정부미, 납딱보리쌀, 혼합미 그런 종류가 많았어요. 지금은 아예 정부미라고는 없습니다.

지금은 주로 함안 산인 정미소서 바로 찧어 오거든요. 지금은 납품은 없고 오는 사람 있으면 조금 팔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장사도 아닙니다. 옛날에는 되로 팔고 그랬는데 지금은 소포장이 많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시장에 가서 달랑 사오고 그렇거든요. 지금은 내가 재개발이 아니면 진작 그만두었을 겁니다.

- 예전에 큰 홍수가 난 적이 있다면서요?

= 쌀집 하면서 홍수 난 것은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쌀가게 차리고 나서 얼마 안됐을 때입니다. 비가 엄청나게 와가지고 이 상가 앞에 돌다리도 다 떠내려가고 그랬습니다.

옛날에는 기둥도 비석 만드는 돌이고 그랬는데 그때 떠내려가고 나서 일년 동안 외나무다리로 다녔어요. 그때 우리 집 앞에 땅이 일 미터 놔두고 다 파여 내려가 버렸습니다.

저 산 위에서 나무뿌리며 나뭇가지 같은 것이 떠내려 와서 다리발에 엉켜서 못내려가니까 물이 차올라서... 그때 여기 서서 땅이 막 파여 쓸려내려가는 것을 봤어요.

또 저 위 축사에서 돼지도 떠내려오고 냉장고도 떠내려가고... 큰 바윗돌도 떠내려가고... 사람들이 구경한다고 와글와글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혹시나 싶어서 쌀을 마루 위에다 재어 놔서 쌀 피해는 없었어요. 또 이 동네는 집이 떠내려간 거는 없었는데 이 밑에 전당포 있는 그 근처 집들이 다 떠내려갔습니다.

- 홍수로 큰 피해를 입힌 하천이지만 옛날에는 물이 맑았지요?

= 지금은 회원천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회원도랑이라 했거든요. 이사 오고 나서도 다리 밑에 내려가서 빨래 많이 했습니다. 물이 참 좋았어요. 위에 사람들이 많이 안사니까 깨끗한 물이 내려왔거든요. 꼬맹이들 목욕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때부터 물리 더러워졌더라고예.

또 수도물이 하루 나오고 하루 안나오고 할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빨래를 주로 앵기밭골 위에 가서 하고 아니면 서원골 큰 은행나무 있는 그 옆에 가서 씻고 그랬어요.

목욕은 건너편 현대탕에도 가고 태양목욕탕에도 가고 또 옛날에는 지금 자이아파트 들어선 그 자리에 보성탕이라고 있었는데 거기도 가고 그랬지요.

- 이 동네 살아보니까 어떻습니까? 오래 사셨는데요.

= 다른 동네는 살려고 아예 생각도 안해 봤습니다. 그냥 이 동네에서만 쭉 살아왔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찌끼미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상가를 내가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게가 서른아홉 개인 줄 퍼떡 알지요.

리고 내가 이 동네서 통장을 오래 했어요. 1통 통장을 12년 전에 8년을 했거든요. 이번 1월 1일부로 또 통장 임명을 받았습니다.

- 재개발이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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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14.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8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일러두기>

1) 주민 면담은 2015년 1월 중에 이뤄졌습니다.

2) 인터뷰이(interviewee)는 가급적 오래 거주하신 분들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3) 게재 순서는 편의상 인터뷰가 이뤄진 시간순으로 하였습니다.

4) 인터뷰어(interviewer) 및 인터뷰 내용의 정리, 편집은 박영주(경남대박물관 비상임연구원)가 맡았습니다.

5) 인터뷰 내용은 표준어, 보통 높임말 어투, 구어체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내용상의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6) 인터뷰 내용은 오래 전의 일들을 개인의 기억으로 되살렸기 때문에 일부 착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7) 소중한 말씀을 해 주신 인터뷰이 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1) "새로운 희망의 터전을 꿈꾸며" ------------------------- 유○○

1946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30

날짜 : 2015년 1월 5일

장소 : 조합사무실

- 선생님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 사신 지도 오래 되었죠? 어떻게 오시게 되었습니까?

= 오래 됐죠. 내가 78년도에 공무원 시험을 쳤는데 운좋게 수석으로 합격을 했어요. 당시에는 수석을 하면 내가 근무를 원하는 곳으로 마음대로 갈 수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마산이 창원보다 영 좋았거든요. 그래서 마산으로 지원을 해서 이리로 오게 됐지요. 그래 9급 말단으로 마산시청에 발령받아 와서 쭉 근무하다가 2003년도에 정년퇴직을 했어요.

그러니까 한 25년 근무한 셈인데 시청에 있을 때는 주로 세무 부서, 세무과 세무조사과 그런 데 많이 있었죠.

 

옛 마산시청

 

- 그럼 고향은 어디 입니까?

= 의령 화정면입니다. 지금도 거기 토지가 있어서 농사도 짓고 있어요. 그런데 옛날 맨치로 소로 농사 짓고 그렇게 안하거든요. 논 가는 것부터 모 심는 것까지 기계로 다 합니다.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 가지고 논 한 마지기에 얼마씩 주고 그럽니다. 또 매실농장도 있어서 매실도 따서 아는 사람한테 선물 하기도 하고 밤도 따서 먹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그럼 그해 발령받고 나서 바로 이 동네로 오신 겁니까? 집은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 처음에는 회원국민학교 뒤에 이층 독채로 왔다가 그 다음 해에 이 집을 사가지고 왔어요.

촌에 논 좀 팔고 해가지고 샀는데 여기서 한 십년 살았는가? 살다가 이층으로 증축을 했어요. 그 설계를 내가 해서 증축을 해가지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거죠.

처음에 이 집을 살 때는 단층 슬라브 새집인데 하여튼 그때 이천칠팔백 정도 주었을 겁니다. 그때 수재민 주택이라고 구획정리를 반닥반닥하게 해서 집을 지었는데 괜찮았어요.

우리 집이 마흔두 평인가 그런데 다른 집도 다 비슷비슷 합니다. 그때 우리 집 뒤로는 거의 기와집이고 허름한 스레트집이고 그랬는데 수재민 주택이 되나니까 큰크리트로 야물게 지은 집이었거든요.

지금도 일층 집이 더러 있는데 그 사람들은 그대로 살고 있고 또 형편되는 사람들은 이층으로 올려서 살고 있고 그렇습니다.

여기 598번지 일대가 지금은 15통인데 옛날에는 17통인가 그랬어요.

- 처음 오셨을 때 78년도인데 그때 여기 동네 풍경이 어땠습니까? 또 생활은 어땠습니까?

= 그때 주공아파트 있던 쪽으로는 전부 밭이었어요. 그때 나많은 할배가 우리 집 화장실을 쳐서 지고 가서 밭에다 뿌리고 그랬어요.

그 사람은 변소 쳐준다고 돈 받고 밭에 또 똥오줌 거름 준다고 돈 받고 그리 하대요.

그리고 그때 주공아파트 들어선다고 구획정리를 해 놓았는데 그 생땅에다가 콩도 심고 막 그러대요. 우리는 뭐 모르니까 또 할 여가도 없었어요. 그 사람들이 부지런 하니까 남의 땅인데도 막 갈아먹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그때는 이 앞에 회원천 도랑이 아주 좁았어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큰물이 져서 돌이 물따라 내려가면서 쿵쿵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상당히 불안하고 위험하고 그랬지요.

우리 사는 데는 처음부터 시수도가 들어왔는데 집에 물탱크를 만들어야 됩니다. 물 나오는 시간 지나면 물이 안나오거든요. 다른 데는 산수도였는데 앵지밭골 위에서 물을 끌어다가 집집마다 연결했지요.

그런데 여기는 지대가 낮아서 그런지 수압이 좋아요. 시장은 회산다리 북마산시장을 주로 보러 다녔지요. 그 뒤에 철길 있는 데 시장이 생겨서 거기도 가고 그랬어요.

처음 여기 와서는 우리도 그랬지마는 연탄 피웠는데 지금도 연탄 피우는 사람도 있어요. 도시가스가 큰 도로변에는 들어오는 것 같은데 이쪽으로는 안들어 오거든요.

그리고 예전에 여기서 통근할 때는 하천 따라 쭉 내려가서 버스 타고 다녔죠. 13번 버스 타고 3.15탑 있는 데로 일방통행 하던 거기로 다녔어요.

그러다가 아마 80년대 되어서 소위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어 가지고 형편이 돼서 차 하나 타고 다녔죠. 엘란트라 타고 다니다가 또 크레도스 타고 다녔죠.

여기가 서민 주택 밀집지역입니다. 여기가 회원2동에 들어가는데, 옛날에 시청에서는 뭐라 했느냐 하면 시장한테 잘못 보이면 2동장으로 간다 하는 그런 말이 있었어요.

진정 많고 고발 많고 싸움 많고, 그런 골치 아픈 데 가서 욕 좀 봐라, 그런 얘기였어요. 허허허. 그래도 여기 우리 있는 데는 나아요. 저기 철둑 있는 데 가면 열 평 열한 평 이런 집이 얼마나 많은데요.

- 이 동네 집이나 논밭 주변에 옛날 오래된 비석이라든지 이런 거는 없었습니까? 또 오래된 공장 같은 거는 없었습니까?

= 다른 데는 잘 모르겠고 회원국민학교 근처에 노씨들이 많이 살았어요. 옛날에 노재현 국방부장관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여기 장례행렬이 굉장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도랑가로 올라가면 그때는 길이 굽어져 있었는데 그 정자나무와 비석이 있기 때문에 약간 튀어나와 있거든요. 거기 비석이 아마 노재현 웃대 어른들 것일 겁니다.

거기가 옛날 비석도 있고 정자나무도 있고 그런 거 보면 거기가 이 동네에서는 제일 오래된 것 같애요. 회원1구역 이 동네는 얼마나 오래된 동네인가 모르겠어요.

무학상가 지하에 조그마한 콩나물 공장이 있어요. 여기는 교회도 없고 절도 없고 그렇습니다. 이 동네는 논밭이다가 집이 다 들어서고 난 뒤에는 큰 변화가 없었어요. 다 옛날 그대로 입니다.

- 그동안 어쨌든 여기서 쭉 사셨는데 재개발 된다고 하니 감회가 어떠십니까?

= 속이 시원하지 뭐요. 허허허. 나도 그런 좋은 데 한번 살아볼런가 하는 그런 희망도 있고... 그런데 어려운 게 재개발 사업이더라고요. 여러 수백명의 의견을 맞춰야 되니까요. 지금 보면 2지구나 3지구 보면 어렵거든요.

나는 중리에 아파트 한 채가 있지만 거기 보다는 여기가 살기가 낫거든요. 조금만 내려가면 회산다리 시장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여기 새로 들어서고 나면 여기 살려고 합니다. 여기가 살기가 괜찮거든요. 조금만 가면 서마산 아이씨니까 촌에 가기 가깝고 가까이 산이 있어서 산에 가기도 좋습니다. 오늘도 산에 갔다 왔는데 저 위에 회원동 만남의 광장까지 자주 갑니다.

고개 넘어가면 두척 아닙니까? 거기가 배넘이고개라고 하던데 거기 가면 옛날에 심었던 편백이 지금은 이렇게 커가지고 좋습니다.

좀 내려오면 회원동 앵기밭골 희망촌 교회 바로 앞에 텃밭이 하나 있어요. 거기에 상치고 무우 배추 이런 거 심어 키웁니다. 가깝고 하니 텃밭 농사 짓기 좋습니다. 하하.

- 예. 오늘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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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7.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7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2

 

3)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아래 사진)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화산 봉수대는 회원동과 석전동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 성내에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위급 상황을 수도에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쌓았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지도에서는 ‘성황당봉수(城隍堂烽燧)’로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창원지역의 서낭신을 모신 성황당이 봉화산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봉화산 봉수대는 부산 지역에서 출발하는 직봉(直烽) 2로의 간봉(間烽) 6로로서 동래의 다대포 봉수대에서 시작하여, 진해 고산 봉수대를 거쳐 이곳 봉화산 봉수대에서 함안 칠서 안곡산 봉수대를 지나 창녕 현풍 소산 봉수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서울 지역 목멱산 봉수대로 연결되는 노선이다.

봉수는 빠르면 2시간, 늦어도 12시간 안에 도착하게 되어 있어 당시로서는 위급 상황을 알리는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봉화산 봉수대는 높이 265m의 봉화산 정상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봉화산 봉수대의 위치를 “성황산 봉수는 부 서쪽 15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웅천현 고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칠원현 안곡산에 응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봉화산 봉수대에서는 마산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산 아래로 이산성지가 보이며, 서쪽 방향으로는 회원현성까지 눈에 들어온다.

또한 동북 방향으로는 조선시대의 경상우도 병영성이 보인다. 함안 진주 방면으로 나아가는 관문이자 요새지로서 관방(關防) 시설이 갖추어야 되는 필수 요소였던 조망권이 탁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봉화산 봉수대는 창원지역의 관방 시설 중 하나인 봉수 유적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창원 지역은 일본과 가깝기 때문에 일찍부터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시설의 설치가 중요시되어 왔다. 창원은 마산만을 끼고 있기 때문에 예부터 항구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강조되어 왔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조창인 석두창(石頭倉)이 들어서 인근 지역의 조세를 싣고 운반하는 조운선이 항시 정박하였다. 따라서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창원을 방비하는 데 중점을 두고 관방시설이 정비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치소인 회원현성이 설치되었으며 1374년(공민왕 23) 왜구의 침입으로 회원현성이 함락되어 불타자 합성동에 합포성을 쌓아 군대를 주둔시켜 왜구에 대비하였다.

봉화산 봉수대는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기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관방 유적지의 대한 복원사업과 병행하여 봉수대가 원형으로 복원된다면 지역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방어 체계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닐 것으로 생각된다.

 

4) 이산미산 고분군(鯉山彌山古墳群)

회원동 산64번지에 있다. 이산미산(鯉山彌山)의 남쪽 언덕 일대가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되나 도시 확장으로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다.

현재 무학여고 뒤편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산성지가 있고 그 아래 몇 기의 고분이 현존하고 있었다고 하나 확인이 어렵다고 한다.

1981년 이 학교 후원 공사 때 붉은채색간토기(아래 사진)가 출토되었다고 하므로 청동기시대의 유적도 같이 병존하고 있는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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