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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6. 제2절 관아공서-3

운무허정도 2026. 1. 19. 00:00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6. 제2절 관아공서-3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진해만요새사령부(鎭海灣要塞司令部) 및 진해만중포병대대(鎭海灣重砲兵大隊)

마산의 신시가지 북단의 조금 높은 산지라는 요해의 땅을 차지해 굉장한 연와(煉瓦)로 된 몇 채 건물이 솟아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이 진해만요새사령부 및 진해만중포병대대인 것이다. 해군요지로서의 진해만은 이 육상의 설비가 있음으로써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하겠다.

포병중좌 마쓰마루 마쓰사부로(松丸松三郞)가 이 요새의 사령관이자 중포병대대장이다. 요새의 부관으로서 야마자키(山崎) 대위가 있다.

사령부원으로서는 스자키(須崎) 포병대위, 우메자와(梅澤) 공병대위가 있다. 대대에는 노무라(野村), 이토(伊藤), 오타(太田), 이노우에(井上) 4명의 포병대위가 있다.

 

마산거류민단역소(馬山居留民團役所)

미야코마치(都町) 1정목에 자리잡고 있다. 그 기원은 멀리 명치 32년(1899)에 있다. 동년 5월 1일 개항 당시 마산거류민회가 조직되어 거류민총대역장(居留民總代役場)이 설치되었는데 이것이 민단(民團)의 전신이다.

총대(總代)는 후일 이사(理事)로 고쳐지고 명치 37년(1904) 5월에 총대역장은 민역소(民役所)가 되며 이사는 민장(民長)이 된 것이다.

초대 총대는 야마다 노리후미(山田教文), 명치 33년(1900) 7월에 센고쿠 간쿠로(仙石勘九郞)로 교대되어 이사가 되었다. 1903년 8월에 자리에서 물러서며 동 월에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가 그 자리에 올랐으며 다음 해 5월에 민장으로 개칭되었다.

1906년 9월 1일, 거류민단법의 실시로 말미암아 동 씨는 거류민단 민장 대리가 되고 동년 11월 18일에 민단제에 의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은 부산거류민단역소 제1과장인 마에다 에이이치(前田榮一)를 민장으로 맞이해 오늘에 이른다.

마에다 취임 이래 마산의 발전에 많은 신경을 쓰니 눈부신 성과를 거둔 바가 있다. 최근에 와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마산의 장래는 마에다의 손에 의한 바가 크다고 믿는다. 민회의원의 정수는 16명이며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마산민회의원(馬山民會議員)

1번 히사에 간사쿠(久重勘作) 2번 마쓰모토 다조(松本多藏)
3번 히로시 세이조(弘清三) 4번 나쓰메 데쓰조(夏目哲三)
5번 모모키 게이치(百木惠一) 6번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
7번 하마다 시치주로(濱田七十郞) 8번 스와 부코츠(諏方武骨)
9번 야마모토 구니지(山本國次) 10번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郞)
11번 오키타 도시타로(沖田敏太郞) 12번 미야케 요시로(三宅吉郞)
13번 마쓰바라 하야조(松原早藏) 14번 후지사키 도모히데(藤崎供秀)
15번 고후지 지로(古藤次郞) 16번 요시다 마스타로(吉田益太郞)
민회의장 : 후지사키 도모히데

아래에 동 민단의 최근 5년 동안의 연간예산을 적으니 이것을 통해 마산의 발전추세를 엿볼 수가 있을 것으로 안다.

구분 1907년도(엔) 1908년도 1909년도 1910년도 1911년도
세입 13,951.70 17,550.05 30,501.00 31,930.00 44,047.00
세출 13,951.70 17,550.05 30,501.00 30,467.00 44,047.00

 

마산상업회의소(馬山商業會議所)

미야코마치 1정목에 있으며 현재는 민단역소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창립은 명치 41년(1908) 5월 23일이며 창립 당시에는 유권자 259명이 있었다. 회원에 대한 과금률(課金率)이 민도(民度)에 비해 조금 비싼 감이 있었는데 그 후 정관을 바꾼 결과 민단 납세년액 10엔 이상이라는 표준을 20엔 이상으로 했기 때문에 창립 당시에 비해 인구는 현저히 늘었건만 회원 수는 현재 201명으로 다소 감원된 셈이다.

그래도 과금징수는 점차 성과를 낼 조짐이 보인다. 내부 정리에 노력 중인 동 소는 특기할 만한 연혁 사항은 없지만 본 년에는 외부에 대해 사업을 벌일 예정이라 한다. 최근 2년 동안의 예산은 아래와 같다.

구분 전년도 예산액 본년도 예산액 비교
세입 1,172,500엔 1,850,000엔 677,500엔 증가
세출 1,172,500엔 1,850,000엔 677,500엔 증가
비고 : 전년도는 1910년 6월부터 1911년 3월까지의 기간.

임원, 의원은 아래와 같다. 누구를 막론하고 마산 실업계의 쟁쟁한 이들이며 마산 상공계의 성쇠는 이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구분 임원 및 의원
회장 후지사키 도모히데(藤崎供秀)
부회장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郞)
상무
의원
상황조사위원 히로시 세이조(弘清三), 미야케 요시로(三宅吉郞), 쓰지 하게무(辻勵)
자격심사위원 시미즈 다메마사(清水爲政)
회계위원 마쓰모토 다조(松本多藏), 히로시게 세쓰노스케(弘重節之助)
의원 후지사키 도모히데, 모치즈키 쇼고로(望月庄五郞), 마쓰모토 다조, 라이 다카지로(頼鷹次郞), 에구치 헤이사쿠(江口兵作), 나쓰메 게이지로 (夏目慶次郞), 메카다 헤이사부로, 후지타 시즈오(藤田鎭雄), 히로시 세이조, 오카모토 다쓰조(岡本辰三), 히로시게 세추노스케, 다지리 다네키(田尻種樹), 시미즈 다메마사, 쓰지 하게무, 무라카미 시게하루 (村上重治), 니시다 기소이치(西田喜惣一), 수다니 도라이치(酢谷虎市), 우에니시 겐지로(植西源次郞), 미야케 요시로(三宅吉郞), 시마모토 가메타로(島本龜太郞)
사무원 서기장 마에다 게키(前田外喜)
서기 진구 나쓰하루(神宮夏治)
사무원 견습 아라카와 에이자부로(荒川榮三郞)

 

마산각국거류지회(馬山各國居留地會)

신시가지의 아케보노마치(曙町)에 있다. 각국거류지 및 거류민의 이해득실을 심리(審理) 연구하는 곳이라 한다.

회장은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 그 밑에 서기와 기사가 있다. 의원(議員)으로 마산부윤(馬山府尹), 러시아 영사, 청국 영사, 지주의원(地主議員) 각 한 사람을 정한다.

본회의 경영사업으로서는 묘지, 공원, 우물, 점등, 소방, 위생, 토목 등의 여러 항목을 들 수가 있다. 묘지면적 5,460평, 그 경비는 민단이 부담하기로 되어 있다. 공원은 면적이 2,953평이며 유지비가 1년에 2천 엔이 든다고 한다. 우물 5개소 유지비 1년에 600엔, 점등 30개소 유지비 1년에 360엔, 위생설비는 민단에 위탁해 위생비 보조로서 매월 60엔을 기부하고 있다.

토목(土木)도 거류지 내에 속하는 것은 편의상 민단에 촉탁한다. 토지소유자에 대해서는 1등지 100평방미터마다 연간에 6엔, 2등지는 연간에 2엔이란 지세[地租]를 징수할 뿐이며 기타 다른 과세는 일절 없는 것이다.

거류민단에서는 거류지 내외를 막론하고 민단구역 내 주민에 대해 납세의무를 지는 자에 대해 민단세(民團稅)를 부과 징수하도록 되어 있는데, 거류지회에서 징수하는 지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회의 본 년도의 세출입예산은 출입 각기 11,841엔 67전이라고 한다.

 

마산소방조(馬山消防組)

명치 42년(1909) 2월에 각국거류지에서 처음 75명으로 조직되어 같은 해 가을에 구마산에 일조청(日朝淸) 합동의 80명으로 조직되었다.

1911년 1월부터는 각국거류지의 소방조를 1부로 하고 구마산의 소방조를 2부로 개칭했다.

각 부에 소방용 펌프[喞筒]가 1대 갖추어졌다. 현재 조장(組長)은 히로시 세이조(弘清三), 1부 부장은 혼다 쓰치고로(本田槌五郞), 2부 부장은 가와이 이치타로(河合一太郞)가 맡고 있으며 경비는 민단보조액 1,032엔이라고 한다.<<<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의 제1장 마산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두 사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