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2. 제6절 상업-2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2. 제6절 상업-2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2관 각종 영업(營業)
제1항 곡류 수출업 및 백미상(白米商)
당 민단(民團) 지역 내에서 상업으로서 가장 성한 것은 곡류의 수출업이다. 경상남북도의 비옥한 땅에서 산출되는 곡류는 조선반도 중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특히 쌀은 그 품질이 아주 좋아 내지 쌀과 손색이 없다. 이것들 쌀, 보리, 콩을 모아놓고 수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 생산지방은 웅천, 칠원, 진해, 영산, 함안, 창원, 의령, 김해, 덕산, 거제 등을 주로 하여 고성이나 사천 등에서도 다소 들어 오는 것이 있다.
수출선(輸出先)은 오사카(大阪), 효고(神戶), 부산, 블라디보스톡, 다롄(大連) 등이라고 한다. 관내에서 산출하는 곡류는 15만 석인데, 그중에서 쌀이 10만 석이며 기타는 콩, 보리 등의 잡곡이다.

조선에서의 쌀의 저장(貯藏)과 매매(賣買)는 벼(籾)로 거래함이 관례이므로, 일단 벼 상태로 매수하여 맷돌로 갈고 나서 정미기로 정미하고서 수요지에 보내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 이익에 관해서는 쌀값 변동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고 하나, 대략 한 석에 1엔 내지 2엔 내외가 된다.
여기서 일단 언급해야 할 점은 이곳에 나도는 쌀에 관해 개량해야 할 점이 몇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건조를 완전히 하고 토사의 혼입을 제거할 것, 벼를 가는 조제를 충분히 할 것 등이 그 주된 내용이다. 근래 동업자 간의 경쟁이 극심해져 쌀의 품위(品位)의 상하를 막론하고 난매(乱買)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농가(農家)는 이 기회를 타서 여러 간교한 수단을 쓴다.
중량으로 거래할 경우 토사를 혼입시키거나, 되로 거래를 할 적에는 불량하고 열등한 벼를 염수에 절이는 등이 그 짓들이다. 그 때문에 이곳의 곡물조합에서도 방지책으로 일본인이나 선인 몇 사람을 품질검사인으로 매일 시장 밖 요로에 출장을 보내 하나하나 점검한 후에 적절한 처치를 해 개량에 힘써 온 결과, 조금 나아진 면이 있긴 하다.
그래도 한번 시세가 난조(乱調)에 봉착하면 매수 경쟁이 일어나 부정적인 수단을 써먹으려 드는 점은 참으로 우려스럽기만 하다. 만약 전술한 바와 같은 여러 사항이 개량만 된다면 마산 쌀의 가격은 한층 더 올라갈 것이며 한신(阪神) 시장은 물론 이미 호평이 난 블라디보스톡이나 구미시장에서도 앞날이 유망할 것으로 믿는다.
아래에 작년도의 월별 곡류 가격표와 한신 및 다롄에 대한 미곡 수출 제경비[諸掛費]를 들겠다.
1석당 곡류 가격표 (1910년도, 단위:엔)
| 품종/월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벼 | 4.50 | 4.70 | 4.70 | 4.70 | 5.00 | 5.20 | 5.50 | - | - | 5.00 | 5.12 | 6.10 |
| 현미 | 7.20 | 7.40 | - | - | 8.50 | 8.60 | 9.00 | - | - | 9.60 | 9.88 | 11.40 |
| 백미 | 10.50 | 10.80 | - | - | 11.60 | 12.00 | - | - | - | 13.40 | 12.70 | 14.50 |
| 보리 | 2.50 | - | - | - | 3.00 | - | - | - | - | 3.10 | 3.50 | 4.30 |
| 밀 | 5.50 | - | - | - | - | - | 6.00 | 6.30 | 6.50 | 6.60 | 6.80 | 7.00 |
| 콩 | 4.50 | - | 5.50 | 6.00 | 6.50 | 7.00 | 7.00 | 7.20 | 7.40 | 6.20 | 6.10 | 6.60 |
| 팥 | 6.20 | - | 6.50 | - | - | 7.00 | 7.50 | 7.80 | 8.00 | 7.90 | 7.80 | 8.10 |
마산항에서 한신 및 다롄으로 수출할 적에 드는 제경비 (미곡 1석당)
가) 한신에 수출할 경우
| 반출료(창고에서 세관까지) | 8전 | |
| 적재료 | 8전 | |
| 기차운임 | 40전 | |
| 세관수수료 건당 | 20전 | |
| 수출세 | 가격의 5% | |
| 보험료 | 오사까 | 100엔마다 28전 |
| 고베 | 100엔마다 25전 | |
| 어음추심료 | 100엔마다 3전 6리 | |
| 도착항 반입비 | 8전 | |
| 수입세 | 100근마다 65전 | |
나) 다롄에 수출할 경우
| 반출료(창고에서 세관까지 ) | 8전 |
| 적재료 | 8전 |
| 기차운임 | 50전 |
| 세관수수료 | 건당 20전 |
| 수출세 | 가격의 5% |
| 보험료 | 100엔마다 23전 |
| 어음추심료 | 100엔마다 6전 3리 |
| 도착항 반입비 | 10전 |
이곳의 곡류 수출상의 주소와 성명은 아래와 같다.
| 마산 혼마치(本町) | 히로시 세이조(弘清三) (부산하사마지점(釜山迫間支店)) |
| 동 교마치(京町) |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郞) |
| 구마산 | 나쓰메 데쓰조(夏目哲三) |
| 동 | 히사에 간사쿠(久重勘作) |
| 동 | 다나하시 센노스케(棚橋仙之助) |
| 동 | 히라노 덴사부로(平野傳三郞) |
| 동 | 모리야마 긴지로(森山銀治郞) |
| 동 | 마쓰바라 하야조(松原早藏) |
| 동 | 야마노 겐지로(山野源次郞) |
| 동 | 사카타 분키치(阪田文吉) 지점(支店) |
거래액은 히로시를 으뜸으로 하며 메카다가 그다음, 기타 여러 상점도 상당한 거래고를 지니면서도 전술한 두 곳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곳의 백미상은 동업조합을 조직해 사무소를 혼마치 2정목에 두고 있다. 창립은 명치 41년(1908) 12월 26일이며 조합원 수는 27명이 된다. 그 성명과 주소는 아래와 같다.
조합원 성명 및 주소
| 도리코시 히데오(鳥越榮夫) | (조합장 겸 평의원) | 마산 혼마치(本町) 2정목 |
| 히사에 간사쿠(久重勘作) | (부조합장) | 구마산 요로즈마치(萬町) |
| 니시다 기소이치(西田喜惣一) | (평의원) | 마산 사카에마치(榮町) |
| 오오타 산지로(太田三次郞) | (동) | 마산 교마치(京町) 1정목 |
| 니시자 도쿠타로(西座徳太郞) | (동) | 마산 혼마치 2정목 |
| 이마이 와사부로(今井和三郞) | (감사) | 마산 혼마치 3정목 |
| 다케다 요시타로(武田吉太郞) | (동) | 구마산 |
| 나카야마 지쓰타로(中山實太郞) | (동) | 마산 교마치 1정목 |
| 히라노 사부로(平野傳三郞) | (동) | 구마산 해안통(海岸通) |
| 요시마쓰 시게키(吉松茂喜) | 구마산 | |
| 나쓰메 데쓰조(夏目哲三) | 구마산 | |
| 사카이 이치타로(境市太郞) | 마산 혼마치 3정목 | |
| 노기 사부로(野木三郞) | 동 하마마치(濱町) 1정목 | |
| 나쓰메 모토키치(夏目元吉) | 동 | |
| 시마모토 가메지로(島本亀次郞) | 동 | |
| 기무라 야스지로(木村安次郞) | 구마산 | |
| 이시모토 신이치(石本新一) | 마산 하마마치 | |
| 요시카타 유키마쓰(吉形幸松) | 동 | |
| 유키무라 사부로(行村三郞) | 마산 도오리마치(通町) 3정목 | |
| 미쓰오카 리스케(光岡理助) | 구마산 | |
| 후지이 마사카즈(藤井政一) | 구마산 | |
| 도쿠나가 아사지로(徳永朝次郞) | 마산 미야코마치(都町) | |
| 조코 다케사부로(上甲竹三郞) | 동 도오리마치 | |
| 마에오카 아이키치(前岡愛吉) | 동 혼마치 3정목 | |
|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郞) | 동 교마치 | |
| 하라다 신키치(原田新吉) | 구마산 | |
| 나카오 세이지로(中尾淸二郞) | 동 |
한 조합원이 한 달 동안에 현미를 정미로 가공하는 수량은 평균 50석이며 연간 600석이 된다. 조합원이 27명이므로 1년 동안에 16,200석이 되는 셈이다.<<<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의 제1장 마산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두 사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