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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7. 제6절 상업-7

운무허정도 2026. 4. 6. 00:00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7. 제6절 상업-7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8항 대가업(貸家業)

비교적 안전하고 확실한 수익은 임대주택 만한 것이 없다. 시내에 산재한 대가업자들을 보면 아마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들은 아래의 몇 명이다. 현재 임대료는 단층집은 1평당 50전부터 1엔까지 이층집은 1평에 75전부터 1엔 45전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리라.

야나기마치(柳町) 다나카 유즈루(田中遜) 교마치(京町) 2 고이즈미상점(小泉商店)
교마치(京町) 2 나카이상점(中井商店) 미야코마치(都町) 후지사키상회(藤崎商會)

 

 

다나카 유즈루(田中遜)의 사업

전 궁내대신(宮內大臣)의 사자(嗣子)로, 동양콤프렛솔주식회사 사장으로 또한 도쿄 유흥가의 멋쟁이 신사로도 그 이름이 날린 다나카 유즈루(田中遜)는 마산공원 아래 아사히마치(朝日町) 언덕에 근사한 2층 건물을 지어 아침에는 장군산(將軍山)의 맑은 바람을 쇠고 저녁에는 월포동에 뜬 달을 바라본다.

집에는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창포인지 제비붓꽃인지 구분조차 어렵구나. 주인은 틈날 적에 찾아오곤 한다. 그것도 일 년 사이에 두세 번뿐. 서너 잔 술을 마셔 도연(陶然)하게 취해 몸이 지탱할 수 없게 되자 한 아름다운 여성이 무릎을 내밀어 베개로 삼아주며 허리를 살살 주물러주는 데는 참으로 풍광명미(風光明媚)의 지경일 터. 만금의 돈을 지니며 주위에 가인(佳人)으로 시중들게 하는 다나까도 참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로다.

한가한 얘기는 그만. 다나까가 이 땅에 처음 왔을 때는 명치 39년(1906) 첫머리 무렵이다.

이 땅의 장래성에 주목해 각국거류지 중 주요한 택지 수천 평을 구입하여 임대가옥을 30여 채나 지어 현재는 한 달에 5백여 엔의 수입이 있다.

또 현동(縣洞)에 2동(棟) 9호(戶)의 집을 신축해 필요에 따라 더 증축할 것 같다고 한다.

나온 김에 적어놓겠는데 인근 고성(固城)에는 논을 120~130정보(町歩) 가지고 있는데 당시의 매입가격은 1반(反)에 약 20엔이었다.

내지인 소작농이 10여 호가 있으며 선인 소작농은 수십에서 100호 정도가 된다. 땅값이 오른 것과 그동안의 수확으로 투자원금을 되찾은 지 오래다.

신구마산의 중앙인 원월동 부근의 철도용지 33만 평의 지상에서의 각종 식림과 10정보에 가까운 과수원은 토질이 잘 맞아 성공이 틀림없을 것이다.

규모가 큰 식림과 원예는 다나까가 선구자인 셈이다. 시내 네 군데에 걸린 철근콘크리트 다리는 다나까가 주재하는 동양콤프렛솔주식회사가 의무와 광고를 겸한 파격의 공사비용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 다리들이 영구적이고 견루(堅壘)하면서 품위를 지닌 것들이라 조선만이 아니라 내지에서도 그리 많지가 않을 것이다.

 

제9항 오복상(吳服商)

조선에 알맞은 기모노라고 유행에서 뒤떨어진 것을 갖다 팔면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최신 유행품은 견본만 보여주고 바로 이곳에 들여다 놓을 수가 있다. 이러다 보니 조선에서 내지에 돌아갔을 적에도 시골뜨기라는 조소의 대상이 될 것이란 염려는 없을 것이다. 이 업계의 다케우치 에이타로(竹内榮太郞)는 아직 젊지만 기민하고 확실한 인물로 신구마산의 동업자끼리 알아보는 사람이라 듣고, 한번 아래와 같은 담화 기회를 가졌다.

겨울 복장은 여름 복장에 비해 상황(商況)은 활발하며 여름 복장은 아무리 해도 조용한 경향을 면하기 어렵다. 고가품도 다소는 팔리되 대부분은 싼 것들이 주류다. 멋지고 고상한 것은 어디에서든지 잘 팔려나간다. 한 점포의 매상고는 1년에 4~5천에서 4~5만 엔쯤 될 것이다. 동업자의 명단을 헤아려 본다면 아래와 같다.

구마산 도오리마치 7정목 다케우치(竹内) 오복점, 교마치 2정목 니시무라(西村) 상점, 교마치 2정목 고이즈미(小泉) 오복점, 교마치 2정목 우에니시(植西) 오복점, 혼마치 3정목 스하라(須原) 오복점.<<<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의 제1장 마산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두 사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