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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8. 제6절 상업-8

운무허정도 2026. 4. 13. 00:00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8. 제6절 상업-8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10항 여관업(旅館業)

일년내 여객의 왕래는 빈번하다. 올해 3월 27일부로 경찰에 신고된 여객 수는 투숙자 39명, 체재자 118명 합쳐서 157명이나 된다. 이 숫자를 한 달 동안에 누계한다면 4,710명, 일 년 같으면 56,520명으로 계산이 되는데 이 숫자는 최성기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 아마 실제 숫자와는 차이가 날 것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하여튼 그 숫자가 아주 많기에 바로 여관업을 해볼까 하는 인사도 두셋으로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아래에 여관명과 숙박요금을 적으니 그 앞날을 점쳐 주기 바란다.

 

마산여관동업조합(馬山旅館同業組合)

창립 명치 42년(1909) 5월
소재지 마산 교마치 1정목
조합원 33명
구분 소속 성명 주소
임원 조합장 다이코오여관(大功旅館) 주인 나카쓰토무 후쿠마쓰(中務福松) 교마치 1정목
부조합장 모치즈키여관(望月旅館) 주인 모쓰즈키 쇼고로(望月庄五郞) 혼마치 3정목
조합원 호리에여관(堀江旅館) 호리에 요시사부로(堀江芳三郞) 혼마치 4정목
고조관(湖城館) 미우라 도쿠이치(三浦篤一) 구마산
도키와여관(常盤旅館) 세키지 조지로(關地長次郞) 미야코마치
아사히옥(朝日屋) 니시모토 료하치(西本良八) 구마산
다쓰미여관(辰巳旅館) 가네코 요시야수(金子喜保) 교마치 1정목
요시카와여관(吉川旅館) 요코하리 소키치(横張倉吉) 혼마치 1정목
아카몬여관(赤門旅館) 아카마쓰 준(赤松ジュン) 교마치 2정목
후쿠오카옥(福岡屋) 도쿠나가 다케키치(德永武吉) 미야고마 1정목
쓰치야여관(土屋旅館) 쓰치야 요시(土屋ヨシ) 혼마치
치쿠고옥(筑後屋) 마쓰노베 기쿠노(松延キクノ) 혼마치 3정목
미카사여관(三笠旅館) 미무라 기시(三村キシ)     도오리마치 1정목
이케다여관(池田旅館) 이케다 모토(池田モト) 미야코마치 1정목
- 니카와 히사(仁川フサ) 혼마치 1정목
치토세여관(千歳旅館) 이가와 아키(井川アキ) 사카에마치
호쿠리쿠옥(北陸屋) 사이토 미노루(齋藤實) 혼마치 3정목
오가타여관(緒方旅館) 오가타 요사부로(緒方千代三郞) 구마산
히로시마옥(廣島屋) 하라다 레이이치(原田禮一) 혼마치 3정목
아사히옥(朝日屋) 이시카와가쓰타로(石川克太郞) 도오리마치 2정목
비젠옥(備前屋) 오카노 도모(岡野トモ) 아케보노마치 3정목
사카에옥(榮屋) 아라카와 모모타로(荒川百太郞) 사카에마치
- 기타가와 마쓰조(北川松三) 아사히마치
우쓰미옥(内海屋) 우쓰미 기미(内海キミ) 도오리마치 7정목
사가옥(佐賀屋) 우치다 사타(内田サタ) 교마치 3정목
나베옥(鍋屋) 에구치 시치타로(江口七太郞) 혼마치 3정목
- 이노우에 오토마쓰(井上乙松) 교마치 3정목
- 아리미쓰 모키치(有光茂吉) 미야코마치
호슈관(豊州館) 이나다모토(稲田モト) 미야코마치 1정목
쓰루옥(鶴屋) 야나가와 신타로(柳川信太郞) 미야코마치 1정목
오하라여관(大原旅館) - 도오리마치 1정목
마쓰우라여관(松浦旅館) - 혼마치 5정목
도모에죠여관(巴城旅館) 히사토미 쓰네요시(久富常吉) 혼마치 5정목
구분 숙박요금(1박 2식) 점심요금(1회)
특등 3엔 1엔 20전
1등 2엔 50전 1엔
2등 2엔 80전
3등 1엔 50전 60전
4등 1엔 20전 50전
5등 1엔 40전
6등 80전 35전
7등 60전 25전

망월루

 

제11항 요리점(料理店)

세계의 여러 국민이 해외에 나갈 적에 주로 자국의 깃발이 있는 곳을 찾아가게 마련인데 우리 동포들은 젊은 여자들의 치마를 바라보며 간다니 참 재미있기도 하도다.

개항 당시의 화류계를 얘기하자면 당시 일은 너무 오래된 것이다. 러일양국이 한번 국교를 단절해 뤼순(旅順), 인천(仁川)의 만(灣)에서 포화를 서로 쐈을 무렵 마산의 번창함은 아주 대단했다.

이어서 마산지선(馬山支線)이 군용철도로서 기공되어 군인, 군속 또한 공사청부인들의 이익의 대부분은 이 화류계의 발전을 크게 촉진하고 혹은 모치즈키(望月)의 대건축물로 둔갑하기도 했다. 교토, 오사카 등의 본고장에서 미녀들이 초래(招來)되었는데 심지어는 그 당시 2~3천 엔이란 고액으로 불려온 이도 있다고 한다.

그 후 전쟁이 끝나 세간에는 불경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그 발전에 쐐기가 걸린 적도 있었으니 아름다운 꽃들도 조락(凋落)의 운명에 처했다. 그래도 작년 이래 군항 운영에 박차가 가해져 또다시 경기가 회복되어감에 따라 요리점의 신축이나 예기 확보에도 경쟁이 일어났다.

노래 부르는 여자들이나 작부 수백 명이 손님을 잘 모시려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맞이하는 탓인지, 요리점 거리에는 밤낮 가리지 않는 가무 소리가 들려오고, 홍등이 희미한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도 흘러나오는구나. 어디가 어딘지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그 시세와 요리점 이름을 적어놓았다.

단 술은 한 병에 12전, 맥주는 35전, 안주는 1인당 5~6가지로 1엔 45전부터 2~3엔까지이다. 기생에게는 촌지를 주지 않아도 된다.

예기 한 사람 시간당 60전, 저녁에서 아침까지는 5엔 50전, 12시부터 아침까지는 3엔, 종일은 8엔 50전. 작부 한 사람 짧은 시간으로 40전, 숙박하게 되면 3엔 50전, 12시부터 아침까지 2엔.

요리점 이름

교마치 2정목 모치즈키루(望月樓), 교마치 2정목 이로하(いろは), 교마치 1정목 이치라쿠(一樂), 사카에마치 봉천관(奉天館), 야나기마치 가게쓰(花月), 사카에마치 산수이루(山水樓), 교마치 3정목 아사히루(朝日樓), 교마치 3정목 도요켄(東洋軒), 교마치 3정목 신가이루(新開樓), 교마치 3정목 산카이루(山海樓), 혼마치 3정목 친카이루(鎭海樓), 미나토마치 시치후쿠루(七福樓), 가모가와(加茂川), 다이카이루(大海樓), 구마산 메이게쓰루(明月樓), 구마산 하쓰노야(初の家), 구마산 기미노미야코(君の都).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의 제1장 마산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두 사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