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32. 제13절 종교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32. 제13절 종교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13절 종교(宗敎)
선인 사이에는 고래(古來)로부터 불교(佛敎)가 성했는데 이제는 퇴폐의 극에 닿아 거의 볼 것이 없다.
유교(儒敎)는 아직까지도 융성해 유생이나 양반을 중심으로 일반까지 숭경(崇敬)의 마음이 깊다.
내지인의 포교 기관으로서 아래 몇 군데를 살펴보겠다.
니시혼간지(西本願寺) 출장소
이 출장소는 러일전쟁 중이던 명치 37년(1904) 3월에 러시아인 소유한 가옥을 빌려 개소되어 가장 오래된 포교소라 하겠다. 히다카 닷케이(日高達契)가 계속 포교에 종사하고 현재 신도 수는 200호를 넘는다.
1905년부터 불교부인회를 일으켜 회원이 200명이 된다. 매월 2번 신구마산에서 모임이 열린다.
올해부터 내지 본산(本山)의 보조를 사절해 오로지 신도의 부조만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또 매월 한 번 군대(軍隊) 포교라 하며 송진(松津)이나 현동에 출장 설교도 하고 있다.
조오도슈(浄土宗) 마산교회소
명치 35년(1902) 7월에 개교사(開教師) 미스미다 지몬(三隅田寺門)이 종파의 명을 띠며 부임하고 오늘에 이른다.
처음에는 히로시 세이조(弘清三) 자택을 임시 교회소로 개교하다가 각국거류지로 자리를 옮겨 관민의 원조를 받아 성대한 개당식을 올리고 오늘에 이어진다.
애당초 해외 식민지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기관이 없었기에 미스미다는 스스로 1902년 11월 22일에 마산포소학교란 것을 설립해 개교식도 올렸다. 당시 학생 수는 18명인데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민단이 세운 소학교의 효시가 된 것이다. 신도 수는 현재 300여 명이며 염불강(念佛講), 오중강(五重講) 등을 조직해 포교에 전념하고 있다.
또 남은 시간으로 영어나 한자, 두 교과를 교회소에서 가르치며, 군대에 대한 포교는 다른 종파와 같다.
니치렌슈(日蓮宗)
이 절은 마산 유미마치(弓町) 언덕에 있는데 만내(灣內)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가 있는 좋은 위치다.
현재 주직(住職)은 아사히 간세이(旭寛成) 스님이며 명치 42년(1909) 3월 28일에 이곳에 터를 잡아 조선가옥을 한 채 사들이고 포교소로 삼아 열심히 그동안 포교에 종사해 왔다.
현재 신도 수는 80여 명인데 별도로 회원 130명으로 구성된 무라쿠모(村雲) 부인회란 것을 만들고 매년 봄가을 두 번 총회를 개최해 유명인사를 초대해 불교에 관한 강화 등을 듣게 하면서 식민지 종교계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본고(本稿) 작성 즈음에는 도오리마치 3정목에 본당 건축의 준비를 마쳐 공사에 들어갔는데 봄철까지는 낙성을 보게 될 것이다. 또 한 달에 한 번의 군대 포교는 다른 종파와 같다.
소도슈(曹洞宗) 포교소
동소는 마산 도오리마치 4정목에 있으며 현재 포교사는 이데 료고(井出良悟)이다. 명치 42년(1909) 8월 23일에 포교소를 여기에 개설했다.
현재 단도(檀徒)는 1백여 호이며 관음강원(觀音講員)은 80여 명을 가지며 한 편에 가정전도회란 모임을 두고 매월 한두 번 단도 자택을 방문해 출장 설교나 독경을 하며 열심히 포교에 종사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본당을 지을 예정이며 현재 기부금을 모집하고 있다. 매월 한 번의 군대 포교는 다른 종파와 같다.

신곤슈 부잔파(眞言宗豊山派) 마산포교소
마산 신마치(新町) 1정목에 있으며 명치 41년(1908) 8월 15일에 포교소가 창립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교사 미쓰미야 류우코(三宮隆晃)가 포교에 종사하고 있다.
단신도(檀信徒)는 내지인 단가(檀家)가 80여 호, 신도는 5백 명이다.
선인의 참배자가 매일 평균 16~17명쯤 된다는데 아직 신자로 부르기까지는 못 된다고 한다. 매월 한번 타종과 순번을 정해 군대 포교에도 종사한다.
덴리교(天理敎) 마산포교소
구마산 신마치 1정목에 있다. 창설은 명치 43년(1910) 4월 26일이다.
포교사 야마모토 나오키치(山本直吉)가 운영해 열심히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외에 일선인(日鮮人) 회원 40명으로 구성된 덴리교 마산부인회란 모임을 조직해 월 1회 개회해 부인의 심성이나 교리 등의 강화를 실시한다.
신도
| 일인 | 121명 (남자 69명, 여자 52명) |
| 선인 | 142명 (남자 68명, 여자 74명) |
마산기독교회(馬山基督敎會)
이 교회는 교마치 2정목이란 시내의 제일 번화가에 있으며 창립은 명치 41년(1908) 3월 20일이다.
그 당시는 아주 성행해 포교나 전도 활동이 눈에 띄었으나 현재는 존속하는 목사도 없어 부산이나 대구에서 때때로 출장 설교가 있을 뿐인 바 지난해의 그림자도 없어진 듯 부진하기 짝이 없음은 종교계의 유감으로 생각되는 터다.
해군 임시건축지부에 근무하는 마치다 모헤(町田茂兵衛)가 작년부터 동 교회가옥을 관리하나 현재는 신도 수도 1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작년부터 일요학교를 개시해 15명 안팎의 학생을 교육하고 있다. 멀지 않아 회당을 신축해 혁신적으로 종세 확장에 임한다고 하니 경사라 하겠다.
구마산에는 프랑스 사람이 운영하는 교회가 있는데 선인이 포교에 종사하고 있다.
사족일지 모르나 구마산에는 기독교주의에 의한 소학교가 존재함은 이미 적은 바 있다.<<<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의 제1장 마산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두 사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